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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동양사, 2부 자람 - 4장 세상의 중심이었던 중국, 분열 속의 발전: 『삼국지』의 막후에는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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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동양사, 2부 자람 - 4장 세상의 중심이었던 중국, 분열 속의 발전: 『삼국지』의 막후에는②

건방진방랑자 2021. 6. 5.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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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막후에는

 

 

소설 삼국지는 이 과정이 주요 내용이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은 그 막후에 있다. 삼국 정립기는 전란으로 얼룩진 시대였으나 그와 동시에 여러 가지 내외적 개혁과 쇄신이 일어났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삼국이 대립하면서 경쟁적으로 부국강병에 힘썼기 때문이다. 그러는 가운데 최초의 통일 제국인 진ㆍ한 시대의 경험에서 노출된 모순이 해결되고 새로운 통일을 위한 토대가 조성되었다.

 

특히 삼국 중 가장 강성했던 위는 후대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각종 개혁을 단행했다. 새로운 관리 임용 제도인 9품 중정제(九品中正制), 병역제도인 병호제(兵戶制), 세금 제도인 호조제(戶調制) 등 본격적인 국가 체계의 골격이 모두 이 무렵에 만들어졌고, 둔전제(屯田制)도 새로이 정비되었다.

 

후한 시대는 외척과 환관이 중앙 정치를 주무르고, 호족이 지방행정을 좀먹은 탓에 늘 쓸 만한 인재가 부족했다. 그러나 인재가 없는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많은 편이었다. 앞에서 보았듯이, 후한 중기에 발언권을 높였다가 정권의 철퇴를 받고 한 발 물러난 유학 세력은 그 뒤로도 계속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발전해 상당한 인력 집단을 형성하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그 인재를 어떻게 하면 적절히 발탁하고 중용하느냐는 것이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한 정책이 9품 중정제(九品中正制). 이 제도는 각 군마다 중정이라는 인재 발탁요원을 배치해 관내의 인재를 아홉 가지 등급에 따라 분류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인재가 필요할 경우에는 그 등급을 참고로 임용할 수 있었다.

 

또한 삼국시대는 긴 전란기였으므로 병력의 장기적인 공급이 중요했다. 종전까지 전통적인 병역제도는 백성을 징발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전란이 잦아 백성들의 이동이 심한 데다 호족들이 마음대로 유민들을 흡수해버린 탓에 병력을 충원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런 사태를 시정하기 위해 조조가 도입한 병호제(兵戶制)는 병역을 대상자 개인이 아닌 그 가족 전체에게 맡기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도망치면 아들에게, 형이 도망치면 아우에게 병역이 계승되었다. 요즘으로 치면 연좌제보다 심한 악법이었으나 당시에는 합리적인 개선이었다. 그전에는 일반 백성들 전부가 평생 동안 병역의 의무를 지고 국가의 부름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징발되었지만, 병호제가 시행되면서 병역 대상자가 확정되었고, 시기도 대충 예측이 가능해졌다. 물론 국가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국가 상비군을 마련할 수 있어 대만족이었다.

 

 

 ▲ 『삼국지 중국 역대 왕조에서는 새로 들어선 왕조가 전 왕조의 역사서를 편찬하는 것이 전통이었다. 사진은 위 오촉 삼국 정립기의 역사를 다룬 서진의 진수가 지은 삼국지의 일부다. 소설 삼국지는 후대인 원대의 소설가 나관중(羅貫中)이 쓴 삼국지연의. 역사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소설보다 역사서 삼국지. 이 책에는 한반도 고대사에 관한 사실도 기록되어 있다. 우리 고대사에도 고구려의 역사서인 유기(留記)신집(新集), 백제의 서기(書記), 신라의 국사(國史)등이 있었다고 하나 모두 전하지 않는다.

 

 

인용

목차

연표

십팔사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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