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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동양사, 3부 섞임 - 9장 도발로 수미일관한 일본, 내전을 국제전으로: 대외로 연장된 하극상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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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동양사, 3부 섞임 - 9장 도발로 수미일관한 일본, 내전을 국제전으로: 대외로 연장된 하극상②

건방진방랑자 2021. 6. 9.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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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로 연장된 하극상

 

 

1592413일 새벽, 일본은 16만 명의 대군으로 조선 침략을 개시했다. 최종 목표는 중국이니까 조선 정벌은 일본에 있어 예선전에 해당한다.

 

초기 전황은 실제로 예선전이나 다름없었다. 개전 초기 일본군은 승승장구하면서 부산에 상륙한 지 한 달이 채 못 되어 한성을 점령했다. 믿었던 신립이 충주 탄금대에서 무너졌다는 소식이 도성에 전해진 429일에 조선 국왕 선조는 수도와 백성을 버리고 야반도주해버렸다.

 

 

▲ 야반도주하는 선조의 모습이다.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한 장면. 

 

 

전쟁이 이대로 진행되어 마무리되었더라면 일본은 실제 역사보다 300여 년 앞당겨 한반도를 접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국운은 아직 다하지 않았다. 육지에서 연전연승하던 일본군은 바다에 나타난 의외의 강적에게 연전연패하면서 크게 기세가 꺾였다. 바로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의 등장이다. 이순신은 54일 첫 출동에서 일본의 함선 37척을 부수고 아군의 피해는 경상 1명에 그치는 믿지 못할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이것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7월에 전개된 한산대첩에서는 유명한 학익진을 펼치며 적선 60여 척을 바다에 수장시켜버린다. 이후 일본은 해전 자체를 기피하게 될 정도였다.

 

한편 육지에서는 무력한 조선 관군이 하지 못한 몫을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이 대신했다. 김천일, 곽재우, 고경명, 서산대사 등의 병장들이 이끄는 조선 의병들은 절대 열세의 전력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일본의 정예군을 물리쳐 적의 북상을 효과적으로 저지했다. 마땅히 전쟁의 한 당사자가 되어야 할 중국이 참전하는 것은 이렇게 전황을 어느 정도 복구해놓은 다음이다. 7월에 정식 군대도 아닌 국경 수비대 일부를 파견했다가 일본에 대패하자 잔뜩 겁을 집어먹은 명은 싸울 것이냐, 말 것이냐를 놓고 황실에서 5개월이나 논의만 하다가(당시 명은 무능한 신종의 치세에 당쟁이 만연했다) 12월에야 이여송(李如松, ?~1598)에게 4만 명의 병력을 주어 압록강을 건너게 했다. 이후 전쟁은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강화 교섭이 진행되기 시작한다.

 

 

동래성을 공격하는 일본군 부산에 상륙한 일본군은 하루 만에 동래성을 함락했다. 일본군은 조총으로 무장했고, 병력의 규모에서도 우세했다. 육전에서 조선은 일본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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