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다이빙벨: 세월호 사건 속 다이빙벨의 의미
대통령과 총리, 관계부처 장관들이 현장을 찾아 구조작업을 격려했고, 실의에 빠져 있는 유가족을 위로했다. 매일 밤 메인뉴스로 세월호 관련보도가 흘러나와, 금방이라도 뒤집힌 배를 건져 올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난리법석을 피우고 있었다.
▲ 언론의 보도 행태를 비판하는 그림. 세월호에서도 언론왜곡은 그대로 드러났다.
세월호에서 다이빙벨의 의미
하지만 설레발이었을 뿐이었다. 사고발생 210일 만인 2014년 11월 11일에 실종자 9명을 끝내 찾지 못한 채 수색이 종료되기에 이른 것이다.
세월호의 구조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기 위해서는 ‘다이빙벨’이란 키워드를 관통해야 한다. 다이빙벨은 ‘JTBC 뉴스 9’에 해난구조 전문가인 이종인씨가 나와 인터뷰를 하면서 알려졌다. 이 기구는 ‘모양은 원통형이며 물 속 깊은 곳에 들어가더라도 원통 윗부분에 에어포켓이 형성되어 잠수부들의 감압에 도움을 주기에 수중 작업의 효율을 올리는 기구’라고 할 수 있다. 즉, 수중 구조작업 환경을 개선하여 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은 구조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구인 셈이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에서 ‘다이빙벨’을 그런 식의 단순한 장비 정도로 생각해선 곤란하다. 다이빙벨은 진실로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구하고자 했던 진정성을 드러내는 장치이자, 어떠한 이유로든 그걸 막아서고자 했던 세력을 폭로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 이 인터뷰로 인해 손석희씨는 방통위로부터 중징계를 당했고, 보수단체엔 고소를 당했다.
화제의 『다이빙벨』, 그 前과 後
다이빙벨이 그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인지, 『다이빙벨』이 부산영화제 상영작으로 선정되면서부터 온갖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 화제는 긍정적인 반응이라기보다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정치적 중립을 훼손할 수 있는 작품을 상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로 상영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부산시장은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이기 때문에, 그의 말은 단순한 의사표현이라기보다 완곡한 어조의 강압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 세월호 유가족 대책위는 “단 1구의 주검도 수습하지 못해 유족을 우롱하고 제품을 실험하는데 끝나버린 다이빙벨이 다큐로 제작돼 부산영화제에 초청돼 상영된다니 유족 입장에서 분개할 일”이라며 상영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이러한 상황을 보며 일반 사람들은 ‘『다이빙벨』이 진실을 밝히는 영화가 아니라 유가족까지 반대할 정도로 문제 있는 영화’라는 선입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영화제 측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며 상영을 강행했고, 전석 매진되며 성공적으로 상영을 마쳤다. 상영을 반대하던 유가족도 막상 『다이빙벨』을 본 후에는, “‘다이빙벨’을 영화관에서 볼 수 있도록 자유를 주셔야 한다. 보는가 안 보는가는 대한민국 국민의 선택이다”라며 입장을 바꾸기에 이른다.
하지만 힘겨루기는 여기서 끝난 게 결코 아니었다. 영화제가 끝나자마자 정부는 부산영화제의 비리를 파헤친다며 감사에 착수하는 치졸한 모습을 보였으니 말이다. 정부 관계자가 아무리 “절대 『다이빙벨』 상영과 감사 착수는 관련이 없다”라고 말한다 할지라도, 그 답변은 더욱 확신을 심어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이미 『다이빙벨』의 상영논란을 보며 정부의 심기가 어떤지 알 수 있었기에 정부가 보복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니 말이다.
▲ 유가족과 함께 '다이빙벨'을 보는 이상호 감독님.
‘다이빙벨’의 의미 변질
그러나 실제로 『다이빙벨』이란 영화가 가진 선입견은 실제 장비인 ‘다이빙벨’에 대한 선입견을 통해 굳어진 것이다.
세월호가 잠기고 난 후 구조작업은 전혀 진척이 없었다. 당연히 이 때 가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로 ‘다이빙벨’이 떠올랐다. 그 당시만 해도 ‘다이빙벨’은 ‘수중 작업을 수월하게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장비’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차 다른 의미로 변질되어 간다.
‘도움도 되지 않는 물건으로 만능 해결책인양 사기를 쳤다’는 의견과 ‘정부의 무능을 감추기 위해 다이빙벨에 모든 걸 덮어씌웠다’는 의견이 맞부딪힌 것이다. ‘다이빙벨’은 더 이상 장비의 의미를 넘어서서 세월호 구조 활동의 잘잘못을 따지는 도구로 변질되어 갔다.
이렇게 의미가 변해가는 과정을 보며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하나의 장비에 불과한 ‘다이빙벨’에 여러 의미를 덕지덕지 붙여서 누더기로 만들어야 했던 것일까. ‘다이빙벨’이 구조작업에 적합하냐를 떠나서 세월호가 물에 잠긴 4월 16일부터 구조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모든 장비들은 적극적으로 사용했어야 하지 않냐는 의문이 뒤따른다. 즉, ‘다이빙벨’ 또한 구조를 도와주는 하나의 장비라고 한다면, 그냥 투입하여 어떠한 결과가 나오는지는 지켜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구조기관은 그렇게 투입도 하지 않으면서 온갖 루머로 ‘다이빙벨’의 의미를 퇴색시키려고만 했다.
▲ '다이빙벨'은 수중 작업을 수월하게 하도록 도와주는 장비다. 그런데 다른 의미를 덕지덕지 붙이기 시작했다.
마지못한 ‘다이빙벨’의 투입 승인
그렇게 정부에선 이상하리만치 ‘다이빙벨’을 사용하려 하지 않았고 가용한 수단을 모두 사용하기보다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수단만을 사용해 구조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종인씨는 자비를 털어서 다이빙벨을 가지고 현장에 도착한 것이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정부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기존작업에 방해되고 기 설치된 바지선과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다”는 대답을 하며 투입을 불허한다. 이 대답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은 이 글을 읽다보면 알 수 있다. 결국 이종인씨는 아무 소득도 없이 인천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4일이 흘러 25일에 유가족과 해경청장, 해수부장관과의 대담 시간이 있었다. 그 때 이상호 기자는 감정이 격해진 유가족을 대리하여 사회를 봤고 청장과 장관으로부터 “다이빙벨을 투입하겠다”는 말을 듣는데 성공한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구조기관은 구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장비의 활용을 꺼리고, 유가족이 요구하고 또 요구해야지만 겨우 들어주는 상황 말이다. 이미 사고가 난지 9일이나 지난 후에야 겨우 또 하나의 가능성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과연 ‘다이빙벨’은 구조 활동에 도움을 주는 장비였을까? 자신의 장비를 홍보하려는 한 사람의 농간을 위한 도구였을까?
▲ 이종인씨와 다이빙벨. 그가 어떤 마음으로 팽복항에 왔는지, 온 언론을 그걸 궁금해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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