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속이 확 터진 늙은이, 다석 류영모
내가 지금 『노자』를 강해하면서 다석 유영모선생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불과 이 땅에서 몇 년전까지 살아있었던 늙은이 즉 노자(老子)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내가 왜 이 늙은이 얘기를 하는고 하니, 이 늙은이야말로 우리나라에 기독교를 전파한 늙은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뭔 말인가? 유영모는 우리민족의 선각자 오산을 일으킨 남강 이승훈(李昇薰, 1864~1930)으로 하여금 『성경』을 처음 읽게 만들었고 그를 기독교에 입교시켰다. 그리고 이 땅에 기독교의 선구자들을 무수히 길러냈다. 그런데 다석은 기독교 성경과, 유교경전과, 도가경전과, 불경이 모두 입에서 떠난 적이 없었고, ‘훈민정음’이야말로 우리민족을 구원할 하느님의 바른[正] 소리[音]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말로 모든 경전을 풀이
했다.
그는 열여섯에 예수를 믿기 시작했는데 항상 예수를 유일한 ‘효자’라고 불렀다. ‘효자’라는 것은 ‘아버님’에게 지극한 효성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것이다. 그는 믿음을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효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죽음이야말로 효성의 완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세상을 한마디로 식(食)과 색(色)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모든 중생이 결코 식과 색을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는 곤요로운 삶을 사는 것을 가엾게 생각했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란 별 것이 아니고, 식과 색을 초월한 자(者)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예수야말로 이 하나님의 유일한 효자라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우선 먹는 문제와 남녀문제에 대하여 확실한 견해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식색에 이끌리면 결국은 진리와는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생각은 이와 같이 간결하고 직절(直截)하다.
우리나라에 기독교를 도입한 기독교의 대부들은 이와 같이 속이 확 터진 ‘늙은이’(老子)들이었다. 그런데 요즈음 기독교인은 속이 밴댕이 콧구멍보다도 더 좁아터질 대로 좁아터진 ‘애송이’들이요, ‘난쟁이’들이요, 대인(大人)아닌 소인(小人)이다. 우리나라에는 너무도 소승기독교인들만 득실거리고 대승기독교인들이 희소한 것이다. 21세기 우리 기독교의 과제는 바로 나와 더불어 『노자』를 읽고, 나와 더불어 『금강경』을 읽는 일이다. 『성서』가 진리라면, 진리와 통하는 모든 진리에 대해 다석(多夕) 유영모선생처럼 마음을 열어야 할 것이다. 유영모선생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신을 ‘숨님’이라고 불렀다. 우리로 하여금 숨쉬게 하는 님, 그 생명의 숨결이면 모두 성신인 것이다. 다석이야말로 우리 곁에서 『노자』를 우리말로 풀면서 숨 쉬고 사셨던 ‘숨님’이었던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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