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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3부 ‘천의 고원’을 가로지르는 유쾌한 노마드 - 3장 ‘천 개의 얼굴 천 개의 목소리’, 이용(利用)ㆍ후생(厚生)ㆍ정덕(正德) 본문

문집/열하일기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3부 ‘천의 고원’을 가로지르는 유쾌한 노마드 - 3장 ‘천 개의 얼굴 천 개의 목소리’, 이용(利用)ㆍ후생(厚生)ㆍ정덕(正德)

건방진방랑자 2021. 7. 9.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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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利用)ㆍ후생(厚生)ㆍ정덕(正德)

 

 

이용(利用)’이 있은 뒤에야 후생(厚生)이 될 것이요, 후생이 된 뒤에야 정덕(正德)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롭게 사용할 수 없는데도 삶을 도탑게 할 수 있는 건 세상에 드물다. 그리고 생활이 넉넉지 못하다면 어찌 덕을 바르게 할 수 있겠는가. 도강록(渡江錄)

利用然後可以厚生 厚生然後正其德矣 不能利其用而能厚其生 鮮矣 生旣不足以自厚 則亦惡能正其德乎

 

 

이게 그 유명한 이용후생이라는 테제가 담긴 문장이다. 연암을 실학자 중에서도 이용후생파라고 분류하는 건 이런 명제들에 근거한다. 근데 어째서 정덕이라는 항은 생략되었을까? 덕을 바로 잡는다는 게 너무 추상적이어서 헛소리처럼 느껴진 건가? 아니면 너무 지당한 말이라 하나마나하다고 간주한 탓일까? 깊은 논의는 뒤로 미루고, 일단 여기서는 이용후생이라는 명제 뒤에 정덕이라는 항목이 있었음을 새겨두는 정도로 그치자.

 

화려한 수사학자이면서 타고난 유머본능’, 그런데 그러한 재기발랄함의 베이스에는 거장의 도도한 웅변술이 자리잡고 있다. ‘분출하는 수사종횡무진 개그의 앞과 뒤, 혹은 그 바로 인접한 곳에는 이용후생을 설파하는 거장의 중후한 오케스트라가 울려퍼진다.

 

그 관현악의 연주도 말할 수 없이 다채롭다. 섬세한가 하면 화려하고, 장중한 스펙터클이 펼쳐지는가 싶으면 돌연 감미로운 선율이 뒤를 잇는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사사로운 분별을 떠난 탁월한 통찰력에 힘입고 있다. 그는 다른 이들이 돌아보지 않는 사물들을 치밀하게 살펴보는 능력을 타고났다.

 

 

번화하고 부유함이 비록 연경이라 한들 이보다 더할까 싶었다. 중국이 이처럼 번화하다는 건 참으로 뜻밖이다. 좌우로 늘어선 점방들은 휘황찬란하다. 아로새긴 창문, 비단으로 잘 꾸민 문, 그림을 그려 넣은 기둥, 붉게 칠한 난간, 푸른빛 주련(柱聯), 황금빛 현판 등. 도강록(渡江錄)

繁華富麗 雖到皇京 想不更加 不意中國之若是其盛也 左右市廛 連互輝耀 皆彫牕綺戶 畵棟朱欄 碧榜金扁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가?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 이것이 그가 중화문명을 보는 유일한 잣대다. 소중화(小中華) 주의에 찌든 사대부들이 오로지 오랑캐의 야만을 발견한 곳에서 문명의 풍요로움을

발견할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있는 그대로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식의 출발이자 토대였던 것이다. 그런 연암의 눈에 가장 눈부시게 다가온 것은 화려한 궁성이나 호화찬란한 기념비가 아니었다. 구체적인 일상을 끌어가는 벽돌과 수레, 가마 등이었다.

 

그의 벽돌예찬은 가히 못 말릴 수준이다.

 

 

이곳에서는 벽돌만을 사용해서 집을 짓는다. 벽돌의 길이는 한 자, 넓이는 다섯 치. 벽돌 두 개를 나란히 놓으면 두께 두 치짜리 정방형이 된다. 네모난 틀에서 찍어 낸 벽돌이지만 한쪽 귀라도 떨어지거나, 모가 이지러지거나, 바탕이 뒤틀린 것은 사용하지 않는다. 만일 벽돌 한 개라도 이런 것을 사용하면 집 전체가 틀어진다. 그러므로 같은 틀로 찍어냈지만 오히려 어긋난 놈이 있을까 걱정하여 반드시 굽자[曲尺]로 재고, 자귀나무를 깎아 다듬는 연장으로 깎고, 돌로 갈아낸다. 이토록 애써 가지런히 만드니 수많은 벽돌들이 그림자처럼 똑같다.

爲室屋 專靠於甓 甓者甎也 長一尺 廣五寸 比兩甎則正方 厚二寸 一匡搨成 忌角缺 忌楞刓 忌軆翻 一甎犯忌 則全屋之功左矣 是故 旣一匡印搨 而猶患參差 必以曲尺見矩 斤削礪磨 務令匀齊 萬甎一影

 

벽돌을 쌓는 방법은 한 개는 세로, 한 개는 가로로 놓아서 저절로 감()ㆍ이()와 같은 괘 모양이 만들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 틈서리에는 석회를 종잇장처럼 얇게 발라 붙인다. 벽돌이 겨우 붙을 정도라서 그 흔적이 실밥처럼 가늘다. 회를 이길 때는 굵은 모래를 섞지도 않고 진흙과 섞지도 않는다. 모래가 너무 굵으면 잘 붙지 않고, 흙이 너무 차지면 쉽게 터진다. 그래서 반드시 곱고 보드라운 검은 흙을 회와 섞는데, 그렇게 하면 그 빛깔이 거무스름하여 마치 새로 구워 놓은 것 같다.

