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6/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시네필 다이어리,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조셉 캠벨 - 너를 찾으러 가는 길 끝에서 ‘나’를 발견하다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조셉 캠벨 - 너를 찾으러 가는 길 끝에서 ‘나’를 발견하다

건방진방랑자 2021. 7. 25. 03:57
728x90
반응형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조셉 캠벨(Joseph Campbell)

너를 찾으러 가는 길 끝에서 를 발견하다

 

 

1. 미야자키 하야오의 소녀들은 자라지 않는다

 

 

신화는 공적인 꿈이요, 꿈은 사적인 신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조셉 캠벨

 

 

바야흐로 소녀들의 전성시대. ‘국민 여동생이라는 한국형 신조어는 21세기 대중문화의 트렌드를 압축하는 핵심적 문화적 코드가 되었다. 보아-문근영-김연아-원더걸스-소녀시대 등 성인을 압도하는 초특급 스타들로 이루어진 국민 여동생의 계보. 그들에 대한 대중의 열광 속에는 영원히 자라지 않(고 싶어 하)는 우리 안의 소녀들에 대한 키덜트(Kidult)적 감수성이 묻어 있다. 또한 인생의 복잡다단한 통과의례를 10대가 채 끝나기도 전에 단기간 속성 코스로 끝내버리고자 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속도의 정치또한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의 소녀 스타들 뿐 아니라 아이 엠 샘을 통해 단숨에 전 세계 영화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다코타 패닝, 해리 포터의 헤르미온느 역을 통해 10대에 세계적인 스타가 된 엠마 왓슨 등도 이 소녀 시대의 문화적 트렌드가 단지 한국형 신드롬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10대에 인생의 모든 희노애락을 다 경험해버린 듯한 이 소녀들의 일거수일투족은 하루도 빠짐없이 검색어 순위에 랭크되곤 한다.

 

 

 

 

언젠가 어머니가 되고 할머니가 될지라도, 영원히 자라지 않는 우리 안의 소녀들에 대한 아련한 노스탤지아는 재패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감수성이기도 하다. 국민 여동생에 대한 대중의 열광과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라지 않는 소녀들의 차이라면, 그의 애니메이션 속 소녀들은 실제 인물을 대변하거나 대중적 스타로 유명한 것이 아니라 신화적 상징을 품은 소녀들이라는 것이다. 몸은 10대 소녀지만 마음은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 급인 원령공주와 나우시카, 이웃집 토토로의 올망졸망한 자매들, 하울의 움직이는 성소피’, 천공의 성 라퓨타시타미래소년 코난라나처럼 구원의 여신을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공동체의 신화에 등장하는 원형적 인물들이다. 이 소녀들은 미야자키 하야오 특유의 그림체로 대중에게 각인되어 현대화된 신화적 모티브를 구현한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유독 소녀들의 이미지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그가 오랫동안 탐구해온 자연과 인간의 관계, 신화와 인간의 네트워크에 가장 친밀하게 맞닿아 있는 존재들이 바로 소녀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소녀들은 가공할 살상 무기나 엄청난 자본 없이도, 이 스펙터클한 무한 미디어의 세계에 균열을 내는 거대한 인류학적 화두를 감당해낸다. 이 작고 여린 소녀들이 감당해온 엄청난 테마들은 바로 문명의 빛이 죽여 버린 어둠, 혹은 제국의 총칼이 훑고 지나간 야생의 지대, 그리고 자본의 미사일이 황폐화시킨 자연에 대한 이야기다. 어처구니없는 귀여움과 비현실적인 조숙함이 공존하는 이 소녀들을 보면,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현실과 환상의 경계, 신화와 현실의 경계, 인간과 자연 사이의 경계를 물샐 틈 없이 구분하던 합리적 이성의 방패를 슬그머니 내려놓게 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린이들을 생각하며 애니메이션을 만들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면 성인 관객들이 훨씬 많은 이유도, 어른들이 이 소녀들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무언가를 애틋하게 그리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들을 바라보면 이 무한 경쟁에서 다만 살아남기 위해 더럽혀진 어른들의 남루한 삶이 새삼 부끄러워진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려낸 소녀들에 대한 대중의 열광은 피터팬 콤플렉스와는 사뭇 다르다. 피터팬 콤플렉스가 나름 괜찮았던 우리 모두의 어린 시절에 대한 나르시시즘적 향수에 가깝다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소녀들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자기애적이라기보다 자기를 애지중지하느라 돌보지 못한 타인에 대한 사랑을 환기시킨다.

 

 

누군가가 아무도 몰래

작은 길에 나무 열매를 심고서

작은 싹이 돋아난다면

그것은 비밀의 암호

숲으로 가는 패스포트

멋진 모험이 시작됩니다 이웃집 토토로

토토로 토토로 토토로

옛날부터 숲 속에 살고 있는

토토로 이웃집 토토로

어린 시절에만 찾아오는 신기한 만남

비 오는 버스 정류장에서

흠뻑 젖은 토토로를 만난다면

당신의 우산을 빌려주세요

숲으로 가는 패스포트

마법의 문이 열립니다

이웃집 토토로 토토로 토토로

달이 뜬 밤에 피리를 분답니다

이웃집 토토로 토토로 토토로 토토로

만약 토토로를 만나게 된다면

멋진 행복이 당신을 찾아옵니다

-이웃집 토토로주제가.

 

 

 

 

나는 가끔 내가 좋아하는 인물들의 얼굴을 머릿속에서 그려보며 그들끼리의 가상 인터뷰를 기획하고는 한다. 만약 언어의 장벽도 시간의 장벽도 공간의 장벽도 사라진다면, 미야자키 하야오와 가장 대화가 잘 통할 것만 같은 캐릭터가 바로 신화학자 조셉 캠벨이 아닐까. 숲의 날짐승과 길짐승, 나무와 풀잎 하나하나, 돌멩이와 벌레 하나하나까지 사랑하고 아끼고 지키려 하는 나우시카와 원령공주는 조셉 캠벨이 어린 시절부터 사랑했던 아메리칸 인디언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동물들과 곤충들을 향해 거리낌 없이 언외언(言外言)의 대화를 나누는 나우시카 vs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그대라고 부르며 대화했던 아메리카 인디언들. 숲의 정령을 지키기 위해 인간이 떠받드는 기술과 자본의 엄청난 힘과 싸우는 원령공주 vs 문명화된 미국인들이 어떻게 대지와 하늘과 강과 바람을 사고팔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인디언 추장 시애틀.

 

 

인디언들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그대라고 불렀어요. 들소는 물론이고 심지어 나무, 돌 같은 것도 그렇게 불렀지요. 사실 이 세상 만물을 다 그대라고 부를 수 있어요. 이렇게 부르면 우리의 마음 자체가 달라지는 걸 실감할 수 있지요? 2인칭인 그대를 보는 자아는 3인칭 그것을 보는 자아와 다를 수밖에 없어요. 어떤 나라와 전쟁에 돌입하게 될 때, 언론이 노출시키는 가장 중대한 문제는 적국의 국민을 순식간에 그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랍니다.

-조셉 캠벨.빌 모이어스, 이윤기 역, 신화의 힘, 2002, 155~156.

 

 

우리가 오늘부터 함께 떠날 신화 여행은 현대 문명이 귀신을 몰아낸답시고 함께 몰아내버린, 우리 안의 가장 귀한 것들을 찾아 떠나는 모험이 될 것 같다. 이 모험에 가장 잘 어울리는 동반자는 바로 센과 치히로,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와 조셉 캠벨이 아닐까.

 

 

 

 

 

2. ‘미션 임파서블과의 조우: 내 안의 중심을 잃어버릴 때, 여행은 시작된다

 

 

제 막내아들 녀석이 스타워즈를 스무 번 아니면 서른 번쯤 본 것을 알고는, 제가 너 그 영화를 왜 그렇게 많이 보느냐고 물었습니다. 녀석 대답이, “이유는 아빠가 평생 구약성서를 읽는 것과 같지, 였습니다. 그러니까 제 막내아들은 새로운 신화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빌 모이어스, 이윤기 역, 신화의 힘, 이끌리오, 2002, 54.

 

 

만약 인어공주가 바다를 떠나 왕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웬디가 피터팬을 따라가지 않았더라면, 포르도가 반지원정대와 함께 길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안락하게, 이미 주어진 시스템 속에서 살아갈 수는 있었겠지만, 우리의 유년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언제든 기억의 서랍 속에서 꺼내볼 때마다 가슴 떨리는, 아름다운 이야기의 주인공은 될 수 없지 않았을까. 끊임없이 영화나 드라마로 리메이크되는 옛이야기나 판타지물들은 저마다 드라마틱한 영웅서사의 플롯을 갖추고 있다. 이 영웅의 내러티브는 성인군자나 위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잠자고 있는 통과의례의 원형이다. 센과 치히로의 모험의 도입부 또한 이런 영웅의 전형적인 모험의 서사를 품고 있다. 치히로는 헐리웃 블록버스터식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내면에 웅크린 채 잠들어 있는 어린 소녀를 깨워낸다.

 

 

 

 

치히로는 엄마, 아빠와 함께 이사를 가던 중 길을 잘못 짚어 낡은 터널을 지나게 된다. 자동차 뒷자석에 누워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엄마, 아빠에게 심심하면 칭얼거리는 평범한 어린 소녀 치히로. 그녀는 낯선 학교로 전학 가기가 싫어 심술이 잔뜩 난 상태다. 터널 저편에 어떤 세계가 있을까, 호기심이 일긴 하지만 아직은 새로운 세계가 마냥 두렵다. 엄마, 아빠와 함께 터널 저편으로 걸어가자, 폐허가 된 테마파크처럼 보이는 거대한 공터가 나타난다. 아버지는 무서워하는 치히로에게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가지라는 듯,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한껏 잘난 척을 한다. “이건 테마파크 잔해야. 90년대 초 우후죽순같이 생기더니 거품경제 때문에 전부 망했지. 그 중 하나일 거야.” 그러나 왠지 괴기스럽고 음산한 분위기가 감도는 공터의 분위기가 싫어, 치히로는 빨리 돌아가자고 한다.

 

 

 

 

이때 아버지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유혹의 손길이 다가온다. “맛있는 냄새가 나는 걸!” 모퉁이를 돌아보니 음식점들이 빼곡히 도열해 있다. 주인도, 종업원도 없는데 음식 냄새의 유혹을 참지 못해 허겁지겁 먹기 시작하는 아빠와 엄마. “주인 오면 그때 돈 내지 뭐!” “그러지 뭐! 정말 맛있어. 너도 먹어봐.” 부창부수(夫唱婦隨)로 죽이 잘 맞는 엄마, 아빠는 치히로의 마뜩찮은 표정은 전혀 개의치 않고 마구 음식을 먹어댄다. 불안해진 치히로는 엄마, 아빠를 설득한다. “돌아가, 주인이 화낼 거야.” 아빠는 음식 맛에 취해 이미 정신이 없다. “괜찮아. 아빠가 있으니까. 카드도 있고 지갑도 있어. 너도 어서 먹으렴!” 게걸스레 주인 없는 음식을 먹어치우는 어른들의 탐욕에 놀란 치히로는 혼자 되돌아가겠다며 음식점을 나선다. 하지만 혼자서 돌아가기가 무서워진 어린 소녀 치히로는 다시 엄마, 아빠에게 돌아오는데.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엄마, 아빠의 얼굴이 돼지로 변해버린 것이다. 말도 안 돼, 이건 꿈일 거야, 빨리 깨어나자, 치히로는 스스로를 다그치지만 본래의 엄마, 아빠는 어디에도 없다.

