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01년 4월 22일(일) 화창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去言美, 來言美]’는 속담은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말이다. 이 말이 속담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생각으로도 쉽게 납득될 말이다. 좋은 말을 해줬는데도, 거기다 대고 욕을 바가지로 해댈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이런 일반적인 원칙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난 두 가지 말실수를 하였다.
그 첫째는 강정명 병장님께서 옷을 꿰매고 있는 나를 보고서 “아직까지 바느질 하냐?”라고 물었을 때, 난 장난을 치고 싶어 “전역하는 그 날까지 할 것입니다.”라고 농담조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 대답에 대한 반응은 참으로 상반되는 것이었다. 강정명 병장님에겐 ‘다른 일을 다 하기 싫고, 오로지 바느질만 하겠습니다.’라는 군기 빠진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건 묻는 사람과 답하는 사람 사이의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된 이해의 결여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좀 더 상대의 입장에서 대답할 수 있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융통성이 필요하다. 난 이 말 한마디로, 그간의 신의를 통째로 잃어버렸다.
둘째는, 상황실에서 칼을 빌렸다가 잃어버리는 상황이 발생하여 상황병인 강정명 병장님에게 “칼을 잃어버렸습니다. 얼마면 됩니까?”라고 말을 던진 것이다. 이 말을 함과 동시에 난 여러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였을까? 세상이 물질만능주의화되고 있고 그에 따라, 물질 하나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는 사람을 가장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바로 그런 물질만능주의자적인 발언을 해버린 것이 아닌가. 난 어쩜 나의 실수를 돈으로 무마하려는 심리에서 그렇게 말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정령 그런 심리에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런 대답을 들은 병장님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오히려 나 같았어도 발끈했을 것이고 갈궜을 테니까. 병장님은 바로 윽박지르셨고 그런 말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고, 그렇게라도 타일러 주심으로 고치길 당부하시는 병장님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졌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은 진리였다. 난 오늘 그러한 진리를 무시한 채, 너무나 거대한 실수를 했다. 아직도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原石), 그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아직도 많이 다듬어지고 다듬어져야 할 나는, 이와 같은 계기를 통해 더욱 성장할 것이다.
우선 누가 뭐라 해도 대답의 융통성을 기를 것이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괜찮다 싶을 때 비로소 대답할 것이다. 남이 되어본다는 거,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싫어하는 건 으레 당연한 일이고 내가 하기 좋아하는 일들을 좋아하리란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간혹 우린 그런 당연한 생각은 망각한 채, 자기만이 편하려는 심보로, 자기에게 손해가 오지 않길 바라는 심보로 일을 저지르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인간관계가 소원해지리란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지금 자기의 모습이고, 자기가 제안한 말이나, 제안한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생각해봤을 때, 자기 자신이었어도 별 거부감 없이 했을 거라 판단이 된다면, 그제야 하면 된다.
분명 말처럼 쉽진 않을 테지만 해보려 노력하다 보면 점점 인격적으로 성숙해지며, 대인 관계 또한 원만해지겠지. 이곳에서 조바심 느끼지 말고 하나씩 해보자.
상황실에서 8월에 찍은 사진. 이병 기성이와 상병 진수와 내 모습이다.
삶의 무게
01년 4월 26일(목), EENT-30 BMNT+30
태초에 지상낙원이라 할 만한, 에덴동산이 있었고 그곳엔 오로지 평화만 있었다고 성경(聖經)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 평화의 극치를 누렸던 그곳은 인간의 허무한 이기적 욕심으로 인해 산산이 부서지고, 오로지 결과물론 피와 땀을 흘려야만 비로소 자기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노력과 고생만이 남았다. 그게 바로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삶의 무게’인 것이다. 굳이 이런 따위의 신화적인 얘길 하지 않더라도 각자가 지금까지 적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뼈저리게 느낀 바가 있을 것이기에 잘 알 것이라 믿는다.
이런 ‘삶의 무게’를 어떻게 대처해 나가느냐에 따라, 우린 사람을 두 분류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적극적으로 그 사건을 막고 품음으로 그 사태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겪어나가는 사람과 소극적으로 그 사건을 회피하려고만 한 나머지 자멸 및 파멸의 상태에 이르게 되는 사람으로 말이다.
여기서 탐구해 보고자 하는 사람은 바로 두 번째 부류의 사람이다. 어제 7연대 쪽에서 한 이병이 탈영을 했다. 이 이병이 바로 두 번째 부류의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다. 그 이병이 그렇게 탈영하는 바람에, 우린 꼼짝없이 All Night를 해야 될 상황에 놓였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냉혹한 북방의 밤바람과 새벽바람을 방벽 없는 날개 진지에서 그대로 전면 맞고 있으려니, 삶의 무기력증이 몰려옴과 동시에, 내 맘속 깊이 ‘그 ㅅㄲ 땜에 우리가 이렇게 고생해야 하나? 그럴 바에야 차라리 내 쪽으로 와서 잡혀라. 니 덕에 포상 휴가나 가자!’라는 악다구니를 하며 불만을 토로하게 되더라. 그렇게 삶을 저버린 자를 우린 멸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현실에서 알 수 있듯이, 그 탈영병은 저버림을 택한 것이다. 나 역시 가끔씩은 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사회생활에 대한 향수 때문에 비현실적인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그런 생각은 비현실임을 자각하기에 강하게 뿌리치곤 한다. 하지만 그 사람은 결국 비현실감에 젖어들어 그러한 일을 벌이고 만 것이다. 물론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요소요소에 작용했을 것이다. 모든 군대의 상황은 각각 다 다를 테니 말이다. 하지만 모두 다 걱정과 고민은 있기에, 핑계 없는 무덤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에, 그저 타인에게는 구차한 변명에 그칠 뿐이다.
