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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 9. 삼국시대 본문

역사&절기/세계사

중국역사 - 9. 삼국시대

건방진방랑자 2021. 12. 13.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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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삼국시대(三國時代)

 

 

1. 개요

 

 

삼국시대의 정립(鼎立)

 

1. 황건적의 난을 계기로 군웅이 할거하게 되었으며, 이 가운데 천하를 삼분하여 대치하고 있던 촉한(蜀漢)ㆍ위()ㆍ오()를 삼국시대라 함.

 

2. 조조(曹操)는 후한 마지막 황제 헌제(獻帝)를 맞아들여 천자의 명을 빙자하였으며 당대 명문 출신인 원소를 격파하여 중원 통일의 기초를 마련함.

 

3. 208년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대군을 강동에 결집시켜 손권ㆍ유비 연합군과 적벽대전을 벌였으나 대패하여 삼국이 정립하는 형세가 됨.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기

 

1. 삼분하여 대치해 있던 삼국은 위의 뒤를 이은 진() 나라에 의해 멸망됨. ()를 정통으로 삼기에 위진남북조 시대라 부름.

 

2. 촉한을 토벌한 공로로 진왕(晉王)이 된 사마소의 아들 사마염은 265년 위나라로부터 선양을 받아 진() 왕조를 세움.

 

3. 무제(武帝) 사마염은 점점 타락한 정치를 하였으며, 그 다음에 즉위한 혜제도 타락한 정치를 하여 강력한 군사력을 장악하고 있던 왕들이 팔왕(八王)의 난()을 일으킴.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 시대

 

1. 팔왕의 난이 영가(永嘉)의 난을 부르고, 영가의 난으로 이 멸망하여 이민족이 세운 다섯 개의 나라와 한족이 세운 16개 나라가 난립하는 시대가 열림.

 

2. 전왕조의 일족인 사마예는 남경으로 옮겨 다시 (東晉)을 세움.

 

3. 북조(北朝)에는 북위(北魏)ㆍ북제(北齊)ㆍ북주(北周)가 차례로 서게 되고, 남조(南朝)에는 송()ㆍ제()ㆍ양()ㆍ진()이 서게 되나 결국 수()에 의해 통일됨.

 

4. 혼란기 속에 역대로 사회 기강의 버팀목인 유가보다 새로 들어온 불교가 민중 취향에 맞았기 때문에 일시적인 성행을 함.

 

 

 

 

2. 황건적의 난

 

 

태평도(太平道)

 

1. 실의에 빠진 농민들 사이에서 유행했으며 장각(張角)이란 사람이 황제ㆍ노자의 도를 가르친다는 명목의 신앙단체임.

 

2. 장각은 10년 동안 신도의 수가 수십만 명에 이르자 신도들을 36()으로 조작하였으며 거사(渠師)라는 두목을 두어 통솔하게 함.

 

 

황건의 난

 

1. 184년에 태평도의 각 지부가 군사조직으로 전환되어 일어난 대규모 농민 봉기.

 

2. 불에서 흙이 생성된다는 음양오행설로 화덕(火德)인 한()은 망하고 토덕(土德)인 황건의 세상이 온다는 신념으로 황색띠를 동여 매었음.

 

3. 조정에선 회의를 열어 하진(何進)ㆍ황보숭ㆍ노식을 파견하고 유생의 금고를 해제하여 황건과의 결탁을 막음.

 

4. 노식을 하북에, 황보숭과 주준을 영천에 파견했으며 황보숭이 장사에서 파재가 거느리는 황건적에 포위되자 조조가 구원하러 옴.

 

5. 노식은 광종현성(廣宗縣城)까지 패주시키며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 때 뇌물을 보내지 않았단 이유로 해임됨.

 

6. 해임된 노식은 후임에는 동중랑장(東中郞將) 동탁(董卓)이 임명되었으나, 결국 성을 함락시키지 못함.

 

 

황건적의 난 정리

 

1. 3월에 편성된 황건적 토벌군은 10월이 되어서야 장각의 동생 장량을 광종현에서 격파했으며 11월에 황보숭은 장보의 목을 벰.

 

2. 황보숭은 환관의 모함으로 장수의 권한을 몰수당했고 식읍도 삭감 당한 반면, 12명의 환관의 측근은 열후에 봉해짐.

 

 

 

 

3. 후한의 혼란과 원소의 등장

 

 

후한 말기의 혼란

 

1. 후한 왕조는 황건의 난으로 통치기반이 흔들리고 있었으며 영제가 죽자 외척과 환관이 정권을 잡기 위해 싸움을 벌임.

