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만의 종교활동과 깨달음
01년 5월 6일(일) 구름 낌 오후 4시 9분
자대에 온 지 3주 만에 교회에 갔다. 아주 일상에 찌들어서 그저 주일이기에 교회에 찾아갔던 나의 신앙심은, 무려 3주나 교회에 가지 못하게 되자, 대단한 변혁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역시 가끔씩은 일상성을 벗어나 본다는 것도 생각할 수 없는 크나큰 깨달음을 안겨주곤 한다. 그렇게 교회에 가지 못하다 보니, 예수님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강렬해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 강렬해진 신앙심을 가지고 찬양할 수 있고,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목소리 높여 기도할 수 있었다. 그동안 못해왔기 때문인지 대단한 기뻤고 그 순간만으로도 좋았다.
오늘 설교 말씀은 ‘가정 안의 행복은 물질적인 이상으로 충족될 수 없으며, 오로지 사랑, 격려 속에서 충족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질은 채워지면 채워질수록 더욱 큰 욕심을 발하게 만들 테니, 큰 불신으로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사랑과 격려는 채워지면 채워질수록 오히려 남에게 더욱 잘해주도록 만들 테니, 큰 신용, 신뢰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모두가 인지하고 있긴 하지만 그렇게 살 수 없는 까닭은 남이 나 같지 않기 때문이며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죄악인 이기심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예 이런 이유를 대며 사랑과 격려를 저버릴 것이 아니라 그런 이상을 찾아가려 노력해야 할 것이고, 그 노력의 중심엔 당연히 주님을 두어야 할 것이다.
모처럼만에 교회에 가니, 주일다운 느낌이 들어 너무나 좋았고 날씨 또한 꽤나 맑아 주일다운 기분을 한껏 느끼게 해주었다. 역시 주일은 주일다워야 좋다. 그리고 주일을 주일답게 보내며 말씀을 들으며 지나온 한 해를, 한 주를 돌아볼 수 있음이 좋다. 늘 이런 기쁨과 행복으로 한 주를 맞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살아볼 만한 이유
01년 5월 7일(월) 구름 낌, 오후 6시 25분에 씀
재밌다. 살아간다는 게 재밌다. 더 자세히 말하면 군생활 하는 게 재밌다. 여러 사람들이 분명 살아온 과정이나 가치관이 다름에도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게 재밌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는 거, 그렇게 하므로 서로를 자세히 알아간다는 거, 그게 바로 행복한 것이다. ‘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고 했던가. 그러나 이곳에서만은 그게 예외적인 발언이 되기도 한다.
이곳에 와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더라. 우리 소대만 해도 38명이나 있고 우리 분대엔 10명이나 있으니 말이다. 분대장님하곤 같이 근무 서기에 대할 기회가 많고 그 외의 분대원들도 다른 소대원들에 비해 친근감이 느껴진다. 비록 한 가족은 아니지만 자주 대할 수 있는 친근감 때문인지 한 가족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안락함과 친근함이 오래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고, 그러므로 더욱 가까워져서 전역 후에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다음으로 재밌는 순간은 BMNT(Begin Morning Nautical Twilight) 전원 투입이 끝날 무렵, 해가 점차 떠오름에 따라 환해짐은 물론, 그 전에 산새들의 우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산새들의 지저귐, 그건 흔히 평화의 상징으로 자주 쓰이곤 하는데 그런 상징은 진실이었다. 동이 틈과 동시에 산새들이 지저귄다는 거, 땅거미가 짙게 깔린 대지를 보았을 때의 막막함과 무기력해짐을 단번에 날려 버릴 수 있는 거대한 원동력이었다. 방벽 상에 서서 산새의 지저귐과 함께 동이 트는 걸 보고 있으면 말로는 미쳐 표현할 수조차 없는 행복이 밀려온다. 이런 행복이야말로 우릴 살아가게 만드는 기쁨이지 않겠는가! 물론 이런 이유 외에도 많은 즐거움들이 많다. 그렇기에 우린 군생활을 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때이다!
01년 5월 12일(토) 맑음
이번 한 주는 즐거운 한 주였다. 살아가는 하나하나의 의미가 새록새록 피어나던 때이다.
이젠 근무 서는 게 하나도 힘들지 않고 밤을 지새우는 게 오히려 자유롭다고 느껴지는 때이다.
고참들과 함께 오순도순 얘길 나누는 게 아주 일상적으로 느껴지는 때이다.
