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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한글역주, 옹야 제육 - 25. 문(文)으로 확장하고 예(禮)로 집약하라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옹야 제육 - 25. 문(文)으로 확장하고 예(禮)로 집약하라

건방진방랑자 2021. 6. 24.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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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으로 확장하고 예()로 집약하라

 

 

6-25.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는 문()의 세계에 있어서는 가급적 널리 배워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반드시 예()로써 집약시켜야 한다. 그리하면 도에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6-25. 子曰: “君子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弗畔矣夫!”

 

공자는 동아시아 문명권에 있어서는 학문의 방법론을 제시한 최초의 사 상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학문방법에는 항상 변증법적 대립과 지양의 관계항 목들이 있다. 여기서도 박()과 약()은 변증법적 길항관계에 있다. ()은 넓히는 방향이고 약()은 집중시키는 방향이다. ()은 넓히는 방향이고 예()는 집약시키는 방향이다. 그러니까 문()은 넓은 휴매니티의 교양을 의미하는데 반하여 예()는 어떤 넓은 교양을 집약시키는 핵심적 주제의식ㆍ문제의식을 말 하는 것이다. 예를 단순히 사소한 에티켙이나 도덕적 규범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라는 것은 천지의 경위(經緯)를 압축한 것이다. 천지의 질서를 압축하여 인간세에 효칙(效則)하여 놓은 것이다. 고대인들의 예의 관념을 잘 나타내주는 글이 좌전소공(昭公) 25년조에 실려있다. ()나라의 정경(正卿) 조간자(趙簡子)가 정()나라의 공자 대숙(大叔)에게 주왕실에 관하여 행동거지를 취하는 예()를 묻자, 대숙은 그런 것은 의식(儀式)일 뿐이지 예()가 아니라고 말한다[是儀也, 非禮也]. 그래서 조간자가 그러면 예()가 도대체 무엇이냐 물으니, 대숙은 돌아가신 대부(大夫) 정자산(鄭子産)에게서 들은 말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대저 예라는 것은 하늘의 벼리요, 땅의 마땅함이요, 사람이 행하여야 할 바이다. 천지의 핵심적 질서를 사람이 실제로 본받아 구현하는 것이 예인 것이다. 하늘의 밝음을 본받고, 땅의 성향을 잘 파악하여, 육기(六氣)()ㆍ양()ㆍ풍()ㆍ우()ㆍ회()ㆍ명(), 두주(杜注)의 생성을 알고, 오행(五行)()ㆍ화()ㆍ토()ㆍ금()ㆍ수(), 두주(杜注)을 잘 활용하는 것이다. ()는 오미(五味)()ㆍ노()ㆍ신()ㆍ고()ㆍ감(), 두주(杜注)가 되고, 또 그것이 빛으로 발현되어 오색(五色)()ㆍ황()ㆍ적()ㆍ 백()ㆍ흑()이 되고, 소리로서 비율을 갖추면 오성(五聲)()ㆍ상()ㆍ각()ㆍ치()ㆍ우()이 된다. 이러한 예의 질서를 흔들어버리면 혼란한 세상이 되고 백성은 그 본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 때문에 예를 제정하여 인간의 본성을 받들고자 하는 것이다. 육축(六畜)()ㆍ우()ㆍ양()ㆍ계()ㆍ견()ㆍ시()과 오생(五牲)()ㆍ록(鹿)ㆍ균()ㆍ랑()ㆍ토()과 삼희(三犧)()ㆍ지ㆍ종묘宗廟에 바치는 희생의 제도를 만들어 다섯 가지 맛[五味]을 받드는 것이요, 구문(九文)()ㆍ룡()ㆍ화()ㆍ충()ㆍ조()ㆍ화()ㆍ분()ㆍ미()ㆍ보불(黼黻)과 육채(六采)()ㆍ백()ㆍ적()ㆍ흑(), ()ㆍ황()와 오장(五章)()ㆍ황()ㆍ적()ㆍ백()ㆍ흑()의 무늬의 제도를 만들어 다섯 가지 색깔[五色]을 받드는 것이요, 구가(九歌)구공(九功)을 찬양하는 아홉 종류의 노래, 옛 노래 장르일 수도 있다와 팔풍(八風)()ㆍ석()ㆍ사()ㆍ죽()ㆍ포()ㆍ토()ㆍ혁()ㆍ목()이라는 악기 소재에 따라 다른 소리가 나는 여덟 가지 음색(tonality)의 민요과 칠음(七音)()ㆍ상()ㆍ각()ㆍ치()ㆍ우()ㆍ변궁(變宮)ㆍ변치(變徵)과 육률(六律)황종(黃鐘)ㆍ태주()ㆍ고선(姑洗)ㆍ유빈(蕤賓)ㆍ이칙(夷則)ㆍ무역(無射)의 양성의 제도를 만들어 다섯 가지 소리[五聲]을 받드는 것이다. 군신 상하의 제도를 만들어 땅의 마땅함을 본받고, 부부 내외의 제도를 만들어 음양의 법칙을 구현하고, 부자ㆍ형제ㆍ고모 누님ㆍ생질ㆍ외삼촌. 친족ㆍ인척의 가족제도를 정하여 하늘의 밝음을 본받고, 군주의 정사ㆍ신하의 관청사무ㆍ백성의 의무를 정하여춘ㆍ하ㆍ추ㆍ동사시의 정치를 순조롭게 하며, 형벌과 재판의 위엄 백성들로 하여금 두려움과 기피함이 있게 함으로써 천둥과 벼락이 사람을 살육하는 현상에 유비가 성립하게 하며, 온화하고 자애롭고 혜택을 베풀고 조화시키는 정치를 하여, 하늘이 만물을 낳아 기르고[生殖] 장육(長育)시키는 것을 본받게 하는 것이다. 백성은 좋아하고 싫어하고, 기뻐하고 노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감정으로 충만되어 있는데, 이것은 본시 천지의 육기(六氣)()ㆍ양()ㆍ풍()ㆍ우()ㆍ회()ㆍ명()를 본받아 생겨난 것이다. 그러므로 본받을 것을 잘 살피고, 어울림을 마땅하게 하면, 호오ㆍ희노ㆍ애락의 육지(六志)를 잘 통제할 수가 있다. 슬퍼함에는 소리내어 우는 곡()과 눈물이 따르고, 즐거워함에는 노래와 춤이 있으며, 기쁨에는 베품과 나눔이 있고, 노함에는 싸움과 다툼이 있다. 기쁨은 좋아함에서 생겨나고, 노함은 싫어함에서 그러니 감정 중에서도 호ㆍ오가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행동을 신중하게 하며 모든 법령을 신험하게 하며, 화ㆍ복ㆍ상ㆍ벌을 원칙에 맞게 엄격히 함으로써, 죽음의 길과 삶의 길을 예로써 제정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이다. 죽는다는 것은 싫어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은 인간을 즐겁게 만들고, 싫어하는 것은 인간을 슬프게 만든다. 그러므로 애()와 락()의 정도가 상실되지 아니 하면, 인간이 본래부터 천지로부터 받은 본성에 합치되는 삶을 살게 되므로, 자신을 장구(長久)히 보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조간자가 듣고 말하였다: “대단하다! 대단하다! 정말 대단하다! 예의 웅대함이여!”

