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한시와 무협장르의 궁합
무협소설은 대중적 장르로서 오랜 역사가 있으며, 영상매체가 등장한 이후로는 무협영화로서 관중을 끌어모으고 있다. 한시 전통에서 보면 칼을 노래한 것은 더러 있지만 무협과 결부된 사례는 흔치 않다. 한시 장르와 무협은 궁합이 맞지 않는 것도 같다. 김재찬이 지은 이 부여에서 만난 검객은 무협의 이야기로서 아주 특이한 경우다.
요지는 결의형제를 한 세 검객이 있었는데 막내가 어떤 해상(海商)에게 살해당해서 두 형님이 막내의 원수를 갚는 줄거리다. 이들 검객 삼형제의 서사는 무협 소설로 쓰자면 필시 파란만장한 장편이 될 것이며, 영화적으로 연출하자면 아마도 시공을 넘나드는 신출귀몰한 장면이 전개될 듯싶다. 이처럼 복잡한 내용이 시적 형식으로 간결하게 처리되면서 고도의 긴장감을 주고 있다. 행객을 서사의 전달자로 내세워, 그가 우연히 목도하고 들었던 사실을 엮어낸 방식이다. 말하자면 3인칭의 집약적 진술로 구성한 것이다.
그런데 작중에서 행객은 서사의 주체로 설정되어 있지만, 실제 주인공은 행객이 만난 부여의 검객이다. 부여의 검객과 의동생인 푸른 두건이 한편이며, 전주의 해상(海商)과 갈등관계로 서사는 진행되는 형국이다. 작품은 전반적으로 서술자의 시점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어떤 대목에서는 모호하여 분간하기 어렵다. 이런 모호성이 오히려 신비감을 더해주는 느낌이다. 서사의 공간으로 말하면 부여와 전주, 백두산으로까지 연장되고 있다. 그 공간적 거리는 한순간으로 좁혀져서 하룻밤 사이에 무서운 복수극이 벌어졌다가는 ‘상황 끝’이 된 것이다. 모두 한 자루 칼이 부리는 조화'라 한다. 신비하고 초월적인 서사영역이지만, ‘귀신신이지사(鬼神神異之事)’를 위주로 하는 전기傳奇의 세계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겠다.
이 작품의 창작경위는 밝혀진 것이 없다. 충청 지역이 배경이 된 시편들 가운데 수록되어 있는 점으로 미루어, 작자가 그 지방을 여행하면서 전해들은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서술주체로 설전된 행객이 이야기의 전달자인지, 아니면 작자 자신을 3인칭 화자로 가탁한 것인가는 얼른 판단이 가지 않는다.
-임형택, 『이조시대 서사시』 2권, 창비, 2020년, 466쪽
1 | 나그네가 만난 기이한 집주인 |
2 | 잠자던 거처에 찾아온 또 한 사내 |
3 | 헤어지는 두 협객 |
4 | 풀어놓은 그들의 이야기 |
5 | 소년의 말은 진짜더라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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