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군대 수양록, 이등병 - 01.07.01~31 이등병 마지막 달, 철책 그림 작업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군대 수양록, 이등병 - 01.07.01~31 이등병 마지막 달, 철책 그림 작업

건방진방랑자 2022. 6. 29. 18:21
728x90
반응형

휴가 후에 달라진 것

 

01631() 어두움

 

 

백일휴가를 갔다가 소대에 도착하고 나서 놀라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휴가를 가기 전에 분대장님께서 칠월 초나 유월 말에 신병을 받을 거니깐. 그때까지 적응 잘 해둬라라고 말씀하셨기에 난 정말 그런 줄만 알고 휴가 복귀하였지만, 막상 도착했을 땐, 이미 우리 분대에 신병, 내 막내표를 떼게 해줄 아이가 들어와 있었으니까. 기분은 무지 좋았다. 내 후임인 용준이는 부산에 사는 아이란다. 박형국 일병님하고 같은 곳에 사는 아이이니만치 내가 휴가 가 있는 동안 들어온 용준이에게 참 잘해줬을 것이다.

 

19일에 홍민석씨가 나갔다. 나랑 싫으나 좋으나 같이 근무 서면서 애증을 모두 겪어온 사이이다. 사실 그분이 나갈 땐, 아쉬운 마음이 꽤 많이 들었다. 그건 아무래도 미운 정에서 기인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26일엔 김문주씨가 나갔다. 그저 열정 하나로 똘똘 뭉쳐져 있던 그분은, 결산 칼럼, 보고왕 등 다수의 별명이 있다. 그것만으로 그분의 열정을 엿볼 수 있을 정도다. 왠지 민기 같은 성결하고 깊은 사람일 것만 같아 기대도 되고 내 곁에 이렇게 좋은 사람들만 보내주신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했다.

 

많은 것들이 변했고 앞으로도 많은 것들이 변해갈 것이다. 만나면 헤어짐이 필수적이고, 헤어짐은 새로운 만남의 계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필수불가결적으로 변해가는 현실 속에서 나도 변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내가 막내였을 때, 하긴 그때라 봐야 2개월 전부터 이번 달 초순까지 그랬으니까. 아무것도 몰랐다. 그리고 내가 왜 이런 데서 모두의 걸림돌로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지, 내가 도대체 왜 이렇게 있어야 하는지? 근원적인 질문들만을 나에게 던지며 암울한 시기를 살아왔다. 물론 힘든 일은 하나도 없었고 모두 내가 막내라는 사실 때문에 나에게 잘 대해줬기에 그런 것들이 암울한 시기를 만드는 계기는 아니었다. 오직 내 자신이 아직도 비현실이 되어버린 과거에 얽매여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거다. 난 사회에 있을 때, 군대에 그토록 오고 싶어 했다. 새로운 만남들, 이겨나감, 이끌어 나감의 묘미를 즐겨볼 수 있기 때문에 그랬는데, 막상 군에 와서 보니 내 자신이 그런 것들을 원했음에도 정말 속으론 인정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속내의 이런 미묘함에 혀를 내두르며 암울한 시기를 그저 시간에 이끌리며 살아왔다. 지금은 비록 많이 나아졌고 잘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도 알뿐더러, 후임병들이 있기 때문에 그네들에게 밑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보려 한다. 이젠 그네들이 나와 같이 심리적 갈등기를 겪어나갈 것이기 때문에, 내가 그네들의 짐을 조금이나마 짊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우리 때 복무기간은 26개월이었다. 그래서 이병 6개월, 일병 6개월, 상병 8개월, 병장 6개월을 보내야 한다.  

