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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시네필 다이어리, 뷰티풀 마인드와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내 안의 메피스토펠레스와 사랑에 빠지다] - 1. 내부의 서사가 외부의 서사를 압도하는 인간들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뷰티풀 마인드와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내 안의 메피스토펠레스와 사랑에 빠지다] - 1. 내부의 서사가 외부의 서사를 압도하는 인간들

건방진방랑자 2021. 7. 24.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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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마인드와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내 안의 메피스토펠레스와 사랑에 빠지다

 

 

1. 내부의 서사가 외부의 서사를 압도하는 인간들

 

 

위대한 사람은 (……) 여느 사람보다 더 차갑고, 더 거칠고, 주저하는 일이 더 적고, 남들의 생각에 겁내지 않는다. 그는 존경과 체통을 따지는 미덕, 떼거리의 미덕이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결여하고 있다. 그는 앞장설 수 없으면 혼자 간다. (……) 그는 남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길든다는 것의 비속함을 안다. (……) 자신에게 말할 때가 아니면 가면을 쓴다. 그의 내면에는 칭찬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는 고독이 자리 잡고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 권력에의 의지중에서

 

 

자기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무의식의 목소리를 듣느라 바깥세상의 아우성이 잘 들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외부의 사건보다 내면의 사건이 중요한 사람들, 오직 내면의 서사만으로 자서전 1,000페이지를 채우고도 모자라는 사람들, 지나치는 모든 것에서 무의식의 계시를 읽어내는 사람들. 칼 구스타프 융은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다.”라는 한 문장으로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압축했다. 인간은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운동, 그 예측불허의 가변성으로 정의된다는 것이다.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외부로 나타나 사건이 되려 하고, 인간의 존재는 의식의 통제만이 아니라 발현되지 않은 무의식을 얼마나 의식의 장으로 이끌어내는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 이러한 견해는 칼 구스타프 융의 시대에는 매우 도발적이고도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

 

융은 자기 생에서 외적 사실에 대한 기억은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무의식과의 충돌이야말로 인생의 결정적인 체험이었다고 말한다. 외적인 상황들은 내적 체험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 인간의 삶은 인물-사건-배경으로 정리되는 외부적 사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융은 자신의 행적을 정리한 연보가 아니라 무의식의 체험, 내면의 사건들을 통해서만 자신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한편, 경제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수학의 천재 존 내쉬는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혼자 놀기를 좋아했다. 그는 자기만의 방에서 책과 씨름하거나 혼자만의 실험을 하면서 놀기를 좋아했고 이런 그를 부모는 끊임없이 사교적인 공간으로 끌어내기 위해 절치부심(切齒腐心)했다. 그러나 그는 영혼의 단짝 하나 없이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지적 성취를 과시하여 부모의 질책을 피해가는 법을 배웠다. 또래들이 그를 따돌릴 때마다 무관심이라는 견고한 내면의 갑옷을 입어 상처받지 않는 법을 터득했으며 사랑받는 존재가 될 수 없을 바에는 차라리 강력한 존재가 되어 남들의 공격을 피해가는 법을 익혔다. 항상 오빠와 티격태격하며 자랐던 여동생 마사는 존 내쉬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오빠는 항상 남달랐어요. 부모님도 그걸 아셨죠. 총명하다는 것도 알았고요. 오빠는 뭐든 자기 식대로만 하려고 했어요. 어머니는 나더러 오빠를 위로해주라고 강요하다시피 했어요. 친구들과 놀 때도 같이 끼워주라고 하셨고요. 데이트까지 시켜주라고 하실 정도였어요. 그러실 만했죠. 하지만 나는 괴짜 오빠를 누구한테 소개해준다는 게 내키지가 않았어요.

-실비아 네이사, 신현용 외 역, 뷰티풀 마인드, 승산, 2002, 54.

 

 

존 내쉬는 공중에 손을 뻗었다가 오므리기만 하면 손바닥에서 수학이 꿈틀거릴 것만 같다던 프린스턴 대학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공기조차도 수학적으로 꿈틀거렸던 프린스턴의 파인홀은 세계 수학의 메카였다. 지나치는 모든 곳에서 수학적 계시를 읽어냈던 존 내쉬처럼 젊은 시절 칼 융도 자신을 둘러싼 모든 상황을 무의식이 의식에게 보내는 편지로 해독했다. 칼 융에게 스스로의 신체는 우주가 보내는 무의식의 메시지를 수신하는 영혼의 안테나였다.

 

내면의 서사가 외부의 서사를 압도하는 인간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거의 항상 주위 사람들로부터 오해받는 존재들이라는 점이었다. 존 내쉬처럼 천재적이지만 친구가 없는 아이, 칼 융처럼 되도록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안간힘 쓰지만 언제나 눈에 띌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의 가장 큰 고민. 그것은 늘 오해받으면서도 자아를 잃지 않는 것이었고, 또래집단으로부터 항상 따돌림을 받으면서도 자신을 학대하지 않는 방법이었다. 이를 위해 그들은 더욱 맹렬하게 내면의 동굴로 칩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들은 대부분 나를 어리석고 교활한 아이로 여겼다. 학교에서 무슨 나쁜 일이라도 생기면 우선 나에게 혐의를 두었다. 어디선가 격렬한 싸움이 일어나면 내가 충동질을 했다고 추측했다. (……) 물론 나는 내적인 불확실성을 외적인 확실성으로 보상했다. (……) 나는 나 자신이 잘못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잘못이 없기를 바라는 사람임을 발견했다. 속으로는 언제나 나 자신이 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하나는 부모의 아들로서 학교에 다니고 다른 많은 아이보다 그렇게 썩 영리하거나 주의 깊지도 않으며 근면하거나 단정하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못한 아이였다. 이와 반대로 또 다른 하나는 다 자란 어른으로 정말 늙고 의심이 많아 사람을 믿지 않고 인간 세상에 동떨어진 인물이었다. 그 대신 그는 자연과는 친밀하게 지냈다. 대지, 태양, 달 기후, 살아 있는 피조물, 그중에서도 특히 밤과 꿈, 그리고 하느님이 내 마음속에 직접 불러일으키는 모든 것과 가까웠다. (……) 그리하여 나는 또 다른 존재, 즉 제2의 인격의 방해받지 않는 평온과 고독을 추구했다.

-칼 구스타프 융, 조성기 역, 기억 꿈 사상, 김영사, 2007, 88~90.

 

 

칼 구스타프 융은 아직 무의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정립되지 않았던 1870년대에 태어나 누구보다도 의식적으로 인간의 무의식을 생생히 경험했다. 모두가 의식만이 주역인 삶을 추구할 때 그는 이미 홀로 의식을 압도하는 무의식이 주인공이 되는 삶을 추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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