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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한글역주, 옹야 제육 - 24. 인한 사람을 속일 수는 있지만 판단을 흐리게 할 순 없다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옹야 제육 - 24. 인한 사람을 속일 수는 있지만 판단을 흐리게 할 순 없다

건방진방랑자 2021. 6. 24.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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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인한 사람을 속일 수는 있지만 판단을 흐리게 할 순 없다

 

 

6-24. 재아가 공자께 여쭈었다: “()한 사람이라면, 누군가 여기 우물에 사람이 빠졌습니다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으면, 곧바로 우물 속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6-24. 宰我問曰: “仁者, 雖告之曰: ‘井有仁().’其從之也?”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어찌 앞뒤 안 가리고 그런 짓을 하겠는가? 군자라면 당연히 우물가에 가서 상황을 살펴보기는 해야하지만, 같이 우물에 빠질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을 그럴 듯한 말로 속일 수는 있겠으나, 근본적으로 판단력을 흐리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子曰: “何爲其然也? 君子可逝也, 不可陷也; 可欺也, 不可罔也.”

 

재아는 삐딱한 인물이다. 사람을 골탕 먹이기를 좋아하고, 질문을 해도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을 잘한다. 그래서 사실 재아와 공자 사이는 그리 감정적 으로 아름답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아는 사과십철(四科十哲)에 당당히 끼어있다. 자공과 나란히 언어(言語)’ 분야로서 병렬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문의 위대함이다. 그렇다고 그가 가롯 유다 같은 치사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그는 공자에게 충실한 일꾼이었다. 공자 유랑의 고난시기에도 그는 공자를 위해서 많은 일을 했다. 그러나 논어는 재아와 같은 인물 때문에 재미있다, 위대해진다. 우리는 재아 때문에 공자의 인품을 리얼하게 깊숙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여기 재아가 던진 질문은, 참으로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다. 그러나 공자가 이런 질문에 대처한 방식은 매우 명료하다, 애매함이 없다. 우리 는 공자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장을 나는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마다 내가 겪은 곤혹스러운 사건을 하나 소개한다. 우리 동네, 정치인이 한 분 살고 계셨다. 그 사모님이 매우 활달하고 좋은 분이셨는데, 어느날 신문에서 갑자기 충격적 기사를 읽었다. 안면도 없었던 사람에게 신장 하나를 기증하였다는 것이다. 한 동네 사는 사람이 인명을 구하기 위하여 갑자기 자기 장기를 떼어주었다고 한다면 나도 이 시대를 같이 살 아가는 사람으로서 무엇인가를 해야 되지 않을까? 나도 장기를 떼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질문이 순간 안 떠오를 수 없다. 나는 며칠 동안 번민에 싸였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는 우리 실존에 이러한 류의 많은 곤혹스러운 윤리적 난 제를 제시한다.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윤리적일까?

 

정치인의 아내로서 사회적 가치를 솔선수범 실천한다는 것은 매우 존경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갑자기 장기를 떼어야만 할까? 나의 실존은 스스로 그러한[自然] 천지 대자연의 결정체이며,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부여받은 신성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아무리 나의 장기를 떼어서 사람을 도울 수 있다 하더라도, 나의 장기를 떼는 행위는 나의 실존을 망치는[] 일이며 천지 대자연으로부터 품부된 거룩한 본성을 파괴하는 일이다. 정치인의 아내로서 건 강한 몸을 가지고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쉽사리, 불현듯, 자기 몸의 일부를 내어준다는 것, 그리고 그 장기를 기증받는 사람의 생명의 가치가, 나의 생명의 가치를 파멸시켜야 할 정도로,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것인지, 과연 그것이 정언명령이 될 수 있는지를 형량해보지도 않고 나의 몸의 일부를 포기한다는 것은 단언컨대, 어리석은 일이다. 그것은 우행(愚行)에 불과하다. 바로 논어의 이 말씀을 전하고 있는 공자는 그렇게 외쳤을 것이다: “어찌 그 따위 일이 있을 수 있는가[何爲其然也]?”

 

장기기증이란 본시 인간세의 의학이 발달하면서 비로소 생겨난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원래 급사자의 장기를 활용하는 문제로서 제기된 것이다. 그런데 멀쩡한 사람의 장기를 나누어 갖는 데까지 확산된 것이다. 콩팥이란 원래 콩과 팥이 같이 구비되어야 비로소 제기능을 하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없어도 될 만큼 인간의 신장기능에 여유가 있다고 하지만, 인간 몸의 허()라고 하는 것은 그냥 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허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이다. 그 허의 용량을 줄인다는 것은 비상시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을 상실시킨다. 허는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더구나, 장기기증 문제는 의료산업의 비리로서 더욱 확산되어가고 있으며, 과연 윤리적으로 정당한 행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가 불투명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사람이 태어나서 몸을 가지고 살다가 죽는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이치요, 나의 몸의 사태는 궁극적으로 내가 책임지어야 할 문제다. 내가 살자고 남의 장기를 요구하는 것, 그리고 그를 살린답시고 과연 장기이식이 얼마나 그의 수명을 연장시킬지도 모르면서 나를 파멸시킨다는 것은 모두 비윤리적 행위이다. 우리는 마치 의료계의 비리를 위하여 장기를 기증해야만 하는 것처럼 생각을 강요당하고, 그것이 또 인도주의라는 허명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과도한 아가페적 윤리의식의 허구성과 결탁되어 더욱 기승을 부릴 때 결국 마이클 베이(Michael Bay) 감독이 고발한 영화 아일랜드(The Island, 2005년 작)의 끔찍한 사태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여기 재아가 공자에게 던진 질문은 동일한 질문이다: “사람이 우물에 빠졌소! 하는 소리를 들으면 재깍 우물로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선상님께서 항상 말씀하시는 인한 사람 아닐깝쇼?”