 

 

그림 작업에 투입된 행복

 

0172() 어두움

 

 

요즘은 그 어느 때와 비교(比較)할 수 없을 정도의 행복(幸福)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저저번주 토요일에 갑자기 소대장님 순찰조(巡察組)가 되므로 약간의 기쁨을 줬던 것이 계기가 되어 오늘의 순간(瞬間)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저번 주 주일에 전원투입(全員投入)을 준비(準備)하고 있는데, 분대장님께서 갑자기 나보고 내일부터 넌 그림 그리는 인원에 포함될 거니깐, 그렇게 알도록 해!”라고 말씀해주신 것이다. 난 그 말뜻이 무엇인지 바로 알았다. 그건 바로 강정명(姜正明)씨 외의 인원이 그리고 있던 철책 정밀그림을 내일부턴 내가 그려야 한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난 불현듯 불만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K-3를 맡는가 했는데 하필이면 이때 빠지게 된 것이며, 난 그런 세밀한 그림에 자신이 없을뿐더러 그 길다란 종이 가운데 한 군데라도 틀리면 모두 다 다시 해야 했기에 긴장해야 하는데 그럴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암튼 난 난공불락(難攻不落)이나 사면초가(四面楚歌) 같은 상황에 몰린 것이다. 그럼에도 여긴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군대이기에 어쩌겠는가?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싫은 마음 가운데, 즐거운 맘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런 맘가짐을 이른바, 표리부동(表裏不同)의 심리라 하는 것인가? 이렇게 급격히 변하는 게, 사람 마음이기에 이래서 사람의 마음은 자기도, 누구도 모르는 것이라 하는 거겠지. 그런 마음이 드는 까닭은 누가 뭐라 해도 투입에서 열외되었다는 특별한 기분 때문일 것이다. 저번에 아팠을 때, 그리고 백일휴가에서 복귀했을 때도 저만치서 들리는 낭랑한 군장검사의 관등성명을 들을 수 있었다. 멀찍이서 들리는 관등성명의 소리, 난 그걸 힘껏 외치지 않아도 된다는 열외의식이 날 행복하게 만들었다. 지금부터 언제까지인지는 모르지만 그 시간만큼은 그림 작업을 하며 자연스레 열외될 테니 말이다.

 

그런 무의식적인 행복 속에서 시작된 그림 그리기는 내가 생각한 만큼 힘들지도 괴롭지도 않았다. ‘월자(越者, 군대에선 무언가를 하지 않는 상황을 월 때린다는 표현을 쓴다)’라는 별명이 제법 잘 어울릴 정도로 나름대로 재밌었고 맘 또한 한없이 편했다.

 

처음엔 진규처럼 디자인 전공이 아니어서 과연 잘 그릴 수 있을까?’ 걱정하긴 했는데 막상 하게 된 작업은 개인의 그림실력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철조망의 위치와 그 번호를 실측하고서 그걸 전지에 표시하면 됐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 작업엔 그림실력보단 얼마나 세밀하고 정밀하게 작업을 할 수 있는지만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래서 첫날엔 조금 헤매긴 했지만 어렵지 않은 작업에 금세 적응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덧붙여 무엇보다 맘에 드는 점은 주작야숙(晝作夜宿, 낮엔 그리고 밤엔 잔다)할 수 있다는 점이고 비 오는 날에도 비를 뚫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GOP에선 전혀 꿈조차 꿀 수 없는 이러한 생활방식을 누리고 있으니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건 자랑이지만 많이 잘 땐 11시까지도 잘 수 있을 정도다. 비가 올 땐 어떤가? 비가 와도 GOP 근무는 빈틈없이 서야 한다. 그러니 비를 당연히 맞고 다니게 되며 전투화는 젖게 마련이다. 그러니 비오는 날에 철수를 하고 나면 누구 할 것 없이 새앙쥐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인데, 지금만큼은 그런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좋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왠지 지금은 군대에 온 게 아니라, 야영에 온 것만 같아서 마음이 한결 편안하기만 하다. 내게 생각지도 못한 이런 특혜를 주신 주님께 한없이 감사드리며 언제나 감사함에 기도드릴 뿐이다. ‘내게 음악주신 분, 내 사라으이 노래, 그 노래 가운데 영원히 함께 할 그 사랑 노래해. 할렐루야~ 찬양을 드리세…… 내 몸 다해 찬양~’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리세.

