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아이덴티티와 미셸 푸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의심하라
1. ‘나’를 나이게 만드는 것들은, 정말 나다운 것인가
죄수의 첫 번째 의무는 탈옥이다.
-미셸 푸코
내가 어떻게 너를 잊을 수 있겠어? 넌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람인데……
-제이슨 본(맷 데이먼), 『본 아이덴티티』 중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무엇인가. 가족, 국적, 모국어, 학력, 직업, 재산……. 이런 것들 중에 나의 나다움을 진정으로 결정하는 요소들은 얼마나 될까. 그런데 분명한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우리 스스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우리의 정체성을 ‘이용하는’ 세력들은 넘쳐난다는 것이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는가 하면, 각종 스팸메일과 스팸메시지를 보내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남의 번호를 알았는지 천연덕스레 ‘지인’ 행세를 한다. 아직 우리의 온몸에 바코드가 새겨지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개인의 정보를 유출시킬 빌미를 이 세상에 너무 많이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신용카드, 주민등록증, 현금인출카드, 운전면허증. 이러한 극히 일상화된 ‘신분 증명’이야말로 우리의 정체성을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버젓이 노출하는 절호의 미끼가 된다.
미셸 푸코는 현대인이 정체성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통제하는 사회의 규율 권력을 탐구했다. 말하자면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에 대한 계보학적인 탐구, 나아가 나를 진정한 나이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물과의 전투가 그의 학문적 실천의 한 축을 이루고 있었다. 인간 주체가 ‘자기 자신’을 합리적 사유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데카르트를 비롯한 서구적 근대철학의 출발점이었다. 이성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출발했다. 자기 자신을 이성의 힘으로 인식 가능하다는 확신이 서구적 근대의 기원이기도 했다. 미셸 푸코는 바로 이 근대성의 탄생 지점을 공략하여 그 확실성을 뿌리부터 뒤흔들었다. 그의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 어떤 형태의 합리성과 역사적 조건을 통해서 인간 주체는 그 자신을 지식의 대상으로 삼게 되었는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어떤 대가를 치렀는가? 이것이 나의 질문이다. 주체는 어떤 대가를 치르고 주체에 대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것인가?
-푸코, 『텔로스』에서의 인터뷰 중에서

주체는 과연 어떤 대가를 치르고 주체에 대한 진실을 말할 수 있는가. 이 뼈아픈 질문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 중 하나가 『본 아이덴티티』, 『본 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텀』 시리즈이다. 일명 ‘본 시리즈’라고도 불리는 이 역작은 주인공이 ‘내가 누구였는가(Who Was I)?’를 밝히기 위해 목숨을 걸고 지상 최대의 추격전을 벌이는 이야기다. 그는 자신에게 덧입혀진 정체성, 자신의 기억에도 없지만 자신을 규정하는 강요된 정체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주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잃는 뼈아픈 대가를 지불하고 ‘나는 누구인가’를 간신히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몰라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는 영화 속 주인공들을 보며 우리가 느끼는 것은 단지 뜨거운 연민이 아니라 그들보다 더 갇혀 있는 것 같은 우리의 삶이다. 나를 나이게 하는 것들이 저토록 간단히 말소될 수 있는 것이라면(기억상실증), 나를 나이게 만드는 정체성을 저토록 간단히 위조할 수 있는 것이라면(한 사람을 잔혹한 인간병기로 만드는 CIA처럼), 우리가 이토록 필사적으로 움켜쥐고 살아가는 ‘나’라는 경계는 얼마나 대책 없이 허약한 것인가.
그 허약한 정체성의 표지들을 한 톨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이토록 하루하루 굴욕을 참아야 하는 것인가. 아직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한 사내는 낯선 바다 위를 표류하며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찾아내야 한다. 게다가 나를 죽이려 하는 자들을 통해서만 나의 정체성을 증명할 수 있다니. 이 끔찍한 역설을 우리의 ‘이름 없는 사내’는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인가.

2.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있는 길이 없다!
내가 누구냐고 묻지도 말고, 또 내가 변함없이 그대로 있기를 바라지도 말라. 우리의 서류가 제대로 갖추어졌는지, 그런 것들은 관료와 경찰들에게 맡겨두라.
-미셸 푸코
기억상실증으로 고생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영화들을 보면 우리는 이 사회 곳곳에서 ‘도대체 넌 누구냐’라고 묻는 곳이 저토록 많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우선 ‘이름’이다. 사람들은 낯선 타인을 만났을 때 일단 타인의 ‘이름’을 먼저 알아두어야 마음이 편해진다.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실질적인 정보’가 아무 것도 없는데도, 그저 대충 임의로 지어서 불러도 그만인 ‘이름’을 알면 그에 대해 가장 중요한 것을 알았다는 듯 뿌듯함을 느낀다.
이름은 타인을 우리 두뇌 속의 ‘지인 목록’에 올리기 위한 첫 번째 구성 항목이다. ‘호명’을 함으로써 타인을 분석하고 때로는 지배하고 싶은 욕구를 숨기지 않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국가’다. 국가가 증명하는 개인의 정체성을 기록한 ‘여권’ 없이는 우리는 국가의 바깥 그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다. 국가는 개개인의 이름과 생년월일, 태어난 장소 등의 ‘기본적인’ 정보를 통해 개인의 정보를 목록화하고 만약 그러한 정보가 국가의 정보망에 ‘기재’되지 않는다면 멀쩡히 살아 있는 한 사람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 되어버린다. 주민등록만 말소시키면 개인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때 정체성을 기재한 엄중한 ‘기록’들은 역설적으로 개개인의 생생한 실체를 ‘부정’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하는 것이다. 지중해 한 가운데서 등에 총상을 입은 채 표류하고 있던 이 이름 없는 사내가 의식을 되찾은 순간. 그가 맞닥뜨린 것은 낯선 어부가 발견한 난데없는 스위스 은행의 계좌번호다. 표류하고 있던 사내를 구해준 이탈리아 어부는 그의 몸속에서 작은 기계장치를 꺼내고 그것을 벽에 비추자 스위스 은행의 계좌번호가 나타난 것이다. “000-7-17-12-0-14-26. 게마인샤프트 은행, 취리히. 보시오, 은행 계좌 번호요. 이게 왜 당신 엉덩이에 있었던 거요?” 그는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고 단지 등에 입은 총상과 엉덩이 속에 들어 있었다는 이 계좌번호만이 그가 살아온 ‘흔적’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사내는 어부들의 일을 도와주며 시간이 날 때마다 기억을 찾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해보지만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다. “읽는 것도 쓰는 것도, 덧셈 뺄셈도 할 수 있고 커피도 탈 수 있고요. 카드놀이도, 체스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기억이 전혀 없어요, 젠장! 그게 문제라고요!” 그는 자신을 구해준 어부에게 고민을 토로하고, 어부는 곧 기억이 돌아올 것이라 위로하지만 ‘사내’의 상태는 절망적이다. “벌써 2주일째에요. 소용없어요. 뭘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기억이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내일이면 항구에 도착할 텐데, 난 아직 내 이름도 몰라요.” 항구에 도착할 시간이 다가오자 사내를 도와준 어부는 차비를 쥐어주며 말한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스위스까지 갈 수는 있을 거야.”

그는 혈혈단신(孑孑單身),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스위스에 도착한다. 막상 스위스에 도착했지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다. 그는 마땅히 머물 곳도 돈도 없어 공원 벤치에서 노숙하려다가 경찰을 만난다. 경찰이 ‘신분증’을 요구하자 그는 신분증을 잃어버렸다고, 잔뜩 풀 죽은 목소리로 쭈뼛쭈뼛 말한다. 그 순간 경찰이 몸을 수색하려 하자 사내는 자기도 모르게 엄청난 속도로 경찰 두 명을 때려눕히고 어느새 경찰의 ‘총’을 빼앗아 쥐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그의 의식은 이러한 ‘판단’을 내리지 않았지만 그의 ‘신체’가 의식보다 먼저 반응하여 경찰들을 일거에 제압해버린 것이다. 도대체 내 몸 어디에서 이토록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은 액션이 흘러나오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자신이 사람 둘을 순식간에 쓰러뜨린 사실 자체에 놀라, 무엇보다도 자신이 자신도 모르게 경찰의 ‘총’을 빼앗았다는 사실에 놀라, 불에 덴 듯 엉겁결에 총을 내버리고 줄행랑을 치는 ‘사내’.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실제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의 무기는 ‘몸’이었다. 우리 몸에는 우리 자신이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방대한 정체성의 코드가 입력되어 있다. 아직 이름을 알 수 없는 이 사내의 정체성도, 그가 살아온 흔적도,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단서도 ‘몸’이다. 그는 단지 ‘이름과 인적 사항’만 모를 뿐 그의 몸은 그의 삶을 구성하는 결정적인 단서들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의식은 ‘내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의 몸은 충분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진짜 중요한 정보는 ‘내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아닐까. 언제든 자유롭게 편집되고 가공되고 재해석되는 ‘기억’보다 더 선명하게 우리의 삶을 증언하는 것은 우리의 ‘행동’이니까. 우리의 기억보다 우리를 더 정직하게 비추는 거울은 우리가 지금-여기서 창조하고 있는 바로 이 ‘행동’이니까.
고백해야 한다는 의무가 이제 …… 우리들 속에 너무나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어서,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을 우리를 구속하는 권력의 효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셸 푸코

3. 내가 누구인지 알수록 나는 위험해진다
규율은 개인을 제조한다. 즉, 그것은 개인을 권력 행사의 객체와 도구로 간주하는 권력의 특정한 기술이다.
-미셸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267~268쪽.
시간이 갈수록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 자체가 두려워진 이름 모를 사내. 그는 유일한 가시적 단서인 스위스 은행 계좌번호를 사용하기로 한다. 우여곡절 끝에 스위스 은행에 들어간 그는 비밀계좌에 들어 있는 자신의 소지품을 열어 보고 드디어 자신의 이름을 찾아낸다. 미합중국의 여권 위에 기재된 그의 이름은 ‘제이슨 본’이었다. 좀처럼 표정이 없던 이 ‘사내’의 얼굴에 처음으로 안도의 미소가 스쳐간다. “내 이름은 제이슨 본이구나. 파리에 살고 있군.” 자신의 이름을 알게 되자 자신의 모든 것을 찾아낼 수 있는 열쇠를 찾은 듯 기뻐하는 제이슨.


그러나 소지품이 들어 있는 상자의 칸막이를 벗겨내니 수 십장의 여권이 쏟아져 나온다. 사진은 모두 ‘내 얼굴’을 가리키는데 이름과 국적은 모두 다른 수십 장의 여권이 기다리고 있다.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서류가 이토록 많은데, 나는 더더욱 알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 소지품 상자에는 돈다발이 한가득 들어 있는데다가 ‘총’까지 들어있었다. 도대체 나는 누구이기에 이런 엄청난 물건들을 스위스 은행의 비밀계좌에 갖고 있는 것일까.

