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I will fly with you……
제이크: 쯔테이. 당신 도움이 필요해. 나와 함께 싸워 주겠나?
쯔테이: 당신과 함께 날겠소.
신화는 인간과 풍토가, 시간과 공간이 빚어낸 영혼의 성감대지.
-최인훈, 『회색인』 중에서
제이크는 자신의 힘으로 제6대 토루크 막토가 됨과 동시에 드디어 나비족의 일원이 된다. 그는 쯔테이와 함께 인간들과의 총력전을 지휘하며 나비족뿐 아니라 판도라 행성에 사는 다양한 부족들을 연합하는 데 성공한다. 급속도로 늘어나는 판도라의 전사들을 보면서 당황한 쿼리치 대령은 총력전을 계획하며 부하들을 다그친다. 그는 나비족의 믿음의 원천인 영혼의 나무를 공격하여 나비족들로 하여금 돌이킬 수 없는 ‘충격과 공포’를 심어 주려한다.
쿼리치 대령은 나비족의 믿음의 원천을 조롱한다. 그 파란 원숭이들은 ‘여신 따위’가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나비족의 가치체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병사들도 쿼리치와 함께 나비족의 믿음을 비웃는다. 인간들의 첨단 무기에 활과 화살로 맞설 수 있겠느냐는 걱정으로 노심초사하는 친구 노엄을 향해 제이크는 말한다. 인간들은 판도라의 독성 가스 때문에 숨도 쉴 수 없지만 나비족은 판도라의 지형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첨단 기술과 무기에 의존하는 인간들 vs 오직 자신의 몸만이 무기인 나비족 사이의 총력전이 시작된다.
인간들의 일방적인 우위로 점쳐지던 전세는 뚜껑을 열어보니 막상막하다. 신기하게도 이크란을 타고 오직 한 명씩 움직이는 나비족의 공군은 결코 거대한 헬리콥터와 미사일에 밀리지 않는다. 오직 기계에 의지하는 인간들과 달리, 진심 어린 절박함 때문이 아니라 나비족에 대한 혐오와 적개심만으로 일방적인 살육의 행렬에 나선 인간들과 달리, 나비족은 한 명 한 명이 극한의 절박함과 극한의 전투의지로 충만하다. 나비족은 오직 혼자 날고 오직 혼자 죽을 준비가 되어 있기에, 판도라를 지켜야 자신의 가족과 부족을 지킬 수 있기에, 명령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인간 병사들의 마음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움직인다. 나비족은 미약한 개인을 거대한 조직으로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곧 부족 그 자체의 힘을 발휘한다. 무엇보다도 나비족은 ‘샤헤일루’를 통해 주변의 모든 생물을 자신의 영혼과 링크시킨다. 판도라의 동식물 하나하나, 돌멩이 하나까지도 자신의 편으로 만들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한 명 한 명의 전사가 곧 나비족이며 판도라이며 세계 그 자체인 것이다.
나비족의 전사들은 사력을 다해 싸웠지만 쿼리치가 이끄는 공군의 무차별 폭격이 시작되자 속수무책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비족 최고의 전사 쯔테이도, ‘아름다운 배신’으로 나비족의 편이 된 트루디도, 노엄이 조종하던 아바타도 죽었다. 쿼리치 대령과 싸우던 네이티리와 제이크마저 위험에 처했을 때, 이제 네이티리마저 의연한 죽음을 준비한 순간, 이제 모든 희망이 사라진 듯한 바로 그 순간,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기적의 손길이 뻗쳐온다. 평화롭던 판도라에 들리기 시작한 전쟁의 괴성에 분노한 판도라의 동물들이 떨쳐 일어난 것이다. 거대한 공룡이나 맘모스의 원시적 힘과 놀라운 유연성을 연상시키는 판도라의 동물들은 얼어붙은 전세를 완전히 역전시킨다.
근대 이전의 전장에서는 말을 탄 전사가 내달리는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전사는 멋들어진 가마술로 말의 속도와 움직임을 조절하고, 속도와 유동성으로 전장을 유동적이며 속도로 가득한 장으로 바꾸어버립니다. 또한 전사의 손에서 날아가는 화기나 화살은 인간의 물리적 힘을 넘어선 거대한 파괴력을 펼쳐냅니다.
그러나 근대의 기술은 카농포(포신의 길이가 구경의 30~50배에 달하는 긴포. 단순히 대포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를 발명하고 말았습니다. 유동적이며 재빠른 운동이 지배하던 전장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문에 정지 상태로 향하게 됩니다. (……) 고속도의 화기가 전장을 움직임 없는 심리전의 장으로 바꾸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철포에서 카농포로 이어지는 화기의 역사에서 기마대는 점점 그 의미를 잃고, 병사는 전장을 내달리지 않고 참호 속에 틀어박히고 맙니다. 그때까지 전장은 동물적인 움직임으로 가득한 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참호를 파고 서로를 노려보는 정지된 내성의 장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나카자와 신이치, 양억관 옮김, 『성화 이야기』, 교양인, 2004, 87~88쪽.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