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돌베개 출판사와의 인연
실상 대학생 때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핑계로 책은 거의 읽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나라 공부 풍토 상 책읽기와 공부는 별개였고, 나 또한 그런 고정관념을 그대로 받아들여 읽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졸업과 동시에 임용에 합격하겠다’는 만용과도 같던 꿈이 좌절된 후가 되어서야 드디어 책을 읽게 된 것이다. 현실의 고통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나의 역량을 키워야만 했고, 그 역량을 키우기 위해선 나보다 앞서서 산 선배들의 조언과 응원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책을 거의 읽지 않던 시기에도,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시기에도 나와 자주 마주쳐 공명하던 출판사가 있었던 것이다. 그 출판사가 바로 ‘돌베개 출판사’다. 그 인연론을 한 번 들어보자.
▲ 파주에 있는 돌베개 출판사 모습. 1층엔 '행간과 여백'이란 북카페가 있다.
한문이란 전공이 만들어준 인연
전공이 한문학이었기에 임용고시를 보기 위해서는 전공서를 많이 보아야 했다. 그런 책들을 주로 보다보니, 대부분 같은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들이어서, 자연스레 ‘돌베개’, ‘태학사’, ‘소명출판사’, ‘통나무’ 등의 출판사를 자주 접하게 되었다. 그 당시엔 그저 한문학 관련 서적을 많이 만드는 출판사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맺어진 인연은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었다. 임용고시를 접고 인문학 서적을 열심히 읽기 시작할 때도 ‘돌베개’와의 인연은 계속 되었기 때문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통해 ‘앉아서 유목하는 법’을 배웠고 『예수전』을 통해 종교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이때에 이르러서야 출판사의 출판 방향이 나의 생각과 많은 부분에서 일치하는 출판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 돌베개의 책들은 마음을 다잡지 못했을 때 크나큰 위로를 줬다.
출판사 이름을 멋대로 해석하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의미부여를 한다는 것이다. 의미부여는 어떨 때 하냐면, 보편적인 의미 외에 나만의 의미를 심고 싶을 때 그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일례로 애인끼리 서로에게 애칭이라는 것을 짓는 행위를 들 수 있다. 굳이 이름이 있음에도 ‘귀염둥이’, ‘탱이’, ‘뿡뿡이’와 같은 애칭을 짓는 이유는, 나만의 유일한 사람unique으로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즉, 내가 그의 이름만 불렀을 땐 그는 뭇 사람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가 그의 애칭을 불렀을 땐 그는 나에게로 와서 ‘나만의 그대’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처럼 애칭을 지을 때도 이와 같은 의미를 지니는데, 출판사 이름을 지을 땐 더 심하게 고민이 들 수밖에 없다. 짧은 이름 속에 자신들의 출판하려는 의지, 지향점을 모두 녹여내야 하니 말이다.
‘돌베개’란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야곱의 이야기가 먼저 생각났다. 아마 그 당시엔 기독교에 심취하고 있던 때라 모든 것을 성경적인 맥락에서 이해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느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요 이삭의 하느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창세기 28:10~14
야곱은 하느님의 입장으로 보자면, 선민이었다. 그는 형 에사오에게 당연히 넘겨질 장자長子의 권리를 얻기 위해 교묘하게 형인 것처럼 몸에 털을 붙이고 아버지(아버진 눈이 멀어서 감촉만으로 자식을 구분하던 때였음)에게 가서 장자의 권리를 얻었다. 이러한 사실이 형에게 들통 나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자 야곱은 하란 지방으로 도망쳤고 위의 장면은 도망치는 과정 속에 하느님으로부터 계시를 받는 장면인 것이다.
야곱은 어찌 보면 생명의 질서를 위배한 사기꾼이며 이기적인 사람일 뿐이지만, 하느님이 보기엔 ‘자신의 계명을 충실히 지킬 선한 자’로 보였나 보다. 그래서 그에게 복을 내려주겠다고 계시를 하고 있다.
이 글에서 보다 집중해서 봐야 할 것은, 도망가던 도중 야곱이 베고 누운 것이 바로 ‘돌’이라는 사실이다. 이때의 ‘돌베개’는 고난의 상징이며, 결코 편안한 삶을 살 수 없다는 징표이기도 했다. 먼 훗날의 축복을 약속해줬지만, 현실은 고달플 수밖에 없음을 ‘돌베개’를 통해 드러낸 것이다. ‘돌베개 출판사’의 이름을 들었을 때, 난 위의 구절을 생각했고 출판사의 대표님이 절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현실에선 핍박 받을지라도, 먼 훗날 한국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출판해내겠다는 의지로 그와 같은 이름의 출판사를 만든 거라 생각했다.
▲ 니콜라 베르탱 <야곱의 꿈> -17세기 경 제작,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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