그는 아직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 ‘보통 사람’처럼 살아갈 수는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감지한다. 제이슨은 자신에게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몰라 일단 여권과 돈은 챙기지만 ‘총’만은 용납할 수 없어 다시 소지품 상자에 넣어두고 스위스 은행을 떠난다. 기다렸다는 듯이 누군가 자신을 미행하는 듯한 느낌을 감지한 그는 ‘케인’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된 미국 여권을 가지고 재빨리 미대사관으로 도피한다.
미대사관의 ‘안전한’ 품 안에 잠시 의탁한 그는 이곳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경찰뿐 아니라 군인들까지도 그를 추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경찰관 두 명을 때려눕힌 액션 실력은 ‘빙산의 일각’이었음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신출귀몰한 액션과 과감한 두뇌 플레이를 화려하게 선보이며 수백 명의 추격자들을 따돌리고 ‘한 여자’에게로 접근한다. 제이슨이 대사관에서 눈여겨보았던 한 독일여성이 차를 몰고 떠나려는 찰나, 제이슨은 그녀를 불러 세운다.
제이슨: 당신은 돈이 필요하죠. 난 당장 차가 필요해요.
마리: 내 차는 택시가 아니에요, 그럼 이만.
제이슨: 나를 파리까지 태워다 주면 만 달러를 주겠어요.
마리: 젠장, 내가 바보천지인 줄 아나?
제이슨: 그냥 가버리면 정말 바보예요.
마리: 장난해요? 사기 치냐고요?
제이슨: 사기 아니에요(그는 만 달러 뭉치를 마치 야구공 던지듯 심상하게 그녀에게 던져주곤 심각한 표정으로 말한다.). 파리에 무사히 도착하면 만 달러를 더 주겠어요.
마리: (대사관 주변에 진을 치고 있는 경찰들을 보고 표정이 굳어지는 제이슨을 의심스런 눈길로 쳐다보며)세상에! 경찰 때문인가요?
제이슨: 차를 타면 돈을 내는 게 당연하잖아요.
마리: (절박한 상황에서 돈을 보자 마음이 흔들리지만, 낯선 남자를 태우는 일이 영 찜찜한 듯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난 지금도 너무 복잡해요, 알겠어요?
제이슨: 그럼 돈을 돌려주겠어요?
화폐는 때로 최고의 신분증명서가 된다. 그가 누구인지 몰라도 그의 화폐가 그의 ‘아이덴티티’를 증명한다. 제이슨은 결국 마리의 자동차를 타고 파리로 향한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빠른 속도로 학습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치밀한 계획이 아니라 신체의 반사적 액션을 통해 자신의 엄청난 잠재력을 깨닫게 된다. 제이슨의 무의식은 ‘몸’이라는 유일한 비밀통로를 통해 그의 의식을 향해 끊임없이 감각의 모스 부호를 날려 보내는 중이다. 넌 지금의 네가 아니야. 넌 너를 찾을수록 미궁에 빠질거야. 너를 찾는 길이 과연 최선일까. 네가 다룰 수 있는 무기는 총만이 아니야. 네 온몸이 곧 최첨단의 무기인 셈이지…….
온 몸의 세포가 기억한 삶의 흔적, 그 엄청난 분량의 메시지를, 무의식은 ‘몸’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의식을 향해 송신한다. 그는 그 어디라도 갈 수 있는 수많은 여권과 엄청난 돈까지 지녔지만 어딜 가나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보이지 않는 감방 안에 갇혀 살아가야 한다. 그를 쫓는 것은 한 개인이 아니라 거대한 권력기구이며 그의 모든 정보를 ‘프로파일링’하여 보유하고 있는, 제이슨 자신보다 제이슨을 훨씬 잘 알고 있는 무시무시한 비밀 조직인 것이다. 제이슨은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발견하자마자, 생사의 문턱을 가르는, 출제자도 출제 목적도 알 수 없는 엄청난 ‘시험’을 치르게 된 것이다.
시험은 개인을 자료의 영역 속으로 집어넣는다. 시험은 사람들의 신체와 일과의 차원에서 구성되는, 섬세하고 정밀한 모든 기록을 뒤에 남겨 놓는다. 개인을 감시 영역 안에 두는 시험은 또한 개인을 기록망 속에 넣어두는 것이다. 시험은 개인을 붙잡아 고정시키는, 두툼한 기록문서에 집어넣느냐. 시험의 여러 가지 방식은 집약적인 기록과 서류보관의 체계를 동반하게 된다. ‘기록에 의존하는 권력’은 규율의 톱니바퀴 같은 장치 안에서 본질적인 부속품처럼 조립된다.
-미셸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295~296쪽.

4. ‘잃어버린 기억’에 추격당하며 점점 고통스러워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장치적인 것, 곧 생물학적인 것, 신체적인 것, 육체적인 것이다.
-미셸 푸코
기억의 주기가 딱 24시간이라 매일 아침 같은 남자와 처음처럼 사랑에 빠지는 여자의 이야기(『첫 키스만 50번째』), 10분 이상 기억을 지속시키지 못하는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가 된 남자가 온몸에 단서를 문신해가며 아내의 살인범을 쫓는 이야기(『메멘토』), 가슴 아픈 기억만을 지워준다는 회사를 찾아가 이제 싫증이 나버린 애인과의 아픈 사랑을 지워버리지만 기억을 지우고도 이상하게 ‘기억할 수 없는 그녀’를 더더욱 그리워하는 이야기(『이터널 선샤인』)…….
‘기억 상실’을 소재로 한 수많은 영화 속의 주인공들 곁에는 ‘그들이 잃어버린 바로 그 기억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타인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기억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도움, 혹은 방해 끝에 ‘잃어버린 자아’를 찾게 된다. 즉, 기억 자체를 찾지 못해도 기억에 상응하는 ‘타인’이 그 기억의 빈자리를 메워준다. 기억, 혹은 기억의 대체제를 찾을수록 주인공은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본 아이덴티티』, 『본 슈퍼리머시』, 『본 얼티메이텀』으로 이어지는 ‘본’ 시리즈의 주인공 제이슨은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정체성의 퍼즐을 완성하기보다는 ‘잃어버린 기억’에게 추격당하며, 기억을 되찾을수록 오히려 점점 고통스러워진다. 자신이 누군지는 아직 모르지만 자신이 엄청난 조직력과 무력을 갖춘 거대한 조직에게 쫓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제이슨. 그는 자신의 여권을 가리키고 있던 거주지인 파리에 도착하여 자신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기억을 잃어버린 이후로 몇 달 동안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끊임없이 두통을 시달리던 제이슨은 처음 보는 여자 마리의 밑도 끝도 없는 수다를 들으며 자신도 모르게 졸음이 몰려오며 두통도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기억을 잃어버린 그의 불안과 절망을 어루만져줄 최초의 멘토를 만난 것이다.
마리: 지금껏 60킬로미터나 달려오는 동안 나만 지껄여댔잖아요. 난 신경이 곤두설 때 이렇게 수다를 떨게 돼요. 이제 입 다물고 있겠어요.
제이슨: 아뇨, 계속해요. 한동안 아무와도 얘길 나누지 못했거든요.
마리: 됐어요, 어쨌든 나 혼자만 말하고 있잖아요. 당신은 취리히를 떠난 후 겨우 열 마디를 했을 뿐이에요.
제이슨: 당신 이야기 듣는 게 편해서 그랬어요. 한동안 잠도 못 잤고 두통으로 고생했어요. 항상 머릿속에 맴돌던 게 이제야 좀 사라지는 것 같아요. 그러니 계속 이야기해줘요.

그가 파리로 도착할 즈음, 카메라는 그를 추격하고 있는 CIA의 정황을 상세히 보여준다. 제이슨의 등 뒤에 두 발의 총성을 남긴 ‘옴보시’는 CIA의 골칫거리였고, 제이슨은 움보시를 살해하는 데 실패한 채 행방불명되었던 ‘트레드스톤’이라는 비밀조직의 일원이었다. CIA의 비리를 언론에 누설해서 한 몫 단단히 챙기고 싶어 하는 움보시는 CIA의 아프리카 활동에 대한 책을 집필 중이고, 또 다시 CIA의 암살대상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는다. 움보시는 암묵적으로 CIA의 공납을 요구하는 중이고, CIA는 성가신 움보시를 해치우지 못해 안달이다. 트레드스톤의 존재는 CIA내부에서도 공공연한 비밀이며, 그들의 단독 활동은 CIA의 치명적인 치부가 될 수도 있다.
CIA의 이름을 걸고 ‘대놓고’ 할 수 없는 불명예스러운 일까지 도맡고 엄청난 비리까지 숨긴 트레드스톤의 행동대장 콩클린(크리스 쿠퍼)은 행방불명된 요원 제이슨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다. 제이슨이 없어져야 트레드스톤의 ‘과오’까지 함께 삭제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리 크루츠까지 함께 수배하여 둘을 한꺼번에 살해하여 모든 ‘증거’를 없애버리려 한다. 그들은 순식간에 마리의 정보를 입수하여 그녀를 ‘이해 가능한 존재’로 분석하려고 한다.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집시처럼 떠돌며 살아온 그녀는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다음 행동을 계산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골칫거리 ‘타깃’인 셈이다.
요원: ‘마리 헬레나 크루츠’입니다. 26세, 하노버 시 외곽 출생입니다. 부친은 용접공이었어요. 87년에 사망했습니다. 모친에 대해선 아직 조사 중입니다. 할머니는 아직 하노버에 살고 있어요. 그녀가 이 재앙의 결정적인 인물인 듯싶습니다. 배다른 오빠가 하나 있어요. 복잡하죠, 집시나 다름없거든요. 데이터가 너무 방대한데다 엉망진창이라, 예측불능입니다. 95년에 스페인에서 전기료를 납부했어요. 96년에는 벨기에에서 3개월 동안 전화료를 납부했고요. 세금 내역도 신용카드도 없습니다.
콩클린: 맘에 안 드는 여자야, 자세히 조사해보지. 할머니와 오빠의 전화선을 도청해. 연관이 있다면 누구든 지난 6년 동안 그녀가 묵었던 모든 장소를 알아내. 파리 요원들에게 이 정보 전송해.
마리는 단지 제이슨을 파리까지 데려다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암살 대상’이 되어버린다. 관객은 한 사람의 신상 정보가 저토록 쉽고 빠르게 유출될 수 있다는 것, 개개인의 삶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이 저토록 정교하게 전 세계를 아우른다는 사실에 새삼 전율한다. 우리는 이토록 쉽게 ‘이해 가능한’ 존재였단 말인가. 푸코는 과거의 연대기가 ‘영웅적’인 행동을 강조한 것에 비해 근대의 서류파일은 ‘규범의 일탈과 위반’을 관찰하는 것이 주된 임무라고 이야기한다. ‘기억할 만한 인간의 위대함’에 대한 성찰보다는 ‘측정 가능한 인간’을 강조함으로써 근대적 의미의 ‘인간 과학’은 탄생했다는 것이다. 학교와 병원과 감옥과 군대의 각종 ‘서류철’이야말로 천차만별의 개인을 ‘규격화 가능한 신체’로 균질화한 ‘프로파일링의 천국’인 셈이다.
인간에 대한 통제와 그 활용을 위한 세부의 치밀한 관찰, 그리고 동시에 사소한 것에 대한 정치적 고려는 고전주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일련의 총괄적인 기술과 방법, 지식, 설명, 처방, 데이터 등의 일괄적인 자료를 공유하게 된다. 아마도 이러한 사소한 일들로부터 근대적 휴머니즘의 인간이 탄생하게 되었을 것이다.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222쪽

