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건물이란 곧 땅의 피륙 속에 하늘을 짜아넣는 것
끝도 없는 이 배경 이야기들을 좀 단절시키고, 『노자』 텍스트의 본론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우리는 천지(天地)라 하면, 우리의 문명의 죄업을 떨치고 돌아갈 수 있는 포근한 삶의 근원, 엄마의 자궁과도 같은 안온함을 연상하기 쉽다. 모든 자연주의의 낭만성이 이러한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노자는 말한다. 천지는 인자하지 않다! 하늘 따이 어질지 않은가. 잘몬을 가지고 꼴개를 삼으니[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多夕 역]
내가 요번에 시드니에서 강연할 때 였다. 요번 여름, KOSID에서 주최한 세계실내건축가 워크숍, WING(World Interiorsfor Next Generation, 첫 글자만 따서 ‘날개’라는 뜻이 된다)의 토론 주제가 바로 ‘흙’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바로 이 ‘흙’이라는 것이 어떻게 건축문화ㆍ건축개념과 관련되는가를 우리 동양철학적 측면에서 해석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나는 바로 이 논문 때문에 시드니에 가게 되었던 것이다. 나의 논문은 홍보될 기회가 없었음인지, 이 땅의 건축가들의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의 이야기를 서울에서 들었던 외국인들이 나의 언설을 하나의 충격으로 받아들였고 나는 그 때문에 시드니의 컨벤션 센타에까지 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 한 구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인체(人體)에 있어서 오행(五行)은 장부의 기능에 상응한다. 금(金)은 폐ㆍ대장이요, 수(水)는 신ㆍ방광이요, 목(木)은 간ㆍ담이요, 화(火)는 심ㆍ소장이요, 토(土)는 비ㆍ위다. 인체에서도 역시 토(土)는 중앙토다.
In terms of the human body, the Five Phases correspond to the organs and viscera. Metal corresponds to the lungs and the large intestines; Water, to the kidneys and the urinary bladder; Wood, to the liver and the gall bladder; Fire, to the heart and the small intestines; and Earth, to the pancreas and the stomach. Even here, in the human body, Earth is Central Earth.
인체의 모든 에너지의 시원이 비ㆍ위인 것이다. 인체에 있어서 비ㆍ위의 일차적 특성은 부숙(腐熟)이다. ‘부숙(腐熟)’이란 ‘썩힘’이요, 썩힘이란 인체에서 ‘소화’라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부숙은 화(火)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비위가 냉(冷)하면 인체(人體)는 정상적 기능을 할 수가 없다. 비위는 더워야 모든 것을 썩히고 기화(氣化)시킬 수 있는 것이다. 비ㆍ위의 모든 소화효소작용을 화(火)라고 표현한 것이다.
The source of all energy within the body is the pancreas and the stomach. The functional office of the pancreas and the stomach is putrefaction(pusuk). “Putrefaction” means “to rot,” and “rotting” appears in the body as the phenomenon of “digestion.” And rotting presupposes the existence of Fire. Accordingly, if the pancreas and the stomach are cold, the body cannot function normally. Only if they are hot, can the pancreas and the stomach accomplish their task of rotting what has been eaten, and convert it into Ch'i. All enzyme functions of the pancreas and the stomach, we call Fire.
흙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땅은 땅으로서 실체론적으로 존재(存在)하는 것이 아니다. 땅은 끊임없는 부숙의 역동체이다. 땅은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부숙의 기운이다. 땅은 미생물의 보고요, 생명의 집합체이다. 땅이 만물을 썩히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의 공간은 온갖 시체로 점유되었을 것이다.
The same goes for the soil. The soil does not exist as an independent substance. The soil is a dynamic body of continuous process of putrefaction. The soil is not an existent. It is the Life Force of putrefaction. The soil is the treasure house of micro-organisms, and the matrix of Life. If the earth did not rot everything that is born of it, every inch of our terra firma would be covered with corpses.
땅은 단순함으로의 복귀다. 땅은 분해와 해체의 마당이며 동시에 합성과 구성의 근원이다. 흙은 만물이 귀(歸)하고 만물이 생(生)하는 자리며, 하늘을 구현하는 어미(母)인 것이다. 흙을 떠난 삶의 우주를 우리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The soil is the returning to simplicity. The soil is theatre of decomposition and deconstruction, and at the same time, the origin of construction and synthesis. The soil is the seat to which a myriad things return, and from which a myriad things are born. As the Mother, the soil is the embodiment of Heaven. It is impossible to imagine the universe of Life apart from the soil.
그리고 나는 제일 마지막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인간도 흙에서 흙으로 돌아가고, 건물도 흙에서 흙으로 돌아간다. 건물에 쓰여지는 흔한 소재들, 진흙, 돌, 유리, 쇠, 나무, 종이 등, 이 모든 것이 흙의 변형이다.
From dust to dust, Man and his constructions return. The common materials that make up a building, clay, stone, glass, metal, wood, paper, etcetera, are all so many transformations of the soil.
흙은 땅이다. 건물이란 곧 땅의 피륙 속에 하늘을 짜아넣는 것이다.
The soil is Earth. To construct a building is weave Heaven(Li) into the fabric of Earth(Ch'i).
이 이야기가 끝났을 때 세계의 건축가들은 나에게 열광적인 기립박수를 보냈다. 결국 우리가 말하는 공간의 창출이란 땅의 피륙 속에 하늘을 짜아넣는 것이라는 이 나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순수한 감동의 정감을 아낌없이 표현해주었던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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