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뭐 아무렴 어때
사유는 (……) 나 이외의 타자가 되기 위해 행해지는 모든 작업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심문하는 방법이다.
-푸코, 폴 라비노우와의 인터뷰 중에서
타임 리프를 하기 전까지, 마코토에게 시간은 단지 ‘지켜야 할 시간’과 ‘지키지 않아도 되는 시간’으로 나뉘었다.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간(학교를 중심으로 구획되는 기계적 시간표)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그녀가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는 자유 시간). 그녀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란 뭔가 독특한 외부의 사건이 일어났을 때뿐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시간의 충돌을 경험하면서, 그녀의 시간과는 다른 이질적인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마코토는 조금씩 깨닫는다. ‘나의 시간’이란 무중력 상태의 물체처럼 외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무심코 저지른 나의 행동이 시간의 흐름은 물론 타인의 인생까지 바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을. 나의 시간은 너의 시간과 그 · 그녀의 시간, 그들의 시간과 끊임없이 덧붙여지고 이어져 ‘우리들의 시간’이라는 거대한 시간의 패치워크를 만들어가고 있었음을.
유희의 시간에서 책임의 시간으로 이동한 마코토. 그녀가 저지른 시간(?)에 책임을 지기 위해 그녀는 좀더 ‘근본적인 시작’으로 돌아가는 타임 리프를 실현한다. 고스케와 카호(고스케를 짝사랑하는 여학생)의 인연을 맺어주기 위해 그 두 사람이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조작하는 마코토. 고스케는 자신에게 부딪혀 넘어진 소녀를 일으켜주며 그녀와 첫 번째 스킨십(?)을 경험하고 그녀를 부축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 사이에 수줍은 눈길이 오고 간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도록 만드는 데 성공한 마코토는 신이 나서 중얼거린다. “마음이 다 뿌듯하네. 이 행복감을 뭐라 하면 좋을까.” 그때 마코토의 팔에 새겨진 숫자가 문득 눈에 띈다. 10으로 보이기도 하고 01로 보이기도 하는 이 숫자. 전에는 09라고 새겨져 있었는데. 혹시 타임 리프가 가능한 횟수를 뜻하는 걸까.
자신과 부딪혀 발목을 삔 소녀를 아버지가 운영하는 병원으로 데려가려는 고스케. 고스케는 마코토의 자전거를 빌려 타고 소녀를 바래다주려 한다. 고스케의 문자메시지를 받고 나서야 자전거 브레이크가 고장 나 죽을 뻔했다는 사실이 기억난 마코토. 그녀는 정신없이 달려가 고스케를 말리러 가지만 이미 자전거는 사라진 뒤다. “어떡하지? 시간을 되돌릴까? 하지만 아직 확실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잖아.” 마코토는 다급한 마음으로 달려가 기찻길 근처에서 고스케를 찾아 헤매지만 헛수고다. 미친 듯이 고스케를 찾던 중 치아키의 전화를 받은 마코토. “고스케는 집에 있다던데, 너 오늘 야구 안 할 거야?” 마코토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치아키의 전화를 반가워한다. 그래, 고스케는 죽지 않은 거야.
치아키는 전화기 저편에서 묻는다. “마코토. 너한테 물어볼 게 있어. 너 혹시……타임 리프 하는 거 아냐? 너…… 타임 리프 하지?” 마코토는 ‘타임 리프’라는 은밀한 단어가 그녀와 이모 이외의 다른 사람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치아키가 어떻게 그걸 알았을까. 아, 이 방법밖에 없다. 마코토는 다시 한 번 타임 리프를 한다. 허를 찌르는 치아키의 질문을 듣기 직전의 순간으로. 마코토는 뭔가 중요한 질문을 하기 위해 뜸을 들이는 치아키의 입을 막으려고, 동생 이야기로 얼렁뚱땅 화제를 돌린다. 팔에 적힌 숫자는 ‘0’으로 바뀐다. 마코토는 그제야 깨닫는다. “역시 이 숫자는 남은 타임 리프 횟수였어. 시시콜콜한 일에 마지막 타임 리프를 날렸구나. 뭐, 아무렴 어때. 고스케도 무사하고.”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