군대 짬밥이 너무 익숙해졌기에 밥 먹는 시간을 은근히 기다리며, 특히 군대리아가 나올 때면 빵과 우유를 동시에 씹어먹을 수 있다는 행복감에 젖어 맛있게 먹게 되는 때이다.
전원 투입을 끝내고 자리에 누워 있노라면 그 평온함과 안락함에 눈을 스르르 감을 순간에, 십자가를 만지며 아주 간절히 기도하며 새로운 아침, 새벽을 맞이할 때이다.
BMNT 투입 후에 동이 틀라치면 새의 지저귀는 소리가 귓가를 타고 전해오기 때문에 그런 평온함을 맘속 깊이 되새길 때이다.
글 한 줄기씩을 수양록에 적어가며 삶의 의미를 깨닫고 내 존재의 가치를 정립해가는 때이다.
이러한 때에 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삶의 고답적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때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하기에 난 이때를 고이 간직한 채, 뜻깊고 알차게 이 시기를 보낼 것이다.
이등병 행사의 날
01년 5월 13일(일) 따스함
어제부터 오늘까지 1박 2일간 이등병 행사를 하였다. 토요일 6시에 집결하기로 되어 있었기에 우린 분주히 준비했다. 일개복에 일개화를 신고 더블백까지 꾸리고 있노라니, 마치 휴가라도 갈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더라. 그래서인지 맘이 끝없이 들뜨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까지 꾸린다는 것은 대대나 연대로 이동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기에 (우리가 지내고 있는 이곳 소대를 잠시나마 떠날 수 있다는 거니까) 왠지 설렜다.
시간이 좀 늦춰져서 EENT(End Evening Nautical Twilight) 전원 투입에 맞추어 우린 본부로 이동하게 되었다. 중대 본부(우리 2소대는 다른 소대와 달리 중대와 붙어 있다)는 우리의 생활터전이기에 우리에겐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한마디로 실망이었다는 얘기다. 그래도 거의 한 달 만에 중대 본부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다는 게 어디랴! 그렇게 짐을 날라놓고 동기들이 오길 기다렸다.
오랜만에 보는 동기들 외에 전혀 처음 보는 아이들까지 우린 같은 중대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동질감에 모였다. 그게 첫만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네들이 오랜 친구인양 가깝게 느껴졌고 그런 연유로 쉽사리 대화를 붙일 수 있었다. 서로 같은 상황 하에 있어서 무얼 말해도 얘기가 통하리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렇게 우린 9시부터 취침에 들어가서 오늘 7시까지 풀취침을 하였다 오랜만에 깊은 숙면을 취한 것은 좋았으나 동기들끼리 별로 대화를 하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 그렇게 신교대에서 느껴봤을 법한 편안함을 느끼며 아무 부담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대대로라도 가겠거니 하는 기대로 빵을 먹고 대기하고 있는데 대대로 이동하긴커녕 중대장과의 대화를 할 뿐이었다. 그 후엔 우리의 삶의 터전인 64 대공초소에 올라 지형 설명을 들었다. 우리 소초가 맡은 구역이다 보니 전혀 새로울 게 없어 별 감흥이 없었다. 그나마 좀 좋았던 거라면 전망대휴게소에 가서 김밥, 떡볶이, 만두를 배부르게 먹은 것 정도라고나 할까. 식곤증을 해결해 주는 것이었기에 모처럼 만에 즐거웠다.
후엔 축구를 2p, 3p VS 1p, 포반으로 하였다. 나는 ‘퍽’하는 소리가 나게 차보겠다는 일념 하에 부리나케 뛰어나녔지만,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팀이 무지 잘해서 6:1로 이겼지 뭔가.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그 다음엔 청성 목욕탕에서 목욕을 간만에 했다. 그렇게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 동안의 만남이었지만 가까워졌다는 생각과 함께 헤어진다는 아쉬움을 느끼며 우린 헤어졌다. 좋았다. 1박 2일의 시간으로 우린 선임의 눈치를 볼 것도 없는 자유를 만끽했다.
한 달을 보내고서
01년 5월 14일(월) 맑음
벌써 자대에 온 지도 한 달이 되었다. 퇴소식을 마치지마자 동기들에게 인사할 겨를도 없이 이곳에 온 지도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게 꼭 꿈인 마냥 빠른 시간이 흐른 것이다.