5. ‘기억할 수 없는 나’가 ‘기억을 찾는 나’를 추격하다
과거의 나는 이미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은 새로운 나이다. (……) 자기 명시는 동시에 자기 파괴이다.
-미셸 푸코, 이희원 역, 『자기의 테크놀로지』, 동문선, 77쪽
제이슨 본은 낯선 여자의 차를 힘겹게 얻어 타고 파리로 가면서 생각했을 것이다. 나를 찾기만 하면, 내가 잃어버린 나를 찾기만 하면, 이 모든 상황이 종료될 것이라고. 그러나 과거 그가 거주했던 파리와의 거리가 점점 좁혀질수록, 커져가는 두려움도 숨길 수 없다. 나를 찾기만 하면, 정말 이 모든 공포와 불안이 해소될 수 있을까. 나를 찾아내는 것이 꼭 좋은 일일까. 파리에 간다고 해도, 나를 찾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파리에 가면 나를 기다리는 가족이나 친구가 있기는 한 걸까.
온갖 생각의 실타래로 난마(亂麻)처럼 얽혀 있는 제이슨의 머릿속. 지금 그에게 유일한 지인(知人)은 오직 1만 달러를 받고 취리히에서 파리까지 운전을 해주기로 한, 보헤미안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낯선 여성, 마리 크루츠뿐이다. 막상 파리로 도착하자 둘은 그냥 헤어지기에는 왠지 아쉬운, 서로의 감정을 동시에 알아차린다. 제이슨은 ‘내가 누구인지’를 혼자 알아내고 확인하기가 문득 두려워지고, 마리는 파리행 차비로 2만 달러를 아낌없이 내버리는 이 남자, 기억상실로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는 이 남자의 아이덴티티가 못 견디게 궁금해진다. 물론 두 사람은 ‘내가 누구인지’, ‘네가 누구인지’ 모르는 낯선 남녀일 뿐이지만, 두 사람은 그 모든 외적 상황과 전혀 관계없이 매혹적으로 빛나는 서로의 싱그러운 육체를 무의식적으로 알아차린다.
제이슨: 태워줘서 고마워요.
마리: 천만예요.
제이슨: 뭐, 올라와도 돼요. 여기서 기다리든지요. 확인하고 올게요, 기다려요.
마리: 같이 가요,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당신은 아마 날 잊어버릴 거예요.
제이슨: 잊을 리가 있겠어요? 당신은 이 세상에서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람인 걸요.
제이슨의 집 주인은 ‘본 선생’을 알아보고 엄청나게 반가워하지만, 제이슨은 정작 집주인 아주머니를 전혀 알아볼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호화로운 인테리어로 가득한 제이슨 본의 집안에서 저마다 ‘나의 흔적’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물건들을 하나도 알아 볼 수가 없다. “세상에, 하나도 못 알아보겠군요.” 자신이 살았다고 추정되는 곳에 와서도 기억을 떠올릴 수가 없자 제이슨은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는 자신이 묵었다고 추정되는 호텔의 주소를 찾아 전화를 건다. 제이슨 본의 이름으로 투숙자를 찾아보니 없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또 다른 여권’의 이름 ‘마이클 케인’으로 찾아보니 드디어 자신의 ‘소식’을 들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알게 된 소식은 청천벽력(靑天霹靂)이었다. 호텔 프론트의 전화 너머로 들리는 직원의 메시지에 제이슨, 아니 아직 여전히 그저 ‘제이슨으로 추정될 뿐인 정체불명의 이 남자’는 절망한다. “안타깝게도, 마이클 케인 씨는 2주 전에 사망하셨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교통사고였습니다. 현장에서 즉사하셨습니다. 손님께 이런 소식을 전하게 되어 진심으로, 대단히 유감입니다.”
그토록 찾았던 ‘나’인데, 내 목숨을 걸고, 원치 않는 살인까지 해가며 죽을 힘을 다해 나를 찾았는데, 나를 찾는 순간 내가 죽어버렸다는 소식을 듣는다. 나는 여기 살아있는데 내가 찾는 나는 죽어버렸다. 도대체 죽어버린 나와 살아 있는 나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모든 기억을 다 상실해버렸는데도 왜 나는 ‘살인 기술’만은 잊지 않고 있는 것일까. 정말 ‘죽어버린 나’를 되찾아도 되는 것일까.
급기야 안전한 줄만 알았던 이 파리의 아파트에까지 ‘괴한’이 침입해 들어오고, 겁에 질린 마리 앞에서 그는 자신과 마리를 동시에 죽이려는 그 괴한을 쓰러뜨리고 만다. 마리는 물론 제이슨 그 자신도 자신이 보유한 엄청난 ‘살인 능력’에 기가 질려버린다. 그는 점점 ‘자기가 찾고 있는 자신’이 무서워진다. 내가 누구기에 나는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이 상황에서도 이토록 엄청난 살인의 기술을 정확히 기억하는 것일까.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은 누구일까. 도대체 어떤 무서운 훈련 과정을 거쳐야 온몸이 살인 무기인 나 같은 존재를 제조해낼 수 있는 것일까. 자기 자신이 너무 두려워진 제이슨은 마리에게 이 모든 두려움을 고백한다. 그가 알고 있는 이 세상 유일한 사람은 마리 한 사람뿐이니까.
제이슨: 대체 어떤 사람이 돈과 여섯 개의 여권, 그리고 총으로 채워진 비밀계좌를 가지고 있죠? 누가 엉덩이에 은행 계좌번호를 박고 다니죠? 내가 여기 들어와서 처음으로 한 일은 눈에 띄지 않는 자리와 비상구를 찾는 것이었죠. 밖에 주차된 자동차 여섯 대의 번호판을 외웠고, 웨이트리스가 왼손잡이라는 것도, 카운터에 앉아 있는 사내의 몸무게가 97.5kg이라는 것도 말할 수 있죠. 저기 회색 트럭 안에 총이 들어있다는 것도 알아요. 또 이런 고도에선 난 800미터 정도는 끄떡없이 달릴 수 있다는 것도 알아요. 대체 내가 어떻게 이런 걸 아는 거죠? 난 내 자신도 모르는데 어떻게 이런 걸 알고 있는 거죠?
개인별로 특징화하면서도 집단적으로 유용한 능력을 양성하기 위한 방법의 최초 핵심이 되었던 것은 아마도 교단적인 생활 방식과 구도 과정이었을 것이다. 신비주의적이거나 혹은 금욕적인 형식을 통하여, 수련은 구원을 얻기 위해 이 세상의 시간에 질서를 부여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 수련은 (……) 그 의미를 점차적으로 전도시키게 된다. 즉, 인생의 시간을 관리하고, 그것을 유용한 형태로 축적하며, 이렇게 조정된 시간은 인간에 대한 권력의 행사에 이바지한다. 신체와 시간에 관한 정치적 기술의 한 요소로 편입된 훈련은 천상의 세계로 올라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완성되는 복종을 지향하는 것이다.
-미셸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255쪽

6. 나는 위험인물이다. 그런데 누구에게?
나의 정치적 자유는 곧 나의 반대파의 정치적 자유다.
-로자 룩셈부르크
우리는 내 의견을 존중받고 싶어 하는 만큼 나와 다른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배웠다. 그러나 세상 밖으로 뛰쳐나오자마자 우리는 실제로 그 ‘원칙’이 지켜지는 곳을 찾아내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것을 배운다. 순전히 ‘나와 다르다’, 혹은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얼토당토않은 비난을 감내하며 살아가야 하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 많이 목격했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그들’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언제든지 자신의 신상 정보와 활동 내역을 낱낱이 감시당할 위험에 처해야 한다. 미네르바 사건은 수십년 동안 사문화되었던 정보통신법을 이용해 ‘그들과 다른’ 의견을 가진 한 사람의 인생을 뿌리째 뒤흔든 한국판 제이슨 본 사건이었다.

제이슨 본은 ‘그들의 이해관계’(CIA의 비밀조직 트레드스톤)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세계 어딜 가든 죽음의 위협에 노출된다. 그들의 이해관계에 맞추기 위해서는 제이슨 본이 계속 ‘죽었다’고 알려져 있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제이슨 본은 ‘나는 죽었다’는 ‘기록’과 ‘나는 살아 있다’는 ‘사실’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제이슨은 이제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추격하고 살해하려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된다. 게다가 그들이 마리까지 추격하고 있음을 알게 되자 제이슨은 마리를 어떻게 해서든지 구해내려 한다.
제이슨: 당신, 경찰한테 가요. 당장, 일이 악화되기 전에 가야 해요.
마리: 나 혼자서요?
제이슨: 괜찮을 거예요. 내 여권을 가져가요, 알겠죠? 이걸 보이란 말예요. (……) 있었던 대로만 진술해요. 경찰은 당신을 믿을 거예요. 믿어야만 해요. 마리, 여기 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요. 안전하지 않다고요.
마리: (……) 도대체 그들이 우리가 함께 있는 걸 어떻게 알죠?
제이슨: (설명하기 난처한 표정을 애써 숨기며) 난, 당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그게 다예요.
마리: 날 위해? 경찰에 날 혼자 보내는 게 어떻게 최선이죠?
제이슨: 일부러 보내려는 것 같아요? 난 뭐 좋은 줄 아냐고요?(제이슨 본 자신을 현상수배하는 사진을 가리키며) 난 이 남자와 사진에 대해 전혀 몰라요! 내가 누구인지 모른단 말예요! 함께 도망 다닐 순 없어요. 안돼요. 평생 도망치면서 이렇게 살겠죠. 누구로부터의 도망인지도 모른 채. 날 쫓는 이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 알아요. 네, 난 여기 있어야 해요, 어떻게 된 건지 알아봐야 해요.
마리는 본능적으로 경찰조차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다. 마리는 자신이 아무리 정직하게 진술해도 경찰이 자신을 믿어줄지 확신할 수 없다고 여긴다. 그녀는 하루 만에 자신이 믿어왔던 세상의 가치관이 완전히 전복되는 것을 경험해버렸다. 이제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이제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마리의 입장에서는, 바로 어제 스위스 길거리에서 낯선 남자 제이슨과 이야기하던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촬영되어 바로 오늘 아침 프랑스 파리의 현상수배 전단지에 붙어 있는 것인지, 도대체 이 남자는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저 이 남자와 함께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조차 수배대상이 된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마리의 본능은 역설적으로 지금 자신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이 남자뿐임을 직감한다. 아무런 가시적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며 좌충우돌하는 이 남자의 진심만은, 믿고 싶다. 운전대를 잡은 제이슨은 코앞에서 서성이는 경찰들을 보며 마지막으로 질문한다. “마리, 당신이 이 차에서 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예요.” 마리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안전벨트를 맨다. 나는 당신과 함께 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마리.

