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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왕수인 - 7일 동안 대나무를 탐구한 젊은 유학자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왕수인 - 7일 동안 대나무를 탐구한 젊은 유학자

건방진방랑자 2022. 3. 7.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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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동안 대나무를 탐구한 젊은 유학자

 

 

어떤 소년에게 스승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서란다.”

 

그러자 소년은 당돌하게도 스승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지요.

아닙니다. 선생님,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성인(聖人)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이 소년은 어린 시절부터 이미 신유학(新儒學, Neo-confucianism)의 정신을 알고 있었던 셈이지요. 앞에서 정이가 말하지 않았던가요?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안연이 즐겨 그러했듯이 성인이 되고자 함이라고 말입니다. 성인이 되는 꿈을 가진 소년은 어느덧 청년이 되었고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갓집에서 신부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청년은 어느 유학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 유학자는 성인이 되려면 격물(格物) 공부를 해야 한다고 알려줍니다. 다시 말해, 내 눈앞에 존재하는 사물 그리고 나에게 발생하는 사건들에는 이치, 즉 이()가 있으니 그것을 찾아야만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었지요. 아마 그 유학자는 주희의 유학 사상을 신봉했나 봅니다.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 되고 싶었던 청년은 주희의 가르침을 따르기로 결정했습니다. 성인이 될 수 있다는데 무엇을 망설이겠습니까?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려는 열망에 불타 있던 이 청년은 후에 양명학(陽明學)을 창시한 유학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양명(陽明) 왕수인(王守仁, 1472~1528)입니다. 주희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도 이치가 내재되어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나아가 그는 사물의 이치를 하나 둘 파악하게 되면, 마침내 세상 만물의 이치, 즉 태극(太極)을 파악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침내 성인이 되는 것이지요. 21세의 청년 왕수인은 자신이 몸담고 있던 관청에서 격물 공부를 시작하겠노라 결심했고,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당장 공부에 착수했습니다. 때마침 그가 근무하는 관청에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날부터 그는 대나무를 직시하면서 대나무의 이치를 찾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나 어느덧 7일이 되었습니다. 청년 왕수인은 대나무의 이()를 찾지 못하고, 심신이 피폐해진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대나무의 이치를 찾은 뒤에 다른 사물의 이치도 찾으려는 청년의 희망은 이제 절망으로 바뀌었습니다. 대나무의 이치를 찾으려는 노력이 자신을 성인으로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몸을 병들게 만들었기 때문이지요.

 

시간이 흘러 청년 왕수인은 어느덧 35세가 되었습니다. 이때 불행한 사건이, 아니 지나고 보면 행운이었던 사건이 벌어집니다. 환관의 농단이 심해지자 그는 천자에게 상소를 올립니다. 그러나 도리어 모함을 받아 형벌로 40대의 매를 맞은 뒤, 귀주(貴州)의 용장(龍場)에서 말을 관리하는 역승(驛丞) 관직으로 좌천되고 맙니다. 이런 조처는 곧 왕수인을 죽음으로 모는 명령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예전에 죄인을 외딴 곳에 귀양 보내는 것은 적응하기 어려운 곳에서 풍토병에 걸려 고생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 의미였지요. 왕수인이 도착한 용장은 기후가 좋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온갖 벌레와 뱀들이 우글거리는 지역이었습니다. 극한적인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사유를 고독하게 다듬어 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후세 사람들이 용장의 큰 깨달음[龍場大悟]’이라고 부르는 철학적 통찰을 얻게 됩니다. “마음이야말로 모든 이치의 근원이다!” 절대적인 악조건 속에 홀로 남겨진 그는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마침내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상황에서 그가 믿었던 것은 오직 자신의 마음뿐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왕수인의 깨달음은 심즉리(心卽理)’라는 명제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심즉리마음이 곧 이()이다라는 뜻입니다. 이 명제에서 왕수인은 이란 마음을 떠나 다른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그는 예전에 대나무에서 이치를 찾으려는 노력 자체가 잘못이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주희가 제안했던 격물치지(格物致知) 공부를 왕수인이 거부하게 되었음을 의미하지요. 그렇다고 그가 객관적인 세계 자체를 거부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마음이 작용하고 나서야 객관적인 세계도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한편으로 보면, 이것은 매우 타당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눈앞에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내 마음이 어제 만났던 사람에게 향해 있다면, 그 음식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니까요. 왕수인은 바로 이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치라는 것이 우리에게 의미를 가지는 경우란, 그것이 마음을 움직여서 내게 사물이 명료하게 드러나는 경우에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왕수인의 생각은 그의 서신과 문답을 기록한 전습록(傳習錄)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제 전습록을 넘기면서 그의 속내를 좀더 알아보도록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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