 

 

 

 

공포에 질려 엄마, 아빠에게서 도망치는 치히로 앞에 낯선 소년이 나타난다. 치히로를 보자 깜짝 놀란 소년이 외친다. “여긴 오면 안 돼! 어서 돌아가! 곧 어두워져, 그전에 돌아가!” 엄마, 아빠는 돼지로 변하고, 난생 처음 보는 아이는 이곳은 출입 금지야라는 메시지를 다급하게 보내고, 돌아가는 길은 알 수 없어져버린 치히로. 겁에 질려 정신을 잃을 지경인 치히로의 손을 잡고 소년은 일단 달린다. 그러나 허둥지둥하는 동안 이미 해는 져버리고, 낯선 소년은 치히로에게 무언가를 먹이려 한다. “입 벌려. 이걸 빨리 먹어. 이 세계의 것을 안 먹으면 넌 사라져.” 치히로는 도리질하지만 소년의 눈빛에서 진심을 읽어낸다. 모든 게 꿈이라고 믿고 싶지만 목구멍을 넘어가는 음식의 뻣뻣한 질감을 느끼며 비로소 이게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지만 설마 엄마, 아빠가 돼지로 변한 것은 아니겠지,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닐까. “우리 부모가 돼지로 변한 건 아니지?” 소년은 전혀 놀라지 않고, 이 세계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듯, 소녀를 위로한다. “지금은 힘들지만 꼭 만나게 돼.”

 

 

 

 

소년은 이곳이 인간에게 금지된 구역이며 유바바라는 마녀가 지배하는 영토임을 알려준다.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조건 일을 해야 한다고. 가마 할아범을 찾아가 일을 시켜달라고 부탁하라고, 힘들어도 참고 기회를 기다리라고. “그분께 일하고 싶다고 부탁해. 거절해도 끝까지 졸라. 일 안하면 유바바가 너를 동물로 만들 거야.” 소년의 말은 하나같이 알아듣기 힘들지만 치히로는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자신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시련이 닥쳐왔으며 이 혼란스러운 미궁을 지금은 결코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이 세상의 가장 편안한 울타리였던 부모님에게도, 이사 오기 전의 그리운 친구들에게도 연락할 수 없다. 게다가 이 소년은 나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내 이름을 부른다. “치히로. 내 이름은 하쿠야. 난 널 알아.” 우리는 정말 만난 적이 있었던 걸까. 의지할 곳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세계에서 이 소년만은 이상하게 낯설지 않다. 나처럼 어리고 작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비밀을 알아버린 듯한, 서늘하면서도 외로운 인상을 풍기는 이 소년은, 마치 어떤 소중한 메시지를 전달하러 날아온 전령 같다. 치히로 앞에는 어떤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까.

 

 

영웅의 여정은 항상 부름으로 시작된다. 인도자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아라. 너는 지금 잠든 땅에 있다. 깨어나라. 여행을 떠나라. 저곳에 너의 의식의, 또한 너의 존재의 온전한 측면이 있건만, 아직 한 번도 손댄 적이 없었다. 그러니 너는 여기서 그냥 머물 것이냐?” (……) 그렇게 해서 여정이 시작된다. 모험에의 소명(부름)을 알리는 전령관 혹은 고지자는 어둡고, 징그럽고, 무섭고, 세상의 버림을 받은 존재인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 소명에 다르면, 낮의 장벽을 통과해 보석이 빛나는 밤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 부름은 곧 어떤 사회적 지위로부터 떠나라는, 즉 여러분 자신의 외로움 속으로 들어가 보석을 찾으라는, 즉 여러분이 사회적으로 속박되어 있을 때에는 찾기가 불가능한 것을 찾으라는 것이다. (……) 영웅이 뭔가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그걸 찾으러 갈 때, 그게 바로 출발인 것이다. 여러분은 문턱을 넘어 새로운 삶으로 나아간다.

-조셉 캠벨, 다이앤 오스본 편, 박중서 역, 신화와 인생, 갈라파고스, 2009, 111.

 

 

 

3. 미지와의 조우: 이제 나는 내가 아니다

 

 

여러분이 어렸을 때 하던 일,

시간을 초월하게 만들고,

시간을 잊어버리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바로 거기, 우리 삶에 깃든 신화가 자리 잡고 있다.

-조셉 캠벨, 다이앤 오스본 편, 박중서 역, 신화와 인생, 갈라파고스, 2009

 

 

앨리스가 토끼굴에 빠져 느닷없이 추락하고, 페르세포네가 하데스에게 납치되어 지하세계로 낙하하고, 오르페우스가 아내를 찾기 위해 하계(下界)로 내려간다. 신화적 서사 속에서는 이렇게 본래의 자리에서 이탈하여 나락으로 추락하는, 돌아올 기약 없는 미지의 모험을 시작하는 주인공들이 있다. 치히로의 첫 번째 임무 또한 알 수 없는 심연으로 추락하는 것이다. 하쿠의 조언대로 일자리를 부탁하러 가마할아범을 만나기 위해서는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기나긴 통로를 향해 미끄러져 내려가야 한다. 겁에 질린 치히로는 돼지가 되어버린 부모를 구해내기 위해, 아니 지금은 단지 살아남기 위해,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처럼 으스스한 통로를 향해, 무작정 낙하한다.

 

 

 

 

추락으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치히로는 뜨거운 불가마 곁에서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노동을 반복하는 가마 할아범을 만난다. 치히로는 아직 돈 한 푼 벌어본 적이 없는 어린 소녀지만 꼼짝없이 불가마에서 일을 해야 할 판이다. “가마 할아버지 맞으시지요? 하쿠가 보냈어요. 일을 하게 해주세요.” 치히로는 일단 다짜고짜 말을 뱉어놓긴 했지만 힘겹게 일하고 있는 가마 할아범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도저히 두 팔로는 해치울 수 없는 노동을 해내느라, 할아범은 거미처럼 여러 개의 팔을 갖게 된 것 같다. “내가 가마 할아범이야. 욕탕 가마에서 혹사당하는 늙은이야.”

 

 

 

 

할아버지는 말을 하면서도 한 번도 날렵한 손놀림을 쉬지 않는다. 할아버지의 조수들은 올망졸망한 검뎅이귀신들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자 치히로는 도리어 차분해진 표정이다. 가마 할아범은 치히로가 전혀 필요 없어 보인다. “일손은 충분해. 여긴 온통 그을음이야. 대타도 넘쳐.” 일하지 않으면 검뎅이귀신들의 마법이 풀려 숯검정으로 돌아가 버린단다. 유바바 왕국의 냉혹한 생존 법칙을 눈으로 확인한 치히로의 눈빛은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치히로는 포기하지 않는다. 가마 할아범이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자 조용히 검뎅이귀신들을 도와 일을 하기 시작한다. 무거운 돌을 들어 가마로 나르는 치히로의 모습은 연약하지만 더 이상 어리광이 묻어 있지 않다. 그녀가 편안하게 엄마, 아빠의 울타리 안에서만 살았다면, 어디선가 이토록 힘겨운 짐을 지고 있는 가마 할아범과 먼지꼬맹이들의 삶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가족의 울타리, -가족-학교로 이어지는 일상적 공동체의 울타리를 벗어나자 타인의 삶을 만나게 된다. 안전한 일상의 DMZ 안쪽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타인의 삶을. 어쩌면 지금 곤경에 빠진 나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고통을 겪고 있던 삶들을. 난생 처음 닥친 어려운 미션을 조용히 해내는 치히로. 묵묵히 일을 하고 있는 치히로를 지켜본 가마 할아범. 그때 마침 이라는 종업원이 할아범의 식사를 배달해준다. 할아범은 린에게 치히로를 맡긴다. “내 손녀야.” 졸지에 가마 할아범의 손녀로 불린 치히로는 깜짝 놀란다. “내 손녀가 일하고 싶대. 그런데 여긴 일손이 충분해. 유바바한테 데려다줘. 나머진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가마 할아범은 무뚝뚝한 사람이지만 치히로의 어리버리한 겉모습에 가려진 그녀의 진심을 알아본다. “어디서 일하든 유바바와 계약해. 가서 너의 운을 시험해봐.” 린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치히로를 데리고 유바바에게로 간다. 치히로에게 인간의 구린내가 난다며 힐끔힐끔 바라보는 유바바 온천의 귀신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치히로는 간신히 유바바의 방에 도착한다.

 

 

여러 해 전 어느 초등학교 교실에서 일어난 일로서, 내가 잘 아는 가정의 아이에 관한 일화를 듣게 되었다. 선생님이 어린이들에게 질문을 했다. “신화가 무엇이지?” 그 중 한 소년이 답한다. “신화는 내면세계에서는 진짜인데 바깥 세계에서는 진짜가 아닌 거예요.” 불행하게도 선생님은 이 답을 이해하지 못했다. 종종 어린이가 어른보다 더 깊은 심리학적 지혜를 가지고 있다. (……) 신화는 꿈과 같다. 꿈은 무의식이 보내는 전령이다. 무의식은 꿈을 통해 의식의 관심사나, 무의식이 지니고 있는 내용에 대해 말 걸기를 시도한다.

-로버트 존슨, 고혜경 역, We-로맨틱 러브에 대한 융 심리학적 이해, 동연, 2008, 22~23.

 

 

 

 

 

4. 신화적 통과의례의 첫 번째 관문

 

 

마라톤 선수의 모습을 보라. 난생 처음으로 경주에 참가한 사람과는 달리, 전문적인 마라톤 선수는 자신의 외모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여러분은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경주를 하는 것이다. 이기느냐 또는 지느냐가 아니라, 오로지 경주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라톤에 참가하는 것은 그 자체가 사건이다. 모든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여러분이 이기느냐 또는 순위 안에 드느냐는 그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이것이야말로 구속 없는 참여인 것이다.

-조셉 캠벨, 다이앤 오스본 편, 박중서 역, 신화와 인생, 갈라파고스, 2009, 286.

 

 

이 무시무시한 귀신들의 온천을 지배한다는 마녀 유바바의 방. 치히로는 유바바가 풍기는 으스스한 첫인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뜸 자신의 요구사항부터 제시한다. “여기서 일하게 해주세요.” 치히로의 아래위를 훑어보며 유바바는 콧방귀를 뀐다. “비실비실한 애가 뭘 하겠느냐? 인간이 올 곳이 아니다. 800만 신들이 피로를 풀러 오는 온천탕이야!” 이제야 이곳의 정체를 조금 알 것 같다. 치히로는 온갖 귀신들이 모여 온천욕을 하는, 인간의 출입이 금지된 유바바 월드에 입성한 것이다. “그런데 네 부모는 뭐냐? 손님 음식을 돼지처럼 먹어치우다니! 너도 다시는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어. 새끼 돼지로 만들어 줄까? 아니면 석탄으로 만들어 버릴까?” 유바바는 마치 치히로 가족의 행적을 낱낱이 감시해온 것처럼, 치히로의 속마음까지 꿰뚫을 듯한 커다란 두 눈을 번득인다.