제이슨은 이제 혼자가 아니다. 이제 제이슨은 두 배로, 아니 천 배로 더 위험해졌다.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목숨까지 책임져야 하기에, 그러나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한 인간이 타인의 목숨까지 지킬 수는 없음을 알기에. 그날 밤 제이슨은 마리의 머리카락을 직접 잘라주고 염색해주며 어제보다 더욱 깊어진 마리의 서늘한 눈빛을 조용히 응시한다. 그들은 가장 위험한 순간에 사랑에 빠졌고, 그 위험만큼이나 열정적인 사랑을 나눈다.
한편 트레드스톤은 제이슨 본을 쉽게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한다. 왜냐하면 제이슨 본은 한 사람이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낸 프로그램’ 자체니까. 제이슨이 기억을 상실해도 제이슨 본이라는 살인무기를 만들어낸 그들의 프로그램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컴퓨터 프로그램과 다름없어요. 지휘 통제를 따르죠.” 이제 트레드스톤의 입장에서는 제이슨과 마리를 추격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마리의 신상정보를 모조리 캐낸 그들은 마리의 동선을 예측함으로써 제이슨의 동선도 함께 예측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6년 동안 마리가 체류한 모든 장소를 샅샅이 찾아낸 트레드스톤은 마리의 가족들의 전화를 거리낌 없이 도청하고, 마침내 마리의 다음 행선지를 소름끼치도록 정확히 예측해낸다. 마리의 이복오빠 명의로 된 외딴 집, 그곳이 마리의 다음 행선지였고 그녀가 아는 한 가장 안전한 장소였던 것이다.
마리의 오빠와 그의 귀여운 아이들이 잠든 모습을 바라보며 제이슨은 처음으로 차라리 나를 찾지 않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의심한다. 평화롭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가정이 눈물겹게 부럽다. 혹시 나 때문에 이들이 위험에 처하지 않을까 두렵다. 차라리 모든 것을 잊고 새로 새직하면 되지 않을까. 내가 누구인지가 뭐 그렇게 중요한가. 그러나 내 몸속에 입력된 이 소름끼치는 정보들은 무엇인가. 도대체 누가 날 이토록 무서운 인간병기로 만들었을까. 나는 과연 정신적으로 ‘건강한’ 인간인가. 나의 두뇌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세뇌되고 훈련된 것인가. 나는 누구를 위해 만들어진 인간 병기인가. 제이슨은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알기를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프랑스 철학계에서는 ‘제이슨 본’ 못지않게 신출귀몰했던 미셸 푸코는 자신이 ‘위험인물’로 분류되는 것을 역설적으로 자랑스러워했다. 푸코를 해고한 대학 당국은 물론, 푸코가 실천했던 각종 저항운동을 혐오했던 사람들에게 그는 제이슨 본만큼이나 위험한 인물이었다. 푸코는 자신을 ‘기성제도의 인식’의 그물로 가두려는 사람들 앞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이 언제나 그 그물을 빠져나오는 데서 저항의 쾌락을 찾았다. 그는 정신의 ‘건강’이라는 획일화된 기준 자체를 철저히 의심했다. ‘건강’이라는 또 하나의 획일적 기준이야말로 우리 인식의 복잡성과 모호성 그 자체가 지닌 창조적 긴장을 파괴하는 폭력이기 때문이었다.
Q: 선생님(푸코)께서는 왜 해고당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내가 특별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점은, 몇몇 사람들이 나를 학생들의 지적 건강을 해치는 위험인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지적활동에 있어서의 건강을 생각하기 시작할 때, 거기에 무엇인가 잘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나는 마르크스주의의 비밀동조자이며 비합리주의자이고 허무주의자이기 때문에 위험한 인물입니다.
-미셸 푸코, 럭스 마틴과의 대담 중에서, 1982년 10월 25일

7. 직업은 무엇입니까?
범죄는 재판에 대한 감옥의 복수이다. 재판관을 어안이 벙벙하게 할 정도로 대단히 무시무시한 복수이다. 그때 범죄학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미셸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390쪽
여동생의 애인을 처음 봤을 때 오빠나 아버지가 하고 싶은 질문 1위는 무엇일까. 애인이 무척 어리다면 ‘아버지는 뭐하시나?’일 것이고 애인이 충분히 성숙하다면 ‘자네 직업은 뭔가?’정도가 아닐까. 이 기준에 따르면 마리 크루츠가 사랑에 빠진 이 남자 제이슨 본은 결코 ‘바람직한’ 신랑감이 아니다. 직업이나 부모님의 자산 정도는 물론 가족이나 주소나 국적조차 확실하지 않은 이 남자. 결국 우리는 ‘본’ 시리즈 1편에서 주인공의 ‘진짜’ 이름조차 모르고 영화관을 나오게 될 정도니 말이다.
마리의 오빠 에몬은 어김없이 마리에게 질문한다. “저 사람 직업이 뭐야?” 직업도 확실하지 않고 이름과 국적조차 확실하지 않은 제이슨 본의 인적사항에 대해 마리는 대충 둘러댄다. “선박 회사 다녔었어.” 아마도 그것조차 ‘만들어진 정체성’임에 분명한, 제이슨 손이 파리에 있었을 때의 가짜 직장은 선박 회사였던 것이다. 검열의 장치는 감옥이나 CIA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알아가는 방식’, 타인에 대한 인식 방법 자체에 끈덕진 검열의 문신이 새겨져 있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베아스’라는 어느 부랑자의 1840년 재판 기록을 들추어낸다. 재판장은 집요하게 당신의 집은 어디이냐, 당신은 직업은 무엇이냐, 당신의 가족은 누구이냐 등등 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외부적 조건을 묻는다. 그런데 이 부랑자 베아스는 재판장의 각종 질문 공세에 절대 쫄지 않는다. 유유자적하고 여유만만하게, 마치 이런 질문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귀찮다는 듯이, 재판장의 질문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린다.
재판장: 사람은 자기 집에서 잠을 자야 합니다.
베아스: 내가 집이 있겠습니까?
재판장: 피고는 언제까지나 떠돌이로 지낸다는 거군요.
베아스: 나는 일해서 먹고 삽니다.
재판장: 피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베아스: 내 직업이라 (……) 우선 적어도 36개 정도가 되지요. 게다가 어느 일정한 자리에서 일하고 있지 않습니다. (……) 나는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일합니다. 예컨대 낮에는 모든 통행인들에게 자그마한 무료 인쇄물을 나눠 주기도 하고, 승합 마차가 도착하면 좇아가서 승객의 짐을 나르고, 뇌이이 거리에서 팔다리를 번갈아 짚어 가는 재주넘기를 하고, 밤에는 극장을 기웃거리고, 무대의 휘장을 열어주고, 극장의 외출권을 팔기도 합니다. 나는 무척 바쁜 사람입니다.
재판장: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일을 배우는 것이 피고에게는 더 나을 텐데요.
베아스: 천만에요. 좋은 직장, 견습, 그런 것은 지겨울 뿐이요. 그리고 부르주아가 되어도 늘 불평거리가 많고 또 자유도 없지 않습니까.
재판장: 피고의 아버지는 피고를 야단치지 않습니까?
베아스: 아버지가 없습니다.
재판장: 그렇다면 피고의 어머니는?
베아스: 없습니다. 친척도 친구도 없습니다. 나는 남의 속박을 싫어하는 자유인입니다. 2년 징역 선고를 듣자, 베아스는 매우 험악한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렸으나 곧 유쾌한 기분을 되찾고는 이렇게 말했다. “2년이라면 기껏해야 24개월밖에 안 되겠군요. 자, 일어서지요.”
-미셸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441~442쪽.
베아스는 무려 36개의 직업을 가진, 말하자면 ‘홍반장’ 같은 사람이었나 보다. 이토록 바쁜 그를 재판장은 단지 주소가 없다는 이유로, ‘일정한’ 직업이 없다는 이유로, 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위험한 인물’로 처리한다. 푸코의 말처럼 재판장은 자신이 주거를 공급하는 사람도 아니면서 모든 사람에게 안정된 주거와 가정생활을 강요하고 있다.
“피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은 피고뿐 아니라 우리가 ‘한 사람’을 인식할 때 필수적으로 입력하는 기본 데이터다. 이 질문 하나에 엄청난 이데올로기적 검열의 그물이 친친 감겨 있었던 셈이다. 이런 ‘근대적 직업관’에 따르면 베아스처럼 수십 개의 일용직을 가지고 있어도 그 사람은 통계적으로 무직자, 부랑자, 홈리스, 그러므로 ‘위험인물’로 낙인찍힌다. 사범기관을 비롯한 각종 국가장치가 보호하려는 것은 ‘안정된 사회의 기득권’이며 저 ‘하찮은’ 부랑자의 안위가 아니니까. 그는 주소와 직업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문명’을 거부한 ‘야만인’으로 선고받았다.
어젯밤 뉴스에서 ‘10대 청소년 가출, 한 해 10만 명으로 급증’이라는 뉴스 헤드라인을 봤다. 뉴스를 가만히 들어보니 ‘집계되는’ 가출 요인으로서 가장 많은 것은 ‘가정 폭력’이라고 한다. 갑자기 혼란스러웠다. 매일 잔혹한 가정 폭력을 지켜보거나 당하며 아무리 힘들어도 집에서 버티는 것이 나을까, 적어도 내 가족에게 구타당하거나 내 가족이 구타당하는 것을 보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도망치는 것이 나을까.
그런데 그 뉴스의 결론이 압권이었다. “가출한 청소년들은 수입이 많은 범죄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가출 청소년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확실한 데이터도 제시하지 않은 채, 그 기사는 막연히 ‘가출 청소년 = 통제되지 않은 인구 = 위험인물군 = 미래의 범죄인’이라는 식의 도식을 전제하고 있었다. 단지 집을 나갔다는 이유만으로, 청소년들은 ‘잠재적 위험인물군’으로 처리된다.
주소와 직업과 연락처……. 이런 가장 ‘기본적인’ 인적사항은 우리를 가장 뿌리 깊게 통제하고 있는 검열의 코드인 셈이다. 우리가 연락처와 주소, 직업과 가족 관계를 밝히는 것을 거부하는 순간, 우리는 누구라도 손쉽게 ‘위험인물군’에 편입될 수 있는 것이다. ‘이해될 수 있는 인물’의 행동 패턴을 그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순식간에 문명사회의 이방인이 되어버린다. 사상 최대의 위험인물, 우리의 제이슨 본은 자신 앞에 놓인 이 ‘정체성의 원형감옥’을 어떻게 탈주할 것인가.
“피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은 사회에서 확립되는 질서의 가장 단순한 표현이다. 방랑생활은 질서에 어긋나고 사회를 교란시킨다. 따라서 모든 공격에 대항하여 사회를 튼튼하게 방위하기 위해서는, 중단되지 않는 장기간의 안정된 작업, 장래의 계획과 미래에 대한 설계가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주인이 있어야 하며 위계질서 속에 포함되어 제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사람은 일정한 지배관계 안에 고정된 상태로만 존재한다. “피고는 누구의 집에서 일합니까?”라는 물음은 다시 말하자면, 당신은 주인이 아니므로, 어떤 조건에서든 하인이 아니면 안 되며, 당신 자신의 만족이 아니라 질서의 유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미셸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443쪽.

