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악부시의 형식을 빌려 현실을 고발하다
이 작품을 쓴 연대는 순조 9년(1809)이다. 시인 정약용은 전해에 유배지의 거처를 강진 읍내에서 귤동의 다산초당으로 옮겼다. 그런데 마침 무서운 흉년이 들어 “차마 눈 뜨고 못 볼 정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문제를 해결하자면 근원적 전환을 모색하지 않는 한, 정상을 사실 그대로 중앙에 보고해서 적의한 대책을 세우도록 하는 길 외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럴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 스스로 “찬 바람에 쓰르라미ㆍ귀뚜라미와 더불어 풀숲 사이에서 슬피 우는 것과 다름없는 것[蓋與寒螿冷蛬, 共作草間之哀鳴]”으로 규정했듯, 재야의 시인으로 자기를 선명하게 의식하고 이 시를 쓴 것이다.
「전간기사」는 형식 면에서는 『시경』 내지 4언의 악부시를 방불케 하는 옛 가체(歌體)를 채용하고 있다. 모두 6편인데 서사성이 비교적 뚜렷한 것으로 2편을 뽑았다.
「모를 뽑아버리다[拔苗]」는 극심한 가뭄에 농민이 자기 손으로 변모를 뽑아버리는 내용이다.
제1장에서 모판에 어린 싹이 자라는 모양이 묘사되는데 농민적 감각의 서정성이 짙게 담겨 있다. 모에 바쳐진 정성을 “어린아이 보살피듯[愛之如嬰孩]”이라 하여, 뒤에 나올 내용의 복선이 된 셈이다.
제2장에서 그 애지중지 기르던 모를 마침내 뽑아버리는 사실이 서술되며,
다음 제3, 4장에서는 여자가 그로 인해 괴로워 한탄하는 내용이 독백으로 처리된다. 자기 자식을 대신 바치고라도 모를 살릴 수 있으면 하고 소망하는 대목은, 물론 너무나도 안타까워 나온 푸념이다. 농민의 땅과 곡식에 대한 애정이 과연 어떤가를 실감케 한다.
「오누이[有兒]」는 어머니가 흉년에 어린 남매를 길에 버리고 도망친 내용이다. 시의 현재는 오누이가 제 엄마를 찾아 울부짖는 곳이다. 한 아이의 입을 통해서 사정이 서술되는데 아버지는 먼저 가족으로부터 떠나갔고 어머니는 “알 품은 새”처럼 자식들의 포로가 되어 있었다. 그런 어머니가 제 새끼를 팽개치고 가버린 것이다. 이 어머니는 자식도 내버리는 그런 여자였던가?
그 어머니는 “어미 사슴 새끼 품듯[抱兒如麛]”이란 구절에서 모성이 따사로웠음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장터에 이르러선 / 엿도 얻어주었지요[携至水市 啖我以飴]”라는 아이의 추억에서 구걸하는 삶에서도 모자의 행복은 더욱 두터웠음을 느낄 수 있다. “어린 동생젖을 찾아 빠나 / 젖은 이미 말라붙은 걸 어찌하나요[兒啼索乳 乳則枯萎].” 젖으로 연결된 모자의 사이가 젖이 고갈되었을 때 지속될 수 있을까. 작품은 “제 짝을 끝까지 사랑하지 못하고 / 어미로 자식을 버리[伉儷不愛 慈母不慈]”는 현실을 사회적 문제로 가장 심각하게 제기한 것이다.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 1권, 창비, 2020년, 371~372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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