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공자, 남자(南子)를 만나다
6-26. 공자께서 남자(南子)를 만나시었다. 자로가 되게 기분나빠했다. 부자께서 이에 맹서하여 말씀하시었다: “내가 만약 불미스러운 짓을 저질렀다면, 하늘이 날 버리시리라! 하늘이 날 버리시리라!” 6-26. 子見南子, 子路不說. 夫子矢之曰: “予所否者, 天厭之! 天厭之!” |
공자는 외간 여인과 섹스를 했을까? 도대체 자로가 왜 ‘되게 기분나빠 했을까?’ 무엇 때문에 공자가 남자(南子)라는 여인을 만났다는 것이 자로를 기분나쁘게 했을까? ‘자로불열(子路不說)’은 아주 감정이 상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남자가 위령공의 부인으로서 소문난 음녀(淫女)라는 것은 이미 6-14에서 충분히 설파하였다. 남편 영공을 놔두고 버젓이 송조와 놀아나는 남자(南子)를 당대의 지식인으로서, 예악의 명인으로서, 또 유능한 정치가로서 드높은 방명(芳名)을 휘날린 공자가 만났다는 사실은 일대사건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이 사건은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 두 번째 위나라로 왔을 때 벌어진 사건으로 기술되어 있으므로 대강 공자 나이 56세 전후쯤이었다. 56세에 남자와의 염문? 로맨스? 공자는 아직도 의욕에 넘치는 거구의 사나이였으므로 56세라 해도 외간 여인과 로맨스를 벌이기에는 정력이 남아돌아갔을 것이다. 보통 주석가들은 이와 같이 정직한 이야기를 하기를 꺼려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논어』에서 이 장을 빼어버리려고 했다. 고주만 해도 이 장의 전체 대의가 의심스럽다[義可疑也]고 했다. 전체가 엉터리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이야기가 『논어』에 들어갔을까? 이것이 바로 『논어』 편집자들의 위대함이다. 그들은 공자를 우리와 다른 특별한 인간으로 보질 않는다. 공자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편견없이 담으려 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공자를 ‘성인’으로 보았다 하더라도, 그들이 생각하는 ‘성인’의 관념 속에는 성적 윤리나 인간적 하자에 관하여 매우 관용적인 태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원시유교집단의 비교조적 태도가 이런 장에서 특별히 돋보일 뿐 아니라, 이런 남자(南子)와의 일화를 통하여 오히려 공자 사적(事蹟)의 진실성을 확보할 수도 있다.
우선 공자가 위(衛)나라로 가게 된 것은 자로(子路)의 안배에 의한 것이었다. 자로가 위나라지역 사람이었고, 위나라에 친척이 많아 풍부한 커넥션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로불열(子路不說)’이라는 사태는 공자가 자로에게 사전상의도 없이 남자(南子)를 만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좀 의리없는 행동일 수가 있는 것이다. 자로한테 상의도 안하고, 허락도 안 받고(자로는 제자인 동시에 친구다), 남자를 만나는 공자의 의중에는 분명 꿍꿍이속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공자가 남자를 만났다는 사실은 그냥 밀실이벤트로 덮어질 사태가 아니다. 금방 위나라에 소문이 쫘악 퍼졌던 것이다. 자로의 분노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자로불열(子路不說)’이란, 사실 그의 치미는 분노를 꽉 참고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표현이다. 그래도 우직한 자로는 공자가 선생이니까 봐주고 있는 것이다. “형님! 도대체 왜 만나셨수? 뭘 하셨수?”
공자와 남자의 만남은 정사에 기록되어 있는 사건도 아니고 이 장 외로는 『논어』 어느 구석에 비쳐지는 사건도 아니다. 이 사건은 오직 사마천이 「공자세가(孔子世家)」 14를 쓰면서 크게 다룬 사건이다. 사마천은 이 사건을 매우 재미있게 생각했던 것 같다. 공자 일대기를 쓰는 데 있어서 공자 생애를 재미있게 요리할 수 있는 감칠맛 나는 양념으로서 인식한 것 같다. 남자는 음탕하다고 했지만 화려하고 아름다운, 송나라의 문화전통이 배인 여자였다. 최소한 서태후보다는 더 여성적인 느낌이 드는 여자였을 것이다. 공자가 남자를 만나려고 기웃거렸던 것은 아니다. 남자가 먼저 사신을 보내 공자를 꼬셨던 것이다: “사방의 군자들이 우리 과군(위령공)과 형제처럼 가깝게 되고자 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자라면, 반드시 먼저 우리 과소군(남자)을 만납니다. 우리 과소군께서 공자님 당신을 특별히 만나고 싶어하시나이다[四方之君子不辱欲與寡君爲兄弟者, 必見寡小君. 寡小君願見].”
이러한 제안에 공자가 덜컥 “감사합니다. 기회를 주셔서, 가겠습니다”하고 말했을 수도 있겠지만 물론 그렇게 품위없게 적을 수는 없다. 이를 기술하는 사마천의 드라마적 감각은 역시 탁월하다.