 

 

 

 

걱정스런 마음으로 소대에 복귀하다

 

01711()

 

 

꿈만 같던 그림 그리기 작업625()~76()까지 2주간 진행되었다. 그래서 7()엔 소대에 복귀해서 낱발실셈을 실시했다. 그림 그리는 시간과는 또 다른 현실을 마주해야 하기에 버럭 겁이 났다. 왜 이런 미묘한 감정의 변화가 뒤따른 걸까?

 

그건 소대 사람들이나 소대 일에 대한 애정이 별로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내 자신의 문제를 익히 알고 있었기에 열심히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많은 노력은 필요치 않았다. 왜냐하면 자대에 와서 4개월 정도의 시간이 흐른 만큼 고참들이 많이 풀어주는 것이 있었기에 생활 자체도 편해졌을 뿐 아니라, 후임병들이 많아져서 내가 해야 할 일도 적어졌으며, 근무 여건도 매우 편해져 누구 말마따나 근무 설 때가 가장 편한 순간이기에 혼자만의 생각에도 맘껏 빠져들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런 가운데 날 더욱 기쁘게 한 일이 있다. 이른바 금상첨화(錦上添花)라 할 수 있는 것인데, 그림 그리기에 대한 포상을 받게 된 것이다. 이런 현실을 맞이하고 보니 어안이 벙벙하긴 했다. 접때 광석이가 그런 말을 장난 삼아 했었는데, 그 장난이 이제 현실이 되어 버린 것이다. 특히 바로 윗 선임들도 포상 휴가를 가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데 이제 백일휴가를 갔다 온 지 한 달밖에 지나지 않은 나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졌단 사실이 겸연쩍으면서도 행복한 일인 양 느껴졌다. 이게 바로 이율배반적인 심리를 아주 적절히 잘 표현한 예라고나 할까!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거려가며 지금은 소대생활에 다시 적응하고 있다. 그런데 엊그제 갑자기 중대장님께서 부르시더니, 철책이력카드 마무리 작업을 하라고 한다. 그 순간 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그 마무리 작업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고 하루만에 다 끝낼 수 있는 소일거리였다. 하지만 그거라도 어디인가? 스스로 기뻐하며 마무리 작업을 했고 어제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중대 본부에서 잠을 잤고 오늘에서야 소대로 영영 복귀했다.

 

난 행복한 사람이다. 일상에서 간혹 벗어나 일탈적인 작업에 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경험해본 사람이면 충분히 알리라. 나에게 이러한 축복을 준 것이야말로 예기치 못한 행복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다시 복귀할 생각을 하니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정면승부하며 회피하진 않을 것이다. 내 자신을 믿고 축복하며 성실히 살아가리라. 그러면 어떤 기회든 찾아오겠지. 아주 가까이~

 

 

 

 

군대의 여름

 

01723() 많은 비가 온 후 갬

 

 

여름의 이미지라 하면 보통 덥고 습해서 짜증나는 것이 일반적(一般的)일 것이다. 하긴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게 바로 여름의 진면목(眞面目)일 테니깐 그럴 만도 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런 일반적인 여름의 이미지가 아니다. 사실 지금은 그런 일반적인 여름의 이미지가 매우 그립기까지 할 정도이니 말이다. 적어도 군대에서의 여름 이미지는 녹색창연(綠色蒼然)한 대자연이 약동(躍動)하여 더위와의 사투(死鬪) 뿐 아니라, 녹색과의 사투까지 벌여야 한다는 점이 다르다.