대숙이 다시 대답하여 말하였다: “예라는 것은 상하의 기강이며, 천지의 경위(經緯)이며, 백성이 인간다웁게 살아가는 까닭이옵니다.”

夫禮, 天之經也. 地之義也, 民之行也. 天地之經, 而民實則之. 則天之明, 因地之性, 生其六氣, 用其五行. 氣爲五味, 發爲五色, 章爲五聲, 淫則昏亂, 民失其性, 是故爲禮以奉之. 爲六畜, 五牲, 三犧, 以奉五味, 爲九文, 六采, 五章, 以奉五色, 爲九歌, 八風, 七音, 六律, 以奉五聲.爲君臣上下, 以則地義, 爲夫婦外内, 以經二物, 爲父子, 兄弟, 姑姊, 甥舅, 昏媾, 姻亞, 以象天明, 爲政事, 庸力, 行務, 以從四時, 爲刑罰, 威獄, 使民畏忌, 以類其震曜殺戮, 爲温慈, 惠和, 以效天之生殖長育. 民有好惡, 喜怒, 哀樂, 生于六氣. 是故審則宜類, 以制六志. 哀有哭泣, 樂有歌舞, 喜有施舍, 怒有戰鬪, 喜生於好, 怒生於惡. 是故審行信令, 禍福賞罰, 以制死生. , 好物也, , 惡物也, 好物, 樂也, 惡物, 哀也. 哀樂不失, 乃能協于天地之性, 是以長久.”

