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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시네필 다이어리, 본 아이덴티티와 미셸 푸코[‘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의심하라] - 14. 애국심의 함정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본 아이덴티티와 미셸 푸코[‘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의심하라] - 14. 애국심의 함정

건방진방랑자 2021. 7. 23.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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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애국심의 함정

 

 

오후 715분 푸코는 강의를 끝냈다. 학생들이 그의 책상으로 모여들었다. 그에게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녹음기를 끄기 위해서였다. 혼잡한 청강생들 틈에서 그는 혼자였다. (……) 나는 청중 앞에서 배우 또는 곡예사가 된다. 그리고 강의가 끝나면 말할 수 없는 고독에 휩싸인다.

-미셸 푸코, 박정자 역, 비정상인들, 동문선, 2001, 6~7.

 

 

제이슨 본은 인간 훈육 프로그램의 최고의 성공작이자 그 처절한 실패를 대변하는 양가적 인물이다. 트레드스톤 프로그램이 탄생시킨 살아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제 1호였던 제이슨 본. 그는 최고의 실력을 갖춘 요원으로 거듭났지만 최악의 문제점을 노출하는 장본이었다. 제이슨의 정신 건강을 체크했던 요원 니키는 실험적 훈련 중이던 요원들의 다양한 정신이상 증세를 보고한다. “행동 교정 훈련을 받던 요원들에게서 다양한 문제점을 발견되었습니다. 우울증, 분노, 충동적 행동 ……. 심각한 신체적 증상도 나타났죠. 극심한 두통, () 과민증 등입니다.” 그리고 제이슨의 기억상실증이야말로 트레드스톤 프로그램의 최대 약점으로 드러난다.

 

감옥이 인간을 완전히 길들일 수 없듯이, 학교가 학생을 철저히 통제할 수 없듯이, CIA는 인간을 완벽한 인조인간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얼굴들이 보여 ……. 내가 죽인 사람들의 얼굴……. 이름은 기억이 안 나……. 속죄하려고 노력했어, 내가 한 짓을, 내 삶을…….” 죄책감에 잠 못 이루며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환상에 시달리는 것, 스스로의 삶 전체를 속죄하고 싶어 하는 제이슨. 이렇게 방황하고, 반성하고, 분열되고, 좌절하는 것은 그들의 행동 교정 프로그램에 결코 포함되지 않았던 예측불허의 이상행동이었다.

 

 

 

 

본 얼티메이텀에서 끈질긴 두뇌게임 끝에 마침내 트레드스톤의 창조주와 대면하게 된 제이슨 본. 그는 도대체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이 왜 하필 를 선택했는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자신을 그토록 무서운 인간 병기로 제조했는지를 알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그런데 그가 만나는 트레드스톤의 책임자들은 하나같이 이 모든 우여곡절의 기원은 바로 제이슨 본, ‘바로 너라고 외친다. 그들은 한결같이 책임을 회피한다. “마리를 죽인 건 너야. 그녀의 차에 네가 탄 그 순간, 네가 그녀의 인생에 끼어든 그 순간 그녀는 죽은 거야.”

 

제이슨은 항변한다. “우릴 내버려두라고 했잖아. 난 아무도 모르게 숨어 살고 있었다고.” 제이슨 본에게 트레드스톤의 실패를 전가하고 싶었던 애보트는 말한다. “넌 과거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해. 삶은 그런 거야. 인정해, 제이슨. 넌 살인자야.” 제이슨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려는 애보트, 제이슨에게 살인누명까지 씌우며 수없는 살인 명령을 일삼았던 애보트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할까. “난 애국자야. 국가를 위해 봉사했어. 난 죄책감 없어.” 그들은 자신에겐 절대로 가 없으며 이 모든 것의 대의명분은 바로 그들의 대단한 애국심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제이슨이나 제이슨을 죽이려는 자들이나 양측 모두 이 모든 끔찍한 살인을 합리화하는 명목이 애국심이라는 것이다. 총명한 젊은이 데이비드 웹이 비밀 요원 제이슨 본이 된 것도 사실 애국심 때문이었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국가를 위해 몸 바친 영웅이라는 위대한 역할 모델들이 숨 쉬고 있는 걸까. 최고의 엘리트이자 촉망 받는 인재였지만 애국심의 함정을 알지 못했던,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수많은 폭력의 진상을 알지 못했던 제이슨 본에게 한때 애국심은 정말 좋은 것, 멋진 것, 폼 나는 것이었을 것이다. 트레드스톤처럼 국가의 미명 아래 모든 폭력을 정당화하는 사람들, 그들은 아무런 명분이 없을 때, 사실은 철저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면서도, ‘국가의 안보, ‘국가의 위기, ‘국가의 미래를 전면에 내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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