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Bible
성서라면 어의상으로는 ‘성스러운 책’이니까 종교문헌을 전반적으로 가리키는 뜻이어야 하지만, 보통은 그리스도교에서 경전으로 여기는 책을 가리킨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종교의 경전(經典)인 만큼 성서는 함부로 의미를 왜곡할 수 없고 심지어 일부분을 다른 책에 인용할 경우에도 자구 하나 바꾸지 않는 게 관례화되어 있다. 하지만 신의 말씀을 기록했다는 성서는 과연 그렇듯 엄밀하게 구성된 문헌일까?
고대의 문헌들이 그렇듯이 성서 역시 한 사람의 작품은 아니다. 39권으로 된 구약성서(舊約聖書, old testament Bible)는 특별한 저자가 없이 전승된 문헌이지만 오랜 기간에 걸쳐 기록되고 보태진 게 확실하고, 27권으로 이루어진 신약성서(新約聖書, new testament Bible)는 4대 복음서 저자들이 쓴 복음서와 사도 바울의 편지 등으로 구성되었다. 구약성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유대교의 교리를 담고 있으며【그 가운데 맨 앞의 율법서 다섯 개는 흔히 모세 5경 또는 토라(Tora)라고 부른다】, 신약성서는 그리스도가 활동한 이후의 문헌들이다. 유대교에서는 구약성서만을 인정하고, 개신교에서는 구약과 신약을 모두 성서로 인정하며, 가톨릭에서는 여기에 기원전 2세기~기원후 1세기에 주로 작성된 외경(外經)【토빗기, 유딧, 마카베오기 상권, 마카베오기 하권,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들도 포함시킨다.
기록된 과정과 구성에서 보듯이 성서는 처음부터 그리스도교의 경전이 될 것을 겨냥하고 목적의식적으로 만든 문헌이 아니다. 따라서 조금도 내용을 바꿔서는 안 된다는 교조적인 자세로 작성한 문헌이 아니다. 그저 당대에 포교상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문헌일 뿐이다. 이런 ‘예상외의’ 허술함은 번역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구약성서는 유대인의 역사인 만큼 당연히 히브리어(Hebrew language)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Alexandros)의 동방원정 이후 기원전 4세기부터 헬레니즘 시대를 맞아 그리스와 오리엔트에서는 그리스어(Greek language)가 공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므로 구약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할 필요성이 생겼다. 그래서 기원전 3세기부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번역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 그리스어 번역본을 70인역 성서(Septuaginta, 七十人譯聖書)라고 부른다. 이스라엘 12지파의 각 지파에서 여섯 명씩 발탁되어 72명이 번역했다는 데서 유래했으나 모두 번역되기까지는 무려 한 세기가 걸렸기 때문에 믿거나말거나한 이야기다. 더욱이 각자가 독방에 들어가 번역한 결과 내용이 모두 같았다는 기적 같은 전설이 전해지지만, 이것은 이 성서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날조된 이야기일 터이다.
로마시대에 접어들면 신약성서가 등장한 데다 공용어도 그리스어에서 라틴어(Latin language)로 바뀌므로 또다시 성서의 번역 작업이 필요했다. 4세기에 다마스쿠스 교황에게서 성서 번역을 위임받은 당대 최고의 성서학자인 히에로니무스(Eusebius Sophronius Hieronymus, 347~420)는 70인역 성서에 불만을 느끼고 히브리어 원본을 바탕으로 구약성서를 재번역했다. 곧이어 그는 신약성서도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했으나 번역 과정에서 내용을 상당히 수정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히에로니무스의 번역본도 후대에 여러 차례 수정을 거치면서 불가타(Vulgata, 공동번역이라는 뜻의 라틴어) 성서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중세 내내 불가타 성서는 70인역 성서와 더불어 권위를 인정받았다. 오늘날에 사용되는 성서는 불가타 성서를 원본으로 삼고 있다. 이후 성서는 14세기에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1384)가 영어로 번역했고 16세기에는 종교개혁의 방아쇠 역할을 했던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독일어로 처음 번역했다【우리나라는 그리스도교가 도입된 초기에 4대 복음서만 번역되었다가 20세기에 성서 전체가 완역되었다】.
번역이 원래 그렇지만 히브리어 → 그리스어 → 라틴어 → 각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성서의 원문이 원래의 뜻을 유지하기란 어렵다【그리스도가 실제로 썼던 언어는 아람어로 추정되므로 히브리어도 ‘원본’은 아닌 셈이다】. 더구나 히브리어는 모음이 없기 때문에 인명이나 지명은 번역자가 알아서 적당히 읽어주어야 한다. 오류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심지어 서기들이 문장을 필사하다가 순전히 실수로 내용이 달라진 경우가 있는가 하면, 난해한 용어에 임의로 주석을 단 것이 실수로 성서의 본문으로 들어간 경우도 있다.
오늘날처럼 학자들의 소통이 자유롭지 못했으니 각종 오류를 정밀하게 찾아내기도 어려웠을 테고, 인쇄술이 없었으니 사본이 원본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보장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오류는 충분히 있을 수 있고, 또 그렇지 않은 옛 문헌은 거의 없다. 다만 문제는 오류 자체가 아니라 그렇게 ‘인간적인’ 과정을 통해 작성된 문헌이 마치 신의 말씀을 토씨 하나 안 틀리게 전달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무엇이든 절대화되는 순간 부패하기 시작한다. 신은 정의상 절대적 존재이므로 절대화되어도 상관없지만, 인간이 만든 성서가 절대화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설사 그리스도교의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 해도 아마 성서에 기록된 내용이 자신의 가르침과 낱말 하나하나까지 정확히 일치한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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