 

 

 

 

유바바의 콧바람 한 번이면 훅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치히로는 두려움에 떤다. 정말 다시 돌아갈 수 없다면, 부모님을 다시 만날 수 없다면, 난 어떻게 될까. “떨고 있구나. 그래도 여기까지 잘 온 걸 보면 틀림없이 누군가가 도와준 게야. 칭찬받을 만해. 누구였어? 가르쳐 주렴.” 치히로는 자신을 도와준 하쿠의 선의를 기억해낸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 안의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기억해낸다.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 새끼 돼지로 변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서는, 여기서 반드시 일을 해야 한다. “여기서 일하게 해주세요.”

 

유바바는 꿈쩍도 안 한다. “내가 널 왜 고용해야 하지? 굼뜬 응석받이, 머리 나쁜 울보한테 맡길 일 따윈 애초부터 없어.” 그때 아기 울음소리가 난다. 험상궂은 마녀 유바바는 갑자기 온화한 표정으로 돌변하며 아기를 어르느라 상냥해진다. 유바바가 아기를 달래느라 정신없는 사이, 치히로는 집요하게 부탁한다. “여기서 일하고 싶습니다! 꼭 좀 일하게 해주세요!” 유바바는 우는 아기를 달래느라 모든 게 귀찮다는 듯, 얼떨결에 알았다니까!”라고 대답해버리고 만다.

 

 

 

 

마녀의 음험한 협박에도 넘어가지 않는 치히로의 첫 번째 승리, 그것은 단지 살아남는 것이었다. 때로는 오직 살아남는 것이 그 어떤 영웅적 행위보다 존엄하다. “계약서다. 이름을 써라. 일하게 해주겠다. 대신, 싫다든가 돌아가겠다고 하면 새끼 돼지로 만들어 버릴 테다!” 새끼 돼지로 변해버리지 않고, 숯검뎅으로 변하지도 않은 채, 일단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 치히로는 영웅의 첫 번째 임무를 달성한 것이다. “치히로라고? 이름 한번 거창하구나. 그 이름은 네게 어울리지 않아. 이제부터 네 이름은 센이다. 알겠느냐?” 센은 자신이 일할 목욕탕으로 배정된다. “이름이 뭐지?” “? 치히, 아니, 센입니다.” 신화의 세계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통과제의의 첫 번째 문턱에 오르기 위해서는, 가장 소중한 무언가를 희생시켜야한다. 그것이 엄마와 아빠, 그리고 치히로 본인의 이름이었다. 이제 그녀는 치히로가 아니라 센이다. 아니, 자신이 치히로였음을 잊어서는 안 되는 센이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신화적 통과의례의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치히로는 신화 속의 성스러운 공간으로 진입했다. 그곳은 속세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공간이다. 일상의 자극으로부터 완전히 봉인될 때, 시간의 중력으로부터 해방될 때, 내면의 탐구는 시작된다.

 

 

성스러운 공간은 속세로부터 완전히 밀폐, 봉인되어 있다. (……) 여러분은 날짜나 시간이 주는 자극의 영향으로부터 보호받는 영원의 장소에 있게 되는 것이다. 명상을 할 때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즉 여러분 스스로를 봉인하는 것이다.

-조셉 캠벨, 다이앤 오스본 편, 박중서 역, 신화와 인생, 갈라파고스, 2009, 262.

 

 

일상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은 두려운 모험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간의 장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다. 도저히 일상의 숨 가쁜 시곗바늘을 순순히 따라갈 수 없을 때, 문득 스스로 행방불명되고 싶었던 경험이 있는가.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으로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었던 적이 있는가. 바로 그때가, 우리의 영혼이 내면의 탐구를 시작하는 때, 치히로(일상적 자아)의 행방불명이 센(신화적 자아)의 탄생으로 전이되는 순간이다.

 

 

 

 

 

5. 영원에 발을 딛고 시간의 장() 위에서 춤추다

 

 

모이어스: 소년 시절에 원탁의 기사를 읽었는데요. 문득 저도 영웅이 될 수 있겠다 싶더군요. 정말 집을 떠나 용과 싸우고 싶었습니다. 어둠의 숲으로 들어가 악의 세력을 무찌르고 싶었습니다. 신화가 오클라호마주의 농투성이 아들을 꼬드겨 영웅이 되고 싶게 만들었는데, 선생님께서는 이 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캠벨: 신화에는 개인이 지닌 완전성과 무한한 힘의 가능성을 깨닫게 하고 그 세계를 날빛 아래로 드러내는 힘이 있어요. 괴물을 죽인다는 것은 우리 안의 어둠을 죽인다는 것입니다. 신화는 우리를 사로잡되, 우리 심층에 있는 것을 거머쥡니다. 내가 인디언 이야기를 읽고 그랬듯이 모이어스 씨도 그랬군요.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신화는 우리에게 그만큼 더 수다스러워집니다.

-조셉 캠벨·빌모이어스, 이윤기 역, 신화의 힘, 이끌리오, 2002, 272.

 

 

린은 센에게 작업복을 주고 근무수칙을 일러주며 천신만고(千辛萬苦)의 고생길에 오른 것을 환영한다. 하쿠는 센에게 부모님을 만나게 해주겠다며 은밀하게 그녀를 불러낸다. 돼지들, 아니 부모님은 센이 온 것도 모르고 쿨쿨 자고만 있다. “엄마, 아빠! 아픈 거야? 다친 거야?” 센은 걱정 어린 눈길로 부모님을 부르지만 하쿠는 더욱 비극적인 소식을 전달한다. “배가 너무 불러서 자는 거야. 사람이었다는 걸 알지 못해.” 센은 기막힌 소식에 더 이상 놀라지 않고 차분하게 돼지-부모를 타이른다. “내가 꼭 구해줄 테니까 너무 살찌지 마, 잡아먹혀.”

 

 

 

 

걸핏하면 칭얼거리기 좋아하던 철없는 치히로의 모습은 이제 온데간데없다. 든든한 보호자였던 엄마, 아빠가 자신이 구해주지 않으면 언젠가 잡아먹힐 돼지로 변해 있다.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미션이 눈앞에 있다. 어떻게 엄마, 아빠를 구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구하지 않으면 엄마아빠가 죽는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더욱 슬픈 것은 엄마, 아빠가 매일매일 보듬고 비비던 자식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 그들이 한때인간이었던 기억조차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치히로가 마음껏 슬퍼할 틈도 주지 않고 하쿠는 마녀 유바바의 지배전략을 일러준다. “치히로. 유바바는 누구든 이름을 뺏어서 지배해. 센인 척하고 진짜 이름은 숨겨. 이름을 뺏기면 돌아가는 길을 모르게 돼.” 하쿠를 바라보는 센의 눈빛이 반짝인다. 길 잃은 센에게, 이 끝을 알 수 없는 여행의 유일한 안내자가 되어준 하쿠의 표정이 우울해진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이름이 생각 안 나. 하지만 놀랍게도 치히로란 이름은 까먹지 않았어.” 하쿠는 센이 된 치히로에게 먹을 것을 건네준다. 센은 돼지가 되어버린 부모님 얼굴을 떠올리니 입맛조차 없는지 풀 죽은 목소리로 거절한다. “힘낼 수 있게 밥에 주문을 걸었어, 먹어봐.”

 

 

 

 

먹을 것을 뱃속에 집어넣고서야 배고픔을 깨달은 센. 이 배고픔과 이 맛은 이 모든 당혹스런 현실 속에서 그녀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육체적 증거다. 더 이상 자신을 보살필 수 없는 엄마, 아빠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서야,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엉엉 우는 센. 그녀는 자기 앞에 부과된 소명을 이제 완전히 받아들인다. 물러설 곳이 없다면 맞서는 수밖에 없다. 더없이 힘겨운 불행이 찾아온 그날, 더없이 아름다운 인연도 시작된다. 이제 센과 하쿠는 서로에게 소중한 친구이자 멘토가 된다.

 

 

 

 

센은 대형 욕탕 당번으로 배정되어 열심히 청소를 하기 시작한다. 센은 비오는 날 문밖에 서서 하염없이 어슬렁거리는 얼굴 없는 귀신 가오나시를 만난다. 센은 그가 누군지 알 수 없지만 비를 맞고 서 있는 처량한 모습이 딱해 말을 건다. “거기 있으면 비를 맞잖아요? 문을 열어두고 갈게요.” 친절한 센이 열어놓은 문틈으로 초대받지 못한 귀신 가오나시가 숨어 들어온다. 목욕탕에 급수하는 법을 어렵게 배운 센은 영차영차 목욕탕에 온천수를 공급한다. 그때 목욕탕의 첫 손님으로 오물신이 등장한다. 모두들 그 엄청난 냄새와 더러움에 구역질을 참지 못하며 오물신을 내치려 한다. 오물신을 받아들였다간 목욕탕 전체가 오염될 것만 같다. “슈퍼 울트라 초대형 오물신입니다.”

 

 

 

 

유바바는 손님이니 어쩔 수 없다며 초짜 종업원 센에게 오물신의 시중을 맡겨버린다. 입문자에게 주어지는 혹독한 신고식이다. 모두 오물신을 피해 도망가 버리고 센은 외롭게 혼자 남아 오물신의 시중을 들어야 할 판이다. 센은 우여곡절 끝에 가마 할아범과 가오나시의 도움을 받아 최고급 약수를 초특급 오물신에게 제공한다. 센은 엄청난 냄새와 오염물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물신을 시중들다 그의 몸에 깊이 꽂혀 있는 가시를 발견한다. 유바바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센에게 말한다. “그분은 오물신이 아냐. 이 밧줄을 써라.” 좀처럼 빠지지 않는 커다란 가시를 빼내느라 이제 목욕탕의 모든 종업원이 힘을 모아야 할 차례이다. 유바바의 지휘 아래 센이 앞장서고, 모든 종업원이 밧줄을 끌어당기기 시작한다. “목욕탕 일동 마음을 모아서 당겨! 영차! 영차!”

 

 

 

 

센에게 인간의 구린내가 난다며 그녀를 멀리하던 종업원들, 그들은 모두 함께 힘을 합쳐 손님의 몸에 박힌 가시를 빼낸다. 공동체의 소중함, 함께한다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 센. 드디어 오물신인 줄로만 알았던 강의 신의 멋진 위용이 드러난다. 강의 신은 인간들의 부주의로 더럽혀지고 상처입은 자연의 알레고리가 아닐까.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아준 센에게 강의 신은 밤톨만한 경단을 주며 고마움을 표시한다. 센으로 인해 원래 모습을 찾은 강의 신은 통쾌하게 웃으며 하늘로 날아간다. 마녀 유바바는 싸늘한 시선을 거두고 센을 마음껏 칭찬해준다. “, 잘했어. 큰 이익을 봤어. 이름 있는 강의 주인이야. 모두 센을 본받아라!” 유바바 월드의 첫 번째 미션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센. 이제는 그녀를 아무도 무시하지 않는다. 그녀는 처음으로 낯선 공동체의 엄청난 텃세를 뚫고, 자신을 박대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시간의 장은 곧 슬픔의 장이다. 모든 삶은 슬픔으로 가득하다. 정말 그렇다. 여러분이 슬픔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한다면, 여러분은 그 슬픔을 다른 어디론가 옮겨놓기만 하면 된다. 삶은 슬픔으로 가득하다. 그런 삶과 함께 어떻게 더불어 살아갈 것인가? 여러분은 자기 자신 속에 있는 영원을 자각한다. 여러분은 해방되고, 또 그런 한편으로 다시 속박된다. 여러분은-바로 여기서 아름다운 공식이 나오는데-“이 세상의 슬픔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한다.” 여러분은 게임을 하는 것이다. 상처를 입을 수도 있지만, 여러분은 자신이 어떤 손상이나 성취조차도 초월하는 장소를 발견했음을 알고 있다. 여러분은 바로 거기에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조셉 캠벨, 다이앤 K. 오스본 편, 박중서 역, 신화와 인생, 갈라파고스, 2009, 171.