공자는 사절하고 또 사절했다. 그러나 결국 부득이하게 가서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
孔子辭謝, 不得已而見之.
자아! 이제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사마천은 흥미진진하게 독자들을 유도하는 필치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가 남자를 만나는 장면은 참으로 절묘하다. 사마천의 문학적 감각이 최고도로 발휘된 명문이 아닐 수 없다.
부인은 하늘거리는 사포의 유막이 드리운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공자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북면을 하여 신하의 예를 갖추고 땅에 머리를 조아리며 큰절을 하였다. 부인은 유막 속에서 두 번 절을 하여 답하였다. 부인의 잘룩한 허리에 찬 패옥이 부딪히는 소리가 살랑살랑 청아하게 들렸다.
夫人在絺帷中, 孔子入門, 北面稽首. 夫人自帷中再拜. 環佩玉聲璆然.
이것이 공자와 남자가 만난 장면의 기술의 전부다. 공자와 남자간에 오간 이야기도 없다. 전후맥락도 완벽하게 단절되어 있다. 사마천은 왜 이런 방식으로 기술했으며 무엇을 암시하려는 것인가? 분명 어떠한 논리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없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분위기 스케치를 통하여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만 있을 뿐이다.
우선 부인과 공자의 만남이 지극히 사적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단 둘이 만난 것처럼 기술되어 있으며 분명 공자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든가, 부인이 치유(絺帷) 속에 가리운 채 있었다든가 하는 것은, 그 만남이 부인의 내당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졌음을 암시하고 있다. 심하게 해석하면 부인의 침소에서 이루어졌다고도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한 분위기를 깔아놓은 채 사마천은 ‘환패옥성구연(環珮玉聲璆然)’이라는 너무도 섹시한 기술을 해놓고 있는 것이다. 왜 난데없이 하늘거리는 여인의 몸매, 잘룩한 허리에 두른 패옥이 부딪히는 소리를 기술하 는 것으로써 당대의 최대의 루머일 수도 있는 사건을 종결짓는단 말인가? 사마천은 역시 천재였다. 그리고 여기에 담긴 성적 함의(sexual implication)는 지울래야 지울 수가 없다. 당대소문의 진상을 사마천은 매우 격조 높게 기술해놓고 있는 것이다.
초대교회시대로부터 20세기의 영화에 이르기까지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섹스를 하는 장면의 이야기는 수없이 많은 상상력을 자극시켜 왔다.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이 발굴한 자료 중에 4세기의 초대교회 교부 에피파니우스(Epiphanius)가 인용하는 『막달라 마리아의 위대한 의문들(The Great Questions of Mary)』의 설화로서 이러한 것이 있다. 예수는 어느날 마리아를 데리고 산에 올라간다. 그리고 그 산꼭대기에서 예수는 자기 옆구리에서 한 미모의 여인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가 보는 앞에서 그 여인과 성교를 한다. 그리고 정액이 솟구치자 그것을 먹으면서, 마리아에게 같이 먹자고 말한다.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설교한다. 그러자 마리아는 너무도 충격을 받아 땅으로 기절초풍 엎드리고 만다. 예수는 마리아를 잡아올리며 말한다: “왜 너는 나를 의심하느냐? 오~ 신앙이 부족한 그대여!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 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 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 하면 너의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 3:12, 요 6:54~58의 자료가 다른 설화양식과 결합한 것이다).
이렇게 상징성이 풍부한 이야기들은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를 소재로 수없이 만들어졌다. 마리아는 타락한 여인이며 창녀이고 또 예수를 극진히 봉양하고 사랑함으로써 참회의 모범을 보이고 죄사함의 기쁨을 얻고 또 예수 부활을 두 눈으로 목도한 최초의 여인이 되었다. 그러나 4복음서를 뜯어보면 막달라 마리 아가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임종하는 순간에, 그리고 안식 후 첫 새벽 무덤을 찾아간 최초의 세 여인 중의 하나라는 사실 이외로는 아무것도 이 마리아에 관 해 알 수 있는 자료가 없다(막 15:40, 16:1, 16:9), 흔히 연관짓고 있는 사건, 누가복음 7장 37절에 나오는,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 운운한 스토리의 주인공인 ‘한 여자’가 막달라 마리아라는 증거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리고 「요한복음」 12장에서 예수에게 향유를 부은 베다니 마리아는 분명 죽었다 살아난 나사로의 여동생이며 마르다와 자매간이다. 그리고 마가 14:3, 마태 26:7에 나오는, 예수가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있을 때에 향유 한 옥합을 예수의 머리 위에 부은 여자도 그냥 ‘한 여자’로 기술되어 있을 뿐 그 여자가 막달라 마리아라는 보장은 하나도 없다. 아마도 막달라 마리아에 관한 기록은 누가 8:1~3의 내용이 가장 그 진실에 접근할 것 같다:
예수께서 여러 도시와 마을을 다니시며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는데 열두 제자도 같이 따라다녔다. 또 악령이나 질병으로 시달리다가 나은 여자들도 따라다녔는데 그들 중에는 일곱 마귀가 나간 막달라 여자라고 하는 마리아, 헤롯의 신하 쿠자의 아내인 요안나, 그리고 수산나라는 여자를 비롯하여 다른 여자들도 여럿 있었다. 그들은 자기네 재산을 바쳐 예수의 일생을 돕고 있었다(공역).
