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고구려를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다
『나의 살던 고향은』의 상영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다. 도올 선생이 거닐었던 길을 따라 우리도 함께 거닐며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어느새 백두산 정상에서 “홍익인간!”이라 힘주어 외치는 도올선생의 결기 어린 목소리를 듣게 되며 스텝룰을 보게 된다. 그만큼 적당하고도 간명한, 그러면서도 여운이 남는 상영시간이라 할 수 있다.
▲ 사람들이 하나둘씩 차고 있다. 첫 개봉일이니만치 많은 사람들이 왔으면 좋겠다.
주몽은 흘승골성에 도읍할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는 각 유적지마다 도올 선생이 직접 발로 걸으며 그때 느꼈던 감회를 들려주고, 거기서 미처 말하지 못한 역사적인 사실은 연변대학 숙소에서 보충해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니 이 영화는 한 편의 ‘도올의 고구려사 강의’라 이름 붙여도 전혀 손색이 없는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처음 간 곳은 환인지역이다. 이곳은 고구려의 첫 도읍지였던 곳으로 흘승골성訖升骨城(졸본성)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영화에선 아침에 희뿌연 날씨가 개면서 천연의 요새인 흘승골성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이 생생히 담겨 있다. 그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주몽이 이곳을 도읍으로 정할 수밖에 없었던 느낌이 그대로 전해오는 듯했다. 이에 대해 도올 선생은 아주 감격에 차서 격앙된 어조로 “주몽이 여기를 왔다가 이 뿌연 비류수 가에서 안개가 걷히면서 저 성이 우뚝 서있는 모습을 보고 저기다! 내가 바로 도읍할 곳이 저기다!”라고 주몽에 빙의라도 된 듯이 외쳤다.
▲ 제주도 성산일출봉처럼 우뚝 솟은 자연이 만든 요새. 졸본성.
‘나의 살던 고향은’에 자막이 거의 없는 이유?
영화는 이런 식으로 유적지를 찾아 도올선생의 감회와 설명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그때 좀 더 자막을 친절하게 넣어주고, 중간 중간에 관련 자료를 더 많이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아무래도 고구려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생소한 개념들이나 낯선 역사적 사실들이나 특이한 지명들 때문에 더 헛갈리기만 했으니 말이다. 그건 모두 도올 선생의 내레이션만으로 설명하려다보니, 이해하기에 너무나 버거웠다.
그런데 나중에 질의응답 시간에 이에 대해 “자막을 넣어 설명을 도울 수도 있었는데, 최대한 배제하도록 편집 방향을 정했습니다. 자막이 많아질 경우 자칫 잘못하면 자막에만 집중하느라 영상을 거의 보지 못하는 수가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관객들에게 더 많이 영상으로 느껴볼 수 있도록 배려하는 차원에서 만든 영화입니다”라는 도올 선생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자막을 보느라, 영상을 소홀히 본다는 생각을 하질 못했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시선의 분산에 따라 오히려 영상으로 전해주고자 하는 바를 놓치게 될 수도 있다는 문제의식이 확 와 닿더라. 오히려 약간 불친절할지라도 이처럼 영상을 중심으로, 그리고 중간 중간 나오는 내레이션을 부가적으로 『나의 살던 고향은』을 즐기도록 한 것은, 좋은 선택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 시네마달 대표와 도올 선생, 그리고 류종헌 감독의 모습. 관중과 정말 대화하듯 편안하게 말하고 계신 도올 선생.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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