 

 

치히로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온몸으로 이해한다. 그녀는 시간의 장을 떠나왔지만 영원의 바다 위에 표류하기 시작했음을. 그녀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슬픔을 긍정함으로써 시간의 차원 안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영원의 차원으로 진입한다. 이 혹독한 입문식은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 또 하나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통과의례의 모델이다. 부모님은 돼지로 변해버렸고 나는 원래의 내 시공간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구루영혼의 스승를 만났다. 내가 미처 투시하지 못했던 내 안의 어둠을 밝혀줄 영혼의 친구 하쿠를. 너와 함께라면 이 슬픔의 시간을 견딜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녀는 치히로를 죽여 센을 얻었고, 부모님과 생이별하여 다시 없을 멘토를 얻었다. 이제 영원의 품 안에서 시간의 춤을 출 마음의 악보가 필요하다. 이제 슬픔의 악보를 연주할 기쁜 춤의 리듬이 시작될 것이다.

 

 

 

 

 

6. 세 친구: 나보다 더 아픈 나와의 만남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용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자아에 속박된 자기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용 우리에 갇혀 있어요. 분석심리학은 용을 쳐부수고 무너뜨림으로써 우리를 더 넓은 관계의 마당으로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궁극적인 용은 우리 안에 있어요. 우리를 엄중히 감시하고 있는 우리의 자아, 이게 바로 용입니다.

-조셉 캠벨, 이윤기 역, 신화의 힘, 이끌리오, 2002, 273.

 

 

난 역시 안 돼, 난 결코 꿈을 이룰 수 없을 거야,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난 도저히 저 사람을 따라갈 수가 없어. 조셉 캠벨은 끊임없이 우리 자신의 가능성을 가로막는 우리 안의 또 다른 자아를 이라고 불렀다. ‘늪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동양의 용이 때가 되면 그야말로 우렁차게 용트림을 하며 웅장하게 승천하는 존재라면, 서양의 옛이야기에 등장하는 용은 뭐든지 일단 잡아 가둬 자신의 통제권 안에 두려고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감시하고 있는 공주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인지도 모르면서, 그렇다고 그 공주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저 고집스레 공주의 출입을 가로막으며 입구를 지키고 앉아 있는 용의 이미지. 그것은 우리 안의 재능이, 우리 안의 꿈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지 못한 채 평생 아직은 때가 아니야’, ‘난 재능이 없어라고 판단하며 꿈의 승천을 미루고 또 미루는 인간의 마음을 닮았다.

 

 

 

 

우리는 거대한 용과 싸우는 영웅의 이미지를 다룬 수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다. 성을 지키는 끔찍한 용과 싸워 공주를 구하는 이야기부터, 용과의 싸움이 끝나면 드디어 미션이 완성되는 각종 게임시나리오에 이르기까지. 조셉 캠벨은 신화적 모티브의 단골 메뉴인 이 (dragon)’과의 싸움이야말로 통과의례의 절정, 나를 가두고 있는 나와의 싸움, ‘나를 감시하고 있는 나와의 싸움임을 간파했다. 센의 친구 하쿠는 바로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이 거대한 을 닮은 인물이다.

 

하쿠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센이 곤경에 처했을 때 곧잘 나타나주지만, 막상 센이 찾을 때는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유바바 온천 사람들조차 하쿠의 행방을 잘 모른다. “하쿠는 가끔 잘 없어져. 소문엔 유바바가 험한 일을 시켰대.” “하쿠를 조심해. 하쿠는 유바바의 하수인이야.” 온천 식구들은 하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에 하쿠에 대한 위험한 소문을 더욱 편리하게 퍼뜨린다. 늘 비밀에 싸인 친구 하쿠, 그는 자신이 가진 놀라운 마력으로 센을 곧잘 도와주지만 센이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센은 바다 위에서 거대한 새 떼의 무리와 싸우는 아름다운 용 한 마리를 발견한다. 피투성이가 되어 새 떼와 싸우는 어린 용, 센은 그 용이 바로 하쿠임을 본능적으로 알아본다. 새 떼의 맹공에 밀려 온몸에 피를 흘리고 쓰러지는 푸른 용. 그런데 맹공격을 펼치던 새 떼가 센이 있는 창 쪽으로 따라와 떨어지자 그들이 그저 종이 새에 불과했음이 밝혀진다. “그냥 종이잖아?” 쓰러진 용을 쓰다듬으며 센은 젖은 눈으로 속삭인다. “하쿠가 맞지? 다친 거야? 종이 새는 갔어. 이젠 괜찮아.” 용이 된 하쿠는 사악한 마법에 걸린 왕자처럼, 자신의 고통을 남에게 들키기 싫어하는 특유의 자폐적인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괴로워한다. 센은 치명상을 입고 괴로워하는 하쿠를 구하기 위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일단 하쿠를 이렇게 만든 것으로 의심되는 유바바를 찾기로 한다. 그런데 유바바를 만나러 가던 도중 예기치 않게 가오나시의 끔찍한 대변신과 활극을 맞닥뜨리게 된다.

 

 

 

 

센이 살짝 열어놓은 문틈으로 몰래 유바바 온천에 잠입한 가오나시. 가오나시는 가면 뒤에 얼굴이 없을 뿐 아니라 목소리도 없다.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그는 몰래 개구리의 몸을 먹어 개구리 목소리를 내며, 사금으로 온천 식구들을 유혹하고, 온천장을 휘저으며 닥치는 대로 폭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오나시는 자신만의 얼굴을 갖지 못한 존재이며, 타인과의 접촉에 실패하고 늘 타인의 목소리에 올라타야만 말을 할 수 있는 존재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 존재 자체가 불분명한, 있으면서도 없는 존재. 가오나시는 타인에게 말걸고 싶지만 자연스럽게 말을 거는 법을 알지 못해 사금이라는 유혹의 미끼를 쓴다. 그가 애타게 찾고 있는 것은 센이다. 자신에게 처음으로 친절을 보여준 유일한 친구, . 사람들은 몸에서 사금을 만들어내는 가오나시의 능력에 반해 부자 나리가 납시었네, 금이 손에서 무한정 나온대.”하고 가오나시를 따라다니지만, 센은 이 황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센은 무심한 얼굴로 전 필요 없어요, 됐어요.” 라고 말한다. 이런 센에게 더 큰 매혹을 느낀 가오나시.

 

 

 

 

우여곡절 끝에 가오나시를 피해 달아난 센은 유바바의 방에 몰래 잠입한다. 그곳에서 센은 유바바의 끔찍한 명령을 엿듣고야 만다. “하쿠를 처치해버려. 이제 그 애는 필요 없어.” 유바바는 부하에게 살벌한 명령을 내리자마자 안면을 싹 바꾸어 자애로운 어머니의 표정으로 돌아간다. “또 침대에서 안 자고! 미안해, 코오 자는데 깨웠구나! 엄마는 아직 일이 있단다. 잘 자렴, 착한 아가!” 그러나 이 아가는 전혀 착하지 않아 보인다. 엄마에게 떼를 쓰며 팽 토라지는 아기의 위용이 그제야 드러난다. 어른보다 더 큰 수퍼베이비. 몸은 어른보다 크지만 정신은 갓난아기에 머물러 있는 이 귀엽지 않은아기와 유바바의 관계는 캥거루족 아들과 헬리콥터족 수퍼맘처럼 서로에게 의존적이다. 모두에게 철저히 군림하는 유바바가 정작 아기에게는 쩔쩔맨다. 그리고 그 아기는 자라지 않는 정신 때문에, 엄마에게 고착된 정신 상태 때문에 엄마를 구속할 뿐 아니라 자신의 성장도 구속한다. 엄청나게 커다란 몸집을 자랑하지만 아직 영혼의 모유를 떼지 못한 수퍼베이비를 이렇게 만든 것은 물론 엄마다. “바깥은 병균으로 득실거려. 늘 엄마와만 있어라.”

 

이 수퍼베이비에게 센은 난생처음 맞닥뜨린 타자. 아기는 엄마 아닌 사람과 처음으로 놀아보고 싶은 호기심을 느낀다. 수퍼베이비 덕분에 유바바에게 들킬 위험을 모면한 센은 말한다. “도와줘서 고맙지만 바빠서 가야 돼, 놔줄래?” 아기는 센에게 심술궂은 얼굴로 말한다. “병 옮기러 왔지? 밖엔 나쁜 병균밖에 없어.” ‘아가, 밖엔 무서운 것밖에 없어, 엄마를 떠나면 오직 위험뿐이야라고 가르친 유바바의 교육철학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나가면 몸에 나빠. 여기서 나랑 놀자.” 절대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아기에게 센은 굳은 결심이 어린 표정으로 대답한다. “이런 곳은 병에 더 잘 걸려. 나한테 소중한 사람이 많이 다쳤어. 어서 가봐야 돼.” 센은 어느새 하쿠를 나한테 소중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엄마, 아빠에게 찰싹 달라붙어 아무것도 혼자 해내지 못할 것 같던 소녀가 이제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기 시작했다. 센은 하쿠를 구하기 위해,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유바바의 카리스마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7. 센의 딜레마 vs 유바바의 딜레마

 

 

여러분의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비판을 미루어 두어야 한다. (……) 비판을 미루어두는 것은 이른바 너는 할지니라는 용을 죽이는 것이다. 그놈을 죽여 버려라. 우선 글을 쓰도록 하라. 비평가는 잊고 그저 쓰기만 하라. 비판적 요소를 끌어안고 문장을 다듬는 것은 그 다음에도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누가 과연 이런 걸 보려고 하겠어?” 하는 생각 때문에 괴로울 수도 있다. 그러면 여러분의 주장에 대해 공감할 만한 사람을 떠올린 다음, 그 사람을 위해 글을 쓰라.(……) 가령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한 소녀를 위해 쓴 것이었다.

-조셉 캠벨, 박중서 역, 신화와 인생, 갈라파고스, 2009, 386.

 

 

센은 하쿠를 구하러 가고 싶지만 수퍼베이비 는 좀처럼 센을 놔주지 않는다. 아기는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했던 적이 없으므로, ‘이라는 새로 생긴 장난감도 결코 놓치지 않을 심산이다. “네가 가면 내가 울 거고, 울면 엄마가 널 죽여. 네 팔을 부러뜨릴 거야.” 센의 가느다란 팔을 콱 깨무는 아기(라고 하기엔 너무 커다란!). 타자와의 아무런 접촉이 없었던 아이의 폐쇄적인 성격이 드러난다. 이쯤 되면 후천적인 자폐 상태로 키워지는, 그리하여 타자에 대한 배려를 전혀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 떠오른다. ‘소황제(小皇帝)’라 불리며 오직 자기를 중심으로 우주가 돌아가야 마음이 놓이는 아이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사랑의 이름으로 자식을 지배하고 독점하며 통제하는 어른들의 욕심 사나운 얼굴도 떠오른다. 센은 아기에게 물린 팔이 너무 아파 비명을 지른다. “아야, 아파! 나중에 와서 놀아줄게.” “지금 놀아줘. 봤지, 이건 피야!” 그때 피투성이로 몸부림치는 하쿠가 나타나자 센은 아기를 뿌리치고 하쿠에게 달려간다. 아직도 의 모습을 한 채로 숨도 제대로 못 쉬는 하쿠.

