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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천용과의 인연
| 我來象山越二歲 | 내가 상산1와서 2년을 보내 |
| 建閣穿池民物雍 | 누각 짓고 연못 파서 백성과 산물이 화해졌네. |
| 天慵子來叩闑 | 천용자가 와서 문에 세운 말뚝 두드리고선 |
| 大聲叫我與官逢 | 큰 소리를 나를 관리를 불러 만나자 하네. |
| 直躡曾階入重閤 | 곧장 계단에 올라 중문에 들어오는데 |
| 赤脚不襪如野農 | 벌거벗은 허벅지엔 양말도 없이 들판의 농부 같았네. |
| 不拜不揖箕踞笑 | 절하지도 읍하지 않고 다리 뻗고 웃으며 |
| 但道乞酒語重重 | 다만 “술을 주오”라는 말만 거듭 말하네. |
| 淸風洒然吹四座 | 맑은 바람이 후련하게 서쪽 좌석에 불어와 |
| 一見斂膝知非庸 | 한번 무릎을 걷고 보니 보통이 아닌 줄 알겠네. |
| 握手開襟寫碨磊 | 악수하고 옷깃은 연채 답답한 마음을 쏟아내 |
| 雨朝月夕常相從 | 비오는 아침이나 달 뜬 저녁에 항상 서로 따랐네. |
| 不學彌明枉韓愈 | 미명이 한유의 제자들을 압도한 것2을 배우지 않았지만 |
| 頗似支公訪戴顒 | 다만 지공이 대옹을 방문한 것3과 흡사하리. |
| 天慵子張其姓 | 천용자는 성이 장씨인데 |
| 試問鄕里其口封 | 시험삼아 고향을 물으면 그 입을 꽉 다물었네. 『第一集詩文集』 第三卷 |

인용
- 상산(象山): 황해도 곡산(谷山)의 옛 이름으로, 정약용은 곡산부사로 정조 21년(1797) 윤6월부터 1799년 4월까지 있었다. [본문으로]
- 미명왕한유(彌明枉韓愈): 형산 도사(衡山道士)인 헌원미명(軒轅彌明)이 한유(韓愈)의 제자들과 석정(石鼎)이란 제목으로 연구(聯句)짓기를 해 한유 제자들을 압도했다고 한다. 『창려집(昌黎集)』 石鼎聯句詩序 [본문으로]
- 지공방대옹(支公訪戴顒): 진(晉)의 고승(高僧)인 지둔(支遁). 사안(謝安), 왕희지(王羲之)등과 함께 가까이 지냈으며, 애제(哀帝)의 명을 받고 금중(禁中)에 와 설법을 했는데, 그 명성이 당대를 풍미하였다. 『양고승전(梁高僧傳)』 四 대옹(戴顒)은 남조 송(宋)의 고결한 은자(隱者, 378~441). 오(吳) 지방에서 노닐었고 금서(琴書)를 사랑하고 조소회화의 예술에도 경지가 높았다. 그런데 지공과 대옹은 동시대 인물이 아니다. 대옹의 아버지인 대규(戴逵, 326~96)로 혼동한 것이 아닌가 한다. 대규도 섬현(剡縣)에 살았고 풍류 취미가 아들과 흡사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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