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신라 패러다임에서 고구려 패러다임으로
『나의 살던 고향은』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고구려 패러다임’에 알아야한다.
지금껏 우린 알게 모르게 자학사관이나 신라중심사관에 빠져 우리의 역사를 비하하기에 바빴다. 그래서 밖으론 늘 강대국의 침략에 꼼짝없이 당하는 나라로, 안으론 권력과 돈에 눈이 먼 권력자들의 아귀다툼에 시름하는 나라로 인식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역사수업을 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우리 역사는 늘 당하기만 하는 역사잖아요. 그래서 공부하기가 싫어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런 식의 자학사관이나 ‘신라 패러다임(신라중심사관)’으로 우리 역사의 무대는 한없이 좁아졌고 부정적인 시각만이 판을 쳤다. 이때에 도올 선생이 제시하는 방법이 바로 ‘고구려 패러다임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그건 곧 우리의 과거사를 제대로 배워서 버젓이 있어왔던 우리 민족의 자긍심과 문화적 자부심을 살려 현재의 관점으로 계승해 나가자는 얘기다.
▲ 어마어마한 크기의 광개토대왕 비문. 일본학자들이 회칠을 하여 왜곡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위대한 유산이다.
고구려 패러다임을 지녀야 하는 이유
그렇다고 여기서 말하는 게 단순히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라는 국수주의거나, ‘아 옛날이여’라는 복고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저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어디서 허황된 얘기야’라며 밀쳐내지 말고, ‘그땐 그랬을 뿐 지금은 그렇지 않아’라며 부정하지 말고, 머리로 제대로 알고, 눈으로 제대로 확인하여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수정해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진보사관처럼 역사란 일직선으로 끊임없이 발전해 나가는 것은 아니다. 순간순간 어떤 선택을 하느냐, 그때 어떤 인식을 갖느냐에 따라 역사는 발전하기도 하고 퇴보하기도 한다. 나아감과 머뭇거림, 그리고 뒤처짐의 역동적인 흐름 속에 역사는 흘러가지만 장구한 세월로 보면 역사는 조금씩이라도 발전해 나가고 있다. 그렇기에 정작 중요한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핵심이라 할 수 있다.
▲ 어마어마한 크기의 광개토대왕 비문. 일본학자들이 회칠을 하여 왜곡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위대한 유산이다.
영화 『스물』은 바로 이와 같은 선택의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억눌려 있던 고등학생 시절을 마친 세 명의 친구들은 20살이 되던 어느 날 갈림길에 서서 고민을 한다. 하나의 길은 현실이란 길이고, 다른 하나의 길은 이상이란 길이다. ‘현실과 이상’을 이분법으로 나누어 그 중에 하나의 길만을 택해야 한다고 희화화하긴 하지만, 이 장면에서 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경재: 자~ 우린 지금 양 갈래 길에 서 있어. 이상과 현실. 지금까지 우리가 선택했던 것들에 대한 착오와 실수들은 우리가 오래 살아보지 않았다는 핑계로, 면책과 수정이 허용됐었지. 근데 이제 오래 살다본 현재의 우리로서 조금 더 책임감 있는 선택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자~ 어떤 길을 선택하든 서로의 길을 존중하고 응원하도록 하자. 자~ 난 이쪽(현실)!
동우: 자~ 난 이쪽(이상)!
치호: 니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있는데, 여긴 양 갈래 길이 아냐. 세 갈래 길이지. (뒤를 돌아보며) 난 이쪽!
경재: 어이 차치호군! 너 여자 가슴 좋아하지. 뒤돌아 가면 여자 친구 가슴이 아니라, 엄마 젖을 빨게 돼.
20살에 꼭 현실과 이상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억지스런 측면이 있지만, 그래도 뒤로 돌아가선 안 된다는 것만큼은 명확히 하고 있다. 꼭 현실과 이상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건 아니라 해도 앞을 보고 나아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 퇴보하려 하거나 잘못된 관점에 머무르려 하는 순간 우리는 가능성을 닫게 되고, 한계에 빠지기 때문이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고구려의 기상, 그리고 우리 선조들의 찬란한 문명을 이어받아 앞으로 나아가느냐, 패배주의적인 관점이나 ‘신라 패러다임’의 협소한 세계관에 함몰되어 뒤로 물러서느냐를 우리가 택해야 한다. 그때 올바른 선택을 해야지만, 역사를 배우는 의미 또한 알게 되며, 살아가는 의미 또한 분명해진다.
▲ [스물]을 처음 봤을 땐, 그저 가볍게 볼 영화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보면 볼 수록 매력있는 볼매스런 영화였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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