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동양사, 태어남 - 1장 중국이 있기까지, 신화와 역사의 경계 본문

역사&절기/세계사

동양사, 태어남 - 1장 중국이 있기까지, 신화와 역사의 경계

건방진방랑자 2021. 6. 3. 07:03
728x90
반응형

 1장 중국이 있기까지

 

 

신화와 역사의 경계

 

 

나는 바오밥 나무란 교회만큼이나 큰 나무라는 것을 어린 왕자에게 이야기해주었다.

그는 영리하게도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바오밥 나무도 크기 전에는 조그마할 거 아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아무리 큰 나라라도 처음에 생길 때는 아주 작고 평범하게 마련이다. 고만고만한 여러 마을이 뒤섞여 살아가다가 어느 마을에서 약간 인구가 늘고 기름기가 돈다 싶으면 느닷없이 자기가 이 지역의 주인입네 하고 큰소리치고 나서면서 이웃 마을들을 차례로 복속시킨다. 그런 식으로 어느 정도 나라의 꼴이 갖추어지면 이내 기원을 창조하기 시작한다. 물론 여기에는 전해지는 이야기나 약간의 자료를 바탕으로 하는 사실적 근거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기원 이야기의 기본 골격은 싹수부터 달랐다는 것이다. 이것이 건국신화라는 인데, 잘 만들어놓으면 신생국의 정통성에 큰 도움이 된다.

 

중국인들만큼 정치권력의 정통성을 따지는 민족도 없다. 중국의 역대 한족(漢族) 왕조들은 언제나 개국 초기부터 이전 정권의 적통(嫡統)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한다. 이전 정권이 백성들의 원망을 받았을 경우에는 몇 다리 건너뛰어 옛날의 좋았던 때를 이어받았다고 주장한다(나중에 보겠지만 중국 역사에서 그 좋았던 때란 대개 기원전 10세기 무렵에 존재했던 주나라를 가리킨다).

 

그렇게 전통을 강조하는 이유는 중국이 원래 농경 사회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농경민족은 유목민족처럼 떠돌아다니며 생활하지 않고 한 곳에 정착해 여러 대에 걸쳐 살아간다. 이런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조상이다. 조상 대대로 같은 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는 말이 자긍심의 원천이자 정통성의 기반이다.

 

 

 황제가 발명했다는 수레. 황제는 탁록(涿鹿)의 들판에서 동이족의 우두머리인 치우(蚩尤)의 대군에게 승리함으로써 중원을 지켜내고 중국 문명을 보호했다고 한다. 이 수레는 황제가 발명해 당시 전쟁에서 큰 몫을 했다는 지남차(指南車).

 

 

그렇게 조상을 중시한다면 당연히 최초의 조상이 있을 것이다. 중국 민족이 최초의 조상으로 받드는 인물은 황제(黃帝)직위로서의 황제(皇帝)가 아니라 특정한 사람의 이름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다. 그런 위상에 걸맞게 황제는 화려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밖으로는 동이족의 치우와 싸워 이겨 중원(황하 중류)의 비옥한 평원 지대를 정복했는가 하면, 안으로는 문자와 역법, 화폐, 수레 등을 발명하고 보급했다. 가히 팔방미인이며 불세출의 영웅이다.

 

그러나 기원에 관한 이야기는 항상 과장과 신화화를 포함한다. 어느 한 사람이 불현듯 나타나 안팎으로 튼실한 중국이라는 나라를 우지끈뚝딱하고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황제는 기원전 2704년에 태어나 일곱 살에 임금이 되었다고 전하지만, 언제 죽었다는 기록조차 없는 걸 보면 실존 인물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추측하자면 황제는 어느 한 사람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그 당시에 존재했던 지배 집단 자체를 가리키는 이름이었을 것이다.

 

위대한 조상이나 아버지의 이름을 후손들이 물려받는 관습은 구약성서에도 나오고 중세 유럽에도 있다.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1908세까지 살았다는 우리 역사의 단군도 그럴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설사 단일 인물이 아니라 지배 집단이라 하더라도 그전까지 흔적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을 완전히 새로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모든 사람은 부모가 있어야 하니까. 그렇다면 황제의 조상은 누구였을까?

 

 

황제의 초상. 중국 민족의 조상으로 받들어지는 황제(黃帝)는 전형적인 중국인의 용모에 의젓한 황제(皇帝)의 풍채다. 하지만 아무리 불세출의 영웅이라 해도 이 한 사람의 힘으로 문자와 역법, 화폐, 수레 등 온갖 문물과 사회제도를 발명했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비록 황제의 분묘와 비문이라고 알려진 유적이 전해지지만, 그는 개인이라기보다는 당시에 존재했던 지배 집단 자체를 가리키는 이름일 것으로 추측된다.

