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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3부 ‘천의 고원’을 가로지르는 유쾌한 노마드 - 3장 ‘천 개의 얼굴 천 개의 목소리’, 마술이 예지가 되는 순간 본문

문집/열하일기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3부 ‘천의 고원’을 가로지르는 유쾌한 노마드 - 3장 ‘천 개의 얼굴 천 개의 목소리’, 마술이 예지가 되는 순간

건방진방랑자 2021. 7. 10.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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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이 예지가 되는 순간

 

 

다음은 판타지아환희기(幻戱記)의 클라이맥스이자 대단원이다. 요술쟁이는 큰 유리 거울을 탁자 위에 놓고 시렁을 만들어놓는다. 거울을 열어 모두에게 구경시키니, 여러 층 누각과 몇 겹 전각이 단청을 곱게 칠했다. 관원 한 사람이 손에 파리채를 잡고 난간을 따라 서서히 걸어 간다. 아름다운 계집들이 서넛씩 짝을 지어 보검을 가지고 혹은 금병을 받들고, 혹은 봉생을 불고 혹은 비단 공도 차며, 구름 같은 머리와 아름다운 귀걸이가 묘하고 곱기가 비할 데가 없다. 방 안에는 백 가지 물건과 수없는 보물들이 그득하여 참으로 부귀가 지극하니, 여러 사람들은 부러움을 참지 못하여 서로 구경하기에 바빠서 이것이 거울인 줄도 잊어버리고 바로 뚫고 들어가려 한다.

 

그러자 요술쟁이가 즉시 거울 문을 닫아 보지 못하게 한 후, 사방을 향하여 무슨 노래를 부르다가 문을 열어 다시 보게 한다. 전각(殿閣)은 적막하고 누사(樓榭)는 황량한데 세월이 얼마나 지났는지 아름다운 계집들은 어디로 가고 한 사람이 침상 위에서 옆으로 누워 자는데 손으로 귀를 받치고 이마 밑으로 김 같은 것이 연기처럼 솟아오른다. 잠자던 자는 기지개를 켜면서 깨려다가 또 잠이 드는데, 갑자기 두 다리가 두 수레바퀴로 화한다. 바퀴살이 아직 덜 되었는데도 구경꾼들이 징그럽고 끔찍하여 모두 달아난다.

 

마치 시뮬레이션을 보듯 거울을 통해 한바탕 인생무상을 보여준 것이다. 연암도 이 장면에선 감탄을 금치 못한다. 아무리 눈속임에 사술(邪術)이라지만, 이 정도면 보통 내공이 아니지 않는가. 논평이 없을 수 없다.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오만 가지 일들, 즉 아침에 무성했다가 저녁에 시들고 어제의 부자가 오늘은 가난해지고 잠깐 젊었다가 갑자기 늙는 따위의 일들이 마치 꿈 속의 꿈이야기를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죽거나 살거나, 있거나 없는 일들 중에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이리오.

一切世間 種種萬事 朝榮暮枯 昨富今貧 俄壯倐老 夢中說夢 方死方生 何有何亡 孰眞孰假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세상에 착한 마음을 지닌 사내와 보살심을 지닌 형제들에게 말한다. 환영인 세상에서 몽환 같은 몸으로 거품 같은 금과 번개 같은 비단으로 인연이 얽어져서 기운에 따라 잠시 머무를 뿐이니, 원컨대 이 거울을 표준 삼아 덥다고 나아가지 말고, 차다고 물러서지 말며,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을 흩어서 가난한 자를 구제할지어다.

寄語世間 善心善男 菩蕯兄弟 幻界夢身 泡金電帛 結大因緣 隨氣暫住 願準是鏡 莫爲熱進 莫爲寒退 齊施錢陌 濟此貧乏

 

 

몸과 금과 비단은 잠시 머무르는 것일 뿐이니, 헛된 집착을 버리고 세상을 위해 두루 베풀라는 것이다.

 

연암은 요술이 기본적으로 눈속임이라고 간주했다. 자신의 눈을 전적으로 믿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거기에 속아 넘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거야말로 인생이 환()’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훌륭한 교사가 아니겠는가. 기막힌 역설 혹은 아이러니, 연암의 사유는 이렇듯 막힘이 없다. 판타지아를 맘껏 즐길 수 있었던 것도, 그것을 삶의 예지로 변환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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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열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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