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맹자 고자 상 - 2. 본성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다 본문

고전/맹자

맹자 고자 상 - 2. 본성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다

건방진방랑자 2021. 10. 20. 08:53
728x90
반응형

2. 본성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다

 

 

告子: “性猶湍水也, 决諸東方則東流, 决諸西方則西流. 人性之無分於善不善也, 猶水之無分於東西也.”

, 他端反.

, 波流瀠回之貌也. 告子前說而小變之, 近於揚子善惡混之說.

揚雄曰: “人之性也, 善惡混. 修其善則爲善, 人修其惡則爲惡. 人氣也者, 所適善惡之馬也歟.”

 

孟子: “水信無分於東西. 無分於上下乎? 人性之善也, 猶水之就下也. 人無有不善, 水無有不下.

言水誠不分東西矣, 然豈不分上下乎? 性卽天理, 未有不善者也.

 

今夫水, 搏而躍之, 可使過顙; 激而行之, 可使在山. 是豈水之性哉? 其勢則然也. 人之可使爲不善, 其性亦猶是也.”

, 音扶. , 補各反.

, 擊也. , 跳也. , 額也. 水之過額在山, 皆不就下也. 然其本性未嘗不就下, 但爲搏激所使而逆其性耳.

此章言性本善, 故順之而無不善; 本無惡, 故反之而後爲惡, 非本無定體, 而可以無所不爲也.

 

 

 

 

 

 

해석

告子: “性猶湍水也, 决諸東方則東流, 决諸西方則西流. 人性之無分於善不善也, 猶水之無分於東西也.”

고자께서 ()은 여울물과 같아 동쪽으로 트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트면 서쪽으로 흐릅니다. 사람의 본성이 선함도, 불선함도 없는 것은, 물이 동서로 나눠지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 他端反.

, 波流瀠回之貌也.

()은 물이 회오리치는 모양이다.

 

告子前說而小變之,

고자는 1장에서 했던 말로 인해 조금 자신의 이론을 바꿨으니,

 

近於揚子善惡混之說.

여기서 말하는 것은 양웅의 선악이 혼재한다는 말과 가깝다.

 

揚雄曰: “人之性也, 善惡混.

양웅이 말했다. “사람은 성은 선과 악이 혼재되어 있다.

 

修其善則爲善, 人修其惡則爲惡.

선으로 닦으면 선해지고, 악으로 닦으면 악해지는 것이다.

 

人氣也者, 所適善惡之馬也歟.”

사람의 기()란 선과 악을 향해 달려가는 말이리라.”

 

孟子: “水信無分於東西. 無分於上下乎? 人性之善也, 猶水之就下也. 人無有不善, 水無有不下.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물은 참으로 동서로 나눠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상하의 나눠짐도 없다는 것입니까? 사람의 본성이 선하다는 것은 물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은 선하지 않음이 없고 물은 아래로 내려가지 않음이 없습니다.

言水誠不分東西矣,

물은 참으로 동서로 나누어지지 않았지만

 

然豈不分上下乎?

어찌 위아래의 나눠짐이 없으리오?

 

性卽天理, 未有不善者也.

성은 곧 천리(天理)로 선하지 않은 것이 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今夫水, 搏而躍之, 可使過顙; 激而行之, 可使在山. 是豈水之性哉? 其勢則然也. 人之可使爲不善, 其性亦猶是也.”

이제 물을 손바닥으로 쳐서 튀어오르게 하면 잠시 동안은 이마를 지나게 할 수 있으며, 과격하게 흐르도록 하면 산에 있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어찌 물의 본성이겠습니까? 기세와 환경에 따라 그런 것일 뿐입니다. 사람이 불선을 하게 됨은 그 성이 또한 기세와 환경에 따라 그러한 것과 같습니다.”

, 音扶. , 補各反.

, 擊也. , 跳也.

()은 친다는 뜻이다. ()은 튄다는 뜻이다.

 

, 額也.

()은 이마다.

 

水之過額在山, 皆不就下也.

물이 이마를 지나거나 산에 있는 것은 다 취하(就下)의 본성에서 어긋난 것이다.

 

然其本性未嘗不就下,

그러나 그 본성은 일찍이 아래로 내려가려 하지 않음이 없으니,

 

但爲搏激所使而逆其性耳.

다만 치거나 과격하게 흐르게 하는 외부자극을 통해 그 본성을 거스르게 한 것일 뿐이다.

 

此章言性本善, 故順之而無不善;

이번 장에선 말했다. ‘성은 본래 선하기 때문에 그걸 따르면 선하지 않음이 없으며,

 

本無惡, 故反之而後爲惡,

본래 악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반대로 한 후에 악이 됨이니,

 

非本無定體, 而可以無所不爲也.

본래 정체가 없어 하지 않을 것이 없을 수는 없다

 

맹자의 논의가 매우 설득력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것은 레토릭의 장난일 뿐, 실제로 맹자의 논리로써 고자의 주장이 논파되는 것은 아니다.

결저동방 결저서방(決諸東方, 決諸西方)’()’의 사건 속에는 완전히 기하학적 평면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상하의 입체감이 있을 때만 의미를 갖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고자의 ()’의 논리 속에는 이미 맹자의 취하(就下)’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맹자의 논리는 한낱 비유일 뿐, 정확한 사실의 입증이 될 수가 없다.

물이 취하(就下)하는 것도 물 자체의 성질일 수 없으며, 그것은 오직 중력에 의한 위치에너지의 변화일 뿐이다. 자연현상 속에서 물은 취하의 성질만 갖는 것이 아니라 취상(就上)의 성질도 갖는다. 모세관현상에 의하여 자연적으로 취상할 수도 있고, 기화현상(氣化現象)에 의하여 하늘로 올라가기도 한다.

따라서 맹자의 논의는 고자의 논리를 논파하는 정밀한 논의가 될 수가 없다. 맹자도 세()에 의한 악()으로의 취향(就向)을 인정하였다면 그가 말하는 성선(性善)도 선단(善端)의 확충이라는 과정론적 논의 그 이상의 주장은 아니다. -맹자, 사람의 길, 604

 

 

인용

목차 / 전문 / 역주

삼천지교 / 생애 / 孟子題辭

14A7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