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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자한 - 10. 안연이 밝힌 공자 도의 위대함 본문

고전/논어

논어 자한 - 10. 안연이 밝힌 공자 도의 위대함

건방진방랑자 2021. 10. 8.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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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안연이 밝힌 공자 도의 위대함

 

 

顔淵喟然歎曰: “仰之彌高, 鑽之彌堅; 瞻之在前, 忽焉在後.

, 苦位反. , 祖官反.

, 歎聲. 仰彌高, 不可及. 鑽彌堅, 不可入. 在前在後, 恍惚不可爲象. 顔淵深知夫子之道, 無窮盡, 無方體, 而歎之也.

 

夫子循循然善誘人, 博我以文, 約我以禮.

循循, 有次序貌. , 引進也. 博文約禮, 敎之序也. 言夫子道雖高妙, 而敎人有序也.

氏曰: “博我以文, 致知格物也. 約我以禮, 克己復禮.”

程子: “顔子稱聖人最切當處, 聖人敎人, 惟此二事而已.”

 

欲罷不能, 旣竭吾才, 如有所立卓爾. 雖欲從之, 末由也已.”

, 立貌. , 無也. 顔子自言其學之所至也. 蓋悅之深而力之盡, 所見益親, 而又無所用其力也.

氏曰: “所謂卓爾, 亦在乎日用行事之間, 非所謂窈冥昏黙者.”

程子: “到此地位, 功夫尤難, 直是峻絶, 又大段著力不得.”

氏曰: “自可欲之謂善, 充而至於大, 力行之積也. 大而化之, 則非力行所及矣, 此顔子所以未達一閒也.”

程子: “顔子所以爲深知孔子而善學之者也.”

氏曰: “無上事而喟然歎, 顔子學旣有得, 故述其先難之故, 後得之由, 而歸功於聖人也. 高堅前後, 語道體也. 仰鑽瞻忽, 未領其要也. 惟夫子循循善誘, 先博我以文, 使我知古今, 達事變; 然後約我以禮, 使我尊所聞, 行所知. 如行者之赴家, 食者之求飽, 是以欲罷而不能, 盡心盡力, 不少休廢. 然後見夫子所立之卓然, 雖欲從之, 末由也已. 是蓋不怠所從, 必欲至乎卓立之地也. 抑斯歎也, 其在請事斯語之後, 三月不違之時乎?”

 

 

 

 

 

 

해석

顔淵喟然歎曰: “仰之彌高, 鑽之彌堅; 瞻之在前, 忽焉在後.

안연이 크게 탄식하며 말했다. “부자의 도는 우러러 보면 더욱 높고, 뚫으려 하면 더욱 견고하며, 바라봄에 앞에 있더니, 갑자기 뒤에 있다.

, 苦位反. , 祖官反.

, 歎聲.

()는 탄식하는 소리다.

 

仰彌高, 不可及.

우러러 보면 더욱 높다는 것은 미치질 못한다는 것이다.

 

鑽彌堅, 不可入.

뚫으려 하면 더욱 견고하다는 것은 들어갈 게 없다는 것이다.

 

在前在後, 恍惚不可爲象.

앞에 있다가 뒤에 있다는 것은 황홀하여 표현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顔淵深知夫子之道, 無窮盡,

이것은 안연이 부자의 도가 무궁무진하며

 

無方體, 而歎之也.

형체도 없다는 것을 알아 감탄한 것이다.

 

夫子循循然善誘人, 博我以文, 約我以禮.

부자께서 차례차례 잘 사람을 이끌어주시니, 나를 문으로 넓혀주셨고, 나를 예로 요약하게 하셨네.

循循, 有次序貌.

순순(循循)은 차례가 있는 모양이다.

 

, 引進也.

()는 이끌어 나아가는 것이다.

 

博文約禮, 敎之序也.

박문(博文)과 약례(約禮)는 가르침의 차례다.

 

言夫子道雖高妙, 而敎人有序也.

부자의 도가 비록 높고도 오묘하나 사람을 가르침에 차례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氏曰: “博我以文, 致知格物也.

후중량(侯仲良)이 말했다. “나를 문으로 넓혀줬다는 것은 치지(致知)와 격물(格物)이고,

 

約我以禮, 克己復禮.”

나를 예로 요약하게 해줬다는 것은 극기복례(克己復禮).”

 

程子: “顔子稱聖人最切當處,

정이천이 말했다. “이것은 안자가 성인을 말함에 가장 절묘하고 마땅한 부분이다.

 

聖人敎人, 惟此二事而已.”

성인이 사람을 가르침은 오직 이 두 가지인 박문(博文)과 약례(約禮) 뿐이다.”

 

欲罷不能, 旣竭吾才, 如有所立卓爾. 雖欲從之, 末由也已.”

공부를 그만두고자 하더라도 그만 둘 수 없어 이미 나의 재주를 다했으니, 마치 부자의 도가 서있음이 우뚝한 것 같다. 비록 그것을 따르려 해도 근거 삼을 게 없구나.”

, 立貌. , 無也.

()은 서 있는 모양이다. ()은 없다는 것이다.

 

顔子自言其學之所至也.

이것은 안자가 스스로 학문의 지극함을 말한 것이다.

 

蓋悅之深而力之盡, 所見益親,

대저 기쁨이 깊고 힘씀이 극진하여 도를 봄이 더욱 친하지만,

 

而又無所用其力也.

또한 그 힘을 쓸 곳이 없는 것이다.

 

氏曰: “所謂卓爾, 亦在乎日用行事之間,

오역(吳棫)이 말했다. “우뚝하다고 말하는 것은 또한 일용행사(日用行事)의 사이에 있는 것이지,

 

非所謂窈冥昏黙者.”

