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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이토 진사이 - 맹자의 본성론을 다시 숙고하다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이토 진사이 - 맹자의 본성론을 다시 숙고하다

건방진방랑자 2022. 3. 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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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본성론을 다시 숙고하다

 

 

진사이는 주희의 경 공부와 그 공부를 통해 추구한 명경지수(明鏡止水)의 심리 상태를 비판했습니다. 그 비판은 주희가 인간의 마음을 미발(未發)과 이발(已發)두 측면으로 나누어 이해한 점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습니다. 주희는 마음의 감정이 발동하기 이전의 상태를 미발이라 하면서, 바로 그 순간에 인간의 본성을 살펴보기 위한 경 공부를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지요. 물론 주희는 마음의 감정이 이미 발동한 때를 의미하는 이발의 때에도 나름의 공부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공자맹자의 유학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표방한 진사이는 애초에 공맹의 사유에는 미발과 이발의 구분 자체가 없었다고 지적합니다. 더구나 미발의 상태로 마음을 분석하면, 이는 마치 물이 땅속에 있는 경우를 논하는 것과 같아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제대로 파악할 수조차 없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구체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마음의 영역을 따로 설정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본 것이지요. 진사이에게 마음이란 오직 구체적으로 작용하는 경우를 통해서만 의미 있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의 글을 통해 진사이의 주장을 알아보도록 하지요.

 

 

대개 맹자의 학문에는 본래 미발과 이발이라는 설명이 없었다. 지금 만약 송나라 유학자들의 설명을 따라서 미발과 이발로 구분하여 말한다면, 본성은 이미 미발의 상태에 귀속되어 선과 악으로 말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은 마치 물이 땅속에 있으면 위와 아래를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지금 맹자가 본성을 아래로 내려가는 것과 같다고 말한 것을 살펴보면, 그가 기질의 차원에서 본성을 말했음이 분명하다. 어맹자의』 「()

蓋孟子之學, 本無未發已發之說. 今若從宋儒之說, 分未發已發而言之, 則性旣屬未發, 而無善惡之可言. 猶水之在於地中, 則無上下之可言. 今觀謂之猶就下也, 則其就氣質而言之明矣.

개맹자지학, 본무미발이발지설. 금약종송유지설, 분미발이발이언지, 즉성기속미발, 이무선악지가언. 유수지재어지중, 즉무상하지가언. 금관위지유취하야, 즉기취기질이언지명의.

 

 

진사이의 입장을 명료화하기에 앞서, 그가 맹자』 「고자(告子)편에서 본성에 관한 근본적인 비유를 채용하고 있음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성(人性)에 대해 고자와 논쟁하면서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한 것은 물이 아래로 흘러가는 것과 같다[性猶湍水也].”고 말한 적이 있지요. 고여서 흐르지 않는 물과 역동적으로 흐르는 물을 한번 비교해볼까요? 진사이는 전자가 바로 주희가 말한 미발의 상태이고, 후자는 맹자가 말한 선한 본성이 드러난 상태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진사이는 고여서 흐르지 않는 물과 같다면 본성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처럼 정체된 물의 경우에는 물이 아래로 흐르는 자발성을 가졌는지 제대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오직 고도의 차이로 물이 흘러갈 때에만 우리는 물의 본성이 아래로 흘러간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사이의 지적에 따르면, 미발의 상태 또는 그와 관련된 주희의 경 공부는 어떤 긍정적인 의미도 가질 수 없습니다. 미발의 상태에서는 자발적으로 선을 향하는 본성의 계기를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사실 진사이는 이렇게 되묻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수양의 최종적인 완성이 잠잠한 물과 같은 상태여야만 할까? 아니면 타자(他者)로 원활하게 흐르는 역동적인 물처럼 되어야 할까?”

 

진사이에 따르면 물이 고도의 차이로 흐르듯, 우리의 마음도 내가 아닌 타자와의 차이에 의해서만 작동할 수 있습니다. 역으로 말해, 우리의 마음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우리가 타자나 외부 사태와 관계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명경지수(明鏡止水) 상태를 지향했던 주희의 사유는, 타자로 향해야만 하는 인간의 마음을 인위적으로 내면의 방향에 수렴시켜 흐르지 않도록 만드는 사유, 다시 말해 유아론적 사유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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