처음에 자대로 간다고 했을 땐, 혹 사자 굴에 들어가는 것 마냥 무섭게 느껴졌는데, 막상 이곳에 와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였고 내가 생각했던 예전의 군대(구타와 불합리가 가득한)가 아니었기에 그다지 힘들지도 않았다. 그 외에도 분대 고참들이 특별히 신경 써주는 부분이 많았기에 맛있는 것도 많이 먹을 수 있었고 여러 가지 좋은 것을 많이 가질 수 있었다.
GOP 근무를 서고 있는 1대대로 자대 결정이 나고 나서 GOP라는 압박감으로 인해 잠시나마 걱정을 많이 하긴 했었다. 그런데 그것도 엄밀히 따져보면 경험 이전의 기우(杞憂)에 불과한 거였다. 다만 이곳에 있으면서 가장 적응이 안 되는 건 뭐니 뭐니 해도 낮과 밤이 바뀌었다는 것이리라. 밤잠이 많은 나에겐 2시간 정도만 자고 일어나야 한다는 게 그렇게 힘들 수 없었는데, 지금은 그나마 적응이 되어 자동으로 일어나진다. 그렇다고 해도 밤에 푹 잘 수 있는 게 지금은 가장 그립다.
이곳에서도 종교활동은 보장되기에 주일 오전 취침 후에 점심 때 일어나서야 교회에 갈 수 있다. 교회에 가서 맘껏 찬양 부를 수 있고 맘껏 기도할 수 있다는 건 너무나 큰 행복임에 틀림없다. 어젠 이등병 행사로 교회에 가지 못했으니, 다음 주엔 꼭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일요일이 기다려지는 이유
01년 5월 20일(일) 따스함
주일이 되었다. 이렇게 어김없이 주일이 찾아왔다는 게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주일이 되면 사회에 있을 때도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고 사람과 사람 간의 전인관계(全人關係)를 맺으며 나와 주님과의 영적 교류를 할 수 있기에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군에 오고 나서 주일이 되노라면, 그렇게 교회에 가고 싶었고 교회 사람들을 그렇게 보고 싶었던 것이다.
훈련병 시절에 교회에 갔을 땐, 그저 형식적인 예배에 실망 아닌 실망을 하며 먹을 것(초코파이냐 햄버거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나에 종교 선택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자대에 와서 한동안 교회에 나가지 못했을 땐, 왠지 내 기본 관념들을 바로 잡아줄 기본을 잃어버린 것만 같아 힘들었던 거다.
그러나 저저번주 주일부터 교회에 나가게 됨으로 흔들리던 나도 많이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우선 주님을 위한 진심 어린 찬양을 하고 말씀을 들음으로 맘이 평안해졌고 기도를 통해 위로를 얻었다. 나의 중심에 도사리고 있던 연약한 모습이 없어지고 강하고 굳센 주님이 계신다는 것은 말로는 미쳐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이었던 거다.
그런 주요한 행복에 곁들여지는 부수적인 행복이란 게 또한 있다. 여호수아 교회가 2Co 2P에 있기 때문에 우린 중대로부터 좀 많이 이동해야만 갈 수 있다. 그건 여행의 즐거움과도 같은 신선한 즐거움을 주었다. 어쨌든 그런 신선한 일상 탈피의 즐거움은 자유로이 날아다니며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새조차, 그런 자유 반경이 지루한 일상의 반경에 포함되어 버리는 안타까움을 안은 짐승들보다 진정 고차원적(高次元的)인 행복이 아닐 런지~
교회에 갈 수 있는 주일이 온다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좋기만 하다. 좋기만 하다.
사랑의 대화
부모
어머님께 너무도 미안한 마음과 함께 감사하는 마음이 동시다발적으로 든다. 미안한 맘은 내가 어머니의 고통(苦痛)을 어느 정도 직감(卽感)하면서, 그 아픔에 동참(同參)하지 못하므로, 어머니께서 그렇게 사실 수 밖에 없었던 이해(理解)가 결여(缺如)되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싫을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반면(反面)에 감사(感謝)하는 맘이 드는 건, 이런 곳에 와서도 쉽게 적응(適應)할 수 있도록 잘 키워주시고 몸 건강(健康)할 수 있도록 키워주셨기에 여전히 건강히 남들에게 꿀리지 않도록, 해주셨기 때문이다.
애인
아직은 없는 가상의 여친을 그리며.