8. 우린 같은 기계의 부속품이야
날마다 응접실에서 ‘상벌수여’가 이루어진다. 아무리 사소한 반항에도 징벌이 가해지는데, 중대한 위반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리 가벼운 과실이라도 매우 가혹하게 처벌하는 것이다. 메트래에서는 심지어 쓸데없는 말 한마디까지도 처벌된다. 부과되는 처벌 가운데 주된 것은 독방 수감이다.
-미셸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446쪽
푸코는 근대적 감옥 시스템의 초기 모델을 메트래(Mettray) 소년감화원에서 찾는다. 수도원과 감옥과 학교와 군대의 훈육 프로그램이 황금 비율로 결합되어 있는 곳. 수감된 아이들이 ‘매를 맞느니 차라리 독방 수감이 훨씬 좋다!’고 절규하던 곳. 메트래 소년감화원이 문을 연 1840년이야말로 푸코가 규정하는 ‘근대적 감옥의 탄생원년’이라고 한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날, 현대인들은 ‘좀더 나은 감옥’을 갖게 되었는가. 마리와 크루츠를 추격하던 트레드스톤의 행동대장 콩클린의 태도를 보면, 현대인은 언제든 감옥 바깥에서도 감옥 못지않게 철저히 감금될 수 있는 신체가 된 것 같다. 현대사회가 원하는 순종적인 인간을 길러내기 위해 굳이 감옥의 각종 시설을 모두 갖출 필요는 없다. 도시 곳곳에 설치된 감시카메라와 인터넷만으로도 우리는 훌륭한 정보화 감옥의 죄수가 된다.
콩클린: (지도 위의 노란 표적을 가리키며) 그래, 이 노란 표적은 뭐지?
요원: 그녀가 97년에 몇 개월 머문 곳입니다. 리옹 시에서 가까운 곳입니다.
콩클린: 이곳들이 표적이야! 구걸, 탈취, 구타, 도청, 신호 위반! 뭘 해도 좋아! 이 장소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내게 보고할 수만 있다면 말이야.
(……)
요원: 국제정화를 포함해, 그녀 가족들의 통화 내역을 모두 조회했습니다. 그들은 새벽 2시에 파리에 있었어요. 비행기는 못 탔을 거예요, 기차는 들킬 위험이 너무 많고 그는 추적당할 염려가 없는 곳으로 가려고 할 테죠. 우리의 추측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이슨과 마리를 찾기 위해 그들은 모든 악행을 정당화 한다. 구걸, 탈취, 구타, 도청, 신호위반. 그 모든 것이 허용된다. 어디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현대사회는 감옥 바깥조차 감옥의 시스템으로 통치되는 개방형 원형감옥일지도 모른다. 마리 가족들의 전화를 깡그리 도청하고 마리의 최근 행적을 조회해본 결과, 제이슨과 마리의 위치는 도주한 지 하루도 안 되어 발각되고 만다. 극도로 예민한 제이슨 또한 마리의 오빠 집에서 편안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아무도 없을 줄 알고 방문한 이 집에 마리의 오빠뿐 아니라 아이들까지 모두 있다니. 혹시 나 때문에 아이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어딜 가나 그들은 분명 곧 나를 찾아낼 텐데, 아무리 도망친들 뭐하는가? 이런 상황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꼭 밝혀야만 할까?
마리: 여기서 뭐해요?
제이슨: 애들 걱정이요, 잘 수가 없어요.
마리: 애들 깨겠어요, 나갑시다.
제이슨: (전에 없이 흥분하여 평정을 잃고) 난 더 이상 내 존재가 궁금하지 않아요. 상관없어요, 알 필요 없다고요. 지금까지의 일은 다 잊겠어요. 내가 누구이든 무슨 짓을 했든 신경 안 써요! 우린 돈이 있어요! 숨어 살아요! 그럴 수 있겠어요? 당신도 그럴 수 있겠죠?
마리: (불안하고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모르겠어요…….

내가 누구인지 아는 일을 완전히 포기해버리고 싶은, 그 길고도 긴 밤은 속절없이 지나간다. 제이슨은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 이 숨 막히는 추격전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가 자신의 신원을 알든 모르든 그는 지금 ‘제거 대상’일 뿐이다. 마리와 제이슨에게 세상에서 가장 기나긴 밤이 끝나고 드디어 아침이 밝아온다. 이른 아침부터 제이슨은 자신을 둘러싼 ‘포식자’의 기운을 예리하게 감지한다. 제이슨은 마리와 가족들을 재빨리 대피시키고 자신을 추격하는 침략자를 멀리 야외로 유인한다.
이번에 제이슨을 죽이기 위해 파견된 트레드스톤 요원(클라이브 오웬)은 한층 현란한 사격솜씨와 화려한 액션으로 제이슨을 압박한다. 둘 사이의 숨 막히는 추격전과 총격전이 한바탕 끝나고. 어떤 언어도 없이 오직 총으로만 ‘의사소통’하는 두 사람의 목숨을 건 총격전. 이제 총을 잡는 폼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우리의 제이슨 본은 마침내 요원을 죽음 직전으로까지 몰아간다. 죽어가는 요원에게 총신을 겨누고 마지막으로 질문하는 제이슨은 이제 더 이상 ‘내가 누군지 모르는 신원 미상의 부랑자’로 보이지 않는다. 이미 관객의 눈에 그는 최고의 첩보원으로 ‘완성’되었다.

제이슨: 너 말고 또 누가 있지? 누구야? 전부 몇이나 돼? 마지막으로 묻는 거야.
요원: 난 혼자서 일해, 너처럼. 우린 늘 혼자 작업하잖아.
제이슨: (‘우리’라는 단어에 흠칫 놀라) 무슨 말이야?
요원: 너나 나나 트레드스톤 소속이잖아.
제이슨: 트레드스톤?
(……)
요원: 너, 늘 머리 아프지?
제이슨: 응.
요원: 나도 머리 아파 죽겠어. (……) 그가 널 죽이라고 했어. 나를 봐……. 그가 널 해치려는 것을 알겠지?
요원을 죽이고 제이슨은 살아남는다. 결국 그와 나는 같은 ‘훈육 프로그램’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끊임없는 훈육과 세뇌로, 기억을 상실했을 때조차 몸에 끈질기게 들러붙어 있는 이 엄청난 살인기술의 흔적들. 자기가 누구인지는 깡그리 잊었어도 남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죽이는지는 잊어버리지 않은 신체의 놀라운 기억. 제이슨은 정당방어의 논리로 상대방을 죽이긴 했지만, 마치 자신의 ‘형제’를 죽인 듯한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죽어 버린 그도 역시 제이슨처럼 특수요원 훈련을 받은 트레드스톤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그를 훈련시킨 프로그램은 정확히 제이슨을 훈련시킨 바로 그 훈육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이 모든 처참한 살육을 ‘프로그래밍’한 자들은 마치 두 사람을 ‘게임의 파이 1, 2’처럼 취급하며 멀리서 그들의 격투를 ‘관람’할 것이다. 프랑스의 악명 높은 메트래(Mettray) 소년 감화원의 교육 프로그램만큼이나 트레드스톤의 ‘훈육 프로그램’ 또한 고도의 ‘정신 성형 프로젝트’가 아니었을까.
메트래에서 원장과 부원장은 (……) 행동을 다루는 기술자, 다시 말해서 품행을 다루는 기술자이자, 개개인을 뜯어고치는 정형외과 의사이다. 그들은 순종적이고 동시에 유능한 신체를 만들어내야 한다. 예컨대 그들은 하루 9~10시간의 노동을 통제하고, 분열식·체조·소대훈련·기상·취침, 그리고 나팔과 호각소리에 따른 행진을 지도할 뿐만 아니라, 운동을 시키고, 청결을 검사하고 목욕을 감독한다. (……) 신체의 조립방법은 개인의 구체적 지식을 형성하는 바탕이 되고, 기술의 습득은 행동방식을 결정하고, 적성의 획득은 권력관계의 확립과 뒤얽힌다.
-미셸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447쪽.

9. 조직권력이 나의 권력?
푸코는 주먹다짐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용기란 육체적인 것 말고는 없다”고 규정했다. 용기, 그것은 용기 있는 육체다. (……) 노동자 계급의 노동이 아니라, 육체가 착취당한다. 시민들은 군대식 규율로 형성되지 않는다. 그들의 육체는 훈육되고 길들여지며 그 위에 권력이 행사된다. 감금 체계는 육체들을 가둔다.
-풀 벤느, 이상길 역, 『푸코, 사유와 인간』, 산책자, 2009, 222쪽.
자신을 죽이러 온 요원을 살해한 후, 제이슨 본은 비로소 이 싸움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감한다. 나와 관련 있는 모든 사람들이 위험해질 것이다. 지금 가장 위험한 사람은 내 곁의 그녀, 마리다. 그는 마리의 가족들을 대피시키면서 자신이 가진 거의 모든 돈을 마리에게 주기로 작정한다. 트레드스톤의 보이지 않는 원형 감옥으로부터 탈주하기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돈이니까. “모두 가져가요. 끝없는 싸움이에요, 마리. 당신은 빠져요, 나한테서 떠나요. 먹고 살기에 충분한 돈이 들었어요. 마음껏 쓰면서 살아요.” 마리는 자신을 향한 제이슨의 진심을 읽어내고 망설이지만,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일단 목숨을 보장받을 수 없다.

오랫동안 잃어버린 기억을 찾았을 때, 비로소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내가 누구인지 알았을 때, 그렇게 찾은 내가 결코 ‘내가 원하는 나’가 아니라면 어떻게 할까. 차라리 나를 찾지 않는 것만 못하다면, 잃어버리는 것이 훨씬 나은 나라면 어떻게 할까. 제이슨은 아직 자신을 완전히 되찾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육체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본래 이름도 가족도 출생지도 생각나지 않지만, 나는 분명 나 자신의 인생보다 조직의 목표를 위해 훈련된 인간일 것이다.
마리를 떠나보낸 후, 제이슨은 트레드스톤과 직접 교섭하기로 마음먹는다. 이제 나를 찾기 위한 수동적인 대처가 아니라, 나를 죽이려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싸움을 걸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의 인연을 끊는 것이다. 나는 나를 잘 모르지만 ‘과거의 나’가 결코 되찾고 싶지 않은 나라는 것만은 알 것 같다. 제이슨은 자기 때문에 곤경에 처한 마리를 살리기 위해서 마리를 ‘이미 죽은 사람’으로 만든다.
제이슨: 네가 보낸 사내는 죽었다. 그러니 어서 대화를 시작하자.
콩클린: 그 여자는?
제이슨: 그녀는 죽었어.
콩클린: 안됐군. 어쩌다 죽었어?
제이슨: 방해가 되더군. (……) 파리에서 5시 반에 만나. 오늘, 퐁네프에서. 혼자 와, 다리 한가운데까지 혼자 와서 거기서 재킷을 벗고 동쪽을 봐.
그러나 콩클린은 약속 장소에 혼자 오지 않는다. 그는 조직의 기동력과 조직의 권력 없이는 한시도 안심할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는 조직의 허물을 벗기고 나면 한없이 나약하고 겁 많은 존재일 것만 같다. 조직의 권력이 곧 나 자신의 권력이라 착각하는 인물의 전형인 것이다. 반면 제이슨 본은 조직의 허물을 벗겼을 때 비로소 진면목이 드러나는 인간이다. 비록 엄청난 사건 뒤의 충격으로 인해 기억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제이슨의 등에 두 발의 총을 쏜 옴보시 덕분(?)에 제이슨은 비로소 잃어버린 자신을 찾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제이슨은 결코 조직의 논리로 자신을 삶을 덮어버릴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제이슨은 결국 콩클린의 숙소에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조직의 견고한 탈을 벗긴 인간 콩클린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은 그가 잠들기 직전일 테니. 제이슨의 갑작스런 등장에 겁에 질린 콩클린, 이제 그의 입에서 제이슨의 비밀이 누설될 차례다.
제이슨: (겁에 질린 콩클린을 향해 총을 겨누며) 총 버려!
콩클린: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듯 두리번거리며) 그러지, 대체 원하는 게 뭐야?
제이슨: (……) 네가 트레드스톤이야?
콩클린: 내가 트레드스톤이냐구? 무슨 얼어 죽을 소리람? 아주 미쳤군.
제이슨: 당장 설명하란 말이야!
콩클린: 우린 한편이었잖아.
제이슨: 어떻게 한편이었지?
콩클린: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른단 말이야?
제이슨: 기억이 안 난단 말이지! 난 누구지?
콩클린: 넌 미국 정부의 소유물이야! 통제 불능의 삼천만 달러짜리 무기지! 넌 빌어먹을 대 실패작이야! 하지만 이 지경이 돼버렸어도, 넌 나에게 경과보고를 해야 해. 대놓고 죽이라고 널 보낸 게 아니야.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라고 널 보낸 거야. 네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널 보낸 거야!
요컨대, 범죄의 존재는 다행스럽게도 ‘인간성의 강인함’을 나타내며, 그런 만큼 실제의 범죄에서 보아야할 것은 유약함이나 질병이라기보다는 굽힘없이 솟구치는 에너지, 즉 모든 사람들의 눈에 이상한 매력으로 비칠 수도 있는 ‘인간 개인의 강력한 저항’이다. (……) 범죄는 흑인해방의 경우처럼, 때에 따라서는 우리 사회의 해방을 위해서도 소중한 정치적 수단이 될 수 있다. 흑인 해방이 범죄 없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독약, 방화, 그리고 때때로 폭동까지도 사회적 조건의 극단적인 비참을 입증하는 것이다.
-미셸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440쪽.

