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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시네필 다이어리, 의형제와 미하엘 바흐친[피사체가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앵글을 찾아서] - 3. 타인의 이해가 어렵다는 걸 이해하는 순간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의형제와 미하엘 바흐친[피사체가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앵글을 찾아서] - 3. 타인의 이해가 어렵다는 걸 이해하는 순간

건방진방랑자 2021. 7. 28.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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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타인의 이해가 어렵다는 걸 이해하는 순간

 

 

그림자: (공중화장실 문을 잠그고 송지원과 손태순 두 사람을 빤히 바라보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엉뚱한 제안을 한다) 춤 한번 춰봐라. 여기 아이들 유행하는 춤.

송지원과 손태순: (그림자의 진의를 몰라 한참 머뭇거린다. 그러다가 둘 다 엄청나게 수줍어하며, 정말 어쩔 수 없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남한의 유명 아이돌의 춤을 춘다.)

그림자: 잘한다, . 공부하라고 지원해줬더니! (송지원을 가리키며) 네가 더 민첩하니까 넌 나하고 올라간다. (손태순을 가리키며) 넌 아래 있고.

 

 

남파 공작원 세 명의 급작스러운 조우를 묘사한 감독의 재치가 번뜩이는 장면이다. 베테랑 공작원 그림자의 냉혹한 카리스마와 주도면밀한 성격, 송지원의 내성적이고 순진한 캐릭터가 동시에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의형제는 각각의 인물들이 겪어온 삶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그들의 삶을 압축하는 아주 자잘한 순간들을 예민하게 포착해낸다. 어차피 인간은 타인의 삶 전체를 파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자기 자신의 삶조차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니 말이다. 우리는 서로의 아주 작은 부분들만을 바라보고 그것을 전체를 향해 투사할 뿐이다.

 

 

 

 

국정원 요원과 남파 공작원. 한국 관객에겐 너무도 상투적인 설정이지만 의형제는 그러한 해묵은 상투성에 갇히지 않는다. 느끼한 휴머니즘으로 등장인물의 갈등을 노련하게 포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감독과 관객이 만들어가는 촘촘한 시선의 그물 바깥으로 인물의 잉여가 조금씩 새어나가도록 내버려둔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여전히 송지원이라는 인물을 미처 다 파악하지 못한 것 같은, 그렇지만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전적으로 공감할 수는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좋았다. 관객이 주인공의 장단점이나 라이프 스토리를 장악했다는 느낌이 아니라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우리의 시선이 가닿을 수 없는 스크린의 여백에 인물이 오롯이 존재하고 있는 그 느낌이 따스했다.

 

우리는 스스로의 시야에 갇혀 타인을 바라보며 그것이 그의 전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고, 나 자신이 타인에게 비추는 인상에 자주 불만을 가지며 난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인간이 아니야라고 변명하며 하루를 보내곤 한다. 우리는 정말 타인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그 노력을 포기해야 할까. 우리가 타인을 평가하는 기준은 우리가 그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혹은 우리가 그의 행동을 어떻게 조심해야 할 것인가같은 철저히 이기적이고 경험적이며 편파적인 기준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정말 개개인의 이해타산을 넘어 한 인간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나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해하는 순간, 작가와 주인공 사이의 아름다운 거리감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바흐친은 우리가 한 인간의 전체를 파악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그리고 우리 자신 또한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무지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가 한 인간의 전부를 놓고 마지막으로 그는 선한 사람이다, 악한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다, 이기주의자이다 등등으로 규정할 때에도, 이 규정들은 단지 우리가 그와의 관계에서 취하는 생활 속에서의 실제 입장을 나타낼 뿐이다. 이 규정들은 그를 규정하기보다는 그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고 없는지에 대한 예측을 할 수 있게 해주며, 전체에 대한 그저 우연한 인상이나 고약한 경험적 일반화를 제시할 뿐이다.

삶에서 우리가 흥미 있어 하는 것은 전체적인 인간이 아니라 단지 그의 개별 행동들이며, 이 행동들이란 (……) 어떤 식으로든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것들이다. (……)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개성의 전체를 우리 자신이 가장 적게 지각할 수 있다.

-미하엘 바흐친, 김희숙·박종소 옮김, 말의 미학, , 200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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