 

 

황제도 역사적으로 실존한 인물로 어려울 정도라면 그 이전은 더욱 그럴 것이다. 그래서 황제 이전의 시대는 역사보다 신화에 속한다. 실제로 그 시대를 해주는 전설이 있다. 중국의 건국신화에 당하는 삼황(三皇)의 전설이다. 삼황이란 신농씨(神農氏)ㆍ복희씨(伏羲氏)ㆍ수인씨(燧人氏)를 가리키는데, 이들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신화인 존재다. 신농씨는 농경을 발명했고, 씨는 수렵술을 발명했으며, 수인씨는 불을 발명했다. 이 삼황이 문명의 기반을 닦았고, 그 토대 위에서 황제가 중국이라는 나라를 세운 것이다. 삼황은 신화적인 존재이므로 더 이상의 조상을 찾을 필요는 없다. 말하자면 삼황은 인류 역사의 시작이고, 황제는 중국 역사의 시작인 셈이다.

 

 

인신우두(人身牛頭)의 신. 삼황 가운데 하나인 신농(神農)의 초상이다. ‘농업의 신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쟁기를 만들었고 백성들에게 화전농법과 약초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원래는 사람의 몸에 소의 머리를 가졌다고 전하는데, 그래서인지 머리에 뿔 모양의 형상이 돋아 있다.

 

 

황제 이후에도 전설은 이어진다. 그에 따르면 황제 다음에 전욱(顓頊)ㆍ제곡(帝嚳)ㆍ요()ㆍ순()의 네 임금이 중국을 다스린다. 이 다섯 명의 임금을 통칭해 오제(五帝)라고 부른다. 삼황(三皇)과 오제의 시대중국의 건국 시대이자 신화의 시대가 된다. 역사학자들은 삼황신화로 보는 데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하지만, 오제에 관해서는 갈린다. 오제를 실존 인물로 보는 이도 있고, 신화적 인물로 이도 있다. 하지만 실존 인물이었다 해도 오제는 특정한 개인이라기보다는 지배 집단을 통칭하는 이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점은 연도로도 어느 정도 확인된다. 오제의 시대가 끝나는 시기는 대략 기원전 2000년 무렵이다. 그런데 황제는 기원전 28세기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약 800년의 간극이 생기는데, 오제(五帝)의 다섯 임금만으로 메우기에는 시대적 차이가 너무 크다. 오제는 다섯 명의 임금이라기보다 다섯 개의 왕조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오제 가운데 마지막 두 임금인 요()와 순()은 오늘날까지도 꽤나 유명세를 치르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덕으로 나라를 다스려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고 한다.

 

日出而作 日入而息 해 뜨면 나가 일하고 해 지면 들어와 쉬네
鑿井而飮 耕田而食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밭을 갈아먹고 사는데,
帝力何有於我哉 제왕의 권력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당시에 널리 불렸다는 격양가(擊壤歌)라는 노래다. 따지고 보면 임금이 필요 없는 세상, 정치가 백성들의 관심이 되지 않는 사회야말로 언제 어디서나 가장 이상적인 사회일 것이다. 그래서 공자(孔子)요순시대(옹야28, 헌문45)’라는 말을 만들어 쓴 이래 지금까지도 요순시대라고하면 태평성대, 동양식 유토피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요순시대의 통치 덕목 가운데 후대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선양(禪讓)의 제도다. 요임금은 백성들 사이에 신망이 높은 을 발탁해 여러 가지 시험을 치른 끝에 왕위를 넘겼다고 하는데, 이것이 선양이다. 또 순임금도 한동안 나라를 다스린 다음 ()임금에게 왕위를 넘겼다. 우는 특히 치수(治水) 사업에 큰 공을 세워 명망이 높았다고대 농경 사회에서 홍수를 다스리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치수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등 다른 문명의 발상지에서도 공통적인 중요 과제였다.

 

그러나 중국의 역대 왕조들은 항상 요순시대의 전통인 선양을 덕목으로 꼽으면서도 막상 선양을 몸소 실천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하기야 현대의 공화정에서도 최고 권력자의 지위를 순순히 내주는 경우는 없지 않는가? 그렇게 보면 요순시대의 선양도 미덕이라기보다는 아직 왕조의 세습이 이루어지기 전인 원시 국가 형태여서 가능했을 것이다.

 

 

치수 작업을 지휘하는 우임금. 돌에 새겨진 부조물인데, 맨 왼쪽에서 백성들을 독려하는 사람이 우임금이다. 그는 자주 범람하는 황하의 치수에 13년간이나 전력을 기울여 마침내 성공을 거두었다.

 

 

인용

목차

한국사 / 서양사

신화와 역사의 경계

구름 속의 왕조를

중화 세계의 영원한 고향

기나긴 분열의 시대

최초의 통일을 향해

동양 사상의 뿌리(유가 / 묵가 / 법가 / 도가)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