 

2. 14살인 황태자 변()이 즉위하자 그의 어머니 하태후(何太后)가 섭정하게 되었고 그녀의 오빠인 하진(何進)이 정권을 쥠.

 

3. 환관 건석은 당대의 실력자임에도 하진이 정권을 잡자마자 건석(蹇碩)을 죽임.

 

 

원소(袁紹)의 등장

 

1. 때마침 원소가 하진에게 환관을 주살해야 한다고 권하자 결정을 내릴 수 없던 하진은 하태후와 의논하였으나 하태후가 이를 반대하여 제거 계획은 지연됨.

 

2. 원소는 용감한 장수를 불러 모으고 있었으며 하진에게 태후를 위협하자고 함(동탁이 수도로 오게 된 배경).

 

3. 이 소식은 환관의 귀에 들어가 하진을 궁으로 불러 살해함.

 

 

환관 처리

 

1. 원소는 사촌동생 원술과 하진의 부장 오광을 시켜 황궁을 치게 함.

 

2. 외척과 환관은 모조리 죽이니 2천 명에 달했다고 함.

 

 

 

 

 

4. 동탁의 전횡과 동탁 토벌작전

 

 

동탁의 낙양 입성과 횡포

 

1.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동탁은 환관과 원소와의 혼란스런 싸움을 틈타 군대를 이끌고 낙양으로 달려가 낙양을 장악해 버림.

 

2. 낙양을 장악한 동탁은 소제를 폐하고 9살의 협()을 황제로 세우니, 이 사람이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獻帝).

 

3. 하태후를 독살하고 상국(相國)이란 높은 지위까지 올라 황제의 권위를 능가하는 권력을 행사하며 만행을 서슴없이 저지름.

 

 

동탁 토벌 작전

 

1. 횡포가 극심해지자 원소는 낙양을 떠났으며 군벌들은 원소를 맹주로 함곡관 동쪽에서 모임(關東軍).

 

2. 위기감을 느낀 동탁은 헌제를 데리고 전략적 요충지인 장안으로 향하며 낙양에 있던 모든 것을 불사름.

 

3. 관동군이 각자의 이해관계로 움직이지 않자 동탁은 스스로 태사(太師)라 칭하고 일가친척을 요직에 봉해줌.

 

4. 사도 윤()과 부하 여포(呂布)에 의해 살해됨.

 

 

 

 

5. 실력자 원소와 조조의 관도대전

 

 

이곽과 곽사, 그리고 헌제

 

1. 동탁의 부장인 이곽과 곽사는 동탁의 원수를 갚겠단 명분으로 장안을 공격해 왕윤 등을 죽였으며 둘 사이에 곧이어 정권다툼이 일어남.

 

2. 헌제는 인질처럼 끌려 다니다가 196년에 낙양으로 돌아와 잿더미 속에서 목숨만을 부지함.

 

 

관동연합군의 이후 거취

 

1. 군벌들은 자기 기반 구축에 혈안이 되어 있었으나, 조조는 헌제를 허창(許昌)으로 모셔와 군웅 가운데 가장 두각을 나타냄.

 

2. 원소는 황하의 중하류 지역에서 여러 호족들을 복종시켜 최대의 군벌 세력이 되었으며, 조조와의 일전은 관도대전으로 남아 있음.

 

3. 관도대전에서 조조는 수적, 지형적 열세에 있었으나, 냉철한 판단력으로 이겼으며, 2년 후에 원소가 죽고 아들들이 잠시동안 저항했으나 형제 간의 불화로 조조에게 완전히 궤멸됨.

 

4. 조조는 당시 중국의 13 () 가운데 다섯 주를 차지하게 됨.

 

 

 

 

 

6. 손권과 유비, 제갈량을 처음 만나 세상을 논하다

 

 

손권의 세력

 

1. 아버지 손견(孫堅)과 형 손책(孫策)이 단단히 다져논 기반 위에 유능한 장군을 등용해 병력을 키워나감.

 

2. 양자강 중류에서 절강까지의 세력을 병합하여 기세를 떨침(북으로 조조의 영토와 서쪽으론 영토와 접하고 있음).

 

 

유비의 세력

 

1. 유비는 황건적의 난 때 관우ㆍ장비 등과 황건적 토벌군에 가담했으나 안희현 현위가 되었을 뿐, 20년 동안 유랑 생활을 함.

 

2. 유표의 막하에 들어가 중원 진출을 노렸으나 유표가 반대하여 이루지 못하고 차근차근 준비해 나감.

 

 

 

 

 

7. 적벽대전

 

 

조조의 야심과 유종의 항복

 

1. 조조는 중국 통일을 목표로 공격 목표를 남쪽으로 돌려 형주와 강동을 집어 삼키려 함.