 

 

 

 

하쿠를 돌보는 센에게 아직도 칭얼거리며 보채는 수퍼베이비. 이 못 말리는 아기를 혼내키는 어른의 목소리가 들린다. “조용히 좀 하거라!” 분명 유바바의 얼굴인데 갑자기 유바바가 인자하고 상냥해진 것 같다. 게다가 유바바의 얼굴을 한 이 할머니는 아기를 처음 보는 것 같다. “……. 꽤나 뚱뚱하구나!” 아기는 엄마!”라고 소리 지른다. “엄마랑 나도 구별 못 하느냐?” 알고 보니 이 할머니는 유바바의 쌍둥이 언니인 제니바다. 제니바는 도저히 달랠 수 없는 이 골칫덩이 아기를 우선 작은 생쥐로 만들어버린다. “움직이기 좀 불편할 거야.” 생쥐로 변한 아기는 이제야 좀 잠잠해지고 귀여워졌다.

 

 

 

 

알고 보니 절대 권력자 유바바에게도 약점이 있다. 그녀의 약점은 바로 쌍둥이 언니 제니바와의 불화다. 그리고 자라지 않는 수퍼베이비 또한 유바바의 기쁨이자 슬픔이다. 자신을 괴롭히던 심연의 핵심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는 센. 자신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모르고 그저 주어진 미션에 충실해야 했던 센은 점점 그들을 둘러싼 운명의 덫, 그 심연의 중심을 향해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어쩌면 센은 이 미궁을 빠져나갈 수 있는, ‘아리아드네의 실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제니바는 유바바와 똑같은 외모지만 왠지 유바바보다 훨씬 인정 많고 지혜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그런 제니바가 센에게 말한다. “그 용을 나한테 넘겨.” 센은 화들짝 놀란다. “하쿠를 어쩌게요? 크게 다쳤어요.” 제니바는 그제야 하쿠가 다친 이유를 설명해준다. “내 동생의 부하인데 도둑 용이야. 그 용은 내 집에서 귀중한 도장을 훔쳤어.” 센은 도리질한다. “하쿠는 착해서 아무 것도 훔치지 않아요.”

 

 

 

 

제니바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말한다. “용들은 다 착하고 어리석어. 하쿠는 마법의 힘을 얻으려고 동생의 제자가 됐어. 욕심쟁이 동생이 시키면 뭐든지 할 아이야.” 이것이 의 양면성이다. 용은 착하고 우직하지만 누구의 지배를 받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운명에 처한다. 제니바는 마음의 준비가 된 듯 센을 물리치려 한다. “비켜! 이 용을 돕기엔 늦었어. 도장에는 주문이 걸려 있어. 훔친 자는 죽게끔 말이야.” “안돼요!” 자신을 둘러싼 가혹한 운명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하던 센은 이제 운명에 맞서 싸우기 시작한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센은 우선 자신과 부모를 구해야 한다는 의무도 어느새 뒷전으로 미루고 자신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미션까지 도맡게 된다. 아무도 강제하지 않은 일, 하쿠를 구하는 일은 이제 그녀의 최대 과제가 되었다.

 

 

 

 

센은 하쿠를 대장장이 할아범에게 데려가 살려달라고 부탁한다. 할아범은 하쿠에게 온갖 약초를 먹이지만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몸 안의 뭔가가 생명을 집어삼키고 있어. 너무 강력한 마법이야. 난 손을 못 쓴다.” 다급해진 센의 머릿속에 불이 켜진다. 마지막 수단이다. 그리고 그녀가 이 무서운 유바바 월드에서 빠져나갈 유일한 탈출구, 바로 강의 신이 준 경단이다. “하쿠. 강의 신이 준 경단이야. 들을지 몰라. 먹어봐. 하쿠, 입 벌려봐 하쿠, 제발 먹어!” 센의 부모님을 구할 경단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하쿠는 온 힘을 다해 경단을 거부하고, 센은 자기 몸보다 다섯 배는 큰 하쿠를 끌어안고, 온 힘을 다해 경단을 먹이려 한다. 그 순간 부모님을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상념 따윈 떠오르지 않는다. 하쿠에게 억지로 경단을 먹이자 드디어 하쿠의 몸속에서 검은 마력의 기운이 스르륵 풀려 나온다. 제니바의 도장이 튀어나온 것이다. “됐어, 나왔다 도장! 도망친다, 저기!” 강의 신이 준 경단의 위력은 엄청나다. 하쿠가 삼킨 제니바의 도장과 함께 강력한 마법도 함께 사라진 듯하다.

 

 

 

 

센은 대장장이 할아범에게 말한다. “유바바의 언니 도장이에요.” 할아범은 놀란다. “마녀의 계약도장? 이런 귀한 것을!” 유바바와 제니바는 동전의 양면처럼, 도플갱어처럼, 서로 같고 또 다른 길을 걸어간다. 유바바는 온천을 통해 거대한 부를 축적하고 마법을 이용하여 인간의 이름을 빼앗아 지배하지만, 제니바는 마법을 이용하여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고 물레질을 하며 작은 오두막집에서 자신의 노동으로 살림을 꾸려나간다. 유바바가 마법을 권력을 위해 사용한다면, 제니바는 고통받는 타인의 치유를 위해 사용한다. 유바바와 제니바의 관계는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와 사루만의 관계와 비슷하다. 간달프가 절대반지의 무서운 힘을 해방시키는 데 주력했다면, 사루만은 그 절대반지를 오직 자신만의 것으로 독점하려 몸부림치다가 파멸한다. 유바바가 하쿠를 시켜 훔친 제니바의 도장은 바로 절대반지와 유사한 기능을 한다. 주인이 누구인가에 따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세계를 해방시킬 수도 있고 세계를 파멸시킬 수도 있는.

 

센에게서는 이제 나약한 소녀의 이미지는 전혀 찾을 수 없다. 그녀는 이제 누구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마음에 난 오솔길을 따라 조용히 걸어가도 그 길이 가장 옳은 길임을, 자신도 모르게 깨달은 듯하다. 하쿠가 정말 도장을 훔쳤는지도 알 수 없고, 강의 신이 준 경단이 과연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강의 신이 준 경단은 부모님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인데도, 그녀는 하쿠를 구한다. 타인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버티지 못할 것 같은 치히로가 유바바 월드의 일상 전체를 바꾸어 놓는, 죽어가는 하쿠를 구하는 존재로 아름답게 비상한다. 유바바에게 절대복종함으로써 일사불란하게 굴러가던 이 거대한 세계는 센으로 인해 곳곳에 틈새가 생겼다. 센으로 인해 늘 문 밖에서 서성이던 외부자 가오나시가 잠입했고, 센으로 인해 수퍼베이비가 귀여운 생쥐로 변신했으며, 센으로 인해 하쿠의 운명과 유바바의 운명이 바뀌고 있다. 사실 센에게는 부모님을 살릴 것인가’ vs ‘하쿠를 살릴 것인가를 두고 저울질할 이 없었다. 하쿠는 눈앞에서 죽어가고 있었고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운명의 짐짝을 잊었다. 그녀는 하쿠와 자신을 더 이상 분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센이 하쿠였고 하쿠가 센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감정사랑이라 부른다.

 

 

 

 

 

8. one-way ticket: 당신은 돌아올 수 없다. 그래도 떠나겠는가?

 

 

나를 지나면 슬픔의 도시로 가는 길,

나를 지나면 영원한 슬픔에 이르는 길,

나를 지나면 길 잃은 무리 속으로 들어가는 길.

-단테, 지옥편중에서

 

 

원웨이 티켓(편도승차권)이라는 말에는 피할 길을 주지 않는 확실한 방법이라는 뜻이 있다. ‘원웨이 티켓의 지배적인 뉘앙스는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떠나야 하는 절박함이다. 이 단어가 전해주는 피할 수 없는 절박한 느낌과 함께 떠오르는 것은 영웅의 비장미이기도 하다. 영웅의 영웅다움이 완성되는 순간, 그 순간은 그의 능력이 출중해서도 아니고 그의 명예가 하늘을 찔러서도 아니다.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야만 그의 여정이 완성될 때, 뒤돌아보지 않고 떠날 수 있는 결연함, 아무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죽음의 길을 떠나는 초연함. 그것은 언제나 영웅 서사의 비극적 숭고미를 장식하는 화룡점정의 모티브였다. 오물신이 되어버린 강의 신을 정화시켜 그의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의 이름을 잊어 존재의 의미조차 상실한 하쿠()의 운명을 바꾸기까지 한, 10살 소녀 센. 그녀의 신화적 통과의례의 클라이막스도 바로 이 원웨이 티켓의 운명에 가로놓여 있다.

 

 

 

 

하쿠는 일단 진정이 되었지만 좀처럼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다. 가마 할아범은 마법의 상처는 방심해선 안 돼.”라고 귀띔해준다. 잠든 하쿠를 바라보며 할아범은 하쿠의 과거를 회상한다. 베일에 가려졌던 신비의 소년 하쿠의 과거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하쿠도 센처럼 불쑥 나타나선 마법사가 되고 싶댔어. 난 반대했어. 마녀의 제자가 되어봤자 별수 없다고 말이야. 하지만 소용이 없었어. 돌아갈 곳이 없다며 유바바의 제자가 되어버렸어.” 하쿠는 길 잃은 영웅의 위기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존재다. 비범한 능력과 선한 심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나침반을 찾지 못해 존재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는 하쿠. “하쿠는 그러던 중 점점 창백해지고 눈매가 사나워졌어.” 센은 다급하다. 하쿠가 훔쳤다는 이 도장만 돌려주면 하쿠를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이거 돌려주고 올게요. 사과하고 하쿠를 살려달라고 할래요. 제니바가 있는 곳을 가르쳐줘요.”

 

 

 

 

가마 할아범은 불면 날아갈 것 같았던 센의 엄청난 저돌성에 또 한 번 놀란다. 그곳은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고, 제니바는 무서운 마녀라고, 그곳과의 왕복 교통이 끊긴 지가 오래라고 설명해준다. 그래도 하쿠를 구해야 한다는 센의 흔들림 없는 눈빛에 가마 할아범은 할 수 없이 주섬주섬 기차표를 찾는다. “가는 건 갈 수 있다만 돌아오는 길이 없.” 이때 린이 들어와 유바바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유바바가 길길이 날뛰면서 널 찾아. 그 통 큰 손님은 알고 보니 요괴였어. 유바바는 네가 그를 끌어들였대. 벌써 세 명이나 집어 삼켜버렸어.”

 

 

 

 

사람이든 물건이든 닥치는 대로 탐욕스레 폭식하던 가오나시는 마침내 거대한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때 가마 할아범은 드디어 제니바의 집 쪽으로 가는 열차표를 찾았다고 전해준다. “40년 전에 쓰고 남은 거야. 늪의 바닥이란 역이야. 여섯 번째 역이야. 예전엔 돌아오는 기차도 있었지만 지금은 가는 기차만 있어. 그래도 가겠느냐?”

 

이것은 신화 속 영웅에게만 해당되는 순간이 아니다. 인생에서 가장 힘겨운 선택을 해야 할 때 우리 안의 잠재된 힘이 자신도 모르게 솟아오르는 순간, 인생에서 치밀하게 계획되지 않았던 거대한 우연에 봉착하는 순간, 한 번도 예상하지 못했던 두려움과 만나는 순간. 그때가 우리의 영혼이 변신의 문턱을 넘는 순간이다.