 

공자는 즉각적으로 대답한다: “야 이놈아! 미쳤냐? 왜 같이 빠져죽어? 우선 가서 상황을 잘 살펴보고 나서 생각해봐야 할 일 아니냐? 그런 쓸데없는 얘기 나 자꾸 나불거려 사기치는 일 좀 그만해라! 인한 사람은 그런 곤혹스러운 일로도 근본적으로 원칙을 상실하는 법은 없나니라.”

 

정유인언(井有仁焉)’()’은 역시 ()’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우물 속에 인한 사람이 빠져있다라는 식으로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너무 인위적이다. 그리고 공자의 대답에서 君子可逝也, 不可陷也.可欺也, 不可罔也.’는 문자 그대로 직역한다면 군자를 목적어로 해서 일관되게 해야 할 것이다: ‘군자를 우물가로 가게 할 수는 있으나 빠뜨릴 수는 없다. 속일 수는 있으나, 망가뜨릴 수는 없다.’ 그런데 이렇게 목적어로 하여 번역하면 전달력이 없어, 앞의 두 구문은 군자를 주어로 하여 번역하였다.

 

 

유빙군(劉聘君)유면지(劉勉之). 자는 치중(致中). 주희 유년시절의 스승이 말하였다: “‘유인(有仁)’()’은 마땅히 ()’이라 해야 한다.” 나는 이 설을 따른다. ‘()’이라는 것은 우물 속으로 따라 들어가 사람을 구제하는 것을 말한다. 재아는 본시 사도(斯道)를 믿는 것이 독실치 못하였기 때문에 인을 실천하다가 위태로운 일에 빠지지 않을까, 하고 걱정이 되어 이런 물음을 던진 것이다.

劉聘君曰,“有仁之仁當作人”, 今從之. , 謂隨之於井而救之也. 宰我信道不篤, 而憂爲仁之陷害, 故有此問.

 

()’라는 것은 가서 구제하도록 만드는 것을 일컫는다. ‘()’ 이란 우물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란 그래도 이치가 있는 것을 가지고 사람을 속이는 것이요, ‘()’은 이치가 전혀 없는 것을 가지고 사람을 몽매하게 만드는 것이다. 내 몸이 우물가에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우물 안에 빠진 사람을 구해낼 길이 있지만, 같이 빠져들어 간다면 도무지 다시 사람을 구할 길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치는 심히 명백한 것이요, 사람이 잘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인한 사람은 비록 사람을 구제하는 데 절실히 하며 자기 몸을 돌보지 않는 훌륭한 덕성을 지니고 있지 만 이와 같이 어리석게 행동하지는 않는다.

, 謂使之往救. , 謂陷之於井. , 謂誑之以理之所有. , 謂昧之以理之所無. 蓋身在井上, 乃可以救井中之人; 若從之於井, 則不復能救之矣. 此理甚明, 人所易曉, 仁者雖切於救人而不私其身, 然不應如此之愚也.

 

 

주희의 해석이 명료하다. 우리가 선을 행한다고 하는 것의 한계상황 을 명료히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윤리는 상황적 인소(因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세상을 구원한다 하는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세상을 파멸시킨다.

 

여기 처음 등장한 유빙군(劉聘君, 리우 핀쥔, Liu Pin-jun, 1091~1149)은 양송(兩宋)의 사람이다. 이름은 면지(勉之), 자는 치중(致中), 시호는 간숙(簡肅), 보통 백수선생(白水先生)으로 불리운다. 복건성 숭안(崇安) 사람인데, 어려서 향리에서 천거받아 태학(太學)에 들어가 그곳에서 낙학(洛學)을 접했다. 초정(譙定)이 정호에게서 직접 배웠다는 소리를 듣고, 그를 찾아가 주역(周易)을 배웠고 이정(二程)의 학문을 전수받았다. 후에 남검학파(南劍學派)의 양시(楊時)ㆍ유안세(劉安世)에게서도 수학하였으며 호헌(胡憲), 유자휘(劉子翬)와 교유하였다. 뒤에 출사하였으나 진회(秦檜)의 전횡으로 뜻이 맞지않자 사병(謝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학당을 설치하고 제자양성에만 힘썼다. 주자의 아버지 주송(朱松)은 주희가 14살 때(1143) 세상을 떠났다. 그 임종시에 주희를 무이(武夷)의 세 선생에게 부탁하였다. 그 세 선생이 적계(籍溪) 호헌(胡憲), 백수(白水) 유면지(劉勉之), 병산(屛山) 유자휘(劉子翬)이다. 주송은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세 사람은 나의 친구다. 학문이 다 연원이 있는 분들이요, 내가 경외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죽으면 너는 이 분들을 아버지처럼 모시거라!” 백수 유공은 주희를 특별히 사랑하여 자기 딸을 주었다. 그러나 오래 살지는 못했다. 그러니까 주희는 14살부터 20살까지 유면지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유면지는 이정의 학문이 주자로 발전해가는 도상에서 중요한 길목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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