 

2. 형주의 유표가 죽고 유종의 뒤를 이은 때였으나, 이미 겁에 질린 유표는 지레 조조에게 항복해 버렸음.

 

3. 진퇴양난 기로에 놓인 유비는 병력과 물자의 중요보급 기지인 江陵을 향해 퇴각함.

 

4. 조조는 유비를 추격해 장판파에서 대승하여 유비는 처자를 버리고 도망쳐야 하는 곤욕을 치름.

 

 

손권과 유비의 연합

 

1. 손권은 조조의 백만대군이 남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군사를 시상(柴桑)에 주둔시킨 채, 정세의 변화를 예의주시함.

 

2. 별다른 대책이 없던 손권은 노숙을 파견했으며 노숙은 유비에게 연합할 것을 제의하자 승낙했고 제갈량을 시상에 파견하여 작전을 짜게 함.

 

3. 두 군대는 적벽에서 대치했으며 조조군이 배 멀미로 배를 이어놓자 황제가 주유에게 화공법을 쓸 것을 청하여 거짓 항복하는 척 배를 보내 조조의 진영을 불바다로 만들어 승리함.

 

 

삼국의 정립

 

1.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승리하였다면, 중국은 통일되었을 것임.

 

2. 유비는 제갈공명의 계책에 따라 형주ㆍ익주를 차지해 촉한(蜀漢)을 세우고, 손권을 강동을 지키고, 동남으로 세력을 확장하여 오()를 세움.

 

 

 

 

8. ()ㆍ촉()ㆍ오()의 삼분천하(三分天下)

 

 

()가 월등한 세력으로도 통일을 못한 까닭

 

1. ():():()=6:2:1의 월등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조정에선 귀족이 황제를 억압하고, 지방에선 호종이 중앙간섭을 차단함.

 

2. 조조 때엔 지방 실력자를 결집하여 나라를 세웠으나, 조비 때엔 귀족세력의 팽창으로 후한 말과 같은 상황이 전개됨.

 

3. 그런 중심세력이 사마의(司馬懿) 세력으로, 총사령관 직분을 이용하여 차츰 자신의 권력을 증대시켜 나가다가 조예가 죽기 직전에 사마의를 태부(太傅)로 삼아 어린 아들 조방(曹芳)을 보좌하게 함으로, 조씨와 사마씨의 권력다툼이 시작됨.

 

 

 

 

 

9. 제갈량의 출사표와 죽음, 그리고 촉한의 멸망

 

 

촉한의 멸망

 

1. 사마소가 등애(鄧艾)와 종회(鍾會)를 장수로 삼아 촉한을 쳐들어가자, 갑작스런 공격에 후주 유선(劉禪)은 당황하고 항복하기로 결정함.

 

2. 후주의 아들 유심(劉諶)은 간언하였으나 후주가 받아들이지 않자 유비의 사당에 나가 통곡한 다음 자결함.

 

3. 후주는 43년 만에 멸망함(서기 263).

 

 

 

 

 

10. 위나라 조씨 정권의 몰락, 오의 멸망과 진()의 성립

 

 

()의 정권을 장악한 사마씨 정권

 

1. 대장군이 된 조상(曹爽), 인척이란 유리함으로 사마의의 지위를 명목상으로 올려줬을 뿐 실권은 빼앗음.

 

2. 새해에 조상(曹爽)이 임금 조방(曹芳)을 따라 멀리 떠나자, 사마의는 쿠데타를 일으켜서 성공함으로 지휘권을 받고 조상의 일가를 물살시킴.

 

3. 이후로 사마사(司馬師)와 사마소(司馬昭) 형제가 정권을 장악했으며 조조의 손자인 조환(曹奐)을 꼭두각시 천자로 세워놓고 모든 정권을 오로지함.

 

 

()의 성립

 

1. 촉이 멸망한 지 2년 후의 사마소가 죽고 그의 아들 사마담(司馬炎)이 즉위했으며 위나라 마지막 임금인 조환은 제위를 양위한다는 조서를 발표함.

 

2. 황제의 인수를 받은 사마염은 나라 이름을 이라 일컫고 수도를 낙양으로 정함.

 

 

()의 멸망

 

1. 손권의 손자인 손호(孫皓)가 제위하고 있었으나 난폭한 정치로 민심을 잃었다.

 

2. 두예(杜預)와 왕준(王濬)으로 를 공략하게 하자, 대항할 힘이 없던 손호는 항복하고 말았음(452년 만에 멸망함).

 

 

 

 

 

 

인용

개관

사기

목차

동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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