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Calendar
해마다 1월이 되면 한동안은 새 연도에 익숙하지 않아 헤매게 마련이다. 사실 계절이 바뀌고 나이를 먹는 것은 자연현상이지만, 단 하루 차이로 연도가 바뀐다는 것은 사람이 만든 인위적인 제도일 뿐이다. 작년 12월 31일보다 올해 1월 1일이 훨씬 더 추운 것도 아니고, 그 사이에 내 몸이 팍 늙어 버린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기분은 그렇게도 다를까? 그저 달력을 바꾸어 걸었을 뿐인데……
기록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달력을 전해 준 것은 중국이다. 최초의 황제로 알려진 진 시황제(秦 始皇帝, BC 259~210)는 이미 기원전 200년경에 달력을 만들어 사용했다. 이 달력은 1년의 길이를 365.25일로 하는 것이었는데, 이 점에서 오늘날의 양력과 상당히 비슷하다. 중국의 달력이 한반도에 전래된 것은 서기 674년이다.
“문무왕 14년 정월에 당나라에 가서 숙위하던 대나마(大奈麻, 신라의 벼슬 이름) 덕복전(德福傳)이라는 사람이 역술(易術)을 학습하고 돌아와 새 역법으로 개정하였다[十四年春正月, 入唐宿衛大奈麻德福傳, 學曆術還, 改用新曆法]. -김부식(金富軾), 『삼국사기(三國史記)』”
바로 이 구절 때문에 마치 중국에서 수입해서 쓴 달력이 우리나라 최초의 것인 양 여기고 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때까지 한반도에 달력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달력을 처음 도입했다는 말이 아니고 그 전에 쓰던 달력을 바꾸었다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신라는 왜 그때까지 쓰던 달력을 중국에서 도입한 달력으로 바꾸었을까? 여기에 우리 고대사의 수수께끼를 푸는 하나의 열쇠가 있다.
지금은 누구나 몇천 원만 주면 달력을 사서 볼 수 있지만, 천문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에는 달력을 만든다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달력의 원래 기능은 날짜를 확인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천체의 움직임을 잘 살펴야 하는데,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천문학이 발달하지 못했으므로 과학적인 면에서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하늘의 움직임을 감히 알려고 한다는 것은 일반 백성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일이었다.
사실 달력이 없으면 나라가 있을 수도 없다. 나라는 정치와 행정이 필요한 법인데, 달력이 없으면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느 달 어느 날에 관리들이 회의를 하고, 군대를 소집할 것인지를 정할 수도 없고, 심지어 지엄하신 왕의 생신이 언제인지도 모르는데 그걸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한반도에는 문무왕(文武王, 재위 661~681)이 중국의 달력을 도입해서 사용한 674년 이전에도 고구려, 백제라는 나라들이 있었다. 또한 그 이전에도 삼한과 고조선이라는 나라들이 있었다.
만약 중국에서 달력을 들여오기 이전에 전혀 달력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때까지 한반도에 있었던 고대 국가들의 존재를 모조리 부정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우리나라는 나름대로 달력을 사용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우리 역사 기록에는 달력에 관한 사항이 전하지 않으나 일본의 고대 역사서인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중국 달력이 백제를 거쳐서 일본으로 전해졌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미 서기 554년에 백제의 역학자가 일본으로 건너간 일이 있으며, 602년에는 백제의 승려가 달력을 일본에 전했다. 이렇게 보면 674년에 중국에서 달력을 처음으로 도입했다는 『삼국사기』의 주장은 단지 신라를 중심으로 본 것일 뿐이다.
그런데 문무왕은 왜 굳이 그 전까지 잘 쓰던 달력을 중국 달력으로 바꾸었을까? 그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김춘추(金春秋)의 아들로서 삼국통일의 주역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불완전하게나마 삼국통일을 이룬 데는 당나라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676년에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었으니 달력을 도입한 674년이라면 불과 그 2년 전의 일이다. 신라는 중국의 힘을 빌려 삼국통일을 이루기 위해 모든 제도를 중국식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고구려와 백제에 비해 힘이 열세이던 신라는 648년 진덕여왕(眞德女王) 때 이미 스스로 자청해서 중국의 의식(儀式)을 따르게 되며, 왕을 비롯한 모든 관리들이 중국식 옷을 입게 된다. 중국의 힘을 빌리기 위해 사실상 속국 행세를 한 것이다. 드디어 대망의 삼국통일을 이루고 나서는 달력마저 중국 것을 들여다 쓰게 된다. 중국 달력을 쓰기 시작하면서 한반도의 모든 제도와 문물은 중국식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달력은 날짜를 확인하는 기능 이외에 한 국가의 자주성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이 점은 오늘날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서력기원을 사용하는 데 비해 이슬람력을 쓰는 중동【마호메트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서기 622년이 이슬람력으로 원년이다】, 주체력을 쓰는 북한【김일성이 태어난 1912년이 주체력으로 원년이다】이 서구 세력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저항 세력으로 남은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1895년 조선의 고종이 일본 제국주의의 압력으로 그 해의 음력 11월 17일을 1896년 1월 1일로 고치면서 우리나라에 양력이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다【그 때문에 1895년 11월 18일부터 그해 말일까지의 기간은 우리 역사에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양력과 음력의 병용인데, 둘 다 우리 고유의 달력은 아니다. 음력은 중국에 무릎을 꿇은 결과로, 또 양력은 일본에 무릎을 꿇은 결과로 사용하게 되었으니 둘 다 굴절된 역사의 흔적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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