막달라는 갈릴리 연안도시 중에서도 크고 부유한 도시였다. 예수 시대에는 갈릴리 주변의 열 개 도시중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고 고고학자들은 보고한다. 그 도시의 귀부인이었는데 병이 걸렸다가 예수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를 재정적으로 후원한 꽤 점잖은 여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의 임종까지 지켜본 충직한 여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막달라 마리아를 사람들은 창녀로 만들었고 예수에게 비싼 기름을 부은 여인으로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리아는 예수의 애인이 되었고, 이 둘 사이의 로맨스는 다빈치 코드류의 설화에까지 전승되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자와 남자의 이야기는 위나라에서의 어떤 진실한 상황을 전해주는 비상징적 사실(史實)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공자는 이상주의자였지만, 자신의 이상을 현실정치 실험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간원(懇願)이 있었다. 공자는 남자가 보자고 했을 때, 기꺼이 갔을 것이다. 우선 위령공에게 접근하는 길을 확보할 수 있었고, 또 남자를 통해서 작위를 얻고자 하는 계획이 있었을 것이라고 주석가들은 추측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자의 움직임은 공자의 어리석음이 분명하다. 남자(南子) 같은 여인을 통하여 정치적인 커넥션을 확보한다는 것은 공자의 삶에 누가 될 뿐이다. 그러나 공자는 그런 계산에 약했다. 어찌 보면 매우 어리숙한 사람이었다. 목전의 자기 이상의 실현에만 눈이 어둡다. 자로의 안목에서 보아도 바보 같은 짓이다. 그리고 패옥을 살랑이는 남자의 속셈은 ‘섹스’나, 한 남자의 타락 이외로는 별 큰 뜻이 없었을 것이다. 골 부리는 자로에게, 하늘에 맹서코 난 남자와 추문을 뿌리지 않았다고 울부짖는 공자를 우리는 믿어야 할까? 믿지 말아야 할까?
우리는 공자의 이러한 순진함과 순결성 때문에 『논어』에 대한 무한한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그 진정한 해프닝의 실상은 공자에 관한 일일지라도 우리가 확정지을 길은 없다. 그러나 편집자들은 공자의 진실을 믿었기 때문에 이 파편을 『논어』에 편입시켰을 것이다. ‘여소부자(予所否者)’의 ‘소(所)’는 ‘만약’의 뜻으로 새기었다【염약거(閻若璩)의 『사서석지(四書釋地)』참고】.
‘說’은 열(悅)이라고 발음한다. ‘否’는 방구(方九) 반이다. ○ ‘남자(南子)’는 위령공의 부인인데, 음행으로 유명했다. 공자께서 위나라에 이르시니, 남자가 공자를 뵙기를 청한 것이다. 공자께서 거절을 거듭하시다가 부득이 만나신 것이다. 대저 옛 법도에 한 나라에 벼슬을 하려면【‘하면’으로 번역하면 벼슬을 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공자는 이때 위나라 벼슬이 없었다】, 그 임금의 부인을 알현하는 예가 있었다. 그러나 자로는 부자가 이 음란한 여인을 만나는 것을 치욕으로 여겼다. 그래서 되게 기분나빠한 것이다. ‘시(矢)’는 맹서한다는 뜻이다. ‘소(所)’는 맹서하는 말이다. 예컨대 『좌전』 양공 25년조에 있는 ‘맹세코 최저(崔杼)와 경봉(慶封)과는 더불어하지 않겠다[所不與崔慶者]’라고 할 때는 ‘맹세코[所]’의 용법과 같다. ‘부(否)’는 예에도 합당치 아니 하고 도에도 말미암지 아니 하는 것을 일컫는다. ‘염(厭)’은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說, 音悅. 否, 方九反. ○ 南子, 衛靈公之夫人, 有淫行. 孔子至衛, 南子請見, 孔子辭謝, 不得已而見之. 蓋古者仕於其國, 有見其小君之禮. 而子路以夫子見此淫亂之人爲辱, 故不悅. 矢, 誓也. 所, 誓辭也, 如云“所不與崔ㆍ慶者”之類. 否, 謂不合於禮, 不由其道也. 厭, 棄絶也.
성인의 도는 크고 덕은 온전하여 가하다, 불가하다 하는 것을 초월한다. 악인을 만난다 하더라도 나에게 그를 만날 만한 예가 있다고 한다면, 그의 선하지 못함이 과연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러나 어찌 이러한 경지를 자로가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두 번씩이나 말씀하셔서 맹세를 하셨으니, 자로가 먼저 이 말을 믿고 깊게 생각하여 터득하게 하려 하심이라.
聖人道大德全, 無可不可. 其見惡人, 固謂在我有可見之禮, 則彼之不善, 我何與焉. 然此豈子路所能測哉? 故重言以誓之, 欲其姑信此而深思以得之也.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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