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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순자 - 예(禮)를 새롭게 정당화하다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순자 - 예(禮)를 새롭게 정당화하다

건방진방랑자 2022. 3. 7.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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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새롭게 정당화하다

 

 

공자는 인자(仁者)가 되기 위해 주나라에서 내려온 예를 배워야만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맹자에 이르러 공자가 말했던 외재적인 예는 이제 인간의 내면에 있는 본성으로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사양지심이라는 마음으로 말이지요. 이에 반해, 순자는 내면에 사로잡힌 예를 다시 외부로 꺼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예의 필요성을 역설하기 위해 성악설을 주장했던 것이지요. 이것은 우리의 본성에는 사양지심(辭讓之心)과 같은 도덕적 마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관점을 전제로 합니다. 그래야 우리 마음이 선해지기 위해서는 외재적인 예의 학습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기 때문이지요. 순자에 이르러 예는 다시 성왕(聖王)이 창조한 문명 제도라는 의미를 부여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에게 한 가지 숙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외적인 제도로서의 예는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먼저 순자는 예를 정치ㆍ경제학적 입장에서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그의 논의를 따라가보도록 하지요.

 

 

예는 어디에서 기원했는가? 대답하기를,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욕망을 가지고 있다. 욕망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그것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욕망을 추구하는 데 일정한 분수와 한계가 없으면 서로 다투지 않을 수 없다. 서로 다투면 사회는 혼란하게 되며, 혼란해지면 재화가 부족하게 되니, 선왕(先王)은 이러한 혼란을 싫어했다.

禮起於何也? , 人生而有欲, 欲而不得, 則不能無求, 求而無度量分界, 則不能不爭. 爭則亂, 亂則窮, 先王惡其亂也,

예기어하야? , 인생이유욕, 욕이부득, 즉불능무구, 구이무도량분계, 즉불능부쟁. 쟁즉란, 란즉궁, 선왕악기란야.

 

그러므로 그는 예의를 제정하여 사람마다 분수를 나누고 이 분수에 따라 사람의 욕망을 길러주고 사람의 욕구를 채워주었다. 선왕은 사람의 욕망이 결코 재화를 바닥내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했고, 재화가 욕망 때문에 바닥나는 일이 없도록 했으며, 욕망과 재화가 서로를 유지하며 발전하도록 했다. 이것이 예가 생겨난 까닭이다. 순자』 「예론

故制禮義以分之, 以養人之欲, 給人之求, 使欲必不窮乎物, 物必不屈於欲, 兩者相持而長, 是禮之所起也.

고제례의이분지, 이양인지욕, 급인지구, 사욕필불궁호물, 물필불구어욕, 양자상지이장, 시례지소기야.

 

 

순자가 예를 정당화하는 기본 전제는 매우 단순하지만 또 그만큼 설득력이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지만 그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재화는 부족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무질서가 초래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재화를 얻기 위해 인간들은 목숨을 걸고 투쟁하게 될 테니까요. 완전한 야만의 상태, 철저한 아노미(anomie)의 상태가 초래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결국 인간들 상호 간의 살육과 파괴로 이어질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초인처럼 성왕이 등장하게 됩니다. 물론 성왕의 해법은 아주 단순합니다. 예의라는 차별적인 규범을 제정하여, 각자의 신분에 맞게 욕망을 절제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군주가 열 개를 먹으면, 신하는 다섯 개를 먹고, 백성들은 세 개를 먹도록 한다는 뜻이지요. 그러면 재화가 떨어지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당히 통치계층 중심적인 발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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