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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9부 사대부 국가의 시대 - 6장 조선판 중화세계, 당쟁의 정점③: 기사환국, 갑술환국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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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9부 사대부 국가의 시대 - 6장 조선판 중화세계, 당쟁의 정점③: 기사환국, 갑술환국

건방진방랑자 2021. 6. 21.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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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쟁의 정점

 

 

숙종(肅宗)1680년에 첫 아내가 두 딸만 남기고 죽은 뒤 계비인 인현왕후(仁顯王后, 1667 ~ 1701)를 들였지만 후사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바람을 피운 것은 반드시 후사를 낳겠다는 마음보다 아직 이십대의 젊은 혈기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본능이었을 것이다(게다가 왕에게는 얼마든지 외도의 권리가 있었다), 그가 건드린 여자는 후궁도 아니고 역관(譯官) 집안 출신의 미천한 궁중 나인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왕과 연애한 덕분에 그녀는 숙원(淑媛)을 거쳐 소의(昭儀)로 수직 상승한다. 이윽고 그녀는 1688년에 아들까지 낳아 숙종(肅宗)의 총애를 한몸에 받으면서 희빈(嬉嬪)의 지위에까지 오른다. 정비의 이름조차 실록에 전하지 않으니 그녀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후대에 장희빈(張嬉嬪)으로 유명세를 떨친 여인이 바로 그녀다.

 

비록 왕자인 것은 사실이나, 왕비는 물론 정식 후궁의 소생도 아니므로 그 왕자를 세자로 책봉할 수 있느냐는 것은 당연히 논란거리가 된다. 송시열(宋時烈)을 비롯한 집권 서인들은 왕비에게서 소생이 나올지 모르니 세자 책봉을 미루자고 한다. 실제로 인현왕후의 나이는 아직 이십대 초반이니까 충분히 일리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숙종은 장희빈과의 애정도 있거니와 국왕의 고유 권한에까지 사대부(士大夫)들이 일일이 간섭하는 현상에 이제 신물이 난 상태다. 이런 왕의 심기 변화를 야당인 남인들이 그냥 흘려보낼 리 없다. 남치훈(南致雲, 1645 ~ 1716)과 이익수(李益壽, 1653 ~ 1708) 등 소장파 남인들은 그런 숙종(肅宗)의 마음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결심을 굳힌 숙종은 노론을 대거 숙청하고 송시열과 김수항에게 사약을 내렸는데, 이것이 이른바 기사환국(己巳換局)이다.

 

국왕의 의지일까, 남인의 책동일까? 어느 쪽이라고 확실히 잘라 말할 수는 없으나 아무튼 전과는 달리 국왕의 의지가 상당히 개입된 사건인 것만은 분명하다. 나아가 숙종은 인현왕후를 폐위시키고 장희빈을 정비로 삼았는데, 미천한 출신에다 교활한 성품의 새 왕비에 대해 아마 남인들도 적잖이 반발했을 것이라고 본다면, 숙종의 각오가 야무지긴 했던 모양이다. 이 점은 얼마 뒤 그의 마음이 변하면서 다시금 정국이 바뀌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들만 낳았다고 왕비가 되는 건 아니다. 아무리 신분이 달라져도 역시 출신 성분은 속일 수 없다. 이런 마음이었을까? 숙종은 갈수록 간교함이 심해지는 장희빈에게 점차 싫증을 느낀다. 그럴수록 애틋해지는 게 조강지처다. 이번에도 역시 집게의 마음을 읽고 공생하려는 말미잘이 있다. 야당이 되면서 노론과 소론의 구별이 희미해진 서인들이 힘을 합쳐 인현왕후의 복위를 도모한다. 1694년 이 사건이 발각되어 집권 남인들이 들고 일어났지만 철퇴를 맞은 것은 오히려 그들이다. 숙종(肅宗)5년 전과 정확히 반대되는 조치를 내린다. 남인들이 일제히 숙청되었고 서인들이 재집권했으며, 장희빈이 폐위되고 인현왕후가 복위되었다. 이른바 갑술환국(甲戌換局)인데, 벌써 몇 번째 환국인지 셈하기도 골치아플 정도다. 다만 전과 다른 점은 환국이 거듭될 수록 국왕의 개입 정도가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조선은 다시 왕국으로 부활할 수 있을까?

 

 

 중화의 세계지도 둘 다 조선에서 그린 세계지도인데, 위쪽은 15세기 초반의 것이고, 아래쪽은 19세기 초반의 것이다. 400년이라는 시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의 중심은 중국이고 조선은 두번째로 큰 나라다(15세기에는 없던 유럽이 19세기의 지도에는 아주 작게 그려져 있다). 중화의 세계관은 이렇듯 시대착오적일 뿐 아니라 정신병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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