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돌베개 출판사와의 마주침
‘출판사 이름의 연유가 그럴 것이다’고 짐작하며 시간을 지내왔다. 임용공부를 하던 시기를 지나 대안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지금까지 페이스북으로 출판사의 소식을 간간이 들으며 인연을 계속 지속해왔다. 그러던 중 ‘돌베개 책과 독립영화의 만남’을 보러 인디스페이스에 갔다가 『돌베개 2014 도서목록』이라는 책을 보고 나서야 출판사 이름이 어떻게 지어진 것인지 알게 된 것이다. 그 순간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더 웅대한, 그러면서도 절실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돌배개란 이름은 바로 장준하 선생님과 관련이 있었다.
출판사 이름을 제대로 알게 되다
장준하 선생이 유신 시대로 접어드는 암울한 시기에 항일 운동을 했던 기억을 되살펴 펴낸 수필집의 이름이 바로 『돌베개』였던 것이고, 그 제목을 따서 출판사 이름을 지은 것이다. 그러한 정황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돌베개 출판사’가 추구하는 정신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 감이 잡혔다. 정권을 비호하며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얄팍한 상술로 책을 펴내는 것이 아니라, 정의가 무엇인지를 물으며 때론 기득권에 반할 지라도 그게 옳은 일이라면 책을 펴낼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담았다고 말이다.
역시나 출판사 소개면을 보니 79년에 ‘운동으로서의 출판’을 하기 위해 설립되었다고 나온다. 금서목록이 지정되고 대부분의 책들이 검열을 받아 만들어지지 못하던 시대였기에 그와 같은 의지로 출판사를 설립할 수밖에 없었음이 이해가 된다. 하지만 90년 이후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표면적으로 민주적인 사회가 된 것처럼 사회가 변하자 ‘문화로서의 출판’을 하는 것으로 출판 방향을 바꾼다. 그건 어찌 보면 변하는 시대를 선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시킨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다.
이름이 정해진 연유와 출판사가 추구하는 이상을 보고 있노라니 더욱 ‘돌베개 출판사’에 대한 애착을 느꼈다. 임용을 그만두고 삶을 고민하던 순간에도 ‘돌베개’의 책들은 든든한 동지와 같은 느낌으로 힘이 되어줬지만, 단재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에도 여전히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일깨워주고 새로운 상상을 할 수 있는 통찰을 주는 고마운 친구가 되어 주고 있다. 『열하일기』를 읽으며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며 새로운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기상에 흥분했으며, 『서울은 깊다』를 읽으며 신시神市인 서울은 어떤 철학적 사유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거기에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지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
돌베개 출판사와의 인연을 이런 식으로 정리를 하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속담이 있다. 바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속담이다. 옷깃만 스치던 작은 마주침이 인생의 향방을 결정짓는 거대한 사건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은 어찌 보면 인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꼭 클리나멘Clinamen처럼 말이다.
에피쿠로스는 세계 형성 이전에 무수한 원자가 허공 속에서 평행으로 떨어졌다고 설명한다. 원자는 항상 떨어진다. 이는 세계가 있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동시에 세계의 모든 요소는 어떤 세계도 있기 이전인 영원한 과거로부터 실존했다는 것을 함축한다. 이는 또한 세계의 형성 이전에는 어떤 의미Sens도, 또 어떤 원인Cause도, 어떤 목적Fin, 어떤 근거Raison나 부조리Deraison도 실존하지 않았다는 것을 함축한다. 의미비선재성意味非先在性은 에피쿠로스의 기본적인 테제이며, 이 점에서 그는 플라톤에도 아리스토텔레스에도 대립된다. Clinamen이 돌발한다. …… 클리나멘은 무한히 작은, ‘최대한으로 작은’ 편의偏倚(Deviation, 기울어짐)로서, 어디서, 언제, 어떻게 일어나는지 모르는데, 허공에서 한 원자로 하여금 수직으로 낙하하다가 ‘빗나가도록’, 그리고 한 지점에서 평행 낙하를 극히 미세하게 교란시킴으로써 가까운 원자와 마주치도록, 그리고 이 마주침이 또 다른 마주침을 유발하도록 만든다. 그리하여 하나의 세계가, 즉 연쇄적으로 최초의 편위와 최초의 마주침을 유발하는 일군의 원자들의 집합이 탄생한다. - 알뛰세 「마주침의 유물론이라는 은밀한 흐름」
에피쿠로스는 ‘세계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라는 질문에 ‘신’과 같은 절대권자의 능력을 개입시키지 않는다. 세계에는 이미 무수히 수직으로 떨어지는 원자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던 중 원자 하나가 아주 미세한 어긋남을 통해 살짝 기울어진 상태로 떨어진 것이다. 그렇게 떨어지던 원자는 어느 순간에 옆의 다른 원자와 마주치며 합쳐지고, 바로 그 옆의 원자와도 부딪히는 연쇄충돌이 일어난다. 그런 아주 ‘우연한 마주침’의 작용을 통해 세계가 만들어졌다고 본 것이다. 여기엔 어떤 과학적인 분석 따위를 대입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과학은 ‘하나의 상상력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 세상이 우연히 탄생했다고 한다면 종교인들은 펄쩍 뛸 것이다. 하지만 삶이란 작은 변화에 모든 가능성이 응집되어 있다.
이처럼 나도 내 삶을 살아가고 있었으나, 그 삶의 길목에서 우연하게 ‘돌베개 출판사’와 마주쳤고 그런 마주침과 부딪힘의 결과 난 예전엔 전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새로운 인생의 방향을 정하게 되었다. 모든 게 약간의 어긋남이 빚어낸 삶의 신비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여기서 끝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우연한 마주침은 변주變奏되어 ‘돌베개책과 독립영화와의 만남(이하 책씨)’이란 기획을 통해 『다이빙벨』과 『탐욕의 제국』을 관람하는 것까지 확장되었으니 말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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