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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섞임 - 9장 도발로 수미일관한 일본, 동양식 제국주의의 결론: 정치와 경제의 부조화 본문

역사&절기/세계사

동양사, 섞임 - 9장 도발로 수미일관한 일본, 동양식 제국주의의 결론: 정치와 경제의 부조화

건방진방랑자 2021. 6. 9.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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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와 경제의 부조화

 

경제에 대해서는 성장과 발전이라는 말을 쓸 수 있으나 정치는그렇지 않다. 정치는 경제를 담아내는 그릇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경제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기는 해도 그것을 성장이나 발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정치의 목적은 성장과 발전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경제와 조화를 이루는 데 있다(예를 들어 자본주의 시대에 팽창한 경제를 봉건제의 정치로 감당할 수는 없다).

 

그래서 경제는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데 반해 정치는 다소 인위적으로 진행된다. 이 점에서 서양사와 동양사는 차이를 보인다. 동양의 역사에서도 경제는 꾸준히 성장하고 발전했지만, 정치는 경제와 조화를 이루기는커녕 어긋나고 충돌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점을 잘 보여주는 예가 일본의 역사다. 일본은 1868년의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으로 급속한 근대화와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그래서 마치 정치가 사회 발전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유신의 빛나는 성과의 배후에는 경제적 토대가 있었다. 17세기 에도 시대 이래로 평화와 안정 속에서 일본은 인구가 늘고 경제가 번영을 누렸다. 그런 기틀이 없었다면 바쿠후가 타도되지도 않았을 테고 유신 자체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유신의 성과를 최종적으로 말아먹은 것은 정치였다. (제국주의적 침략의 부도덕을 논외로 한다면) 일본은 한반도를 차지하고 중국을 반식민지 상태로 몰아넣음으로써 세계적인 강국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그렇게 얻은 힘을 가지고 아시아를 제패하려다가 결국 패망하고 말았는데, 그 원인은 정치에 있었다. 군부가 정부를 대신하는 전형적인 군국주의 정치의 필연적인 결과였던 것이다.

 

경제와 달리 정치는 오랜 역사를 거치며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개혁되지 않는다. 그런 정치의 속성에 내재한 문제점은 전후 일본의 현대사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일본은 입헌군주국이기 때문에 의회 선거에서 최대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내각을 구성해 정치를 담당한다. 그런데 1947년 총선거로 첫 내각이 구성된 이래 1990년까지 무려 스무 번에 가까운 내각 교체가 있었다. 평균 수명이 2년밖에 안 되는 셈이다. 심지어 1989~1990년에는 불과 1년여 만에 내각이 세 차례나 교체되는 기록을 세웠다.

 

내각 교체(공화국으로 치면 정권 교체에 해당한다)의 원인도 정책의 실패보다는 부패, 뇌물, 독직, 스캔들 등 후진적인 정치 문화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새 내각이 구성되는 과정도 파벌과 우두머리에 따라 정치인들이 이합집산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멀리 보면 바쿠후 시대의 정치나 유신 이후의 천황제 정치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중국의 경우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왕조시대의 유산을 버리지 못하듯이, 일본도 형식상으로는 의회민주주의 제도를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오랜 왕조시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오늘날 동양 국가들의 공화정이나 의회 민주주의가 대부분 그렇다. 현대 정치제도는 서구에서 오랜 역사를 통해 탄생하고 발달한 것인데, 동양 사회는 그런 역사가 부재한 상태에서 제도만 도입했으니 처음부터 몸에 딱 맞기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서구의 정치제도가 아예 동양의 신체에 맞지 않는지, 아니면 시간이 지나고 역사가 쌓이면 맞게 될지는 아직 확실히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경제는 전후 패전의 충격을 딛고 눈부신 성장률을 보였다. 특히 경제 복구에 나선 초기에 한국전쟁이 터진 것은 일본 경제에 중요한 도약의 계기를 제공했다. 전쟁을 주도한 미국과 국제연합군이 전쟁에 필요한 물자와 서비스를 일본에서 조달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외환 보유고는 한국전쟁 전 2억여 달러에 불과했으나 3년 뒤 전쟁이 끝났을 때는 무려 다섯 배로 치솟았다. 이 자본은 일본이 단순히 전후 복구에 그치지 않고 세계 경제의 호황기인 1960년대에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까지 20여 년 동안 일본 경제가 연평균 10퍼센트 이상의 고도성장을 기록한 데는 그런 배경이 있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일본은 세계적인 경제 대국의 반열에 올랐다. 일본의 자동차와 전자 제품은 세계 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두었고, 남아도는 돈을 주체하지 못한 일본 기업들은 미국의 유수한 기업들을 사들일 정도로 호기를 부렸다. 그러나 몸집이 불어난 경제를 정치가 담아내지 못하는 현상은 여전했다.

 

세계 경제 호황기의 끝물이던 1980년대를 거치면서 일본 경제는 서서히 밑천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비대해진 경제의 흐름을 올바르게 인도하려면 무엇보다 금융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눈부신 실물경제의 성장에 취한 정치권은 경제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혹은 경제성장이 영원하리라고 믿고) 낡은 체제를 고수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일본 경제는 끝도 없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발목을 잡은 것은 부동산과 주식이었다. 은행이 부동산을 담보로 잡고 자금을 대출하는 전근대적 관행, 자본 투자를 곧 주식 투자로 인식하는 잘못된 투자 문화는 부동산과 주식의 가격이 폭락하자 곧바로 위기를 맞았다. 그동안 하늘 모르고 치솟던 부동산과 주식이 거품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일본 경제는 거품경제(bubble economy)거품경제는 18세기 초 영국의 경험에서 나온 용어다. 당시 해상무역을 하고 있던 남해회사(South Sea Company)가 재정 위기를 맞자 주식을 남발해 해결하려다가 투기 과열과 주식시장의 대혼란을 낳은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오늘날에는 금융이 실물경제와 유리되어 경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는 경제구조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된다라는 수치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불황이나 경제 위기라는 말은 경제만을 가리키는 듯하지만, 실은 정치가 경제에 맞추어 변화하지 않은 게 근본 원인이다(한 예로, 금리는 경제 용어지만 금리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권의 경제 정책이다). 고도로 발전한 실물경제에 맞지 않게 취약한 일본의 금융 기반은 경제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경제와 정치가 연동된 문제다. 또한 정치는 역사적으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역사의 문제이기도 하다.

 

오늘날 세계는 첨단의 시대를 맞고 있지만 의외로 첨단은 역사와 통한다. 역사에는 생략이 없으므로 비약이나 도약이 없다. 그러나 지름길은 있다. 향후 일본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지름길을 발견한다면 역사를 귀중한 동력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러지 못한다면 역사는 계속 일본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인용

목차

한국사 / 서양사

군부라는 개념

중국을 먹어야 일본이 산다

군국주의의 말로

정치와 경제의 부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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