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시네필 다이어리, 의형제와 미하엘 바흐친[피사체가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앵글을 찾아서] - 5. 두 사람의 빛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의형제와 미하엘 바흐친[피사체가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앵글을 찾아서] - 5. 두 사람의 빛

건방진방랑자 2021. 7. 28. 14:30
728x90
반응형

5. 두 사람의 빛

 

 

지명훈: (수척해진 지원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자수하는 건 어떻겠니?

송지원: 제게 사상교육을 해주신 건 선생님이셨어요. 이제 조국을 배신하라고요? 교수님처럼요?

지명훈: (조국을 배신한 자의 괴로움과 스승으로서의 노여움이 복잡하게 오가는 표정으로) 그만 해라.

송지원: (스승을 상처주려 한 것이 아니라, 단지 고민을 털어놓을 친구가 필요했던 그는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힌다.) 지난 6년간 도망만 다녔습니다. 이제 무슨 일이든 결단을 내려야죠. 다시 찾아오지 않겠습니다.

 

 

 

 

그의 얼굴은 조명이 어두울 때 더욱 빛을 발한다. 그의 빛은 쾌활하고 명랑한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밝은 빛이 아니라 슬픔과 고독을 공깃돌 삼아 오랫동안 혼자 놀아본 사람의 빛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빛은 언뜻 어둠으로 비치기 쉽다. 하지만 관객은 그의 직업이 아무리 암울하다해도, 그를 둘러싼 환경이 뿜어내는 음울한 장막을 걷어내고, 거역할 수 없는 그만의 빛을 발견해낸다. 오래전에 남한 사람이 되어버린 은사 지명훈을 만나러 온 날, 송지원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도 날카로운 빛을 뿜어낸다. 장대비가 내리는 밤 사방이 어둠으로 휩싸여 있을수록, 송지원의 얼굴에서는 어둠 속에서 더욱 눈이 시리게 맑은 빛이 뿜어져 나온다. 우직한 대장장이가 단 한 사람의 무사를 위해 오랫동안 묵묵히 벼린 칼끝에서 나오는 빛처럼 단단하고 묵직한 그런 빛.

 

 

 

 

송지원은 그림자의 손아귀에서 아이를 구출하고, 그 누구도 죽이지 않았지만, 그림자는 물론 북쪽에서도 완전히 버려진 신세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림자는 당에서 정해진 표적이었던 김성학 뿐 아니라 남한의 국정원 요원들을 여러 명 살해해버렸고, 그 와중에 그림자는 송지원이 국정원에 자신의 존재를 밀고했을 것이라는 의심까지 한 것이다. 알고 보니 밀고자는 송지원의 오랜 친구였던 손태순이었다. 손태순은 이한규를 통해 남파 공작원의 정보를 심심찮게 전달해주고 있었고, 이한규는 손태순을 믿고 송지원을 이용하여 그림자를 잡으려 한 것이다. 살벌한 총격전 끝에 그림자는 신출귀몰한 액션을 펼치며 이한규 일행의 추적을 보기 좋게 따돌려버린다. 가족 같은 동료들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이한규는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을 지고 팀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송지원의 얼굴에 고인 이야기의 빛이 외부의 어떤 이물질에도 손상되지 않는 투명한 빛이라면, 이한규의 얼굴에 고인 이야기에서는 언뜻 좀처럼 이렇다 할 이 우러나오지 않는 듯 보인다. 그는 얼핏 일상에 적당히 찌들고 세속에 웬만큼 물든 전형적인 40대 남자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의 얼굴에는 우아한 세계의 조폭 아버지가 딸린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참아야 했던 참담한 굴욕이 남아 있고, 살인의 추억에서 잡히지 않는 범인을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끝까지 추격했던 박형사의 무대포식 집념도 섞여 있고, 괴물에서 아무런 힘도 무기도 없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온몸을 던졌던 선량한 아빠의 모습도 남아 있다. 물론 넘버 3놈놈놈에서 보여준 배꼽 빠지는 코믹 액션과 옹골찬 애드립의 기운도 남아 있다. 배우 송강호가 연기해온 이 모든 아버지와 아저씨와 남편의 자연스러운 집대성이 아마 의형제의 이한규일 것이다.

 

송강호가 만들어낸 이한규의 얼굴은 대한민국의 보통 아저씨라면 누구나 견뎌왔음직한 산전수전과 어정쩡한 처세술의 노하우와 어디서도 소리 내어 울 수 없는 가장의 슬픔을 버무린 아름다운 평균치가 아닐까. 이한규의 얼굴이 담아내는 이야기의 빛은 너무도 평범해서 영화의 러닝타임 중 절반이 흐르기까지 금방 쉽게 포착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지극히 평범한 빛의 광원(光源)이 가눌 수 없는 고독과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임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 관객들은 어느새 송지원의 아련한 빛과 이한규의 능청맞은 빛이 절묘한 한 쌍의 언밸런스 커플록(?)을 완성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고통 받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외적 표현성의 충일을 체험하지 못하고, 그것을 부분적으로만 체험할 뿐이며, 그나마도 내적인 자기지각의 언어를 통해서 그러하다. 그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근육의 긴장을 알지 못하며, 자신의 육체의 전체적이며 조형적으로 완결된 몸가짐, 즉 자신의 얼굴에 나타난 고통의 표현을 보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고통 받는 외적인 형상이 나에게 의미화되도록 하는 배경인 맑고 푸른 하늘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그가 심지어 이런 모든 요소를 볼 수 있다고 할지라도, 예를 들어 거울 앞에 있다 할지라도, 그는 이런 요소들에 상응하는 정서적-의지적인 접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미하엘 바흐친, 김희숙·박종소 옮김, 말의 미학, , 2007, 53.

 

 

인용

목차

전체

시네필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