10. 훈육의 프로그램도 미처 길들이지 못한 마음
그러니까 그렇게 멀고도 높은 곳에서 다른 이들의 담론을 기술하고자 하는 당신은 대체 어디에서 말하고 있다고 자처하십니까?
-미셸 푸코
감옥 아닌 곳에서 인간을 감시하는 가장 효과적인 시스템은 ‘신이(혹은 카메라가) 언제나 너를 보고 있다’는 환상을 주체의 무의식에 기입하는 것이다. 특히 카메라가 제이슨 본의 ‘등 뒤’를 비출 때, 관객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제이슨 본의 목숨을 노리는 그들의 시선은 마치 신처럼 전지전능하여 언제든 바로 그의 등 뒤에서 불쑥 튀어나와 총구를 들이댈 것만 같다. 제이슨의 기억을 상실하게 한 사건도 바로 그의 등 뒤를 쏜 두 발의 총성 때문이지 않았는가.
트레드스톤의 행동대장 격인 콩클린을 직접 독대함으로써 제이슨은 비로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에 한층 가까이 가게 된다. 제이슨은 콩클린과의 섬뜩한 조우로 인해 더욱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 제이슨 스스로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나는 트레드스톤 요원이었다’는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내가 누구이든, 내가 누구였든,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문제임을.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지금부터 다시 만들어갈 수 있다.
내가 누구였든 지금부터의 결정 하나하나에 따라 나의 미래는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누구였는가’는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고, 그 진실의 참혹함이 나를 평생 추격할 것이라는 점이 문제이다. 그는 콩클린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진실’의 파편에 맞아 휘청거린다. 그제야 ‘내가 한 짓이 무엇이었는가’를 확실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누구였는가’라는 필생의 화두는 ‘나의 과거로부터 어떻게 탈주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바뀐 것이다.
“케인이란 존재를 만든 건 너야! 움보시와의 미팅을 주선한 것도 경비 회사를 찾은 것도 너야! 사무실에 침입한 것도 너지! 젠장맞을, 암살 장소를 그의 요트로 정한 것도 바로 너잖아!” 이제야 생각난다. 모두 나였다. 모두 내가 계획하고 내가 실행하고 내가 실패한 것이었다. 누군가 나의 정체성을 일부러 지우려 한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 자체를 세상 속에서 삭제한 것도 나 자신이었다. 더욱 훌륭한 암살 기계가 되기 위해, 그 모든 ‘자아의 삭제’ 프로그램 또한 내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다. 트레드스톤의 임무는 ‘살인의 주체’를 철저히 영원한 비밀에 부친 채 취도 새도 모르게 암살대상을 제거하는 것이었고, 제이슨 본은 이 비밀 임무 수행에 가장 적합한 최고의 ‘인간병기’였던 것이다.

트레드스톤의 시스템은 마치 한 명의 암살대상을 죽이기 위해 수십 명의 저격수에게 총을 쏘게 하는, 그리하여 ‘누가 쏘았나’라는 질문에서 모두를 회피시키는 ‘주체의 삭제’ 전략과 비슷하다. 저격수는 ‘설마 내 총에 맞아 죽은 것은 아니겠지’라는 위안 속에 죄책감을 씻어버리는 것이다. 모두 ‘조직의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단지 그 조직의 일원이라는 이름만으로 죄도 죄책감도 책임도 조직에 돌아간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벌거벗은 자아와 만나고 나서야 제이슨은 깨닫는다. 살인의 죄책감은 온전히 자신의 ‘개별적인’ 육체로 쏟아지는 고문임을. 과거의 그가 트레드스톤을 스스로 택한 것이라 해도 지금의 그는 그 고통스러운 살인의 게임을 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제이슨은 콩클린에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는다. “이런 일은 이제 그만 두고 싶어.” 제이슨은 이제야 기억났다. 왜 움보시를 쏘지 못했는지를. 5일씩이나 움보시가 타고 있던 배에 잠복하고도 움보시를 차마 쏠 수 없었던 이유. 그를 쏘려고 했던 순간 그의 가슴 속에서 꼬물거리던 아이들의 눈빛 때문이었다. 두려움에 가득 차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며 제이슨을 바라보던 그 아이들의 눈빛. 제이슨은 아이들이 뻔히 보는 앞에서 차마 아빠를 쏠 수 없었던 것이다. 아직 뼛속 깊이 속속들이 조직의 기계부품이 되지 못한 제이슨이라는 한 인간의 아킬레스건. 악명 높은 트레드스톤의 훈육 프로그램도 미처 길들이지 못한 제이슨의 마음 한구석에는 이렇듯 너무도 나약해서 더욱 아름다운 아킬레스건이 있었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말한 모든 것들의 무게 아래에서 신을 죽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들이, 당신들이 말한 모든 것들을 가지고서, 신보다 더 오래 살 한 인간은 만들어 내리라고 생각하지는 말라.
-미셸 푸코, 이정우 역, 『지식의 고고학』, 민음사, 1994, 290~291쪽.


11. 모두 너였어! 널 만든 건 너야!
우리는 진실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우리가 그것 아닌 다른 것을 사랑하게 되면,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진실이기를 바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결국 잃어버린 나를 깡그리 지우는 것이었다. 제이슨 본이 잃어버린 기억의 창고를 열기 위한 열쇠를 발견하는 순간, 그는 깨달았다. 나를 버리는 것이 나를 찾는 유일한 길임을. 과거의 나를 모조리 삭제할 수는 없을지라도, 과거의 나로부터 도망치지 않는다면 나는 영원히 ‘나를 만든 자들’의 게임 프로그램 속에서 그들의 통제를 받는 인간병기로 머물게 될 것이다. 콩클린의 말처럼, 제이슨은 미국 정부의 소유물이었으므로. 통제 불능의 삼천만 달러짜리 무기, 빌어먹을 실패작이었으므로.
제이슨은 이제 ‘이런 일’은 그만 하고 싶다고, 더 이상 살인의 게임에 동참하고 싶지 않다고 밝힌다. 콩클린은 코웃음을 친다. “그건 네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야!” 천하무적의 인간 살인병기, 제이슨 본을 탄생시킨 것은 미국의 국방부 산하 트레드스톤 프로젝트였지만 제이슨 본이라는 ‘대 실패작’으로 인해 이 계획은 무산되었다. 그들이 창조한 인간병기 제이슨 본으로 인해 거꾸로 그들의 조직이 역습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제이슨 본이 원하는 것은 그렇게 거창한 조직의 소탕작전이 아니라 그저 ‘내 인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일 뿐이다. 이제 그가 자신의 삶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삭제하는 길뿐이다. 제이슨은 콩클린에게 총구를 겨누고 마지막 다짐을 받으려 한다. 모두에게 내가 죽었다고 말해줘. 아무도 날 찾지 않게. 아무도 날 기억하지 않게.

제이슨: 이제 제이슨 본은 죽었어, 내 말 알겠어? 그는 2주 전에 익사했어. 사람들에게 제이슨 본은 죽었다고 발표해, 알아듣겠지?
콩클린: 그러면 넌 어디로 갈 건데?
제이슨: 몰라. 하지만 만약 누구든 내 뒤를 미행하면, 난 하늘에 맹세코, 너에게 복수할 거야. 난 이제 내 편일 뿐이야.
하지만 제이슨이 ‘나는 사라질 것이다’라고 홀로 굳게 결심한다고 해서 이 모든 상황이 종료될 수는 없다. 제이슨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이 일에 연루된 사람은 엄청나게 많고 투자된 자본은 엄청나다. 제이슨 제거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한 콩클린은 결국 ‘조직의 논리’에 따라 제거당하고, 제이슨은 이제 더 강력한 추격자와 맞서게 된다. “트레드스톤의 작전은 사실상 종결되었습니다. 애초에 그것은 고도의 지능 훈련프로그램으로 계획되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훌륭한 기반으로 자리 잡기를 바랐습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 막대한 투자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따라서 모든 관련 작전을 철회합니다.” 트레드스톤의 책임자는 국방부에 트레드스톤 작전의 종료를 선언한다. 그러나 트레드스톤의 종언은 곧 더욱더 ‘업그레이드’된 트레드스톤의 탄생을 예고한다. “그럼 다른 작전은 준비 됐습니까?” “네, 바로 블랙 브라이어 작전입니다. 국방부와 합작하여 계획된 이 작전은 성공적인 장기 훈련 방법이 될 것입니다.”


