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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시네필 다이어리,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질 들뢰즈[시간을 잴 수 없는 시간의 무한 탈주] - 18. 지나간 시간은 사후적으로 재구성할 수밖에 없다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질 들뢰즈[시간을 잴 수 없는 시간의 무한 탈주] - 18. 지나간 시간은 사후적으로 재구성할 수밖에 없다

건방진방랑자 2021. 7. 2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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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지나간 시간은 사후적으로 재구성할 수밖에 없다

 

 

유목민은 물론 움직이지만, 앉아 있으면서 움직이고, 움직이면서 앉아 있다. (……) 유목민은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 안다. 그들은 무한한 참을성을 갖고 있다.

-들뢰즈· 가타리, 천의 고원2, 연구 공간 너머자료실, 2000, 165.

 

우리에게 발생하는 것을 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가 되는 것, 그래서 그것을 원하고 그로부터 사건을 이끌어내는 것, 그 고유한 사건들의 아들이 되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다시 태어나는 것, 탄생을 다시 이룩하는 것.

-들뢰즈, 이정우 역, 의미의 논리, 한길사, 1999, 261.

 

 

왜 인간은 사건의 폭풍이 잦아들고 나서야 사건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일까.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후적 깨달음의 동물일까. 지나간 시간이, 과거의 기억이 소중하다감각은 기억이 생성된 후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지각된다. 특히 익숙하고 친밀한 관계일수록 대상의 상실은 더욱 오랜, ‘깨달음을 위한 발효 기간을 요구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정작 그 상실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견디기 힘든, ‘이별이나 애도라고 이름붙이기도 어려운 감각의 총체적 혼돈을 통과해야만 한다. 그렇게 인간은 현재에 몰두할 때는 지금 이 시간 자체를 대상화할 수 없다. 현재의 상황 자체에 몰입하지 않고서는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를 과거로 회상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뒤늦은 깨달음은 인간의 우매함 때문이 아니라 시간 자체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타임 리프로 인해 마코토가 깨달은 것은 시간의 조형 가능성이 아니라 시간의 불가역성에 대한 깨달음이 아닐까. 아무리 객관적 시간을 되돌릴 수 있어도, 과학의 힘이 그 불가능의 영역에 도전하여 성공할지라도, 우리의 삶 속에서 잃어버린 시간은 물리적인 힘으로 되찾을 수 없다는 것. 몇 번이나 타임 리프를 한다 해도, 우리 몸과 마음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은, 나의 욕망이 너의 시간에 새긴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는 언제나 지나간 시간의 의미를 사후적으로 발견하고 뒤늦게 재구성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은 단지 인간의 한계라기보다는, ‘과거로 멀어져간 시간에 대한 인간의 오만을(‘나는 과거를 이해하고 과거를 기록하고 과거를 이용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의 합리적 이성) 일깨우는 시간의 매혹적인 속성이 아닐까.

 

마코토는 타임 리프를 통해 713일을 몇 번이나 반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이 한 번도 동일한 감각으로 체험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그녀가 기억을 수정하고 삭제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개입한 시간은 하나같이 그녀의 의도를 배반하고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시간의 형상으로, 저마다 새로운 차이의 시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타임 리프로 인해 일어난 진짜 기적은 단지 기계적 시간의 이동가능성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아무런 자발적 사유도 하지 않던 한 소녀가 시간에 대해, 자체에 대해 예전과는 전혀 다른 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아닐까.

 

타임 리프로 인해 과거-현재-미래로 지속되는 선형적 시간의 상식이 깨져버리자 마코토는 엄청난 혼란을 느낀다. 그러나 그 시간의 비연속성은 시간 자체가 이미 지니고 있는 내재적 속성이다. 지금 마코토는 미래에서 온 마코토 자신에게 심문당하고 있는 현재의 자신을 느낀다. 과거의 마코토와 현재의 마코토와 미래의 마코토가 한 공간 안에 존재함으로써 지금까지 믿어왔던 스스로의 자기 동일성이 참혹하게 깨어지는 고통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한 화면 안에 공존하며 마코토의 고정된 정체성을 분열시킨다. 미래의 마코토가 현재의 마코토에게 과거의 마코토를 넘어서라고 충동질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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