 

 

 

 

 

9. one-way ticket: 돌아올 길이 없음이 겁나지 않는다

 

 

우리 안의 더 깊은 힘을 찾아내는 기회는 삶이 가장 힘겹게 느껴질 때 비로소 찾아온다. 삶의 고통과 잔인함에 대한 부정은 결국 삶에 대한 부정이다. 그 모든 것에 라고 말할 수 있게 된 후에 우리는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조셉 캠벨, 다이앤 오스본 편, 박중서 역, 신화와 인생, 갈라파고스, 2009, 27

 

 

센에게도 그 순간이 찾아왔다. 그녀는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어려운 길을 택한다. 그 길을 가면 엄청난 영광이나 성공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친구 하나를 구할 수 있을 뿐이다. 보장할 수 없는 이익이 전혀 없는데도, 다치거나 죽거나 돌아오지 못할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는 떠나기로 한다. 떠나기 전 마지막 해야할 일, 그것은 괴물이 된 가오나시를 만나는 것이다.

 

 

 

 

거대한 이빨을 가진 집채만한 괴물로 변해버린 가오나시는 센을 내놓으라며 난동을 부린다. “어딨어? 센을 내놔!” 유바바는 모든 것을 센의 탓으로 돌린다. “왜 이렇게 꾸물거렸어? 손해가 막심하잖아. 기분 좋게 만들어서 금을 짜내.” 욕심쟁이 유바바는 잡아먹힌 사람들의 생사는 안중에도 없고 가오나시에게서 금을 더 뜯어낼 궁리만 한다. 이때 생쥐로 변한 수퍼 베이비가 엄마를 알아보며 눈을 깜빡거리자 유바바는 못 볼 꼴을 봤다는 듯 심술궂게 투덜거린다. “그 더러운 생쥐는 뭐야?” 센은 천하의 유바바가 설마 자기 아들을 못 알아볼까 의심한다. “모르시겠어요?” 유바바는 손사레를 친다. “알 턱이 있나! 징그러워!” 자신의 몸뚱이 하나 건사하지 못했던 여린 소녀 치히로는 어느새 적의 아들까지 건사해야 할 판이다. 아무도 돌보지 못했던 그녀가 누군가를 돌보고 살리고 치유하는 존재가 된다. 가오나시를 방 안에 가둔 유바바는 센을 혼자 들여보내 독대시킨다.

 

 

 

 

가오나시의 풍채와 비교하면 백분의 일도 안 될 것 같은 센은 주눅들지 않고 조용히 묻는다. “말해 봐. 넌 어디서 왔어? 난 가야할 데가 있어.” 가오나시는 무조건 센이 좋다고, 센을 갖고 싶다고 중얼거릴 뿐이다. “네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 너한텐 내가 원하는 게 없어. 집은 어디야? 아빠, 엄마는 있지?” 커다란 가오나시는 어울리지 않는 투정을 부린다. “싫어, 싫어! 난 외로워!” “집을 모르는 거야?” “센을 갖고 싶어가오나시의 욕구는 지극히 단순하다. “갖고 싶다. 갖고 싶다. , 갖고 싶다. 먹고 싶다. 먹고 싶다. , 먹고 싶다.” 센은 하쿠를 먹이고 남은 경단을 떠올린다. “나를 먹을 거면 먼저 이걸 먹어. 부모님께 드릴 건데 너 줄게.” 사랑하지 않는 대상에게도, 자신을 괴롭히는 대상에게까지도, 센은 부모님을 살릴 수 있는 경단을 준다. 경단을 먹은 순간 가오나시의 입에서는 그동안 게걸스레 먹어치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온다.

 

모두가 기피하는 더러움을 껴안고 그 존재로부터 더러움을 토해내게 하는, ‘구토와 정화의 모티브는 어느새 센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그리고 이 구토와 정화야말로 ‘800만 신들이 모여 목욕을 하는 유바바 온천본연의 소명에 가장 어울리는 행위가 아닐까. 가오나시와 오물신으로 대변되는 과잉과 폭식, 더러움과 그로테스크함은 단지 그들 개인의 오명이 아니라 인간이 저버린 자연의 은유이면서 동시에 토해내야 할 만큼 폭식하고 소비하고 낭비해온 자본주의사회의 인간 자신의 은유이기도 하다. 우리의 가오나시는 다시 슬림한옛 모습을 찾고 소리 없이 센을 따르는 조용한 오타쿠적 면모(?)를 되찾게 되었다. 센은 비로소 마음 편하게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부모님을 구할 수 있는 경단은 없어졌고, 센은 삶을 위해 죽음의 영토를 통과하는 영웅의 마지막 문턱을 넘어야 한다. 작은 생쥐가 되어버린 수퍼베이비와 얼굴 없는 귀신 가오나시를 여행의 동반자로 삼아.

 

 

 

 

에로스의 사랑과 아프로디테의 허락을 얻기 위해 페르세포네가 살고 있는 하데스로 떠나는 프시케처럼,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살려내기 위해 하데스로 내려간 오르페우스처럼, 인간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죽음 저편의 세계로 센은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난다. 그곳으로 떠나가는 기차표는 오직 원웨이 티켓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돌아오는 길이 없을 것을 겁내지 않는다. 하쿠를 친친 동여매고 있는 가혹한 운명의 사슬을 풀어주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 그 공포가 그녀를 사로잡은 나머지 그녀는 괴물이 된 가오나시도, 자신을 협박하는 유바바도, 돌아올 길이 없는 원웨이 티켓도 두렵지 않다. 자신을 괴롭힌 수퍼베이비와 자신을 스토킹한 가오나시까지 여행의 동반자로 삼은 센의 따스함, 그것은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전혀 알지 못하는 자가 자신도 모르게 실현하는 우정이다. 그녀의 적들은 어느새 그녀의 친구가 된다. 그리스 신화의 스틱스 강처럼 되돌릴 수 없는 운명의 짐을 짊어지고, 저기 길 떠나는 소녀의 처연한 뒷모습은 시리도록 아름답다.

 

 

추악한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신을 발견할 것이고, 남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죽일 것이며,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던 곳을 통해 우리는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외로우리라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세계와 함께 하게 될 것이다.

-조셉 캠벨, 이윤기 역, 세계의 영웅신화, 1996, 대원사, 29.

 

 

지켜야 할 사람이 생기자 그녀는 더욱 강해진다. 하쿠는 지금 싸우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되찾기 위해,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잃어버린 나를 되찾기 위해. 나의 꿈을 가두는 나와의 싸움, 나를 잊은 나와의 싸움, 나를 나이지 못하게 하는 치명적인 헛것들(종이 새들)과의 싸움. 하쿠는 끊임없이 자신을 찾으려 하지만 난 역시 안 돼라는 마음의 벽에 부딪힌다. 위험에 빠진 친구를 구해주는 임무는 애초에 센의 미션리스트에 속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무서운 곳에서 처음으로 친구가 되어준 하쿠를 구해주려 한다. 나락에 빠진 자신과 부모님을 구하기도 벅찬 센-치히로는 자신이 구해줘야만 할 것 같은 세 명의 친구까지 덤으로 얻게 된다. 서구의 옛이야기에서 영웅은 주로 동굴이나 성을 지키고 있는 을 죽임으로써 승리를 구가하지만, 센은 용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용을 속박하고 있는 올가미를 풀어주려 한다. 센이 하쿠의 고통을 함께 앓을 때, 그녀는 어느새 자기를 잊은 채로 하쿠의 존재에 물들어간다.

 

 

 

 

 

10. 서로를 위해 목숨을 걸 때

 

 

방랑하는 시간은 긍정적인 시간이다. 새로운 것도 생각하지 말고, 성취도 생각하지 말고, 하여간 그와 비슷한 것은 절대 생각하지 마라. 그냥 이런 생각만 하라. “내가 어디에 가야 기분이 좋을까? 내가 뭘 해야 행복할까? (……) 룰렛 공은 결코 , 여기 내려앉는 것보다는 차라리 저기 내려앉아야 사람들이 나를 더 좋아할 거야하고 생각하진 않는다. (……)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생각을 치워버려야 희열이 온다.

-조셉 캠벨, 박중서 역, 신화와 인생, 갈라파고스, 2009, 99~100.

 

 

신화는, 다함없는 우주의 에너지가 인류의 문화로 발로하는 은밀한 통로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 놀라운 것은 심원한 창조적 중심을 촉발하고 고무하는 특징적인 영험이 아이들 놀이방의 하찮은 동화에도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조셉 캠벨, 이윤기 역, 세계의 영웅신화, 대원사, 1996, 10.

 

 

센이 원웨이 티켓을 들고 떠난 후, 사경을 헤매던 하쿠는 비로소 깨어난다. “하쿠, 정신이 든거냐?” 하쿠는 일어나자마자 센을 찾는다. “어둠 속에서 치히로가 여러 번 절 불렀고 목소릴 따라가다가 깨어보니 여기였어요.” 가마 할아범은 놀란다. “그 애의 진짜 이름이 치히로라구?” 하쿠의 꿈속에서 간절하게 하쿠를 부르던 치히로의 목소리는 곧 미궁을 헤매던 하쿠에게 아리아드네의 실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센이 제니바를 찾아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는 전언을 들은 하쿠는, 이 모든 저주의 근원인 유바바를 찾아 담판을 지어야겠다고 결심한다.

 

 

 

 

한편 유바바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온천 경영을 위한 손익분기점을 계산하느라 주판알만 튕기고 있다. “이 정도 금으로 어떻게 적자를 때워? 멍청한 센이 횡재를 날려버렸어.” 하쿠는 돈에 걸신들린 유바바의 모습을 보며 센을 옹호한다. “센 덕분에 목숨을 건진 걸요.” 유바바는 화가 잔뜩 나 있다. “감히 온천을 이 꼴로 만들고 도망을 가? 센은 부모까지 버리고 갔어! 센의 부모를 베이컨이든 햄이든 만들어버려!” 놀란 하쿠는 유바바를 제지한다. 센을 구하기 위해 유바바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하쿠. “기다려요! 소중한 걸 잃고도 아직 모르겠습니까?” 이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눈치 챈 유바바는, 돈 계산하느라 안중에도 없던 수퍼베이비를 애타게 찾기 시작한다. 걷지도 못하던 아기가 실종된 것을 발견하자 유바바는 대경실색(大驚失色)한다. 화려한 장난감과 과도한 장신구로 치장된, 수퍼베이비의 밀폐된 방은 텅 빈 폐허가 되어 있었다.

 

 

 

 

우리 아기를 어디에 숨겼어?” 하쿠는 침착하게 대답한다. “제니바의 집에요.” 유바바는 드디어 이성을 잃고 폭발한다. “제니바?! 못된 마녀 계집이 날 이겼다고 생각하는 거냐?” 유바바는 완벽한 악행의 주모자처럼 보였으나, 그녀의 결점은 의외로 많았다. 자발적으로 센을 따라간 수퍼베이비로 인해, 유바바는 센의 부모를 함부로 베이컨으로 만들지 못하게 된다. 물샐 틈 없는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유바바에게도 이토록 치명적인 틈새가 있다. 타인의 운명을 결정하는 무소불위의 주재자처럼 보이던 유바바도 결국은 더 큰 운명의 그림 가운데 한 조각일 뿐이었다. 유바바는 하쿠에게 질문한다. “네 계획이 뭐냐?” 하쿠는 아기를 두고 협상을 하는 수밖에 없다. “아기를 데리고 올 테니 센과 부모님을 인간세계에 보내줘요.” 유바바는 분노한다. 그러나 이 분노는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기에 더 이상 유바바의 카리스마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 넌 어떻게 되는 거지? 나한테 찢겨 죽어도 좋다는 말이냐?” 센은 하쿠를 위해 목숨을 걸고, 하쿠는 센을 위해 목숨을 건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어느새 나의 일남의 일의 구분이 없어져버린다.

