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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섞임 - 9장 도발로 수미일관한 일본, 동양식 제국주의의 결론: 군국주의의 말로 본문

역사&절기/세계사

동양사, 섞임 - 9장 도발로 수미일관한 일본, 동양식 제국주의의 결론: 군국주의의 말로

건방진방랑자 2021. 6. 9.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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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국주의의 말로

 

일본 군부는 중일전쟁을 속전속결로 끝낼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 그것은 허세가 아니었다. 만주사변 이래 여러 차례 벌어진 국지전에서도 연전연패한 중국이 전면전으로 나온 일본을 막아내기는 어려웠다. 당시 중국은 경제적으로 수십 년 동안 서구 열강의 반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군사적으로는 아편전쟁 이래 국제전에서 단 한 차례도 승리하지 못한 약소국이었다. 따라서 일본의 전략은 승패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타격을 가해야만 중국이 항일을 포기할 것이냐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1938년의 난징 대학살은 바로 중국의 항복을 강요한 일종의 대규모 무력시위였다.

 

그러나 중국의 저항은 의외로 완강했다. 일본군은 곳곳의 전투에서 연전연승했으나 중국은 거점을 차례차례 빼앗기면서도 항전을 계속했다.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중국의 국민당 정부는 난징에서 우한으로, 우한에서 다시 충칭으로 쫓겨 가면서도 항복하기는커녕 장기전으로 맞섰다. 일본은 주요 거점과 교통로를 완전히 장악했지만 그런 이나 으로 중국 대륙이라는 을 지배할 수는 없었다. 중국의 동해안 전역을 일본군이 장악한 가운데 전선은 교착되었다. 중국의 저력은 국공합작이 아니라 중국 민중 자체에서 나오고 있었다. 일본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 정부 차원의 전쟁에서는 패한 적이 없었으나 이번 전쟁의 상대는 중국 정부가 아닌 중국 민중 전체였던 것이다.

 

1938년에 일본 의회에서는 군부 주도로 국가총동원법이 통과되었다. 이제 군부는 일본 내의 기업들은 물론 온 국민의 개인적 재산과 인력도 마음대로 동원할 수 있게 되었고, 국민의 일상생활까지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 일본의 경제 사정이 그만큼 악화되었음을 반증했다. 노동력을 군대에 차출당했으니 농업과 공업 생산력이 감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나 그보다도 시급한 것은 당장 사용할 군수품이었다. 특히 미국이 중국을 지원하게 되면서, 미국으로부터 석유를 수입하고 있던 일본은 자칫하면 장기전은커녕 단기전마저도 제대로 치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국제적 상황은 일본에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193991,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했고 곧바로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선전포고했다.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것이다. 전 세계에 포연이 가득한 가운데 일본이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하나밖에 없었다. 속전속결 전략은 실패했지만 어차피 시작한 전쟁이니 승리해야만 했다. 일본은 경제 위기를 타개하고 석유와 고무 등 군수물자의 원료를 확보하기 위해 남쪽으로의 확전을 결심했다.

 

인도차이나 반도를 비롯해 동남아시아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영국과 프랑스는 유럽 전선에 몰두하느라 이 지역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다만 당시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유 있는나라인 미국의 태도가 문제였다. 과연 미국은 일본군이 인도차이나에 진출하자 강경하게 나왔다. 19407, 미국은 일본이 우려한 대로 석유를 비롯한 군수품의 대일 수출을 허가제로 바꾸었다.

 

이제 아시아에서 일본의 상대는 중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었다. 일본은 한때 추종하는 모델이었던 영국마저 버리고 독일에 접근했다. 19409,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 세력인 독일, 이탈리아와 삼국 군사동맹을 체결해 자신의 색깔을 확실히 드러내면서 암암리에 미국과의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진주만 기습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는 선전포고라는 게 없다. 1942127, 일본 공군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했다. 사진은 미국 전함 테네시호가 화염에 휩싸인 채 침몰하는 모습이다.

 

 

19416, 유럽에서 독일은 소련과의 불가침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소련을 공격했다. 개전 초기부터 이 무렵까지 세계대전의 전황은 추축국 측에 유리했다. 10, 미국과의 교섭에 실패한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麿, 1891~1945) 총리가 물러나고 드디어 전쟁의 주역이 일선에 등장했다. 일찍부터 중일전쟁을 주창했고 이제 대미 전쟁을 계획한 육군장관 도조가 총리를 겸임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군부는 비공식적으로 정부를 움직였으나 이때부터는 공식적으로 정부가 되었다.

