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애성(哀性)과 천시(天時) / 태양인의 태양 기운
애성(哀性)은 천시(天時)를 듣는 것이다
애성(哀性)의 정의부터 알아보자. 애성(哀性)에 대한 정의는 이렇다. ‘애성(哀性)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다【哀性은 非他요 聽也라】.’ 조금 황당한가? 동무의 설명은 이렇게 된다. “(태양인의) 슬픈 마음이 널리 퍼지는 것은 귀로 천시(天時)를 들으니, 서로 속이는 것을 슬퍼하는 것이다.” 즉 천시를 들을 수 있으면 사람들이 서로 속이는 것을 당연히 알게 되고, 그러면 자연히 슬픈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또 자연히 생겨나는 것이니, 듣는 것이 바로 슬픔의 원천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이런 식의 설명 때문에 사상체질에 관한 설명이 어려워진다. 동무의 주장을 일반인이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로 쓴 책이 드문 것도 다 이유가 있다. 동무는 태양인답게 직관적으로 느낀 것을 그냥 그 직관의 언어로 써놓았다. 서로 속인다는 것도 사실은 태양인의 눈에 보이기에 속이는 것으로 보인다는 의미일 것이다. 즉 속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속이는 것이 아니라서, 다른 체질의 사람이라면 그걸 속인다고 표현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동무는 그걸 그냥 “이놈들아 그건 사기 치는 거야”하고 설명하니까 어려워진다.
천시(天時)를 안다는 것은 흐름에 맞는지 안 맞는지를 안다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대한 감각이 강하면 상황에 따른 변화를 잘 알게 된다. 따라서 어떤 주장이 특정한 어느 상황에만 맞는 것이지, 함부로 일반화하면 안 되는 것이라는 걸 빨리 알게 된다. 즉 천시(天時)를 모르는 사람들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 태양인의 귀에는 사기 치는 것으로 들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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