 

녹색과의 사투, 이것이야말로 군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화두의 여름 이미지라 할 수 있다. 녹색은 어쨌든 생명력을 뜻하는 상징일 것이다. 그 차디찬 겨울에, 오로지 잠재적 생명만 가지고 있고 외적인 생명력이 없던 시기, 그 무수히 푸른 잎사귀들을 모두 떨구어 버리고 앙상한 나뭇가지들만 가득한 그 계절엔 그 어디에서도 녹색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보더라도, 녹색이야말로 삶의 왕성함이란 사실을 통감(痛感)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기(生氣)에 대해 사투(死鬪)라는 표현을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너무했다고 생각할지라도 모르지만, 적어도 군대라는 현실 속에서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음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녹색과의 사투, 그건 해결될 수 없는 과제이기에 모두 다 힘들 거라 생각된다. 없애도 없애도 결국 계속 자라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녹색이라는 거 자체가 싫을 지경이다. 과연 이 사투는 언제야 끝날 수 있을까? 대뜸 겨울이 그립기만 하다. 하루살이 같이 닥쳐오는 그때그때의 상황에만 단편적으로 생각하는 나란 존재여.

 

 

 

 

형제

 

01727() 구름 낌

 

 

어떠한 수식어를 댄다 한들, 형제라는 관계를 명확시하긴 힘들다. 아주 어렸을 시기부터, 그러니까 이를 테면 무의식이 지배하던 그 시기부터 무지배적 각인으로 맺어진 부모자식과의 관계와도 같은 것이 형제의 관계이기에 말과 언어로 표현이 감히 불가능한 관계란 얘기다.

 

여기선 그 무수한 단어보다 무지배적이란 단어에 주의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사람이 이성적이 되어 간다는 거, 이를테면 의식화되어 간다는 거 그건 곧 이해타산적이 되어간다는 얘기와 같은 것이다. 하나의 현실은 그것 자체로 의미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한 인간의 의식 안에 들어가 이성적인 판단을 거치게 되면 그건 다분히 사실 그 자체를 잃어버린 하나의 관념이 될 뿐인 것이다. 예컨대, 무의식 중에 형성된 친근감이 있는 부모 형제의 관계와 의식 중에 형성된 친구의 관계, 동료 상사들의 관계(아무리 손익계산을 안 했다손 치더라도, 이미 너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너에게 얼마나 큰 이익이 될까 하는 손익 계산을 거친 뒤다)를 비교해보더라도 우린 쉽게 위의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부모 형제는 피의 섞여짐 여부를 떠나서라도 가까울 수밖에 없고 친근할 수밖에 없는, 절대 끊을 수 없는 그런 관계인 것이다.

 

형과 나는 그동안 너무 요원하게 살아왔다. 어렸을 땐, 공통분모를 많이 찾을 수 있었기에, 아니 형만이 나의 전형화된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기에 형을 따를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그만큼 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나의 행태가 형과 다를 수 있다는 걸 알았고 형도 우상일 수 없는 인간일 뿐이란 사실을 알았기에 자연히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어 갈 뿐이었다. 그건 형과 나의 요원해짐의 시작이었을 뿐 아니라 관계를 무디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이젠 이런 가슴 아픔을 맘속 깊이 통감하며 아주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거부할 수 없는 친근감으로 친구 이상으로 친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난 어쨌든 형과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 해야니깐.

 

 

 

 

폭우와 태산

 

01731()

 

 

내일이면 그렇게 꿈에 그리던 일병이 된다. 모든 선임병들이 이병은 무지 빨리 지나간다고 말했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해본 바론, 그렇게 빨리 지나가진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느리게 지나갔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다. 일병이 된다는 거, 사회현실이 별로 달라질 게 없을 거라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그래도 군 생활을 한 지 6개월이 지났다는 얘기일 테고, 나의 위치가 어느 정도는 확고해졌다는 얘기일 테니까 괜스레 기쁨이 밀려든다.

