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陳商)께 답한 편지
답진상서(答陳商書)
한유(韓愈)
以明理之文, 而求仕於當世, 不投時好, 如操瑟而立於齊門, 不能投合齊王之好竽. 然君子之所守, 不隨時而爲之遷就.
愈白. 辱惠書, 語高而旨深, 三四讀, 尙不能通曉, 茫然增愧赧. 又不以其淺弊無過人智識, 且喩以所守, 幸甚. 愈敢不吐露情實.
然自識其不足補吾子所須也. 齊王好竽, 有求仕於齊者, 操瑟而往, 立王之門三年, 不得入. 叱曰: “吾瑟鼓之, 能使鬼神上下, 吾鼓瑟合軒轅氏之律呂.” 客罵之曰: “王好竽, 而子鼓瑟, 瑟雖工, 如王之不好何?” 是所謂工於瑟而不工於求齊也.
今擧進士於此世, 求祿利行道於此世, 而爲文必使一世人不好, 得無與操瑟立齊門者比歟. 文誠工, 不利於求, 求不得, 則怒且怨, 不知君子必爾爲不也.
故區區之心, 每有來訪者, 皆有意於不肖者也. 略不辭讓, 遂盡言, 惟吾子諒察.
해석
以明理之文, 而求仕於當世,
이치를 밝히는 문장으로 당세에 벼슬을 구한다면
不投時好,
당시의 좋아함에 합치되지 않으니
如操瑟而立於齊門,
마치 비파를 잡고 제나라 문에 서 있으니,
不能投合齊王之好竽.
제나라왕이 젓대를 좋아하는 것에 투합될 수 없는 것과 같다.
然君子之所守, 不隨時而爲之遷就.
그러나 군자가 고수하는 것이 때에 따라 그를 위해 옮기거나 성취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愈白.
제가 아룁니다.
辱惠書, 語高而旨深,
은혜로운 편지 받고 보노니 말씀이 고상하고 뜻은 심오하여
三四讀, 尙不能通曉,
서너번 읽어도 오히려 깨우칠 수 없어
茫然增愧赧.
까마득히 부끄러움만 더합니다.
又不以其淺弊無過人智識,
또한 저를 천박하고 피폐하여 남보다 뛰어난 지혜와 지식이 없다고 여기지 않으시고
且喩以所守, 幸甚.
또한 지킬 것으로 깨우쳐주시니 다행스러움이 심합니다.
愈敢不吐露情實.
제가 감히 실정과 실제를 토로하지 않겠습니까?
然自識其不足補吾子所須也.
그러나 스스로 당신께서 필요로 하는 것에 보태기에 부족하다는 알고 있습니다.
齊王好竽, 有求仕於齊者,
제나라 왕이 젓대를 좋아하는데 제나라에서 벼슬을 구하는 사람이
操瑟而往, 立王之門三年,
비파를 잡고 가서 제나라 왕의 문에 서 있는 지 3년 동안 했지만
不得入.
들어갈 수조차 없었습니다.
叱曰: “吾瑟鼓之, 能使鬼神上下,
꾸짖으며 말했습니다. “내가 비파를 두드리면 귀신을 오르내리게 할 수 있고
吾鼓瑟合軒轅氏之律呂.”
내가 비파 두드리면 헌원씨의 음률에 합치된다.”
客罵之曰: “王好竽, 而子鼓瑟,
손님이 그를 욕하며 말했습니다. “임금은 젓대를 좋아하지만 그대가 비파를 두드리니
瑟雖工, 如王之不好何?”
비파 실력이 비록 기교롭더라도 왕이 좋아하지 않음을 어찌하겠는가?”
是所謂工於瑟而不工於求齊也.
이것은 소위 비파연주엔 실력이 있지만 제나라에서 벼슬 구하기엔 실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今擧進士於此世,
지금 이 세상에서 진사를 천거하고
求祿利行道於此世,
녹봉과 이익을 구하고 이 세상에서 도를 행하려 하지만
而爲文必使一世人不好,
문장 짓는 것은 반드시 한 세상 사람에게 좋아하지 않게 하니
得無與操瑟立齊門者比歟.
비파를 잡고 제나라 문에 서 있는 사람과 비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文誠工, 不利於求,
문장은 진실로 기교가 있지만 벼슬을 구하는 데는 이롭지 못하고
求不得, 則怒且怨,
벼슬을 구하여도 얻지 못하면 화내고 또 원망할 것이니
不知君子必爾爲不也.
군자가 반드시 그렇게 할까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故區區之心, 每有來訪者,
그러므로 구구한 마음이 매번 오는 사람이 있으면
皆有意於不肖者也.
다 저에게 생각이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略不辭讓, 遂盡言,
대략 사양치 않고 드디어 말을 다하오니
惟吾子諒察.
오직 당신께서 양찰【양찰(諒察): 다른 사람의 사정 따위를 헤아려서 살핌】하소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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