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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효경한글역주, 5장 조선왕조 행실도의 역사 - 『속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연이어 펴낸 중종 본문

고전/효경

효경한글역주, 5장 조선왕조 행실도의 역사 - 『속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연이어 펴낸 중종

건방진방랑자 2023. 3. 3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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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삼강행실도이륜행실도를 연이어 펴낸 중종

 

 

중종 6828일의 조령의 내용에, 국조 이래의 열녀ㆍ효자 중에서 삼강행실도에 언급되지 않은 자들을 편찬하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 명령은 중종 9(1514) 10월 신용개(申用漑, 1463~1519: 김종직의 문인) 등에 의하여 간행된 속삼강행실도(續三綱行實圖)로써 구현되었다.

 

기존의 삼강행실도가 우리나라 사람보다는 중국사람의 윤리실천 사례를 들고 있다면효자의 경우 35명 중 31명이 중국인, 4명만이 한국사람이다. 누백포호(婁伯捕虎), 자강복총(自强伏塚), 석진단지(石珍斷指), 은보감오(殷保感烏)4 케이스, 속삼강행실도는 조선왕조의 윤리실천사례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효자의 경우 36명이 실렸는데 중국인이 3명뿐이고 33명이 조선왕조의 사람이다우리나라의 사대주의를 나타내는 극단적 용어 용례를 하나 소개하면, 삼강행실도에서 국조(國朝)’라는 것은 명나라를 의미한다. 그리고 속삼강행실도의 용례에서 본조(本朝)’는 명나라를 의미하고 본국(本國)’은 조선왕조를 뜻한다. 명나라가 본 조정이고, 조선왕조는 그 조정에 속한 제후국이라는 뜻이니 과도한 아부이다. 보다 비근한 우리나라의 사례를 수록함으로써 일반백성들이 자기들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이웃들의 이야기로 느껴 쉽게 본받게 하려 함이었다우선 지명이 진주, 거창, 동래, 청주, 춘천, 목천, 풍기, 안악 등으로 나오니까 친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편제에 있어서도 충신을 5명만 수록함으로써, ()ㆍ충()ㆍ열() 중에서 충의 덕목을 대폭 줄여버렸다. 이 책의 보급대상이었던 일반백성들이 군주에게 직접적으로 충성할 기회는 많지 않으므로, 부모에게 효도하고 남편에 순종하는 가치관에 집중하는 것이 대중세뇌에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중종의 대중세뇌작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조광조와 더불어 김굉필(金宏弼)의 동문인(同門人)김안국(金安國, 1478~1543)이 정원(政院)에 재직할 때, 경연에서 중종에게 오륜 중에서 삼강(부자, 군신, 부부)삼강행실도에 다루어졌으나 그 나머지 이륜, 즉 장유(長幼)와 붕우(朋友)의 윤리가 다루어진 책이 없으니, 이러한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도 편찬하는 것이 좋겠다고 상계(上啓)하자 중종은 예조(禮曹)에 명하여 따로 국()을 설치하여 찬진(撰進)케 한다.

 

그러나 김안국은 이 일이 실현되기 전에(중종 12) 경상도 관찰사로 나간다. 그래서 김안국이륜행실도의 편찬사업의 책임을 전사역원정(前司譯院正) 조신(竈神)에 맡긴다. 김안국은 조신에게 형제도(兄弟圖)에 종족(宗族) 항목을 부속시키고, 붕우도(朋友圖)에 사생(師生) 항목까지 부속시켜 전체 4항목으로 만들라고 당부한다형제 25ㆍ종족 7ㆍ붕우 11ㆍ사생 5, 4 항목 48 케이스.

 

다음 해 중종 13년 이 편집이 완성되자, 김안국은 그것을 자기 관할 하에 있는 경상도 금산군(金山郡: 지금의 김천)에서 간행하였다. 그 초간본은 현재도 경상북도 월성군(月城郡) 옥산서원(玉山書院)에 소장되어 있다. 이 간행은 기묘사화가 일어나기 바로 전 해의 사건으로 조광조가 막강한 실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조광조의 지치주의(至治主義)의 실내용이 이런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의 간행에까지 미치고 있었으니 그들 비젼의 실상을 규탐하는 한 실마리가 될 것이다. 더구나 이륜행실도에 실린 48 케이스가 전부 중국인이며 우리나라 사람은 한 명도 수록되어 있지 않다.

 

조광조가 제거된 후 말년에도 중종삼강행실도의 보급에 박차를 가한다(중종 31), 그리고 중종 33(1538)에는 예조판서가 된 김안국이 이륜행실도를 많이 간행하여 반포하기를 건의하자 그대로 하라고 전교한다. 하여튼 중종은 삼강행실도의 보급에 가장 적극 대처했던 임금이라고 말할 수 있다.

 

 

 

 

17306월 영영개간(嶺營開刊), 연대 국학자료실 소장. 광진(光進)이 지극한 효자였기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3년상을 치룬 후에나 결혼을 했다. 그러나 그의 동생 광안(光顔)은 일찍 결혼하여 엄마를 생전에 모시었다. 광진이 부인을 들이게 되자, 제수씨가 가계부와 곳간열쇠를 새댁형님에게 보내었다. 그러나 광진은 생전에 엄마를 모신 제수가 열쇠를 갖는 것이 마땅하고 그것이 엄마의 뜻이었다고 하며 돌려 보내자, 형제가 부둥켜 안고 울었다.

우리나라 예산(禮山)의 의좋은 이성만 형제 이야기(형님 아우간에 서로 걱정하여 밤에 볏단을 갖다 놓는다)와 같은 미담이다. 요즈음 부모유산 싸움에 패가망신하는 꼴을 보면 이러한 형제의 우애는 참으로 소중한 것이라 하겠다.

 

 

인용

목차

원문 / 呂氏春秋』 「孝行/ 五倫行實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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