 

그해 121, 천황은 도조가 주장하는 미국과의 전쟁을 허가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일본은 여느 때처럼 아무런 선전포고도 없이 미국의 태평양 해군기지가 있는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했다. 그때까지 제2차 세계대전은 명칭과 달리 유럽에서만 전개되었지만, 이제 태평양전쟁의 발발로 명실상부한 세계대전이 되었다.

 

개전 초기 6개월 동안 일본군은 미국을 밀어붙이며 남방 정책을 전개해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인도차이나는 물론 필리핀, 인도네시아를 순식간에 점령했고, 서쪽으로는 미얀마, 남쪽으로는 태평양 중부의 제도들에까지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손에 넣었다.

 

그러나 미국은 진주만 기습의 충격에서 벗어나면서 서서히 반격을 개시했다. 19426, 태평양 중부의 미드웨이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미군은 일본의 주력함대를 격파하고 태평양의 제해권(制海權)을 되찾았다. 일본은 이때부터 밀리기 시작하다가 19432월에 육군이 진출해 있는 최남단의 섬인 솔로몬 제도의 과달카날에서 치명상을 입었다. 마침 같은 달 유럽 전선에서도 독일이 소련에 결정적인 패배를 당해 세계적으로 전황이 역전되었다. 이윽고 일본군은 교착 상태에 있던 중국 전선에서도 밀려나기 시작했다.

 

1944년 여름부터는 사이판을 점령한 미군이 폭격기로 일본 본토 공습을 시작했다. 일본 전국의 도시 주민들이 밤마다 무차별 폭격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정부는 여전히 전쟁을 독려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사실상 전황이 완전히 기울었다.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마저 19455월에 항복했으나 일본은 끈질기게 버텼다.

 

19458, 미국은 일본에 극약 처방을 하기로 결정했다. 86, 미군 폭격기 B-29는 일본 본토에 수없이 투하한 여느 폭탄이 아닌 새로운 폭탄을 탑재하고 일본으로 날아가 히로시마에 투하했다. 바로 원자폭탄이었다. 사흘 후에는 나가사키에도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 당시까지 만들어진 모든 원자폭탄이 사흘 간격으로 일본에 투하된 것이었다. 나가사키에 투하되던 날 소련이 참전을 선언하고 극동 전선에 적군(赤軍)을 투입했다.

 

끈질긴 일본 군국주의도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었다. 결국 일본은 1945815일에 천황의 대국민 방송을 통해 항복을 선언했다. 다음 달 2일에는 미국 전함 미주리호의 함상에서 항복 문서에 정식으로 조인했다. 이로써 100년 남짓한 기간 동안 눈부신 도약을 보였던 제국주의 일본호는 침몰했다.

 

19세기 중반 250년의 쇄국을 깨고 개국한 이래 일본은 초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문호를 연 지 20년 만에 제국주의의 대열에 올랐고, 다시 20년 뒤에는 전통의 강국 청을 물리쳤다. 10년 뒤에는 제국주의 열강의 하나인 러시아를 이겼고, 10년 뒤에는 세계 5강에 올랐다. 다시 20년 뒤에는 중국 대륙을 침략했고, 마지막으로 세계 최강 미국을 상대로 세계 제패에 나섰다. 군사 부문에 국한되기는 했으나 인류 역사상 이처럼 짧은 기간에 이처럼 화려한 성장을 보인 나라는 없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일본은 급행료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동북아시아 전역을 전쟁으로 몰아넣었고, 이웃 나라들에 막심한 피해를 주었다. 결국에는 스스로도 비참한 패전을 겪었고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어쩌면 모든 성장의 절차들을 전쟁으로 통과했고 결국 전쟁으로 무너진 군국주의야말로 일본식 제국주의, 동양식 제국주의의 최종적 귀착점이었는지도 모른다.

 

 

일본식 제국주의의 결론 도쿄에 정박한 미국 전함 미주리호의 함상에서 일본 측 대표가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일본식 제국주의, 군국주의의 결론이었다. 앞에서 지켜보는 사람은 미국의 맥아더다.

 

 

인용

목차

한국사 / 서양사

군부라는 개념

중국을 먹어야 일본이 산다

군국주의의 말로

정치와 경제의 부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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