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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종횡무진 한국사, 1부 깨어나는 역사 - 신화에서 역사로, 분명한 시작④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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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1부 깨어나는 역사 - 신화에서 역사로, 분명한 시작④

건방진방랑자 2021. 6. 9.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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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시작

 

 

요컨대 미작 경영은 한반도의 지리적 조건에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따지고 보면 이후 역사 시대 내내 우리 민족이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처음부터 여건에 맞지 않는 미작 농경을 주업으로 삼은 데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단군신화가 미작 농경을 암시하고 있다는 건 어떻게 봐야 할까?

 

신화의 내용에서는 비슷한 점이 없지만 문명의 성격에서는 단군신화와 대단히 흡사한 게 바로 중국의 건국신화다. 중국의 경우 삼황오제(三皇五帝) 시대에 이미 초보적인 농경술이 발달했다. 삼황(三皇)의 시대에 중국에서는 농사가 발명되었으며, 오제(五帝)의 시대에는 농법이 완성되었고, 바로 뒤에 하()나라를 건국하는 우()는 황허의 치수(治水)에 성공함으로써 중국의 왕조 시대, 즉 본격적인 역사시대를 열었다. 즉 중국의 건국신화는 중국이 미작 중심의 농경문명으로 자리잡는 과정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단군신화는 그런 중국의 건국신화를 본떠서 후대에 만들어진 게 아닐까? 단군신화의 그 분명한 시작은 어느 시점에선가 창조되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아니 그보다 단군은 혹시 중국에서 한반도로 와서 미작 농경문명을 전래한 인물은 아닐까동남아시아처럼 기후 조건 자체가 유리한 경우가 아니라면, 쌀 농사에서는 무엇보다 계절의 변화를 알게 해주는 역법이 중요하다. 중국에서는 오제(五帝)의 첫 왕인 황제(黃帝)의 시대에 역법이 만들어졌다고 전하는데, 그 덕분에 중국은 동남아시아 문명보다 훨씬 선진적인 문명을 만들 수 있었고 일찍부터 왕조 시대를 열 수 있었다. 지금은 누구나 달력을 쉽게 구입해서 사용하지만, 과거에는 천체의 운행을 알지 못하면 달력을 만들 수 없었다. 달력이 없다면 왕의 생일 같은 행사도, 군대가 모이고 이동하는 날짜도 확정할 수 없을 테니 국가 체제가 성립할 수 없다. 아마 단군은 중국의 역법을 가져와서 한반도인들에게 전해주었을 것이다. 달력이 있어야만 고조선이라는 국가 체제가 생겨날 수 있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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