제이슨 본이라는 실패작으로 인해 좌절된 트레드스톤은 결국 블랙 브라이어라는 대체제로 바뀐다. 블랙 브라이어 프로젝트는 제이슨의 실패를 통해 ‘오류 가능성’을 대폭 줄인 더욱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인간병기 제작 기획이 될 것이다. 컴퓨터처럼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지만 동시에 인간은 자유롭고 유연한 두뇌를 장착한, 기계-인간을 만들어내는 것. 아마도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잊고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을, 저마다 사연이 파란만장한 우수한 인재들을 뽑아 그의 원래 삶을 빼앗고 외관상 매우 멋진 비밀요원의 임무를 맡기는 것. 결국 트레드스톤이나 블랙 브라이어나 동시에 한 인간이 가진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제거해 ‘국가장치’의 아이덴티티를 이식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아닌가. 그들은 언제든 ‘제이슨 2, 제이슨 3’를 만들어낼 것이고 트레드스톤보다 더 강력하고 효율적인 대체제를 만들어 ‘그들이 원하는 세계’의 밑그림을 차곡차곡 완성해나갈 것이다.
트레드스톤으로부터 도피하느라 아직 블랙 브라이어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제이슨은 일단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믿기로 한다. 내가 무엇이었든, 내가 누구였든, 이제 상관하지 않겠다. 그는 아직 자신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아내진 못했지만 과거의 삶으로부터 도망쳐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 그는 트레드스톤을 가까스로 따돌린 후, 굳이 곳곳의 서류와 증인을 찾지 않아도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음을 깨닫는다.
어쩌면 굳이 나를 찾을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나의 육체가 이미 나의 과거를 말하고 있다. 내가 지나온 시간과 공간이 나의 육체 곳곳에 아로새겨져 있다. 나를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굴레도 육체지만, 내가 이 삼엄한 권력의 감시망을 뚫고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도 내 육체 위에 나 있다. 내게 주어진 유일한 무기이자 희망, ‘내 몸’이라는 최고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길로 떠나기로 한다. 이 세상에서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람, 그녀에게로.
푸코는 생전에 깊은 영향력을 갖지는 못했고, 다만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 성공은 그의 스타일이 지닌 독창성에서 비롯되었는데, 덕분에 『말과 사물』처럼 어려운 저작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고등학교 철학 수업에 관계하는 내 여자 친구 한 명은 학기 초에 학생들에게 사르트르 한 페이지, 레비스트로스 한 페이지, 그리고 푸코 한 페이지를 읽어준다. 그런데 푸코의 페이지를 들을 때만 학생들은 (……) 그의 글쓰기 때문에 깜짝 놀라 침묵 속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그의 강의가 거둔 성공(강의실이 꽉 차서 청중들은 바닥이나 통로에 앉기도 했고, 일부는 다른 강의실에 설치된 화면을 통해서 강의를 들어야 했다) 또한 그 강의의 내용보다는 그 스타일에 기인하는 바가 더 컸다.
-풀 벤느, 이상길 역, 『푸코, 사유와 인간』, 산책자, 2009, 275쪽
12. 나를 지워야 내가 될 수 있다
한마디로, 푸코의 저작은 전부 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의 연장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영원하다고 믿는 모든 개념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변전된’ 것이며, 그 기원들에는 숭고한 것이 전혀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풀 벤느, 이상길 역, 『푸코, 사유와 인간』, 산책자, 2009, 173쪽.
언제부터 사람들은 ‘신분증’이 없으면 중요한 일을 하나도 처리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일까. ‘내가 바로 나다’라는 것은 증명할 수 있는 서류가 필요해진 순간, 인간은 더욱 효과적으로 관리되고 통제되기 시작했다. 때로는 우리들 자신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소소한 과거의 행적들이 어디선가 관리되고 어디선가 보관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오싹해지는 순간이 있다. 이 모든 ‘근대적 정체성’의 관리 시스템이 진정한 효력을 발휘하게 된 것은 채 100년도 되지 않았다. 우리의 출생과 이사와 여행과 출산과 사망을 관리하는 주민등록의 절차에 의해 우리는 때로는 ‘세금을 내는 시민’으로, 때로는 각종 통계 수치의 머릿수를 채우는 ‘국민’으로 호출된다.
제이슨 본이 지우고 싶은 것은 바로 CIA산하 비밀요원 양성 프로그램 트레드스톤에 입력된 자신의 기록이었다. 그는 과거를 찾으려는 ‘단순한’ 희망이 결코 단순하지 않음을 깨닫고, 더 이상 자신의 과거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 집착하지 않기로 한다. 이제 과거의 나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완전히 사라지더라도, 지금-여기 내가 새롭게 시작하는 세상에서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한 여자와 살아갈 수만 있다면, 잃어버린 과거 따윈 되찾지 않아도 좋다. 마리를 찾아낸 제이슨은 하얀 셔츠를 입고 나타나 이제야 자신이 모든 어둠의 기억에서 ‘깨끗하게’ 해방된 듯한 가뿐한 표정을 짓는다.
“멋진 가게군요, 찾아내기는 좀 힘들었지만……. 스쿠터를 하나 빌릴 수 있을까요?” 마리는 장난스런 표정으로, 반가워 미칠 것 같은 표정을 애써 억누르고 새침하게 대꾸한다. “신분증 있어요?” 제이슨은 이제 난 아무 것도 궁금하지 않다는 듯, 해맑게 웃으며 대답한다. “그런 것 없는데요.” 그들은 그렇게 모든 ‘신분증’을 지운 자리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그들만의 파라다이스를 시작하려 했다. 내 모든 것을 버리고 너에게 왔어. 이제 나는 내가 아니야. 그러나 이제야말로 나는 진짜 내가 될 수 있어.


13. 발설된 것은 철회될 수 없고, 시행된 것은 되돌릴 수 없다
현대인은 자유의지의 힘을 믿도록 교육된다. 내 삶을 선택할 수 있다고, 내가 원하는 나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이 세상의 기회는 균등하다고. 하지만 어른이 되어갈수록 우리는 그 패기만만한 자유의지의 환상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된다. 우리가 결코 선택할 수 없는 것들로 인해(인종, 국적, 가족, 유전자 등 우리를 ‘규정’하는 모든 사회적 조건들) 우리의 선택은 철저히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내가 행동했다고 해서 모두 나의 욕망이었는가, 내가 선택한 것이 진정 나의 의지였는가, 그렇게 의심되는 상황들이 곳곳에서 발생한다. 우리의 모든 행동이 정말 자율적이고 자발적인가. 우리는 우리의 능력이 과연 어디에, 어떻게, 누구를 위해 쓰일지 진정 알고 있는가.
『본 슈프리머시』와 『본 얼티메이텀』에서 제이슨 본은 그렇게 ‘자유로운 나의 선택’이라는 것이 사실은 원천 봉쇄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과거는 그가 도망치거나 삭제할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꼭 제이슨 본처럼 무시무시한 비밀요원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없고, 우리 자신의 모든 행동의 기원을 밝힐 수 없으며, 우리가 ‘난 이제 자유롭다’고 생각했던 수많은 순간들이 사실은 장기간의 ‘무의식적 부자유’가 축적된 치밀한 과정의 결과였음을 깨닫곤 한다.
『본 슈프리머시』와 『본 얼티메이텀』에서 제이슨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살인자로 몰려 추격당하게 되고, 이제 스스로 저지르지 않은 행동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과거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고자 했던 그 숨 가쁜 여정 속에서, 자신을 추격하던 요원의 총격으로 인해 마리를 잃고 만다. 이제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끔찍한 죄책감까지 껴안고 살아가야 한다.
마리를 눈앞에서 잃자 제이슨은 더 이상 숨어서만은 살 수 없게 된다. 이 모든 것을 시작한 사람들을 찾아내야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먼저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 밤마다 꿈속에 나타나 나를 괴롭히는 환상. 내가 죽인 사람들. 내가 ‘처리’한 사람들의 끔찍한 환영들. 자신이 죽인 사람들에 대한,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한 속죄. 『본 슈프리머시』에서 제이슨은 천신만고 끝에 자신의 첫 번째 ‘임무대상’이었던 러시아 정치인 네스키의 딸을 찾아간다. 네스키의 딸은 엄마가 아버지를 직접 살해한 것이라는, 언론의 조작된 보도를 믿고 살아가고 있다. 부모를 한날한시에 잃은 것도 모자라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기사’를 ‘사실’로 믿고 살아온 소녀가 이제는 어엿한 숙녀가 되어 제이슨 앞에 앉아 있다.
소녀: 난 돈도 없고 마약도 없어요. 원하는 게 그거 아닌가요?
제이슨: (러시아어로) 좀 앉지. 그 의자에 앉아.
소녀: 영어 할 줄 알아요.
제이슨: 난 널 해치지 않아. 겁낼 것 없어. 생각보다 많이 컸구나. 더 어릴 줄 알았는데(자신이 죽인 네스키 부부의 사진을 가리키며). 저 사진, 너에게 소중한 거겠지?
소녀: (아무런 감정도 남아 있지 않다는 듯, 무심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별로요, 그냥 사진일 뿐이에요.
제이슨: 아니. 그건 네가 진실을 모르기 때문이야.
소녀: 알아요.
제이슨: 아니, 넌 몰라. 나라면, 알고 싶을 거야. 나라면, 엄나가 아버지를 죽이고 자살한 게 아니란 걸 알고 싶을 거야.
소녀: 네?
제이슨: 네 부모님은 그렇게 돌아가신 게 아니야……. 내가…… 죽였다. 내가 죽였어. 그게 내 임무였어. 내 첫 임무였지. 네 아버지가 혼자 있는 줄 알았어. 그런데 네 엄마가 갑자기 나타나셨지. 난 계획을 수정해야 했어.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모든 게 달라지지. 안 그래?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는데…… 진실을 알아야지. 미안해……
소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제이슨은 국경을 몇 번이나 넘고 넘어 온갖 정보기관들의 추격을 따돌리며 결국 자신의 과오가 시작된 맨 처음 그 자리로 찾아간다. 그는 마치 잘 훈련된 휴머노이드 로봇처럼 내가 왜 죽여야되는지도 모르고 ‘주인’의 명령에 따라 암살대상을 처리하곤 했다. 그러나 그에게 기억상실증이라는 ‘시간의 단절’이 일어나자, 결국 그들의 교정 프로그램이 결코 바꾸지 못했던 한 인간의 내면의 속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을 만들어가는 ‘행동(doing)’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 모든 행적을 지우는 ‘원상복귀(undoing)’임을 알게 된다. 발설된 것은 철회될 수 없고, 시행된 것은 되돌릴 수 없다. 죽은 네스키 부부는 결코 살아날 수 없으니까. 그러나 속죄를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천지차이다. 적어도 네스키의 딸은 ‘엄마가 아빠를 죽이고 자살했다’는 끔찍한 오명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소녀는 엄마가 아빠를 죽이는 소름 끼치는 환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본 얼티메이텀』에서 드디어 제이슨은 자신을 만든 권력의 실체와 정면승부하게 된다. 인간 병기 제조 기획 ‘트레드스톤’을 만든 사람들. 트레드스톤이 실패하자 ‘블랙 브라이어’라는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들. 그들은 제이슨 본처럼 ‘우수한 인간병기’를 만들어, 그들이 ‘애국’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대단한 권력의 게임을 완수하기 위해, 영원히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 ‘숨은 희생양’을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이 성공적인 인간병기들은 그들이 배운 기술을 단지 그들의 ‘상사’를 위해서만 쓰지는 않는다는 것을. 제이슨 본은 자신을 만든 바로 그 창조주들을 향해, 그들로부터 습득한 모든 지식과 능력과 기술을 실험한다. 그들이 살해대상을 제거하기 위해 가르친 프로그램은 정확히 그들의 조직 자체를 뒤흔드는 ‘역습의 무기’로 사용된다. 지식은 권력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식이 쓰이는 용법이다. 『본 얼티메이텀』에서 비로소 제이슨 본은 자신을 인간병기로 만든 사람들로부터 배운 모든 지식을, 자신을 파괴한 바로 그들을 향해 눈부시게 휘두른다.
소송 절차는 (……) 필연적으로 자백을 구하는 경향이 있다. (……) 피고인에 대하여 효과적으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유일한 방식, 진실이 완전히 힘을 발휘하기 위한 유일한 방식이란, 범죄자가 자신의 범죄를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고, 증거 조사에 의해 교묘하면서 애매하게 조립된 사항에 서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악인이 정당하게 처벌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가능하다면 악인은 스스로를 재판하고, 스스로에게 유죄선고를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 자백은 피고인 없이 행해지는 증거 조사를 자발적인 의사표현으로 변화시킨다. 자백에 의해서 피고인은 형사상의 진실을 생산하는 의식 속에 참여하게 된다. (……) 자백에 의해서 피고인은 소송 절차와 관계를 맺기 시작하고, 증거 조사에 의해 만들어진 진실에 자기 이름으로 서명하는 것이다.
-미셸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74~76쪽.

14. 애국심의 함정
오후 7시 15분 푸코는 강의를 끝냈다. 학생들이 그의 책상으로 모여들었다. 그에게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녹음기를 끄기 위해서였다. 혼잡한 청강생들 틈에서 그는 혼자였다. (……) 나는 청중 앞에서 배우 또는 곡예사가 된다. 그리고 강의가 끝나면 말할 수 없는 고독에 휩싸인다.
-미셸 푸코, 박정자 역, 『비정상인들』, 동문선, 2001, 6~7쪽.
제이슨 본은 인간 훈육 프로그램의 최고의 성공작이자 그 처절한 실패를 대변하는 양가적 인물이다. 트레드스톤 프로그램이 탄생시킨 살아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제 1호였던 제이슨 본. 그는 최고의 실력을 갖춘 요원으로 거듭났지만 최악의 문제점을 노출하는 장본이었다. 제이슨의 정신 건강을 체크했던 요원 니키는 ‘실험적 훈련 중’이던 요원들의 다양한 정신이상 증세를 보고한다. “행동 교정 훈련을 받던 요원들에게서 다양한 문제점을 발견되었습니다. 우울증, 분노, 충동적 행동 ……. 심각한 신체적 증상도 나타났죠. 극심한 두통, 광(光) 과민증 등입니다.” 그리고 제이슨의 ‘기억상실증’이야말로 트레드스톤 프로그램의 최대 약점으로 드러난다.
감옥이 인간을 완전히 길들일 수 없듯이, 학교가 학생을 철저히 통제할 수 없듯이, CIA는 인간을 완벽한 인조인간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얼굴들이 보여 ……. 내가 죽인 사람들의 얼굴……. 이름은 기억이 안 나……. 속죄하려고 노력했어, 내가 한 짓을, 내 삶을…….” 죄책감에 잠 못 이루며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환상에 시달리는 것, 스스로의 삶 전체를 속죄하고 싶어 하는 제이슨. 이렇게 방황하고, 반성하고, 분열되고, 좌절하는 것은 그들의 ‘행동 교정 프로그램’에 결코 포함되지 않았던 예측불허의 이상행동이었다.