 

 

 

 

 

11. ‘를 찾으러 떠난 길 끝에서, ‘를 만나다

 

 

한편, 센은 수퍼베이비와 가오나시를 대동하고 제니바가 살고 있는 낡은 오두막집에 무사히 도착한다. 혼자서는 걷지도 못하던 수퍼베이비는 어느새 센의 도움도 거부하고 뒤뚱뒤뚱 혼자 걸으며 제니바의 집을 향해 행진한다. 다행히도 제니바는 센 일행을 반갑게 맞아준다. 뚱보 생쥐가 된 수퍼 베이비는 처음으로 구경하는 바깥세상이 재미있는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제니바의 물레질을 도우며 혼자 신났다. 근심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센은 제니바에게 용서를 빈다. “하쿠가 훔친 걸 돌려 드리려고 왔어요. 하쿠를 대신해서 사과 할게요.” 제니바는 저주가 걸린 도장을 지니고도 아무렇지 않은 센이 신기하다. “이거 갖고도 아무렇지 않았어? ? 주문이 사라졌잖아!” “도장에 있던 이상한 벌레를 모르고 밟아버렸어요.” “그건 동생이 하쿠를 조종하기 위해 용의 뱃속에 몰래 넣은 벌레야. 잘했어.” 자신도 모르게 엄청난 미션을 수행해낸 센은 얼굴 없는 요괴 가오나시와 생쥐가 된 수퍼베이비도 원래대로 돌려달라고 부탁한다. 제니바는 웃으며 말한다. “저런, 마법은 벌써 풀려버렸단다.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 생쥐-아기는 엄마 유바바에게 돌아갈 생각은 꿈에도 없다는 듯 신나게 물레질만 하다가 야금야금 과자를 씹어 먹는다.

 

 

 

 

유바바는 제니바를 싫어하지만 제니바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우린 합쳐야 제 몫을 내는데 안 맞아서 문제야. 고약한 성질 알잖아! 쌍둥이 마녀라는 운명부터가 문제지만!” 그리고 하쿠와 센을 돕고는 싶지만 자신은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돕고 싶지만 나도 어쩔 수 없어. 이 세계의 규칙이니까. 네 부모와 남자 친구인 용도 네 스스로 보살펴.” 센도 스스로 보살피고 싶지만 도대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절박하게 묻는다. “힌트라도 줄 순 없나요? 하쿠랑 전 오래전에 만난 듯해요.” 제니바는 커다란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그렇다면 얘기가 빨라지지. 일어나지 않은 일은 잊혀질 수도 없는 법. 생각이 안 날 뿐이지.” 센은 결국 자신의 마음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져 해답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제니바는 가오나시와 생쥐, 센과 함께 열심히 물레질을 하여 무언가를 만든다. “너희들이 도와줄 테냐? 조금만 더 힘내. 그래, 넌 정말 잘하는구나.” 제니바는 흔히 생각하는 마법사와 달리 자신의 노동만으로 삶을 꾸려가는 듯하다. “마법으로 만든 건 다 소용없어.” 아무리 대단한 마법이라도 마법이 풀리는 순간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 그러나 공들여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너무 늦었으니 자고 가라는 제니바의 말에, 센은 한 시도 쉴 수 없다는 듯이 말한다. “전 돌아가야 돼요. 안 그럼 하쿠가 죽어요. 아빠, 엄마도 잡아먹힐 거구요.” 제니바는 생쥐와 가오나시의 도움으로 함께 만든 머리띠를 주며 말한다. “부적! 네 친구들이 뽑은 실이야.” 센이 떠나려는 순간, 뜻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다. 다시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온 하쿠. “하쿠! 하쿠! 천만다행이야. 상처는 이제 괜찮아? 정말 다행이야.” 제니바는 하쿠를 용서해주며 센을 부탁한다. “네가 한 짓은 이제 탓하지 않으마. 그 대신 센을 잘 지켜라.” 센은 예기치 않은 모험의 세계에 빠져 고초를 겪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멋진 마녀 제니바의 사랑 또한 그 아름다운 우연 중 하나다. 제니바는 갈 곳 잃은 가오나시를 곁에 두기로 한다. “넌 남아서 내 일을 거들어 다오.” 어느새 유순해진 가오나시는 이제 더 이상 외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할머니! 고마워요, 갈게요. 제 본명은 치히로예요.” “치히로, 좋은 이름이야. 네 이름을 소중히 해야 한다.”

 

 

 

 

아무리 대단한 마녀도 운명을 바꿀 수는 없다. 운명의 여신 모이라(Moira) 앞에서는 제우스도 어쩔 수 없었듯이. 센은 깨닫는다. 내 스스로 나의 운명을 기억해내야 한다는 것을. 가장 중요한 임무는 오직 혼자서 해내야 한다는 것을. 제니바는 운명의 봉인을 풀 수 있는 열쇠를 주지는 않지만, 그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려준다. 그곳이 바로 센의 마음속이다. 그 마음의 후미진 구석구석을 샅샅이 훑어 운명의 봉인을 푸는 열쇠를 찾아내야 하는 사람은 센 자신이다. 아무도 그 임무를 대신해줄 수 없다. 영웅의 마지막 미션은 가장 어려운 만남, 즉 자기 자신과의 투명한 만남이다. 그리고 센과 하쿠는 예감한다. 너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곧 나를 찾는 길이었음을. 너를 구하러 떠난 여행이 곧 나를 구원하는 길이었음을. 너 없이는 나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외따로 동떨어진 로서가 아니라 로서 이해될 때, 비로소 우리를 옭아맨 운명의 상처와 대면할 수 있다는 것을.

 

 

융은 이른바 미확인비행물체UFO에 관한 현대의 신화가 무너가 인류의 환상적 기대를 이야기해주고 있다고 썼다. 사람들은 외부 세계로부터 방문자가 와주기를 고대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의 구원이 그로부터 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주 시대의 개막은 우리에게 외계(외부우주)로의 여행이 우리를 다시 내부 우주로 전환시킨다는 사실을 되새겨주었다. 하나님의 나라(천국)는 우리 안에 있는 것이지만, 우리는 신들이 저 바깥에서 활동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나라(천국)는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스스로의 마음에 불러낸다. 아버지의 나라(천국)는 여기 있다. 우리는 세계를 바라보고 그 광휘를 목도한다.

-조셉 캠벨, 박중서 역, 신화와 인생, 갈라파고스, 2009, 240~241.

 

 

 

 

 

12. 너를 찾지 못했다면 나의 존재도 잃었을 걸

 

 

캠벨: 우리의 진정한 입문의례는, “산타클로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힌두의 구루의 가르침 속에 있습니다. 산타클로스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이어주는 은유이지요. 관계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체험이 가능하지요. 그러나 산타클로스는 없습니다. 산타클로스는 관계를 인식하는 길로 아이들을 인도하는 하나의 방법에 지나지 않습니다. 본질적으로, 그리고 속성상, 인생은 죽이고 먹음을 통해야 살아지는 무서운 신비의 덩어리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 없이 인생을 살겠다고 하는 것, 인생이 원래는 이런 것이 아니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유치한 발상이라고 볼 수 있지요.

모이어스: 조르바는 인생에 대하여, “말썽? 인생이라는 게 어차피 말썽 아닌가하고 있습니다.

-조셉 캠벨, 이윤기 역, 신화의 힘, 이끌리오, 2002, 132~133.

 

 

돌아올 기차표가 없는 머나먼 길을 떠나온 센에게, 용으로 변신한 하쿠는 자신의 등을 내어준다. 하쿠의 듬직한 등 위에 올라 하늘로 날아오르는 센. 그녀는 창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하쿠의 등허리 위로 펼쳐진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며 강력한 기시감을 느낀다. 인간의 언어로는 감히 표현할 수 없는 이 황홀한 느낌, 이토록 행복한 느낌을, 어디선가 느껴본 적이 있는 것만 같다. 밤하늘은 거대한 강처럼 느껴지고 나를 등에 태운 하쿠의 이 체온은 내가 분명 느껴본 적이 있는 따스함이다. , 그래, 그거였어……. 센은 마음속 깊숙이 둥지를 튼 하쿠의 기억을 드디어 발견해내고 눈물이 그렁해져 고백한다. “하쿠, 엄마한테 들은 얘기야. 기억은 흐리지만. 내가 어렸을 때 강물에 빠졌는데, 그 터에 아파트가 들어섰대. 문득 생각이 났어……. 그 강의 이름이 코하쿠였어……. 네 본명은 코하쿠야…….” 그 순간 하쿠의 몸을 둘러싼 수백만 개의 용의 비늘이 밤하늘을 수놓은 은하수처럼 화르르 흩어지며 하쿠는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하쿠를 겹겹이 옭아매던 가혹한 운명의 사슬이 이제야 벗겨진 것이다. 손을 맞잡고 볼을 비비는 두 사람의 얼굴 위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흩어진다.

 

 

 

 

치히로! 고마워! 내 진짜 이름은 니기하야미 코하쿠누시야.” 센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온몸으로 웃음 짓는다. “니기하야미 코하쿠누시! 신의 이름처럼 멋져!” 하쿠는 자신도 센의 진짜 이름 치히로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해낸다. “나도 생각났어. 네가 내 안에 빠진 신발을 주우려고 했었지?” 거대한 아파트가 들어서자 강의 신이었던 하쿠는 인간 세계에서 퇴출당해야 했고, 하쿠는 자신의 이름도 존재도 잊은 채 마녀의 부하가 되어 살아가야 했던 것이다. 하쿠는 문명이 삼켜버린 자연이었고, 도시가 짓밟은 생명의 입김이었다. 치히로도 기억나기 시작한다. 그녀가 강물에 빠져 죽을 뻔했을 때, 하쿠는 그녀를 집어삼키지 않고 얕은 곳으로 옮겨 살려주었다는 것을. “맞아, 네가 나를 얕은 곳으로 옮겨줬지.” 내가 누구인지 몰라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었던 하쿠가, 연약한 소녀 센의 목숨을 건 투쟁으로, 자신의 이름을, 자신의 운명을 되찾게 된다.

