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 존숭만 있고 주자 판본에 대한 검토가 없다
조선왕조에서 『효경』」이라고 하는 것은 동계형의 『효경대의』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중용으로 『효경언해(孝經諺解)』를 만들었는데【선조(宣祖) 때 안동 하회 사람, 홍문관 예문관 대제학(大提學) 류성룡(柳成龍)이 주관하여 만들었다】, 그 언해도 『효경대의」의 경과 전만을 도려내어 그 경전(經傳)에 대해서만 언해를 한 것이다.
그러니까 동계형의 대의주석 부분은 번쇄하다고 생각하여 언해의 대상으로 삼지 않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효경언해』는 사마광의 『효경지해』를 주자가 간오(刊誤)한 대로 배열해놓은 경전에 한글 토를 달고 한글해석을 겸하여 단 것이다. 『효경언해』로서 조선왕조의 최고본(最古本)인 경진자(庚辰字) 귀중본은 불행하게도 이 땅에 보존되어 있지 않다. 현재 일본 동경 존경각(尊經閣)에 소장되어 있는데 타가와(田川孝三) 씨가 『조선학보(朝鮮學報)』 제27집에 논문과 함께 그 영인본을 실어 놓았기 때문에 다행히 그 전모를 엿볼 수 있다(본서의 말미에 수록됨). 류성룡의 발문(跋文)은 만력(萬曆) 17년 6월 하한(下幹), 그러니까 선조 23년, 1589년이다.
이제 내가 조선의 유자들이 거의 『효경』을 읽지 않았다고 모두(昌頭)에서 설파한 뜻을 간파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주자에 대한 존숭만 있었고 엄밀한 판본에 대한 인식이 전무했다.
이러한 인식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학계에도 계승되고 있다. 나 도올의 정보도 아직 불비(不備)한 측면은 있겠으나, 어떠한 고전을 대하든지 그 판본에 대한 인식이 선행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여기 그 치열한 탐구의 한 족적을 남겨 놓음으로써 후학들에게 계발의 한 실마리가 되었으면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조선 땅에서 21세기에 『효경』을 새롭게 읽어야만 하는 이유이다.
▲ 내 인생에 너무도 깊고 깊은 감명을 전해준 동굴 프레스코 벽화인데, 다석(多夕) 선생의 효 기독론(Xiao Christology)의 강렬한 징표로서 해석될 수 있다.
이것은 터키 카파도키아(행 2:9, 벧전 1:1에 나오는 성서지명)의 우흐랄라 계곡(Ihlara Valley) 절벽에 위치한 성다니엘 동굴교회(the Church of St. Daniel)의 벽화이다. 9세기 비잔틴 시대의 작품이다. 예수는 엄마 마리아가 애통해하며 지켜보는 중에 십자가에 매달려 운명하였고, 엄마 마리아는 예수가 승천한 후에도 앞서 보낸 아들을 생각하면서 슬프게 살았다.
이제 기나긴 슬픔의 세월을 보낸 엄마 마리아가 이 땅의 삶을 마감하려 하고 있다. 오른쪽에 남편 요셉이 호곡하고 있고 승천한 예수가 이번에는 땅에 내려와 상주(喪主)로서 엄마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다. 예수 왼쪽에 서있는 상은 가브리엘천사의 모습이다.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예수의 수태(受胎)를 고지했던 장본인이다. 지금은 예수가 엄마 마리아의 영혼을 가브리엘에게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옛 설화에도 일찍 죽은 아들이 엄마가 죽었을 때 다시 빈소에 나타나 통곡하는 것을 동네사람들이 보았다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엄마 마리아에게는 가슴에 못을 박는 불효였다. 예수는 불효자로서 다시 나타나 어머니에게 마지막 효도를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 얼마나 눈물겨운 모습인가?
기독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가 전부가 아니다. 서구전통 속에서도 무한히 다양한 민간전승이 있었다. 그것을 다 묵살하고 오직 편협한 27서 정경전통만 살아남은 것이다. 초기 기독교인들에게도 효(孝)는 삶의 중요한 테마였다. 나는 아나톨리아(Anatolia) 핫산다그 만년설 고원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이 벽화의 성스러운 이미지의 전율 속에서 울고 또 울었던 기억이 이 순간 새롭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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