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숲을 정복하려는 사람들과 지키는 늑대
반 고흐의 황색은 연금술적인 황금이며, 무수한 꽃으로부터 채취되어 햇빛에 굳어진 꿀과 같이 만들어진 황금이다. 그것은 결코 단순히 밀이나 불꽃이나 밀짚의자의 황금빛이 아니다. 천재의 한없는 꿈에 의해 영원히 개성화된 황금빛이다. 그것은 이미 이 세상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재산, 한 인간의 마음, 전 생애를 통한 응시(凝視) 속에서 발견된 근원적인 진실이다.
-바슐라르, 김현 역, 『꿈꿀 권리』, 열화당, 1995, 72쪽.
그저 단순한 노란색이 아니라 반드시 ‘고흐빛 노랑’이라 불러야 할 것만 같은 빛깔 앞에서 우리는 흐뭇이 미소를 흘린다. 단지 물감이 아니라 ‘무수한 꽃으로부터 채취되어 햇빛에 굳어진 꿀’을 바른 듯한, 이 세상 하나뿐인 황금빛의 아우라 속에서 우리는 고흐의 눈이 되어, 고흐의 숨결을 느끼며 행복해한다. 바슐라르는 고흐만이 낼 수 있는 그 선연하고도 야생적인 황색이야말로 고흐의 ‘한없는 꿈’이 만들어낸, ‘영원히 개성화된 황금빛’이라고 말했다. 고흐빛 노랑은 이 세상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전 생애를 꿰뚫는 응시 속에서 발견된, 예술가의 생애 그 자체라고.
원령공주가 자신이 인간임을 부정하고 ‘들개의 딸’이길 원했던 이유 또한 그녀가 그토록 사랑하는 ‘숲의 빛깔’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단순한 ‘초록색’이 아니라 그 수많은 동물들과 숲의 정령들을 한 아름에 품어 안는, 그녀에겐 세상에 하나뿐인 ‘원령빛 초록색’을 말이다. 그녀는 인간에게는 한없이 적대적이지만 숲의 동식물 하나하나, 깜찍한 숲의 정령 하나하나에게는 한없이 친절하다. 그녀가 밤마다 들개 모로의 등허리를 타고 몰래 인간의 마을에 잠입하여 하는 일도 단지 ‘나무를 심는 일’을 위해서다. 그녀의 초록빛, 아니 숲의 모든 생물들을 위한 초록빛을 지키기 위해, ‘시시신’의 숲을 인간의 자연개발을 위한 미끼로 던져주지 않기 위해, 그녀는 평범한 인간이 되는 길을 포기하고 ‘숲의 전사’가 되는 길을 택했다.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타타라 마을 사람들은 원령공주가 “들개들에게 혼을 빼앗긴 불쌍한 계집애”라고 말한다. 그들이 시시신의 숲을 ‘점령’하는 데 성공하면, 원령공주도 ‘정상적인’ 인간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그들은 숲을 정복하여 마음껏 자원으로 이용하고 숲의 개발을 가로막는 들개들을 몰살하여 ‘풍요로운 국가’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