『본 얼티메이텀』에서 끈질긴 두뇌게임 끝에 마침내 트레드스톤의 창조주와 대면하게 된 제이슨 본. 그는 도대체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이 왜 하필 ‘나’를 선택했는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자신을 그토록 무서운 인간 병기로 제조했는지를 알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그런데 그가 만나는 트레드스톤의 책임자들은 하나같이 이 모든 우여곡절의 기원은 바로 제이슨 본, ‘바로 너’라고 외친다. 그들은 한결같이 책임을 회피한다. “마리를 죽인 건 너야. 그녀의 차에 네가 탄 그 순간, 네가 그녀의 인생에 끼어든 그 순간 그녀는 죽은 거야.”
제이슨은 항변한다. “우릴 내버려두라고 했잖아. 난 아무도 모르게 숨어 살고 있었다고.” 제이슨 본에게 트레드스톤의 실패를 전가하고 싶었던 애보트는 말한다. “넌 과거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해. 삶은 그런 거야. 인정해, 제이슨. 넌 살인자야.” 제이슨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려는 애보트, 제이슨에게 살인누명까지 씌우며 수없는 살인 명령을 일삼았던 애보트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할까. “난 애국자야. 난 국가를 위해 봉사했어. 난 죄책감 없어.” 그들은 자신에겐 절대로 ‘죄’가 없으며 이 모든 것의 ‘대의명분’은 바로 그들의 대단한 ‘애국심’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제이슨이나 제이슨을 죽이려는 자들이나 양측 모두 이 모든 끔찍한 살인을 합리화하는 명목이 ‘애국심’이라는 것이다. 총명한 젊은이 데이비드 웹이 비밀 요원 제이슨 본이 된 것도 사실 애국심 때문이었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국가를 위해 몸 바친 영웅’이라는 위대한 역할 모델들이 숨 쉬고 있는 걸까. 최고의 엘리트이자 촉망 받는 인재였지만 ‘애국심의 함정’을 알지 못했던,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수많은 폭력의 진상을 알지 못했던 제이슨 본에게 한때 애국심은 정말 ‘좋은 것, 멋진 것, 폼 나는 것’이었을 것이다. 트레드스톤처럼 국가의 미명 아래 모든 폭력을 정당화하는 사람들, 그들은 아무런 명분이 없을 때, 사실은 철저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면서도, ‘국가의 안보’를, ‘국가의 위기’를, ‘국가의 미래’를 전면에 내세운다.

15. 장애물의 지형도를 지닌 채 싸우다
『본 얼티메이텀』에서는 제이슨이 아직 ‘데이비드 웹’이었던 시절, 그가 비밀 요원으로 거듭나는 결정적인 장면이 회상 신으로 등장한다. 애보트와 대화하던 중 이제야 제이슨 본의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 그때 그는 무려 72시간 동안 한숨도 못 잔 상태였으며 잔혹한 물고문까지 받은 상태였다. 그들은 고문인지 훈련인지 구분할 수 없는 이 혹독한 인성교정프로그램 속에서 제이슨이 내린 결정을 ‘바로 네가 내린 결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너의 선택이었다고. 그러니 우리는 아무 책임도 없다고.
애보트: 데이비드 웹. 설명은 다 듣고 온 건가?
제이슨: 네
애보트: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다고? 자네 임무는 미국 국민을 구하는 거야.
제이슨: 압니다.
애보트: 넌 이제 더 이상 데이비드 웹이 아냐.
제이슨: 뭐, 뭐든 따르겠습니다.
애보트: 넌 오랫동안 잠을 못 잤다. 이제 결심이 섰나? 더 끌 순 없어. 결심해야 돼.
제이슨: (자신의 눈앞에 ‘암살대장’으로 나타난 사람을 가리키며) 저 사람은 누구죠?
애보트: 같은 걸 되묻지 마.
제이슨: 그가 뭘 잘못했나요?
애보트: 그건 전혀 안 중요해! 넌 네 발로 왔어! 지원했다고! 미국민을 구하기 위해 뭐든지 한다고 했지? 거짓말을 한 거였나? 아니면 힘드니까 마음이 변한 거야? 결심해! 데이비드 웹은 잊어! 오직 네 임무만 생각하라고! 넌 더 이상 데이비드 웹이 아냐! 이제부터 넌 제이슨 본이야! 이 프로그램의 일원!(그 순간, 탕! 총소리가 들리며 이제는 ‘제이슨 본’이 된 데이비드 웹의 첫 번째 암살이 끝난다. 그는 이렇게 제이슨 본으로 ‘개조’된 것이다.)
꿈 많은 젊은이 데이비드 웹은 천신만고 끝에 제이슨 본이 되었지만 이제 그가 가장 벗어나고 싶은 인물이 바로 제이슨 본이 되어버렸다. 그는 애보트에게 외친다. “난 이제 제이슨 본이 아냐.”
아마도 애국자라면 이렇게 말하리라. “옳든 그르든 내 나라.” 그러나 그는 자기 조국이 옳다거나 진정한 도덕은 조국의 편을 드는 것이라고 단언할 필요성을 더 자주 느낄 것이다. 진실의지는 그렇게 강력하다. (……) 우리는 우리 선택에 따라 진실을 판단하지, 진실에 따라 선택하지 않는다. (……) 스피노자가 가르쳐 주었듯이, 우리는 어떤 것이 좋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그것이 좋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풀 벤느, 이상길 역, 『푸코, 사유와 인간』, 산책자, 2009, 191~192쪽.
데이비트 웹은 ‘국가에 충성’하는 멋진 임무를 맡기 위해 요원이 되었고, 트레드스톤은 이제 ‘국가 비상사태’의 명목으로 제이슨 본을 죽이려 한다. 도대체 ‘국가’를 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애국의 명분이라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이 기이한 자기정당화를. 푸코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철저히 따져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믿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곧 ‘진실’이라고 믿는 인간의 습성을 ‘진실의지’라고 했다. 우리는 치밀한 반성과 시행착오 끝에 가장 진실에 가까운 신념을 고르기보다는 수많은 우연과 감정적 변수와 비합리적 취향에 의해 삶의 방식을 결정하곤 한다. 거기에 ‘진실’의 갑옷을 입히고 만족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걸고 진실을 찾아 떠난 끝에 간신히 부여잡은 소중한 진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익숙하고 편안한 것, 혹은 아주 어릴 때부터 습득된 주변 환경이 만들어낸 습관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특히 ‘애국심’은 악당의 마지막 가면이다. 실은 철저히 자기 이익을 위해 달려왔으면서도 궁지에 빠졌을 때 그들은 ‘옳든 그르든 내 나라’라며, ‘내가 한 일은 모두 나라를 위한 것’이라며 당당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트레드스톤이 애국의 미명 하에 모든 부정부패를 정당화했다면, 젊은 시절 데이비드 웹은 ‘애국’이라는 환상의 그물이 얼마나 지독한 환멸을 품고 있는지 모른 채 순진하게도 그 그물에 포획되어버린 셈이다.
제이슨의 결백을 믿는 CIA 요원 파멜라 랜디는 그의 진짜 이름과 생일을 가르쳐준다. “데이비드 웹. 자네 진짜 이름이야. 자넨 미조리 주 닉사에서 1971년 4월 15일에 출생했네.” 하지만 이제 자신을 이렇게 만든 트레드스톤 프로그램의 전모를 알게 된 제이슨은 더 이상 자신의 출생이나 기원은 중요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중요한 것은 지금 바로 여기서부터 내가 만들어가야 할 삶인 것이다. 이 모든 물고 물리는 살인의 게임을 끝내기 위해 제이슨 본은 트레드스톤과 블랙 브라이어에 관련된 일급 기밀 서류를 빼내어 파멜라 랜디에게 전달하고 이 사건을 스스로 매듭짓는다.

“대통령은 각료 회의를 열고 블랙브라이어란 암살 프로그램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미국 시민마저 표적이 됐던 이 프로그램을 승인한 국장은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실험소장 알버트 허슈와 총괄 책임자 보슨 부국장 등 두 명의 간부 요원은 체포됐습니다. 한편 블랙브라이어의 음모를 폭로한 데이비드 웹, 일명 제이슨 본은 총을 맞고 10층 건물에서 강으로 추락했으나 3일간의 수색 끝에도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저녁, 푸코와 나는 그의 작은 텔레비전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에 관한 르포를 보고 있었다. 두 진영 가운데 한 진영에 속한(어느 쪽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투사 한 사람이 화면에 나오더니 이렇게 공언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나의 대의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나는 만들어졌고, 그에 관해서는 더 이상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마침내, 바로 저거야”, 푸코는 소리쳤다. 기껏해야 레토릭과 프로파간다로서나 쓸모 있었을 장광설을 듣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말이다. 사람들이 미학적 선호에 대해서 만큼이나 거대한 이상에 대해서도 논쟁하지 않는 사회를 잠시 상상해보자.
-풀 벤느, 이상길 역, 『푸코, 사유와 인간』, 산책자, 2009, 191쪽.
푸코는 ‘내가 누구인가’를 결정하는 변수들을 수학공식처럼 말끔하게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가 왜 이런 취향과 왜 이런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 하필 왜 이 사람을 사랑하는 건지, 하필 왜 이런 직장을 다니고 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푸코는 ‘당신들이 어떻게, 누구를 향해, 무엇을 위해 싸워야하는지 콕 집어 가르쳐주는 것이 지식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푸코는 조용히 속삭인다. 지금 우리의 삶이 충분히 행복하지 못하다면, 지금 우리의 삶이 너무 많은 제약과 차별과 억압으로 찌들어 있음을 우리 스스로 느낀다면, 그만큼이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 그 치밀한 장애물의 지형도를 그려준 푸코. 그 지도를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그 지도를 소중하게 몸에 지닌 채 우리가 ‘어떻게 싸울 것인가’는 바로 우리 자신의 선택이 아닐까.
나는 여러분에게 자, 여러분이 수행해야 할 투쟁은 이것입니다, 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어떤 토대 위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기 때문입니다. (……) 반면 나는 여러분에게 권력의 현재 담론을 기술하려 합니다. 마치 여러분 앞에 전략지도를 펼쳐놓듯이 말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투쟁하고자 한다면, 여러분은 스스로 어떤 전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지도에서 저항 지점들은 어디인지, 가능한 통로들은 또 어디인지 보게 될 것입니다.
푸코는 자기 청중과 마치 군주와 그 조언자 같은 관계를 맺었다. 군주가 말했다. “나는 인민의 행복을 원한다.” 학자-조언자는 그에게 말한다. “당신의 결정이 그렇다면, 당신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채택해야 하는 수단은 바로 이렇습니다.”
-풀 벤느, 이상길 역, 『푸코, 사유와 인간』, 산책자, 2009, 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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