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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어떨 때 쓰느냐 물으시면
이병률
시는 쓰려고 앉아 있을 때만 써지지 않지
오로지 시를 생각할 때만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물을 데우고
물을 따르는사이
고양이가 창문밖으로 획 하니 지나가고
그자리 뒤로 무언가 피어오르는 듯할 때
그때
조용할 때만 오지도않지
냉장고가 용도를 멈출때
저녁 바람이 몇 단으로 가격할 때
시는 어느 좋은 먼데를 보려다
과거에 넋을 놓고
그러던 도중 그만 하늘 빛에 눈이 찔리고 말아
둥그스름하게 부어오른 눈언저리를 터뜨려야
겨우 쏟아지는 지도
쓰지 않으려 할 때도 시는 걷잡을 수 없이 방향을 잡지
어디에 쓰자고 문 앞에 매달아둘 것도 아니며
무엇이라도 되라고 등불 아래 펴놓는 것도 아니며
저기 먼 끝 어딘가에 이름 없는 별하나 맺히는 것으로
부시럭거리자는 것
흐렸다 갰다를 반복하는 세상 어느 골짜기에다
종소리를 쏟아붓겠다는 건지도
시는 나아가려 할 때만 들이치는 게 아니어서
멀거니 멈출때
흘린 것을 감아올릴 때
그것을 움푹한 처소에 담아둘 때
그때
-이병률, 『바다는 잘 있습니다』, 문학과 지성, 2017, 72~73p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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