其築法 一縱一橫 自成坎離 隔以石灰 其薄如紙 僅取膠貼 縫痕如線 其和灰之法 不雜麤沙 亦忌黏土 沙太麤則不貼 土過黏則易坼 故必取黑土之細膩者 和灰同泥 其色黛黧 如新燔之瓦

 

벽돌들은 일반적으로 너무 차지거나 버석거리지 않으며 빛깔도 부드럽다. 거기다가 어저귀 따위의 풀을 터럭처럼 가늘게 썰어서 섞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초벽하는 흙에 말똥을 섞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질겨서 터지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또 동백기름을 넣어서 젖처럼 번들거리고 매끄럽게 하여 떨어지거나 갈라지는 걸 막으려는 것과도 같은 이치다. 도강록(渡江錄)

葢取其性之不黏不沙 而又取其色質純如也 又雜以檾絲 細剉如毛 如我東圬土 用馬矢同泥 欲其靭而無龜 又調以桐油濃滑如乳 欲其膠而無罅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좀 당혹스럽다. 벽돌을 직접 찍어내고, 집을 지어본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다지도 세밀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이것이 연암의 천재성에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앎의 배치에 관한 시대적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는 판단할 길이 없지만, 어쨌든 연암의 지적 체계와 우리들의 그것 사이에 엄청난 심연이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기와나 온돌법에 대한 논변도 마찬가지다. 거기서도 고도의 전문적 지식과 장인적 숙련성이 동시에 느껴지는 분석이 장황하게 이어진다. 연암이 이렇게 주거환경에 집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조선의 여건이 너무도 열악하기 때문이다. 그는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가난한 집안에 글 읽기를 좋아하는 수많은 형제들이 오뉴월에도 코끝에 항상 고드름이 달릴 지경이지. 이 방식을 배워 한겨울 그 고생을 덜면 어떨까[吾東家貧 好讀書 百千兄弟等鼻端 六月恒垂晶珠 願究此法 以免三冬之苦]?”라고.

 

그가 보기에 조선의 온돌제도는 결함투성이다. “우리나라 온돌에는 여섯 가지 문제점이 있는데 아무도 이걸 말하는 사람이 없단 말이야. 내 한번 얘기해볼 테니 떠들지 말고 조용히 들어보게나.” 마치 판소리 광대가 허두가(虛頭歌)’를 할 때처럼 구수하다. 이어지는 논변도 운문처럼 매끄럽다.

 

 

진흙을 이겨서 귓돌을 쌓고 그 위에 돌을 얹어서 구들을 만들지. 그 돌의 크기나 두께가 애초에 가지런하지 않으니 조약돌로 네 귀퉁이를 괴어서 뒤뚱거리지 않게 할 수밖에 없지. 그렇지만 불에 달궈지면 돌이 깨지고, 발랐던 흙이 마르면 늘상 부스러지네, 그게 첫 번째 문제점이야.

泥築爲塍 架石爲堗 石之大小厚薄 本自不齊 必疊小礫 以支四角 禁其躄蹩 而石焦土乾 常患頹落 一失也

 

구들돌 표면이 울퉁불퉁해서 움푹한 데는 흙으로 메워서 평평하게 하니, 불을 때도 골고루 따뜻하지 못한 게 두 번째 문제점이야.

石面凹缺處 補以厚土 塗泥取平 故炊不遍溫 二失也

 

불고래가 높은 데다 널찍해서 불길이 서로 맞물리지 못하는 게 세 번째 문제점이지.

火溝高濶 焰不相接 三失也

 

, 벽이 부실하고 얇아서 툭하면 틈이 생기지 않나? 그 틈으로 바람이 새고 불이 밖으로 내쳐서 연기가 방 안에 가득하게 되는 게 네 번째 문제점이야.

墻壁踈薄 常苦有隙 風透火逆 漏烟滿室 四失也

 

불목이 목구멍처럼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불길이 안으로 빨려 들어가

지 않고 땔감 끝에서만 불이 타오르는 게 다섯 번째 문제점이네.

火項之下 不爲遞喉 火不遠踰 盤旋薪頭 五失也

 

또 방을 말리려면 땔감 백단은 때야 하는 데다 그 때문에 열흘 안에는 입주를 못하니, 그것이 여섯 번째 문제점일세.

其乾爆之功 必費薪百束 一旬之內 猝難入處 六失也

 

그에 반해, 중국 온돌의 구조를 보게나. 자네와 함께 벽돌 수십 개만 깔아 놓으면, 웃고 떠드는 사이에 벌써 몇 칸 온돌이 만들어져서 그 위에 누워 잘 수도 있을 걸세. 어떤가? 도강록(渡江錄)

何如與君共鋪數十甎 談笑之間 已造數間溫堗 寢臥乎其上耶

 

 

온돌타령이라고 이름붙여도 손색이 없는 장면이다. 듣고 있노라면 심오한 통찰에 감탄할뿐더러, 리드미컬하게 주워섬기는 말솜씨에 또 넋을 뺏긴다. , ‘온돌이 기가 막혀’.

 

 

 산해관(山海關)의 벽

연암은 벽돌을 그 나라 문명의 수준을 재는 한 척도로 삼았다. 물론 산해관은 진 나라 때부터 지어진 것이기 때문에 청나라 문명의 수준을 보여준다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런 정교함과 치밀함이 면면히 이어져 청나라 문명의 토대를 이루었던바, 연암의 감탄과 부러움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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