 

입대하고 나서, 아니 사실대로 자대에 오고 나서 오르고 또 오르더라도 태산엔 못 오르리라는 관념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 냉혹(冷酷)하리만치 매섭게 느껴지던 현실은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그런 것과는 정반대의 것이어서, 그저 막막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을 열심히, 물론 남이 보기엔 설렁설렁 사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 스스론 열심히 했다.

 

살다 보니 조금씩 관념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러한 계급에 기반한 단체생활도 나름대로의 재미와 의미가 있다는 거, 그리고 점차 후임병들이 늘어나면서 같은 위치에서 느껴지는 동병상련이 있다는 건 크나큰 힘이 되었을 뿐 아니라, 적어도 그네들 앞에서 축 늘어진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는 것을 알겠더라. 생활의 활기였음에 틀림없다. 그렇게 스스로 자인하는 가운데 관념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는 관념, 아주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관념으로의 변화는 내 군 생활의 획기적 사건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런 사건은 나의 군 생활이 조금이나마 활기차게 생활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부인할 여진 없다.

 

사회에 있을 때부터 줄곧 들었던 얘기이지만, 패러다임의 변화는 곧 자기 삶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생각 하나가 바뀐다고 얼마나 삶의 형태에 큰 영향을 끼치겠느냐라고 반박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감히 생각해보자. 저번 주 토요일부터 오늘인 31일까지 엄청난 폭우가 연일 오고 있다. 특히 주일에 내린 폭우는 우릴 잠도 못 자게 할 정도로 가혹한 것이었으며, 폭우 속에 밤을 지새우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그때의 참혹상은 대교천의 수위가 270Cm에 임박했음을 보아서도 알 수 있고 β블록 철검로가 반절 이상 침수되었음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그러한 비가 어제, 오늘까지 줄곧 내렸다. 이미 막사 주변의 배수로는 범람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제 범람은 시간문제일 뿐이고 그로 인해 우리들의 전투복과 전투화는 다 젖었다. 그렇지만 계속되는 폭우에 갈아입을 수가 없어 칙칙한 냄새가 가득 배긴 눅눅한 전투복과 군화를 그대로 신어야만 하니, 그저 막막하고 답답할 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부정적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극단적이고 비극적인 현실을 비관하며 죽음을 각오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에게 있어선, 흐린 날 뒤에 맑은 날이 올 거라는 일말의 기대도 없을뿐더러, 만약 맑고 화창한 날이 계속된다손 치더라도 그런 날씨의 덥고 습함에 스스로 혀를 내두를 테니깐. 하지만 긍정적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들은 새옹지마(塞翁之馬) 속담을 익히 알고 있을뿐더러, 그렇고 칙칙하고 짜증 나는 계절 속에서도 나름대로의 행복의 요소를 찾아낼 것이다. 이를테면 비가 간혹 소강상태에 접어들면 그런 작은 기쁨의 요소, 그렇게 금방 깨어질 기쁨의 요소로 감사한다거나, 그런 고달픔을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는 초소 내에 투입하고 나서 그런 일시적 요소에 감사한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그렇게 잠시 잠깐의 상황 속에서도 기쁨의 요소를 찾아내면서 삶을 조금이나마 긍정적이고 활기차게 살아갈 것이다. 이렇듯 패러다임의 변화는 한 개인의 삶이 어느 정도나 바뀔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난 바로 이병 기간에 이러한 변화를 익히 체험했으니, 군 생활의 반은 성공한 거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변화를 기본으로, 그리고 지금까지 체득한 군 생활 요령을 기본으로 일병이 되어선 좀 더 활기차게 살아가고 선임병들에겐 인정 받는 나, 후임병들에게 가까이 하고 싶은 나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물론 말만큼 쉬운 게 아님을 알기에 이렇게 글로써 나 자신을 다지는 것이다. 이제 나도 어엿한 작대기 둘 건빵 통사다. 하하~

 

 

 

 

인용

목차

사진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