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한 시작④
요컨대 미작 경영은 한반도의 지리적 조건에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따지고 보면 이후 역사 시대 내내 우리 민족이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처음부터 여건에 맞지 않는 미작 농경을 주업으로 삼은 데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단군신화가 미작 농경을 암시하고 있다는 건 어떻게 봐야 할까?
신화의 내용에서는 비슷한 점이 없지만 문명의 성격에서는 단군신화와 대단히 흡사한 게 바로 중국의 건국신화다. 중국의 경우 삼황오제(三皇五帝) 시대에 이미 초보적인 농경술이 발달했다. 삼황(三皇)의 시대에 중국에서는 농사가 발명되었으며, 오제(五帝)의 시대에는 농법이 완성되었고, 바로 뒤에 하(夏)나라를 건국하는 우(禹)는 황허의 치수(治水)에 성공함으로써 중국의 왕조 시대, 즉 본격적인 역사시대를 열었다. 즉 중국의 건국신화는 중국이 미작 중심의 농경문명으로 자리잡는 과정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단군신화는 그런 중국의 건국신화를 본떠서 후대에 만들어진 게 아닐까? 단군신화의 그 ‘분명한 시작’은 어느 시점에선가 창조되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아니 그보다 단군은 혹시 중국에서 한반도로 와서 미작 농경문명을 전래한 인물은 아닐까【동남아시아처럼 기후 조건 자체가 유리한 경우가 아니라면, 쌀 농사에서는 무엇보다 계절의 변화를 알게 해주는 역법이 중요하다. 중국에서는 오제(五帝)의 첫 왕인 황제(黃帝)의 시대에 역법이 만들어졌다고 전하는데, 그 덕분에 중국은 동남아시아 문명보다 훨씬 선진적인 문명을 만들 수 있었고 일찍부터 왕조 시대를 열 수 있었다. 지금은 누구나 달력을 쉽게 구입해서 사용하지만, 과거에는 천체의 운행을 알지 못하면 달력을 만들 수 없었다. 달력이 없다면 왕의 생일 같은 행사도, 군대가 모이고 이동하는 날짜도 확정할 수 없을 테니 국가 체제가 성립할 수 없다. 아마 단군은 중국의 역법을 가져와서 한반도인들에게 전해주었을 것이다. 달력이 있어야만 고조선이라는 국가 체제가 생겨날 수 있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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