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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시네필 다이어리, 슈렉과 줄리아 크리스테바[‘바람직한 주체’가 되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 - 8. 동화 속의 세계는 너무 안전하다?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슈렉과 줄리아 크리스테바[‘바람직한 주체’가 되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 - 8. 동화 속의 세계는 너무 안전하다?

건방진방랑자 2021. 7. 27.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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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동화 속의 세계는 너무 안전하다?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소모되어버린, 추방되어 사실상 굶고 있는 나를 보라.

-디즈니 에니메이션 인어공주중에서, 마녀 어슐라의 대사

 

 

디즈니가 각색한 애니메이션에서는 막판에 주로 악당이 살해되거나 마녀가 추방된다. 소름끼치고 역겨운 것들을 반드시 배제해버려야만 세계가 유지될 수 있다는 긋, 디즈니형 애니메이션은 동화에서 선악의 경계, 미추의 경계를 확실히 구분한다. 그러나 실제 세계도 그럴까. 디즈니의 우월한 유전자를 향한 지독한 선망은 나와 다른사람들의 주체성을 희생시켜서라도 안전한 세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질병 아닐까.

 

슈렉은 피오나를 구하지만 피오나는 자신의 이상형에 슈렉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으며 실망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우아한 백마에 태워주기는커녕 계속 걷고 뛰게 만드는 슈렉을 보며 피오나는 달라져서 한마디 던진다. “무슨 기사가 이래요!” 슈렉은 자신이 좀 구식이고 특이종이라며 변명을 해보지만 피오나는 공주답게새침을 떤다.

 

 

 

 

그녀는 핑크 드래곤이 유혹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동키를 백마로 오인하고 이제는 고생 끝 행복 시작인가보다 하는 기대감을 가져보지만, 어림없다. 게다가 성에 갇힌 자신을 구해준 기사님은 얼굴을 보여줄 생각을 안 한다. “전투에 승리했습니다, 기사님. 이제 헬맷을 벗으셔도 됩니다.” 슈렉은 헬멧 때문에 머리가 헝클어졌다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지만 피오나는 자신을 구해준 기사님이 헬멧을 벗는 순간 키스를 퍼부으며 곧바로 사랑에 빠질 태세다.

 

 

피오나: 어서 헬멧을 벗어요. 저를 구해 주신 분의 얼굴을 보고싶어요.

슈렉: 아뇨, 보고 싶지 않을 거예요.

피오나: 하지만, 저하고 어떻게 키스하실 건가요?

슈렉: (당황하며) 뭐라고요? 이 일을 맡았을 때 그런 얘긴 없었는데?

피오나: 아니, 운명이에요. 동화 속 스토리를 모르세요? 탑에 갇힌 공주가, 용감한 기사로부터 구출된다. 그 다음 진정한 사랑의 첫 키스를 나눈다!

동키: 슈렉하고요? 잠깐만요. 슈렉이 당신의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피오나: , 그럼요.

동키: 우헤헤헤! 슈렉이 진정한 사랑이래.

피오나: (엎치락뒤치락 실랑이 끝에 드디어 슈렉이 헬멧을 벗자 실망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다) 당신은, 오우거군요…….

슈렉: , 멋진 왕자를 기대하셨나 보군요.

피오나: , 실은……. , 안 돼! 모든 게 틀렸어! 당신이 오우거면 안 되는데!

슈렉: 공주님, 파쿼드 군주가 당신을 구하려 절 보냈습니다. 아셨죠? 당신하고 결혼하려는 사람은 그 분이에요.

피오나: 그럼 왜 저를 구출하러 직접 오지 않은 거죠?

슈렉: 좋은 질문이네요. 도착하면 직접 물어 보세요.

피오나: 저는 진정한 사랑에 의해 구출 받아야 해요. 오우거와 애완동물에게 구출 받는 게 아니라고요! (……) 파쿼드 군주에게 절 제대로 구출하고 싶다면 여기서 기다린다고 전해주세요.

 

 

 

 

문제는 이 세계가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묘사하는 세계처럼 깔끔하게 재단될 수 없다는 것이다. 타자를 끝내 배제하는 세계에서는 타자가 촉발하는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도 닫힌다. 불쾌하고 모호하고 이질적인 무엇, 아브젝트를 배제하는 것은 곧 세계를 왜곡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타자 없는 세계, 살균된 세계의 폭력성은 그것이 비폭력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고 기만적이다. 디즈니의 전형적인 세계관은 비정상을 삭제해야 정상이 행복할 수 있다는 식으로 전개되지만, 실제 세상은 그렇지 않다. 다양성은 정상적인 것 내부의 차이가 아니라 정상비정상을 가르는 경계 위의 수많은 이절성과 모호성 위에서 꽃피는 것 아닐까.

 

 

아브젝트가 되는 것은 부적절하거나 건강하지 않은 것이라기보다 동일성이나 체계와 질서를 교란시키는 것에 더 가깝다. 그것 자체가 지정된 한계나 장소나 규칙들을 인정하지 않는 데다가 어중간하고 모호한 혼합물인 까닭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서민원 역, 공포와 권력, 동문선, 200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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