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성인은 불인하기에 백성들을 풀강아지 취급한다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노자는 또 말한다. 천지(天地)가 불인(不仁)한 것처럼, 성인(聖人) 또한 불인(不仁)해야 한다. 생각해 보라! 우리는 백성들을 어여삐 여기고 사랑하고 은혜를 베풀고 교화하는 대통령을 좋아할지 모른다. 노자는 말한다. 모름지기 대통령은 은혜를 베풀면 안 되고 백성을 사랑한다 생각하면 아니 된다. 그는 인자하면 아니 된다. 그는 잔인해야 한다. 자기 당이라 편들고, 선거전에 자기에게 괘씸하게 굴었다고 미워하고, 정적이라 해서 그 능력이 있음에도 인정치 않고 무조건 음해하기만 한다면 과연 지도자의 자격이 있겠는가? 천지불인(天地不仁)! 성인불인(聖人不仁)! 그 얼마나 통렬한, 핵심을 찌르는 반어(反語)인가!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의 구문에서 ‘以 A 爲 B’는 ‘A를 가지고 써 B를 삼는다’는 뜻인데, 이것은 ‘A를 B로 간주한다’는 뜻이 된다. ‘to regard A as B.’가 된다. 그런데 ‘추구(芻狗)’란 무엇인가? 꼴개, 풀강아지란 무엇인가?
이 구문에 대한 해석은 갑론을박이 많다. 그러나 가장 흔한 해석은 ‘추구(芻狗)’라는 것은 제사에 쓰는 지푸라기로 엮어 만든 강아지 형상인데, 제사의 제물로 쓸 때는 비단옷을 입혀 아주 귀하게 쓰다가 제사가 끝나면 시궁창 아무 곳에나 내버려 짓밟히거나, 태워버리거나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혀 무가치한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천(天)은 하늘이요, 지(地)는 땅이요, 만물(萬物)은 그 양자 사이에서 생성되는 뭇 존재들이다. 그런데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아[不仁], 자기가 생성시키고 있는 만물(萬物)을 풀강아지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인(聖人) 또한 불인(不仁)하여, 자기의 백성(百姓)을 풀강아지로 취급한다는 뜻이다. 우리말에 ‘초개만큼도 생각치 않는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추구는 이 초개(草芥)정도의 표현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일반 해석에 대하여 우리의 천재소년 왕필은 전혀 다른 견해를 제출하고 있다. 왕필은 추구를 한 개념으로 보지 않고, 추와 구를 각각 독립된 의미단위로 보고 그 사이에 많은 논리가 숨어있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땅은 짐승을 위하여 풀을 생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짐승은 풀을 먹는다. 또 사람을 위하여 강아지를 생하는 것도 아니
다. 그런데 사람은 강아지를 잡아먹는다.
이와 같이 천지가 만물에 대하여 조작적인 함이 없으면, 만물은 제각기 그 쓰임을 얻을 뿐이다. 그리되면 넉넉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지혜라는 것은 자기만을 통하여 수립하게 되면 그것은 믿고 맡길 만한 것이 못 되는 것이다.
地不爲獸生芻, 而獸食芻, 不爲人生狗, 而人食狗.
無爲於萬物而萬物各適其所用, 則莫不贍矣. 若慧由己樹, 未足任也.
제일 마지막 구문은 마치 『금강경』의 무아상(無我相)의 설법(說法)을 연상시킨다. 시대적으로 왕필시대에 이미 반야사상이 중국에 들어와 있었다는 문헌상의 논의는 가능하지만, 왕필이 불교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왕필은 독자적으로 자신의 통찰을 형성했을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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