그저 보고 싶은 맘뿐이다. 100일이란 시간 입대 전엔 그다지 긴 시간이라 느끼지 못했는데, 막상 군에 와서 하루하루를 생활해보니 그렇게 길 수가 없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하루하루의 시간은 빨리 지나는 것 같은데(물론 이 곳은 GOP이기에 낮과 밤이 바뀌어 우리들의 날짜 인식률을 혼돈에 빠뜨리기에 가능한 일일 테지만) 앞날의 그날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길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없다. 휴가 나가면 뚫어지도록 실컷 보고 와야지. 라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본다.
전우(기타)
한 배를 탔기에, 어쩜 그리 운명(運命)을 같이 타고난 우리들이기에 서로의 아픔, 기쁨에 같이 동참(同參)할 수밖에 없다. 볏단이 하나씩 있을 때에는 조금의 바람에도 쉽게 쓰려질 수밖에 없고 나무젓가락이 하나만 있을 때에는 조금의 힘에도 쉽게 부러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많은 볏단이 모여 꿋꿋이 서 있으면 바람, 아무리 태풍(颱風)이 분다해도 절대 쓰러지거나 넘어지지 않고 많은 나무젓가락이 모여 고무줄로 묶여 있으면 웬만한 손아귀 힘으론 부러뜨리지 못할 뿐 아니라 손만 시큰 거리는 아픔을 느끼게 된다. 이게 바로 공동체(共同體)의 원리(原理)이다. 그러니 늘 화합하고 단합할 수 있도록 하자.
휴식과 행복은 누구나 갈망하는 바이지만, 그것은 근면에 의해서만 얻게 된다. -T.A. Kempis(켐피스)
만남과 헤어짐의 논리
01년 5월 27일(일) 더움
이번 한 주의 가장 큰 사건은 뭐니 뭐니해도, 두 말년 병장들의 제대일 것이다. 문선웅 병장님, 조진만 병장님은 화요일에 그렇게 떠나갔다.
난 그네들과 오래 생활해보지 못했기에, 그네들이 떠나간다는 것에 대해 그다지 아쉬움이랄지 섭섭한 마음이랄지 하는 것들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 죽어도 살아도 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고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꽤나 섭섭한 일임엔 틀림없다.
그네들은 가는 그 마당까지 ‘이대로 집에 갈 수 있고, 이젠 그곳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실감이 안 난다’고 말했다. 그저 병무청에서 보내온 명령서 한 장에 거부할 권한도 없이 군이라는 울타리에서만 2년 정도를 살아왔으니, 갑자기 그런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게 믿겨질 리 만무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네들은 그렇게 가버렸다. 그렇게 현실을 받아들인 채 가버렸고, 다신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마련(회자정리, 會者定離)이고 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거자필반, 去者必反)’ 그건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거부할 수 없는 진리이다. 만남과 인연이 우리들의 의지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면 헤어짐 또한 우리들의 의지를 벗어난 신의 계획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만남과 헤어짐이 우리의 의지를 벗어난 것임에도 헤어짐에 아쉬워할 수밖에 없고 만남에 기뻐할 수밖에 없는 것은 감정을 가진 인간의 특권이자 아픔이리라.
나도 언젠가는 전역할 그 날이 올 것이고, 그 가운데서 헤어짐의 아픔과 만남의 기쁨을 수도 없이 경험할 것이다. 그런 경험 속에서 인간관계의 참맛을 경험할 것이고 어느 것 하나, 어느 만남 하나라도 소홀히 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어쨌든 모든 사람은 각자의 귀함과 존재 가치를 가지고 있는 전인격체(全人格體)이기 때문이며 세상은 얽히고설켜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의 그릇된 인식은 결국 나에게 치명타를 초래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번 주엔 이런 깨달음을 느끼며 한 주를 보람차게 보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만남과 헤어짐은 또 하나의 가능성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가능성이란 얘긴, 만남이란 그 자체가 자기 삶을 바꾸어 갈 하나의 새로운 계기일 수도 있고, 헤어짐이란 게 자기의 삶을 전혀 새롭고 활기차게 만들 계기이자 가능성일 수 있다는 얘기이다. 삭개오(Zacchaeus)가 주님을 만난 건 하나의 행복이었으며, 다윗과 사울의 헤어짐(삼상 26:13~25)은 또 하나의 행복이었던 거다. 헤어짐 자체에 대한 아쉬움에서 나오는 슬픔이랄지, 싫은 사람을 만나는 데서 나오는 아픔이랄지 하는 일시적인 것에 의해 그 가능성을 망각하는 그런 어리석은 처사는 없었으면 좋겠고 아주 원시안적인 관점에서 그 관계성을 인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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