 

 

 

 

이제 봉인은 풀렸다. 두 사람의 운명을 겹겹이 에워싸고 있던 운명의 봉인은 센-치히로, 그리고 하쿠의 너와 나를 구분하지 않는운명의 전투로 풀린 것이다. 너를 찾아 떠나는 머나먼 길이 곧 나를 찾는 유일한 열쇠였다. 너를 찾지 못했다면, 너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면, 나는 나의 존재 또한 잃어버렸을 것이다. 센의 영웅적인 면모는 그녀가 헤라클레스처럼 대단한 힘을 가지거나 아테나처럼 출중한 지혜를 가져서가 아니었다. 그녀는 개인적인 욕망을 잊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고통과 임무를 피하지 않았다. 마치 자아라는 정해진 실체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며, 주어진 모든 상황에 자신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내 것을 지켜야 한다는 애착을 어느새 끊어버린 그녀에게는 이미 두려울 것이 없었다. 센은 강력하고 적극적이며 투사적인 영웅의 전형이 아니라 지극히 내향적이고 수동적으로 보이는 사람의 내면에 숨겨진 엄청난 폭발력, 에너지를 끊임없이 자기 안에 가두어 놓는 내성적 캐릭터 속에 잠재된 정화와 재생, 치유와 배려의 에너지를 보여준다. 심드렁하고 무표정하며 몰개성적으로 보였던 치히로의 얼굴이 어느새 총명하고 매력적인 센의 이미지로 바뀌게 되는 것도, 그녀가 지닌 내면의 폭발력이 육화된 결과가 아닐까.

 

 

개인적인 야망을 무화시킨 개인은 살려고 버둥거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닥치건 거기에 몸을 맡겨버린다. 말하자면 익명의 인간,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 무대의상을 입고 있든, 벗고 있든, 배우는 이전의 그 자신이듯이.

-조셉 캠벨, 이윤기 역, 세계의 영웅신화, 대원사, 1996, 234.

 

 

 

 

 

13. 전혀 다른 내가 되어 있다

 

 

하쿠와 센은 부푼 가슴을 안고 유바바 온천으로 돌아온다. 유바바는 도끼눈을 뜨고 벼르고 있는 중이다. “아기는 데려왔겠지?” 유바바는 늘 아기방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기만 하던 수퍼베이비가 어느새 씩씩하게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다. “혼자 서다니? 언제부터?” 하쿠는 아기를 무사히 데려왔으니 센을 인간 세계로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간단하게는 안돼. 세상엔 룰이 있는 법!” 유바바는 엄한 표정을 지어 보이지만 수퍼베이비가 엄마를 제지한다. “엄마! 치사한 짓 그만해! 난 무지무지 재미있었어!” 유바바는 자신에게 저항하는 아들의 모습을 처음 보는지라 당혹스럽다. “규칙은 규칙인데……. 안 그러면 저주가 안 풀려!” 수퍼베이비는 단호한 표정으로 엄마를 협박한다. “센을 울리면 엄마를 싫어할 거야!” 유바바는 휘청거린다. “그런 심한 말을!” 그러나 센은 이제 유바바를 겁내지 않는다. 수퍼베이비 연줄에 호소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임무를 끝까지 수행하겠다는 표정으로 오히려 아기를 달랜다. “괜찮을 거야. 걱정 마.”

 

 

 

 

유바바는 센의 계약서를 돌려주며 미리 소집해 놓은 수많은 돼지들을 가리킨다. “이 안에서 네 부모를 찾아! 기회는 딱 한 번! 맞히면 너희는 자유야!” 센은 아무리 봐도 똑같이 생긴 돼지들을 유심히 바라보며 엄마, 아빠를 찾아본다. “여기에는…… 엄마, 아빠가 없는 걸요?” 유바바는 흠칫 놀란다. “없어? 그게 대답이냐?” 센은 다시 한 번 결연하게 대답한다. “!” 유바바는 하는 수 없이 인정한다. “딩동댕! 정답! 성공이야! 정답이야!” 센은 이제 누구의 조언 없이도 주어진 미션을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모두들 고마워요.” 유바바 온천 식구들이 모두 모여 센의 해방을 뛸 듯이 기뻐해준다.

 

 

 

 

마녀 유바바의 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굴러가던 군대식 분위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유바바 온천에는 전에 없이 신명나고 활기찬 축제 분위기가 감돈다. 머쓱해진 유바바는 센에게 새침하게 말한다. “네가 이겼어! 빨리 가버려!” 센은 아무런 원망도 남아 있지 않은 얼굴로 오히려 유바바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남긴다. “고맙습니다. 신세 많이 졌어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센의 깊이와 넓이 앞에 유바바의 얼굴에도 어느새 사악한 기운이 사라졌다. 신화적 내러티브의 궁극에서는 결국 적들의 존재조차 사라지거나 무의미해진다. 적들이야말로 장애물과 싸우는 주인공의 내공 지수를 높이는 최고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원수는 우리의 운명을 조각하는 가장 예리한 칼날이다.

 

 

 

 

모두들 안녕! 고마워요!” 어느새 정든 유바바 온천 사람들과 작별한 센은 하쿠와 함께 엄마, 아빠를 찾으러 간다. 어느덧 하쿠와 헤어질 시간. “난 더 이상 못 가. 온 길로만 쭉 따라가면 돼. 터널을 나갈 때까지 뒤를 돌아보면 안 돼.” 하쿠는 센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말한다. “난 유바바의 제자를 그만 둘 거야. 진짜 이름도 되찾았으니까. 나도 원래 세계로 돌아갈 거야.” 둘은 이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자마자 헤어져야 하는 아픔을 견뎌야 한다. “또 만날 수 있지?” “그럼!” “꼭이야!” “뒤돌아보지 말고 얼른 가!” 센은 하쿠와 헤어질 순간이 되자 그토록 탈출하고 싶었던 이곳이 벌써부터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꼭 저 세상으로 돌아가야 할까. 이제야 이곳에 익숙해졌는데, 이제야 내 영혼의 짝을 만났는데. 하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라는 메시지를 거절하면, 오르페우스처럼 간신히 구한 아내 에우리디케를 잃게 될 것이고, 소돔을 탈출하던 롯의 아내처럼 소금 기둥이 될지도 모른다. 영웅의 귀환’, 그 마지막 관문은 내가 겪은 이 모든 모험의 희로애락에 미련을 갖지 않는 것이며,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왔다면 그 뗏목을 불살라버리는 용기다.

 

 

 

 

 

14. 하찮은 흔적에서 빛나는 상징을 읽어내는 자, 그는 승리할지니……

 

 

치히로! 뭐 하는 거니? 어서 와.” 엄마, 아빠의 부름으로 센(신화적 자아)은 어느새 치히로(일상적 자아)로 돌아온다.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 아빠는 철없고 나약하기만 하던 센이 자신들을 구원해준 여신 포스를 장착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어서 집으로 가자고 야단법석이다. 하쿠의 말대로 뒤돌아보지 않고 걷던 치히로는 터널을 다 통과하고 나서야 터널 저편의 세계, 자신을 삼켰다가 다시 토해낸 저 어두운 심연의 세계를 바라본다. 어떤 언어로도 정리할 수 없는 치히로의 마음을 아름다운 주제가가 대신해주는 듯하다.

 

 

슬픔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그 너머에서 분명히 당신과 만날 수 있어. (……) 살아 있는 신비함. 죽어가는 신비함. 꽃도 바람도 도시도 모두 같아. (……) 산산조각으로 깨져 버린 거울 위에도 새로운 풍경이 비춰져 (……) 바다의 저편에서는 이제 찾을 수 없어. 빛나는 것은 언제나 여기에, 내 안에서 찾을 수 있었으니까.

 

 

저 아련한 노랫말처럼, 우리가 가장 원했던 것은 우리 안에 있다. 천복을 따르는 것은 자기 내부의 소명을 발견하는 것이지 외부 세계의 정복이나 외계 생명체의 구원이 아니다. 조셉 캠벨은 영웅의 마지막 임무는 하계에서 얻은 깨달음을 원래의 세상속에서 재통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센이 된 치히로, 하쿠를 품어 안은 센을 통해 우리 가슴에 스며들어온 신화를 살아내는 것, 그것이 우리의 새로운 미션이 아닐까.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화적 상상력은 현실을 거부하는 가상현실이 아니라, 현실의 중요성을 박탈하여 현실에서 멀어지는 대체 현실이 아니라, 현실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현실을 더욱 살 만한 것으로 만드는 능동적인 판타지다. 그가 느낀 문명에 대한 절망, 인간에 대한 비애가 아무리 깊고 어두울지라도 그가 허무주의나 패배주의에 결코 길을 내주지 않는 이유도 이 능동적 판타지에 기반한, 지극히 명랑하고 낙천적인 신화적 상상력에 있다. 그는 인간과 자연, 주체와 타자, 죽음과 삶 사이에 놓인 거대한 장벽의 틈새를 포착해낼 힘이 아직 우리 문명사회에 가녀리게, 그러나 분명하게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아티스트다. 그가 창조한 인물들로 인해 우리는 신화로 들어가는, 아직 닫히지 않은 입구가 조금은 남아 있음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아직 완전히 밀폐되지는 않은, 그 가느다란 신화의 입구에서 흘러나오는 실오라기 같은 생명의 햇살을, 미야자키 하야오는 거대한 예술의 마그마로 폭발시킨다.

 

우리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물들이 아직 완전히 통합하지 못한, 신화와 현실 사이에 놓인 거대한 간극을 메우는 저마다의 비법을 탐색해야 하지 않을까. 비법은 물론 하루아침에 전수될 수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도 없다. 하지만 먼저 간 어진 친구들의 발자국을 따라 우리는 그 비법의 조각난 흔적들을 탐험해볼 수는 있다.

 

캠벨은 이 비법을, 신화가 풀어내는 무의식의 비밀을 통해 발견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세계 각지에 흩어진 신화적 상징과 서사를 수집하고 연구하며 신화에 숨겨진 삶의 비의를 추출했다. 캠벨은 속삭인다. 모든 곳에서 상징을 보라. 죽음을 딛고야 일어서는 삶의 비애를 긍정하라.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이미 주어진 삶의 고통을 부정하지 말라. 타자를 죽이고 그 시체를 먹어야만 살아지는 무서운 신비, 그것이 삶임을 인정하라고.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기쁘게 참여하는 희열, 그것이 신화 속 영웅의 가장 아름다운 본성이라고. 비논리적이라고, 비과학적이라고, 난센스라고 비웃지 말고, 신화를 통해 인류의 잊힌 기억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라고.

 

괴물을 죽인답시고, 미신을 타파한답시고, 우리 안에 은거하던 소중한 신들까지 죽이지는 말라고. 운명의 미로에서 좌충우돌하며 삶의 신비를 하나씩 걸음마 하며 배웠던 영웅들의 숨 가쁜 호흡을 들어보라고. 신화의 첫 번째 기능은, 지금 여기 바로 우리가 존재하는 이곳을 성소(聖所)로 만드는 것이라고. ‘덧없는신화의 명징한물질성을 눈치 챈 사람은, 어디서나 신의 광휘를 보고, 어디서나 신의 축복을 읽어낸다. 우리가 가장 원하는 꿈, 누구에게도 말해보지 못한 수줍은 꿈을, 밤새워 공들여 또박또박 종이 위에 적어보자. 그것이 바로 우리 안의 신화다.

 

 

어떤 것도, ()조차 우리의 자아보다 더 크지는 않다.

(……) 한 푼도 없는 나나 당신도 이 땅의 알짜를 구입할 수 있다.

(……) 어떤 미약한 물건도 우주의 수레바퀴의 중심이 될 수 있다.

(……) 나는 만물에서 신을 보고 듣지만 조금도 신을 이해하진 못한다.

(……) 나는 거리에 떨어진 신의 편지들을 본다. 그 하나하나에 신의 서명이 있다.

나는 그 자리에 놓아둔다. 어디로 가든

또 다른 편지가 틀림없이 영원토록 올 것을 아는 까닭에.

-월트 휘트먼의 , 풀잎(1855) 중에서.

 

 

 

 

인용

목차 / 지도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