그렇다면 그 한 개인이 삶을 회피하므로 주변에 끼친 결과는 무엇인가? 분명 그 이등병의 인생 전반이 암울해진 건 자명한 사실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괜스레 고통을 주었다는 것이다. 여기선 ‘괜스레’란 단어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는데, ‘괜스레’란 단어의 의미는 그 사람들에 대하여 적대감이 있든 말든 그 사람들에게 대단한 피해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과 관계된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쳤을 뿐 아니라, 그 주변인인 군 고참, 그 소대 주변 병력들, 그 소대 주변 인가 주민들에게도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끼쳤다. 그건 곧, 한 개인이 자기의 책임을 저버림으로, 곧 주변 사람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은 결과를 눈으로 확인해 본 셈이다.
저버림, 그건 어쩔 땐 생각 이상의 고통을 느끼게 해줌으로 생과 사를 동일선상에 놓이게 한다. 그렇게 되면 죽음에 대해 오히려 매혹됨을 느끼기에, 자살을 택하는 뭇 사람을 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늘 그렇진 않지 않은가! 때론 신선한 행복들이 자리하고 있기에 삶을 즐겁게 만들어주지 않던가! 그러하기에 옛 성현들은 삶을 새옹지마(塞翁之馬)란 사자성어로 표현해 놓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우린 우리의 삶의 무게 자체의 무기력증에 빠져 회피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게 아니라 언젠가 있을 행복의 순간을 떠올리며 내 주위 사람들의 맘속에 아픔을 주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 시기를 버텨나가야 할 것이다.
적응기간에 생긴 두 가지 사건
01년 4월 29일(일) 7시 24분
지난주엔 대기기간이 풀려서 본격적으로 근무를 서게 되었다. 전령(傳令)에서 근무자라는 직책의 변화와 대기기간과 대기기간 해체라는 상황의 변화는 날 심하게 흔들고 있었다. 언제나 새로운 현실에 대해 저자세로 대응하는 게, 나의 대응 자세인데 이번에도 그러한 나의 기본 성격은 변하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때와는 다르게 맘속 깊은 곳에서 샘솟는 새로운 현실, 상황에 대한 기대감과 그에 따른 행복도 자리하고 있었다. 그건 희망과도 같은 것이었기에, 나도 모르는 힘이 솟아오름을 느꼈다.
이런 복잡한 심리를 가지고 지난주를 맞이했던 것이다. 가만히 한 가지 자세로 서있어야만 한다는 게 좀 힘들긴 했지만, 사람과 사람이 함께 의지한 채, 한 가지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함께 있어야 하는 것에 대해선 동질감과 함께 인간미가 느껴졌다. 나 혼자만이 아닌 나의 힘듦에 동참해 줄 고참들이 있고 설마 적응하지 못할까 염려해서 신경 써주고 좋은 말을 해줄 고참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삶의 축복인가!
분대장님인 지해식 병장님과 함께 근무를 서면서, 근무에 대한 일반적인 상황을 들은 것은 물론, 우리 근무지 내의 주요 요소들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앎에 대한 기본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었다. 내가 활동해야 할 장소에 대해 알아가고 선임분대장님 앞에서 그걸 일일이 말할 수 있다는 건, 생각할 수 없는 또 하나의 희열이었다.
그런 앎의 충족 외에도 이번 주엔 참으로 다채로운 일들이 일어났다. 혹 무료하고 지루해지기 쉬운 근무 환경에 활력소를 제공해 줄 양인지, 그런 게 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DMZ 내 산불
처음으론 이번 주 내에 끊임없이 났던 DMZ내 산불이다. 다른 때는 아주 먼 GP 쪽에서 불이 났기에, 그다지 현실감이 없었다손 치더라도 (그렇다 해도 하나의 긴 띠를 형성한 불길이었기에 장관이었다,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없는 볼거리였음을 부인할 여진 없다), 어제 났던 3P 전방 쪽 불은 현실감을 제대로 높여줬다. 타는 그을음 때문에 방독면까지 준비할 정도였으니 그 심각성을 굳이 표현할 필욘 없을 것 같다. 그 장대한 광경을 보면서 있으니 ‘이런 놀라운 광경을 군대가 아니면 언제 맛보냐?’하는 뿌듯함이, 군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들었다. 분명 그건 긴급 사항이었고 3P 사람들에겐 꽤나 미안한 일이지만 말이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3P는 맞불작전(DMZ내 산불 예방 대책)을 실시하였던 것이다. 거대한 불길의 띠가 새벽하늘을 밝히고 있는 걸 보니, 새삼 감탄을 금치 못하겠더라. 그건 특별성을 포함한 신선한 볼거리였으며 그에 따라 우리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이중성을 가진 어떤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등병 탈영 사건
두 번째는 7연대 쪽에서 한 이등병이 탈영한 사건이다. 그 사건으로 밤을 지새게 될 줄 몰랐던 우리들은, 후반야(後半夜)였기 때문에 옷을 그다지 두껍게 입고 나가질 못했다. 그렇게 찬 바람을 맞으며 있노라니, 나와 함께 해주는 지해식 병장님이 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저녁부터 새벽 내내, BMNT 철수 때까지 함께 있으려니 생각도 할 수 없는 전우애가 느껴졌다. 이게 군대 생활의 큰 기쁨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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