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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 사전 - 노동(Labor) 본문

어휘놀이터/개념어사전

개념어 사전 - 노동(Labor)

건방진방랑자 2021. 12. 17.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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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Labor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철학자자라면 지성을 지닌 존재로 볼 것이고, 역사가라면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체로 볼 것이며, 과학자라면 두뇌가 발달한 영장류의 하나로 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로 보았고 파스칼(Blaiss Pascal, 1623~1662)은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했다. 더 통속적인 관점도 있다. 교회에서는 인간을 신도(信徒)로 볼 테고, 법정에서는 피의자로, 병원에서는 환자로, 장의사는 잠재적 시신으로 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을 어떻게 보든 간에 인간을 인간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속성에는 공통적인 면이 있다.

 

우선 인간은 언어를 사용한다. 인간 이외에 언어를 사용하는 동물은 지구상에 없다. 원숭이나 돌고래가 몸짓이나 발성으로 약간의 의사소통을 하지만 인간의 언어처럼 다양한 의미를 표현하고 전달하지는 못한다. 언어가 인간의 속성이라는 것은 누구나 당연히 인정하지만 언어만큼 당연한데도 자주 잊는 속성이 있다. 그것은 바로 노동이다.

 

 

노동이라면 일한다는 건데 동물도 먹고살기 위해 일하지 않는가? 하지만 동물의 일과 인간의 노동은 질적으로 다르다. 인간의 노동은 생존을 위한 활동일 뿐만 아니라 자아를 실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물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건설 현장에서 인부로 노동하거나 아파트 경비를 서는 노동을 자아실현이라고 말하기에는 사치스러운 게 사실이다. 여기서 자아실현이란 철학적이거나 도덕적인 의미가 아니라 조직화된 사회관계를 반영한다는 의미다. 특정한 사회관계에서 주어진 역할을 소화하는 것이 곧 노동의 관점에서 본 인간의 자아실현이다.

 

인간의 노동은 표범이 먹이를 사냥하는 것처럼 고립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공장 노동자는 생산 방식 자체가 분업에 의존하므로 당연히 사회관계를 바탕으로 하며, 혼자서 고독하게 진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예술가의 창조적 노동도 역시 누군가에게 작품을 보이고 판매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사회관계가 내재해 있다. 즉 인간의 노동은 본래적으로 사회적 노동이다.

 

 

이런 노동의 특성을 낳는 것은 뭘까? 분업일까? 하지만 집단을 이루고 살아가는 벌과 개미도 분업적으로 일하므로 분업 만은 아니다. 차이는 목적의식성에 있다. 동물의 일은 맹목적적이지만 인간의 노동은 처음부터 목적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이다. 목수는 나무를 깎아 의자를 만들 때 미리 노동의 전 과정을 이해하고 최종적인 목적을 의식한 상태에서 노동을 진행한다. 노동의 목적은 자신의 노동이 사회관계에서 어떤 기능을 할지를 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은 지나치게 분업화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 노동의 본래적인 총체성을 심각하게 저해한다. 공장에서 노동자는 하나의 부품처럼 주어진 단순 작업을 반복한다. 노동자는 자신이 투여한 노동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며, 노동 생산물에 관해서도 전혀 소유권을 가지지 못한다. 이런 현상은 현대 사회의 커다란 문제들 가운데 하나인 노동 소외를 낳는다.

 

 

경제적으로 노동은 가치를 낳는 원천이다. 이런 관점에서 경제학의 시조인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는 노동가치설을 주장했고,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그 학설을 계승해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을 설명했다.

상품 가치의 크기는 그 상품에 포함되어 있는 가치를 형성하는 실체’, 곧 노동의 양으로 측정된다. 노동의 양은 노동이 투여된 시간으로 측정되고, 노동 시간은 다시 한 시간이라든가 하루라든가 하는 일정한 단위 시간을 척도로 삼는다. -마르크스, 자본론

 

통나무는 상품이 아니지만 목수(노동자)가 그것을 깎고 다듬으면(노동을 투여하면) 의자라는 상품이 된다. 이런 점에서 노동은 가치를 창조하는 유일한 원천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의자를 만드는 일이 목수의 노동만으로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톱과 대패도 있어야 하고 목수가 먹을 점심 도시락도 있어야 한다. 톱과 대패, 도시락은 모두 돈을 주고 사야 한다. 그렇다면 돈도 가치를 낳는 게 아닐까?

 

그러나 돈 역시 하나의 상품에 불과하다. 우리는 가게에서 돈을 주고 물건을 사지만, 가게 주인은 우리에게 물건을 주고 돈을 산다. 돈이 기준인 것처럼 여겨지는 이유는 어느 상품보다도 교환하기 쉽다는 이유 때문이다. 더구나 돈은 가치를 유통시킬 뿐 생산하지는 않는다.

 

또한 톱과 대패, 도시락도 모두 노동의 산물이다.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그것들을 죽은 노동이라고 부르며 노동자의 실제 노동, 산 노동과 구분짓는다노동이 죽었다는 뜻은 아니고 과거로부터 축적된 노동이라는 뜻이다. 죽은 노동과 산 노동이 결합되어 상품이라는 가치 형태를 창조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바로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을 통해 가치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에서는 노예나 농노만 있었을 뿐 노동자는 없었다. 노예와는 달리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고용되어 일정한 시간 동안 노동을 해주고 임금을 받아 생활한다노동자라고 해서 꼭 공장 노동자만 생각하면 안 된다. 샐러리맨, 운전기사, 외판원 등 노동의 대가로 자본가에게서 임금을 받는 사람은 모두 노동자다. 그런 점에서는 학교 선생님들까지도 노동자의 신분이다. 단 자영업자나 상인, 농민, 연예인 등은 노동자가 아니다.

 

임금이라는 대가를 받으므로 노동력도 하나의 상품이다. 따라서 노동력이라는 상품가치도 다른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생산하는 데 들어간 노동 시간으로 결정된다. 노동자는 우선 먹고살아야 하며, 또 노동력도 기계처럼 낡으므로 재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다른 표현으로 바꾸면,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자와 그 가족이 생활하고,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훈련하고 개발하는 데 들어가는 생활필수품들을 생산하는 비용이 된다.

 

그런데 노동력은 자본가의 입장에서도 하나의 상품이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고용했다는 것은 곧 노동력을 구입한 것이므로 그것을 다른 상품처럼, 예컨대 기계처럼 자기 마음대로 이용할 권리가 있다. 따라서 자본가는 그 노동력이라는 상품이 훼손되지 않는 한에서 최대한 이용하려 들 것이다. 그 결과 노동자는 자기 노동력의 가치 이상을 생산하게 된다.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의 비유에 따르면, 한 필의 말이 먹는 먹이와 그 말이 기수를 태우고 갈 수 있는 시간은 전혀 별개의 것이듯이 노동자가 일하는 시간과 그 노동자가 생산하는 가치는 차이가 있다. 이 가치의 잉여 부분을 마르크스는 잉여가치(剩餘價値)라고 부른다.

 

바로 이 잉여가치 덕분에 자본주의가 생겨나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잉여가치를 이용해 자본가는 원료, 임대료, 세금 등 상품 생산에 필요한 경비들을 지불할 뿐만 아니라, 남은 부분을 이윤으로 바꾸어 노동력을 더 구입하거나 기계를 새로 갖추거나 하는 등의 새로운 상품 생산을 위한 투자를 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새로운 상품 생산은 그 이전보다 더욱 규모가 클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의 자본을 낳고 늘려주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노동이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밝혀낸 자본주의의 고유한 자본 증식 과정이다.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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