簡子曰: “甚哉, 禮之大也!”

對曰: “, 上下之紀, 天地之經緯也, 民之所以生也.”

 

 

나는 고려대학교 철학과 학부시절에 이 문장을 접했을 때, 진실로 충격을 받았다. 고대인들이 예()라는 그 하나의 컨셉(concept)을 이토록 정치(精緻)하고 치열하게 생각했다는 것이 나에게는 거대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우리는 예()라고 하면 무조건 근세 사회과학적 접근방법을 적용하여 일단 인위적 제도(man-made institutions)라는 가설에서 출발하게 마련이지만, 아무리 이 들의 사유가 유치하다 하더라도 근원적으로 인간세의 제도나 질서의 근원을 대자연에 근거 지우려는 노력은 서양의 막연한 천부설(天賦說)이나 신수설(神授說)보다도 더 리얼하고 더 과학적인 사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내가 공자는 귀신 즉 디비니티(Divinity) 그 자체를 예악화시켰다고 한 것도 바로 이러한 예 론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상기의 문장에서 놀라운 것은 예의 근본을 결국 인간의 호ㆍ오로 귀결시키고, 호ㆍ오의 근본을 생ㆍ사로 귀결시킨다는 것이다. 결국 예()란 죽음의 길 아닌 삶의 길이다. 예가 질곡이 되어 사람을 죽이면 그것은 예가 아니다. 예는 사람을 살리는 생생지도(生生之道)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동방에서는 모든 사회과학(social science)이 결국 인간이라는 주체를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면 인간은 결국 천지대자연의 구현체이므로, 사회과 학적인 모든 탐구가 결국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라는 대명제를 벗어날 수가 없다. 결국 예라는 것은 인간이 천지와 더불어 어떻게 조화롭게 살아가느냐! 오늘날 생각해보면 정말 치열한 에콜로지적 사유(ecological thinking)의 소산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본 장에서 말하는 예로써 집약시킨다[約之以禮]’는 의미를 보다 본질적으로 포괄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위정(爲政)15에서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하고,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라고 한 것도 똑같은 변증법적 사유를 나타낸다. 여기서 학()이란 박문(博文)의 세계요, ()란 약례(約禮)의 세계인 것이다. ()이나 문()은 모두 확대의 과정(broadening process)이고, ()나 예()는 모두 집약의 과정(focusing process)이다. 이 양자는 시간의 선후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항시 동시적인 것이다.

 

博之(Broadening Process) 約之(Focusing Process)
(인문학 일반) (핵심적 질서)
(폭넓은 배움) (철학적 집약)

 

이 장의 내용은 안연(顔淵)15에 한 번 더 나온다. 12-15 텍스트에는 군자(君子)’가 빠져있다. 그리고 자한10에 안연의 말로서 같은 테마가 진술되고 있다.

 

 

()’라고 발음한다. ‘()’은 그 핵심을 집약하는 것이다. ‘()’은 위배 됨이다. ‘군자(君子)’는 배움에 있어서 넓음을 희망한다. 그러므로 문자의 세계에 있어서 고찰하지 아니 함이 없고, 지킴의 세계에 있어서는 그 핵심을 원한다. 그러므로 행동함에 있어서도 반드시 예로써 하나니, 이와 같이 하면 도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 音扶. , 要也. , 背也. 君子學欲其博, 故於文無不考; 守欲其要, 故其動必以禮. 如此, 則可以不背於道矣.

 

정자가 말하였다: “널리 문()을 배우고 예()로 집약하지 않으면, 반드시 한만(汗漫)질펀하게 넓기만 하고 산만하여 결실이 없다함에 이르게 된다. 배움을 넓게 하더라도 예()를 지켜 규구(規矩: 법도)에 의거한다면 또한 도()에 어긋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程子曰: “博學於文而不約之以禮, 必至於汗漫. 博學矣, 又能守禮而由於規矩, 則亦可以不畔道矣.”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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