은밀하고 어두워 침묵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程子: “到此地位, 功夫尤難,

정자는 이런 경지에 이르면 공부가 더욱 어려워지니

 

直是峻絶, 又大段著力不得.”

곧 깎아지른 듯 끊어져 있어 또한 대부분 힘을 쓰려 해도 쓸 수가 없다.”

 

氏曰: “自可欲之謂善,

양시(楊時)가 말했다. “선을 하고자 하고 악을 미워하는 이를 선인이라고 하니

 

充而至於大, 力行之積也.

여기서부터 채워 대인에 이르기까지는 힘써 행하여 쌓을 수 있다.

 

大而化之, 則非力行所及矣,

그러나 대인이면서 주위 사람들이 저절로 교화되는 경지라면 힘써 행함으로 미칠 수 없으니,

 

此顔子所以未達一閒也.”

이것이야말로 안자가 성인에 비해 한 등급 미달한 까닭이다.”

 

程子: “顔子所以爲深知孔子而善學之者也.”

정이천이 말했다. “이것은 안자가 깊이 공자를 알아 잘 배운 까닭이다.”

 

氏曰: “無上事而喟然歎,

호인(胡寅)이 말했다. “윗 일이 없이 크게 탄식한 것은

 

顔子學旣有得,

안자가 배움에 이미 터득함이 있었기 때문에

 

故述其先難之故, 後得之由,

먼저 어려운 까닭을 서술하고 뒤에 터득한 이유를 서술하여

 

而歸功於聖人也.

공을 성인에게 돌린 것이다.

 

高堅前後, 語道體也.

높고 견고하며 전후에 있다는 것은 도체를 말한 것이다.

 

仰鑽瞻忽, 未領其要也.

우러러봄과 뚫음과 바라봄에 홀연하다는 것은 요점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惟夫子循循善誘, 先博我以文,

오직 부자께서 차례차례 잘 이끌어줘서 먼저 나를 문으로 넓혀주셔서

 

使我知古今, 達事變;

나에게 고금을 알게 해줬고 일의 변화를 통달하게 해줬다.

 

然後約我以禮,

그런 후에 나를 예로 요약하게 해주셔서

 

使我尊所聞, 行所知.

나에게 들은 것을 높이게 해줬고 아는 것을 행동하게 해줬다.

 

如行者之赴家,

그것은 집 떠난 이가 집으로 달려가는 것 같고,

 

食者之求飽,

배고픈 이가 먹을 것을 구하는 것 같으니,

 

是以欲罷而不能,

이런 이유 때문에 그만두려 해도 그만 둘 수 없고,

 

盡心盡力, 不少休廢.

마음과 힘을 다함에 잠시도 쉬지 않게 된 것이다.

 

然後見夫子所立之卓然,

그런 후에 부자께서 서 있는 것이 우뚝한 걸 보니

 

雖欲從之, 末由也已.

비록 따르려 해도 근거할 것이 없었던 것이다.

 

是蓋不怠所從,

이것은 대저 따르는 것에 게을리 하지 않아

 

必欲至乎卓立之地也.

반드시 우뚝한 경지에 이르려 하는 것이다.

 

抑斯歎也, 其在請事斯語之後,

안연의 이와 같은 탄식은 청컨대 이 말씀에 종사하겠습니다.’라고 말한 뒤에 있었을 것이고,

 

三月不違之時乎?”

‘3개월 간 인을 떠나지 않았다라고 말한 때에 있었을 것이다.”

 

안연(顔淵)이 스승 공자의 도덕과 학문을 흠모해서 한 말이다. ‘논어’ ‘자한(子罕)’편에 나온다. 안연은 존경의 마음이 너무 커서 한숨부터 쉬고는 이 말을 꺼냈다.

()은 우러러봄이다. ()는 차츰 더 하다는 뜻을 나타낸다. ()은 송곳으로 구멍을 뚫는다는 뜻이다. 앙지미고(仰之彌高)는 우러러볼수록 더 높게 여겨질 만큼 인격이 고매(高邁)함을 가리킨다. ‘시경도 높은 인격을 칭송해서 높은 산봉우리를 우러러본다[高山仰止].”고 했다. 찬지미견(鑽之彌堅)은 뚫으려 해도 너무 단단해서 도저히 뚫리지 않듯이 인격이 강의(剛毅)함을 가리킨다. 홀언(忽焉)은 홀연(忽然)과 같다. ()은 바라본다는 말이다. 재전(在前)과 재후(在後)는 활동역량이 자유자재(自由自在)해서 모습을 그려내기 어려울 정도로 황홀함을 뜻한다. 이후에 안연은 스승이 우뚝 서 계신 듯 뚜렷하게 보이자 다시 흠송(欽頌)하게 된다.

성호 이익은 진여의(陳與義)감람(橄欖)’ 시에서 사탕수수를 먹으면서 아름다운 경지가 멀다 말라. 감람은 단 것과 쓴 것을 함께 먹는 법[莫言啖蔗佳境遠, 橄欖甛苦亦相幷]’이라는 구절을 인용해서 안연이 학문이 깊어지면서 스승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했다. ()나라 고개지(顧愷之)는 사탕수수를 먹을 때 밑동부터 먹어서 차츰 더 맛 좋은 부분으로 나아갔다. 한편 감람은 처음 입에는 조금 쓰지만 물을 마시면 단맛이 난다고 한다. 이익은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단단하게 느껴지며, 앞에 계신 듯하더니 어느새 뒤에 계신다는 말은 쓴맛에 해당하고 우뚝 서 계신 듯하다는 말은 단맛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내 앞에 우뚝 서 계시던 스승이 정녕 그립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인용

목차 / 전문 / 한글역주

생애 / 공자 / 유랑도 /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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